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 시 십 분. 사무실 안에는 프린터 예열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다. 이겸은 자기 자리에서 서류 한 장을 넘기는 척하며 가온의 손을 보고 있었다. 가온이 노트북 화면을 이겸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복구 파일 목록 중 세 번째 폴더가 열려 있었다. 상단에 굵게 표시된 이니셜 두 글자—K.S—가 이겸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이겸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가온이 손가락으로 날짜 컬럼을 짚었다.
"세 번이에요. 같은 파일이 같은 이니셜로 세 번 접근됐어요. 열람이 아니라 이동이요. 파일 위치가 바뀌었거든요. 처음엔 계열사 공용 드라이브, 두 번째엔 임시 폴더, 세 번째엔—"
가온이 말을 잠깐 멈췄다. 손가락이 화면 아래 경로 한 줄을 가리켰다.
"삭제 대기열이에요. 근데 삭제가 안 됐어요. 누군가가 이동만 하고 실행을 안 한 거예요."
해진이 화면 옆에서 팔짱을 풀었다.
"K.S가 누군지 특정할 수 있어요?"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바로 말하지는 않았다. 이겸을 한 번 봤다. 이겸은 그 시선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온이 다시 화면을 봤다.
"태성그룹 전사 계정 목록 조회 결과랑 교차했어요. K.S로 시작하는 계정이 세 개인데, 두 개는 2년 전에 퇴직 처리됐고요. 남은 하나가—"
가온이 노트북 탭을 하나 더 열었다.
"강승표. 총무팀 문서 관리 파트. 현재 재직 중이에요."
해진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가 닫혔다. 이겸은 그 반응을 눈 끝으로 봤다. 해진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얼굴이었다. 기억을 더듬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것인지—그 경계가 이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강승표. 그 이름은 이겸의 수첩 안에도 있었다. 페이지 하단, 다른 이름들보다 작은 글씨로. 이겸이 이 생에서 직접 적은 이름이 아니었다. 회귀 전 기억 속에서 먼저 존재했던 이름이었다. 그가 왜 거기 있는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그것은 이겸이 아직 다 쥐지 못한 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온이 그 실의 끝을 잡아 꺼내고 있었다.
해진이 먼저 말했다.
"강승표 씨가 총무팀이면 지하 2층 캐비닛 관리도 담당 구역 안에 들어와요. 제가 그쪽 층 구조 봤을 때 문서 관리 파트가 키 소지 명단에 있었거든요."
이겸이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탕비실까지 걸어가 종이컵을 집어 드는 동안 손이 조용했다. 물을 따랐다. 마셨다. 식은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형광등 아래 탕비실은 좁고 조용했다. 이겸은 그 좁은 공간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
강승표는 장승민의 직접 지시를 받는 라인이 아니었다. 이겸이 알기로 그는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었다—지시를 내리지도, 거부하지도 못하는 위치.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기도 했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동안 묵묵히 서류를 옮기고, 파일을 이동시키고, 캐비닛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장부를 만든 손이 아니라 장부를 지켜온 손.
이겸이 탕비실에서 돌아왔을 때 해진이 노트북을 들고 서 있었다. 가온은 의자를 조금 당겨 앉은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이겸이 없는 동안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겸은 그것을 묻지 않았다.
"강승표 씨가 이 파일에 처음 접근한 날짜가 언제예요?"
이겸이 가온에게 물었다.
"2년 전 11월이요. 계열사 정기 감사 직전이에요."
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열사 정기 감사. 그 시기에 이겸은 외부 용역 출신의 포렌식 분석가를 처음 팀에 붙였다. 가온이 그 용역팀에 있었다. 지금 가온이 복구해낸 파일이 그 감사 직전에 처음 이동된 것이라면, 누군가는 그때 이미 감사 방향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겸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가온이 이겸의 표정을 읽으려는 듯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제가 그 용역 들어가기 전이에요. 저는 12월부터였거든요."
이겸은 가온을 봤다. 가온이 먼저 말한 것이었다. 이겸은 그 말을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가온이 이 사건의 무게를 자기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자기 이름이 어디에 걸릴 수 있는지를 스스로 계산하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
"확인 안 했어요."
이겸이 말했다.
"지금 당장 확인할 필요도 없고."
가온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인지 긴장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해진이 노트북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물었다.
"강승표 씨가 세 번 옮겼으면, 한 번은 올라가는 방향이어야 해요. 삭제 대기열이 마지막이었으면 두 번째는 어디예요?"
가온이 탭을 다시 짚었다.
"9층 공유 폴더예요."
9층. 이겸이 배달복을 입고 걸었던 경로의 중간 지점이었다. 카트 자국 방향이 달랐던 층. 이겸은 그 자국이 다른 손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그 손에 이름이 붙었다. 이겸은 9층 복도의 형광등 빛을 기억했다. 카트 바퀴 소리가 리놀륨 바닥에 남기던 낮은 마찰음. 그때 이겸은 그 소리가 자신보다 먼저 지나간 누군가의 것임을 알았지만, 그 누군가가 강승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일 줄은 몰랐다.
해진이 이겸을 봤다. 이겸은 시선을 받으면서 잠깐 생각했다—이 이름을 해진에게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수첩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자리가 오고 있었다.
"총무팀에 직접 접촉하는 건 아직이에요."
이겸이 먼저 말했다.
"강승표가 혼자 움직인 건지, 누구의 지시인지부터 봐야 해요. 서류를 옮긴 것만으로는 아직 지시 라인이 안 보여요."
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고개가 완전히 납득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가온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프린터가 한 번 돌아가다 멈췄다. 사무실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침묵이 프린터 열기 속에 잠깐 떠 있었다. 이겸은 그 침묵의 무게를 읽었다. 해진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부장님은 이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까—이 공기 어딘가에 있었다. 이겸은 그 질문이 오늘 안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 질문이 결국에는 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강승표 씨 최근 출입 기록 뽑을 수 있어요?"
이겸이 가온에게 물었다.
"시설팀 시스템에 연결해야 해요. 권한 요청하면 기록 남고요."
"남겨요."
이겸이 말했다.
"이번엔 흔적을 지우지 않을 거예요."
해진이 눈을 들었다. 이겸이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처음으로 이겸이 먼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해진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조금 바뀌었다. 그것이 신뢰인지 경계인지, 이겸은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가온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권한 요청 화면이 열렸다. 이겸은 그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이 요청이 시스템에 남는 순간, 강승표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이 있다면 그 손은 어디에 있는가. 팀 바깥인지, 아니면 팀 안인지.
장부를 만든 사람이 죄를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장부를 세 번 옮긴 사람이 그 죄를 살아 있게 했다. 이겸은 그것을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확인했다. 사건의 중심은 회계 코드가 아니었다. 관계였다. 지시를 내린 사람과 그것을 실행한 사람 사이의, 말이 없어도 유지되는 오래된 관계. 그리고 이겸은 그 관계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다만 아직 말할 수 없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