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객잔 식당은 사흘 동안 필사방이 되었다. 손님이 밥을 먹는 긴 탁자 한쪽에는 고성 원장과 위원회 감정 기록이 놓였고, 다른 쪽에는 깨끗한 종이와 붓이 줄지어 섰다. 막금산은 국물을 나르다 먹물이 튈까 잔소리를 했지만, 가장 밝은 등잔 두 개를 직접 가져다 걸었다. 서진해는 창문마다 빛이 새지 않게 얇은 천을 쳤다.
분산 사본을 많이 만들자는 말은 쉬웠으나 같은 내용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담소령이 한 글자를 잘못 보고 ‘삼전’을 ‘오전’으로 베끼자 혜산댁이 곧바로 붓을 멈추게 했다. 약재 양이라면 사람을 해칠 수 있고, 날짜라면 알리바이가 바뀔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한 명이 읽고 한 명이 쓰며 세 번째 사람이 원본과 소리 내어 대조하는 방식을 정했다.
윤도겸은 각 묶음 첫 장에 장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훼손된 칸의 위치를 적었다. 종이 모서리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작은 구멍을 뚫었다. 한 묶음은 둥근 구멍 하나, 둘째는 세모 둘, 셋째는 둥근 것과 세모 하나씩이었다. 내용을 바꿔 끼우면 구멍 순서와 장수가 어긋나게 하는 단순한 표식이었다.
윤세하는 사본마다 자신의 가담 기록도 넣어 달라고 했다. 막금산은 그가 좋은 일만 강조하려는 줄 알고 눈을 좁혔다. 그러나 윤세하는 감찰부에서 명령을 받은 날짜, 옮긴 장부 수, 되돌려 놓지 못한 문서까지 빠짐없이 불렀다. “사본이 살아남는데 제 죄만 한 곳에 두면, 그 한 장이 탈 때 저는 다시 깨끗한 사람이 됩니다.” 혜산댁은 말없이 새 종이를 내주었다.
첫 묶음이 완성될 무렵 장터에서 한 사내가 ‘청문파의 진짜 장부’를 판다는 소문이 들어왔다. 그가 내민 종이에는 백무결의 이름 대신 이미 죽은 감찰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묻기 시작했고, 위원회 반대파는 사본이 많아지면 거짓도 많아진다는 증거라고 떠들었다.
서진해는 장터로 가서 사내의 팔을 비틀지 않았다. 값을 치르고 종이 한 장을 샀다. 가짜를 만든 경로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담소령이 종이를 비추자 닥섬유는 새것이었고 철분 먹은 겉에만 발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대조표 어느 것과도 맞지 않았고, 잘렸다는 셋째 장에 글이 가득했다.
“사본이 많아서 거짓이 생긴 게 아닙니다.” 서진해는 장터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어느 손에서 나왔는지 모르는 종이를 진짜라 부른 것이 문제입니다.” 그는 진짜 사본의 대조표만 펼쳐 보였다. 내용 전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장수와 처음·끝말, 입회자와 만든 시각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구멍 표식도 직접 만져 보게 했다.
가짜를 판 사내는 북문 창고 앞에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종이를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돈이 필요해 출처를 묻지 않았으며 청문파 쪽이 돈을 주고 되살 거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막금산은 그를 때리지 않고 받은 돈과 남은 가짜를 위원회에 제출하게 했다. 가난을 핑계로 죄를 없애지는 않되, 거짓의 윗손을 찾을 길을 끊지 않았다.
네 갈래 보관처는 서로 다른 생활 속에 정해졌다. 첫째 묶음은 삭풍객잔 마루 아래가 아니라 손님이 보는 잠금장 안에 두기로 했다. 둘째는 의원골의 공동 약방, 셋째는 고성과 운주를 오가는 회령상단의 장부 수레, 넷째는 청문위원회 외부 서고였다. 칼 든 문파 네 곳을 피한 까닭은 권력이 바뀔 때 모두 함께 문을 닫을 수 있어서였다.
각 보관처에는 두 사람이 공동 열쇠를 나누어 가졌다. 객잔 것은 막금산과 담소령, 의원골 것은 원장과 주민 대표, 상단 것은 행수와 마부 대표가 한 조였다. 위원회 서고만은 곽운제와 윤도겸이 맡았다. 한 사람이 마음을 바꾸어도 혼자 꺼내거나 없앨 수 없었다. 열람할 때에는 날짜와 까닭, 본 장의 번호를 남겼다.
