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어제보다 일찍 왔다.
서진해가 눈을 떴을 때 부뚜막 쪽에서 이미 물 끓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담소령이었다. 창호지에 번지는 빛이 아직 회색이었으므로 해가 뜨기 전이었다. 서진해는 잠깐 누운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 물이 끓는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람의 손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손이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서진해는 천장을 보다가 이불을 걷었다.
마당에 나오니 막금산이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씻은 얼굴에 옷까지 단정히 갖춰 입은 모양이 어딘지 어색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앉아 있었던 것처럼, 평상 위에 자리가 패인 것 같은 자세였다. 서진해가 그 앞에 서자 막금산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뭘 그렇게 보나."
"아침에 저렇게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보게 됩니다."
"나이 들면 잠이 없어. 자네도 알게 될 거야."
막금산은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처마 끝을 바라보았다. 처마 밑에 제비집 자국이 있었다. 오래전에 떠난 것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인지, 그 자국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서진해는 그 옆에 슬쩍 걸터앉으면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어제 말씀하시다 멈추신 것 있지 않습니까."
침묵이 왔다. 처마 끝에서 참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약방 주인 이름 말입니다."
막금산이 손가락을 한 번 구부렸다가 폈다. 그것이 전부였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듣고 있다는 표시 같은 것이었다. 그러더니 낮게 말했다.
"아직은 아니야."
서진해는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 말 안에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직은, 이라는 말은 언제나 그 뒤에 무언가를 달고 다니는 법이었다. 서진해는 그 무언가가 두려움인지 기다림인지,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담소령이 차 두 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한 잔은 막금산 앞에, 한 잔은 서진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잔을 들지 않고 기둥에 등을 기댔다. 서진해는 그 모습을 곁눈으로 보았다. 담소령의 시선이 어딘가 먼 곳에 걸려 있었다. 어제 품에 넣은 종이가 아직 거기 있는지, 아니면 밤사이 어딘가로 사라졌는지, 서진해는 알 수 없었다. 물어보려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 뒤쪽에 오래 남았다.
"오늘 장 보러 가야 하는데."
담소령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막금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받았다.
"같이 가지."
"혼자 다녀올 수 있습니다."
"알아. 그래도 같이 가지."
막금산이 짧게 말하고 일어섰다. 담소령은 반박하지 않았다. 서진해는 그 짧은 교환을 보면서 막금산이 담소령을 혼자 두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제부터 그랬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손님이 온 것은 차가 다 식어갈 무렵이었다.
삭풍객잔 바깥에서 기침 소리가 한 번 났다. 조심스러운, 거의 신호에 가까운 기침이었다. 담소령이 기둥에서 등을 떼며 먼저 문 쪽을 보았다. 서진해가 미처 일어서기 전에 담소령이 이미 마당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발소리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 속도가 오히려 이상했다.
문을 열었을 때 서 있는 사람은 오십 안팎의 여자였다. 색이 바랜 회색 저고리에 짧은 머리채를 단정하게 묶은 모양이었는데, 손에 작은 보자기 하나를 들고 있었다. 보자기는 낡은 청색 천이었고, 안에 든 것이 딱딱한지 형태가 뚜렷하게 잡혀 있었다. 담소령을 보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담 씨 여기 계신다고 해서요."
담소령의 표정이 딱 한 박자 굳었다가 풀렸다. 서진해는 그 한 박자를 보았다. 눈 주위가 아니라 입 주변이었다. 말을 삼킨 것 같은 모양이었다. 담소령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막금산은 평상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가 마당을 지나는 동안 막금산의 눈이 그녀의 보자기 위에 한 번 멈추었다가 떠났다. 서진해는 그 시선을 보았고, 막금산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에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평상 아래 마른 잎 하나가 구르다가 멈추었다.
안방에서 담소령과 그 여자의 낮은 목소리가 한동안 흘러나왔다. 무슨 내용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서진해는 마당에 서서 기다렸다. 잠깐이면 될 것 같았으나 생각보다 길어졌다. 삼십여 분쯤 지났을까, 여자가 혼자 나왔다. 보자기는 더 이상 손에 없었다. 담소령에게 두고 간 것이었다. 여자는 서진해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고개를 숙이고 곧바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서진해가 한 발 내딛으며 물으려다 멈추었다. 물어볼 자격이 있는 자리인지가 먼저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발소리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담소령은 한참 후에 나왔다. 손에는 보자기를 들지 않은 채였다.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그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서진해에게는 오히려 낯설었다.
"아는 분입니까?"
서진해가 묻자 담소령은 짧게 답했다.
"예전에 알던 사람."
그리고 다시 부뚜막 쪽으로 걸어갔다. 예전에, 라는 말이 어느 정도의 예전인지, 어떤 방식으로 알던 사이인지, 그것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서진해는 담소령의 등을 보다가 막금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금산이 그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보자기 안에 뭐가 들었는지 봤어?"
서진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봤지."
막금산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덧붙였다.
"천으로 싸인 건데. 책 같은 거였어. 얇은."
그 말을 끝으로 막금산은 다시 처마 끝을 바라보았다. 더 말할 생각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서진해는 그것을 알면서도 한 번 더 기다렸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다.
담소령이 상을 차리는 동안 서진해는 심부름 삼아 마당 창고에서 장작을 가져오다가 문설주 아래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종이 한 장이 문설주와 흙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반쯤 짓밟혀 형태가 뭉개진 상태였다. 서진해는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살살 펴자 인쇄된 것인지 손으로 찍은 것인지 모를 작은 문양이 보였다. 뭉개져서 전체 모양은 알 수 없었으나 가운데 꽃잎처럼 벌어진 선들이 남아 있었다. 서진해는 그것을 빛 쪽으로 기울여 보았다. 저녁 햇살이 낮게 들어와 종이 위에 비스듬히 얹혔다. 문양의 가장자리가 그 빛 안에서 잠깐 선명해졌다가 다시 흐릿해졌다.
서진해는 한동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막금산이 말했던 봉투 문양과 같은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냄새가 났다. 오래되고, 딴 데서 온 물건의 냄새. 창고 안 장작 냄새와는 달랐다. 서진해는 종이를 접어 손 안에 쥐었다.
안에서 담소령이 불렀다.
"장작 가져오셨어요?"
서진해는 "예" 하고 대답하며 일어섰다. 장작을 안고 들어가면서 그 종이를 품 안에 넣었다. 자연스럽게,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것처럼.
그날 밤, 서진해는 그 종이를 품에 넣은 채 잠들었다. 담소령이 어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담소령과 달리 서진해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아직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알게 되면 그때는 어떨지, 그것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