마틴의 수리점 셔터는 반쯤 내려져 있었다.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고 열린 것도 아닌, 그 어중간한 높이가 선우를 잠깐 멈추게 했다. 어제 서미라가 내일 아침 직접 찾아가라고 했을 때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었고, 골목 아래쪽 편의점은 이미 불을 켜 두고 있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셔터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골목은 조용했다.
선우는 마틴 가게 앞에서 두어 걸음 더 다가서다가 멈췄다. 셔터 아래 틈으로 공구 냄새가 흘러나왔다. 기름과 금속이 섞인 냄새. 누군가 최근에 작업을 했다는 뜻이었다. 선우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구청 접수 시한까지 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서미라는 오늘 오전 안에 마틴 서류를 챙겨 오라고 했다. 그 말이 지금 이 셔터 앞에서 무게를 달리 느껴졌다.
"오 씨."
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골목 모퉁이,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로 윤태식이 서 있었다. 담배는 피우고 있지 않았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빈 손이 오히려 더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 가세요?"
"마틴 가게."
선우가 짧게 답했다.
태식은 잠깐 뭔가를 가늠하는 눈으로 선우를 봤다. 그러더니 담벼락에서 등을 떼며 말했다.
"그 전에 잠깐 얘기 좀 합시다."
두 사람은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플라스틱 좌석 두 개가 불균형하게 박혀 있어서 한쪽이 살짝 들렸다. 태식이 먼저 앉으며 흔들리는 쪽을 눌렀다. 선우는 그 옆에 앉으며 편의점 쪽을 흘깃 봤다. 아직 손님은 없었다. 냉장고 소리만 유리창 너머로 낮게 울렸다.
"어제 저녁에 조합 쪽에서 움직였어요."
태식이 말했다. 설명도 없이 바로 본론이었다.
"개별로 연락 돌렸어요. 어제 회의 끝나고 두 시간 안에."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층 박 씨한테 갔고요."
태식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낮출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삼 층 조 씨. 두 사람 다 어제 제안서에 서명한 사람들이에요."
선우는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 회의에서 서명을 받은 사람이 두 명이었다. 박 씨와 조 씨. 구청 접수 요건을 겨우 맞춘 그 두 서명이었다. 선우는 어젯밤 서미라가 그 서명 용지를 스캔해서 파일로 저장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서미라는 그걸 보면서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뭘 제안했는데요."
"보상 단가 올려주겠다고요. 공식 협의 전에 개별로 마무리하면, 나중에 공식 협상 때보다 오십만 원 더 얹어준다고."
태식이 편의점 유리창 안쪽을 잠깐 봤다가 다시 선우를 향했다.
"오십만 원이에요, 오 씨. 사람들한테 그 돈이 어떤 무게인지 알죠?"
선우는 알았다. 박 씨는 이번 달 임대료가 열흘 남은 상황이었다. 조 씨는 지난달 권리금 분쟁으로 변호사 상담 비용이 나간 참이었다. 둘 다 오십만 원이 작은 숫자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합도 알고 있다는 게 지금 더 무거웠다.
"서명 번복하겠다고 했어요?"
"아직은 아니에요. 근데 흔들렸다는 건 확실해요."
태식이 말했다.
"어젯밤에 박 씨가 나한테 전화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오 씨가 더 잘 알 거 아니에요."
골목 아래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배기음이 잠깐 골목을 채웠다가 사라졌다. 선우는 그 소리가 지나가는 동안 태식의 얼굴을 봤다. 어딘가 피곤한 표정이었다. 경고를 주러 온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말을 꺼내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태식 씨는 왜 나한테 말하는 거예요."
선우가 물었다.
태식이 짧게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내가 조합 라인에 있는 거 알잖아요. 그 사람들이 왜 어제 회의 끝나고 바로 움직였겠어요. 제안서 내용 어디서 흘렸겠어요."
선우는 그 말의 뜻을 정리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제안서 초안, 태식 씨가 직접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요."
태식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만든 서류가 내 쪽 채널을 타고 올라갔을 수 있어요. 내가 막을 수 없었어요. 아니면 막을 수 있었는데 안 했거나."
그 말이 선우 뒤에 무겁게 붙었다. 태식은 자기 입으로 자기가 함정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변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과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올려놓는 것 같았다. 선우는 태식의 옆얼굴을 보면서 이 사람이 지금 어느 편인지 다시 계산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나한테 뭘 원하는 거예요."
선우가 다시 물었다.
"오늘 구청 접수 전에 박 씨 조 씨 직접 만나봐요. 흔들린 거 잡아야죠."
태식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서미라 씨한테도 알려야 해요. 근데 그게 쉽지 않을 거예요. 박 씨는 서미라 씨가 가장 믿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선우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마틴 가게 반쯤 내린 셔터가 시야 끝에 걸려 있었다. 박 씨와 조 씨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건 알았다. 서미라한테 알려야 한다는 것도. 근데 그보다 먼저 떠오른 건 태식이었다. 이 사람이 이걸 왜 지금 말하는지, 어젯밤에 박 씨 전화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경고라기엔 너무 차분했고, 배신이라기엔 너무 직접적이었다.
"여섯 번째 항목."
선우가 말했다.
태식이 멈췄다.
"제안서 여섯 번째 항목, 왜 비워놨어요."
태식은 선우를 돌아봤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로 편의점 냉장고 소리가 다시 낮게 흘렀다.
"나중에 얘기해요."
그게 전부였다. 그는 그냥 걸어갔다. 뒷모습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선우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선우는 편의점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잠깐 봤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생각났다. 냉장고 소리가 다시 들렸다. 오늘 구청 접수까지 남은 시간은 네 시간이었다. 서명은 두 개 있었다. 그 두 개가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틴은 아직 저 셔터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었다.
선우는 일어나서 먼저 마틴 가게로 걸었다. 셔터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무릎을 굽혀 반쯤 내린 셔터 아래를 들여다봤다.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공구 박스 하나가 열린 채로 바닥에 있었다. 사람은 없었다. 선우는 그 빈 공간을 잠시 들여다봤다. 불 켜진 가게에 사람이 없다는 게 꺼진 가게보다 더 이상했다.
선우는 그 자리에서 서미라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갔다.
"오빠, 마틴 왔어요?"
"없어요. 근데 그것보다 먼저 할 말이 있어요. 박 씨 지금 어디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서미라가 박 씨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침묵이 얼마나 길어질지 선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