원본은 어느 한 보관처에도 온전히 두지 않았다. 종이와 먹 감정에 필요한 장, 인수 계보, 환자 기록을 세 함에 나누되 각 함의 목록은 네 사본 모두에 적었다. 혜산댁은 처음에 반대했다. 원본이 흩어지면 자신이 맡아 온 계보가 무너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방 불길을 떠올리고 스스로 세 함의 매듭을 잘랐다.
“혜산이는 기록을 소유하는 이름이 아니었소.” 그녀가 말했다. “돌아갈 사람에게 넘길 때까지 맡는 이름이었지. 이제 돌아갈 곳이 한 군데가 아니라면, 내 손도 하나를 놓아야 하오.” 담소령은 첫 함을 받지 않고 의원골 주민 대표에게 건넸다. 어머니의 딸이라는 까닭만으로 모든 기록의 주인이 될 수는 없었다.
호송 날 아침 네 수레는 같은 시간에 출발하지 않았다. 하나는 장터의 채소 수레와 섞였고, 하나는 환자를 태운 의원 수레 뒤를 따랐다. 상단 묶음은 소금 자루 사이가 아니라 행수의 공개 장부함에 들어갔다. 숨겨 귀중품처럼 보이게 하기보다, 여러 사람이 계속 확인하는 평범한 물건으로 움직였다.
학영회 잔존자 둘이 의원골 길목에서 가짜 수레를 덮쳤다. 막금산이 일부러 빈 함을 실어 보낸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복한 자들을 베지 않고 바퀴 축을 빼 수레를 길에 눕혔다. 뒤따르던 관헌이 둘을 붙잡았다. 그들의 품에서는 네 보관처 가운데 의원골만 표시된 낡은 지도가 나왔다. 백무결 쪽 정보가 사본 분산 결정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의원 수레는 시장 사람들의 도움으로 북쪽 개울을 건넜다. 생선 장수는 종을 세 번 울려 길이 안전함을 알렸고, 짚신 장수는 뒤따르는 낯선 말을 세었다. 그들은 문서 내용을 알지 못해도 운반 시각과 수레의 상태를 증언할 수 있었다. 진실을 지키는 일은 비밀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 네 보관처에서 각각 도착 확인이 왔다. 확인서는 대조표의 첫말과 끝말만 적고, 보관 장소의 세부 위치는 쓰지 않았다. 윤도겸은 네 장을 맞춰 보고 구멍 순서와 인장이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한 장이라도 다르면 다음 열람을 멈추고 모든 보관자가 다시 대조하는 규칙이었다. 그날은 네 갈래가 모두 맞았다.
서진해는 가짜 장부를 태우지 않았다. 붉은 줄로 ‘출처 불명 위조본’이라고 쓰고 진짜 대조표 옆에 보관했다. 어떤 거짓이 돌았는지를 남겨야 같은 문장이 다시 나타났을 때 알아볼 수 있었다. 가짜를 만든 자의 솜씨도, 실수한 획도 기록의 일부가 되었다.
담소령은 객잔 잠금장의 두 열쇠 가운데 하나를 목에 걸지 않고 약상자 바닥에 넣었다. “제가 다치면 환자들이 열어 볼 수 있어야 해요.” 막금산도 자신의 열쇠가 있는 곳을 서진해와 혜산댁에게 알려 주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의 부재까지 대비하는 인수표를 만든 뒤에야 잠금장을 닫았다.
밤 장사가 끝난 뒤 서진해는 네 갈래 대조표를 다시 읽었다. 같은 글이 서로 다른 손의 모양으로 쓰여 있었다. 어느 사본도 원본과 완전히 같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서로 틀린 곳을 찾아낼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강한 한 사람이나 깊은 은신처가 아니라, 자주 열어 보고 서로 묻는 관계가 기록을 지켰다.
막금산은 등잔을 끄기 전에 잠금장 앞에 작은 나무패를 걸었다. ‘읽으려면 두 사람에게 말할 것.’ 비밀 문파의 금고답지 않은 문구였다. 서진해는 그 패가 마음에 들었다. 네 갈래로 떠난 사본은 흩어진 것이 아니라, 한곳이 불타도 다른 곳에서 사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도록 서로의 길을 붙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