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서 온 급보는 새벽 종보다 먼저 삭풍객잔의 문을 두드렸다. 말을 몰아온 역졸의 눈썹과 어깨에 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고성 약방에 불이 났다고 말했다. 뒷채에서 시작된 약방 화재가 약재 창고로 번졌고, 안에 사람이 남아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혜산댁은 국자를 놓친 채 일어섰다.
서진해는 장부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사람이 몇입니까?” 역졸은 밤을 지키던 늙은 약방지기와 열다섯 살 약동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담소령은 젖은 면포와 화상 연고, 숨을 틔우는 침을 약상자에 넣었다. 막금산은 마구간에서 가장 빠른 말 둘을 꺼냈다. 윤세하는 위원회에 화재 시각을 알리는 쪽지를 남기고 뒤따랐다.
고성 남문에 닿았을 때 하늘은 밝아지고 있었지만 약방 골목은 밤처럼 검었다. 기와 아래서 누런 불길이 솟았고, 말린 약초가 터질 때마다 작은 폭음이 났다. 주민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었으나 좁은 골목 때문에 양동이가 자꾸 부딪쳤다. 서진해는 물줄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한쪽은 옆집 지붕을 적시고, 다른 쪽은 약방 문까지 길을 내게 했다.
혜산댁이 뒷채로 뛰어들려 하자 막금산이 허리를 붙잡았다. “우물 아래 원장은 내가 압니다.” 그녀가 소리쳤다. “원장 말고 사람부터요.” 담소령이 젖은 천을 혜산댁의 입과 코에 묶어 주며 말했다. “길을 아는 당신이 앞에서 약동을 부르세요. 진해가 지붕을 받치고, 제가 뒤따릅니다.” 말리는 대신 함께 들어갈 순서를 정했다.
앞문 들보는 반쯤 타 내려앉아 있었다. 서진해는 청락의 칼집을 들보 아래 비스듬히 괴고 어깨로 받쳤다. 잔화심결의 기운을 칼날에 밀어 넣지 않고 다리와 등으로 흘렸다. 불을 가르는 절초가 아니라 무게를 버티는 호흡이었다. 담소령과 혜산댁이 몸을 낮춰 그 아래로 들어갔다. 막금산은 바깥에서 밧줄을 들보에 걸어 주민들과 함께 당겼다.
“도하야!” 혜산댁이 연기 속에서 약동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지만 안쪽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담소령은 바닥에 엎드려 소리가 난 방향을 찾았다. 약재 선반 아래에 소년의 발이 보였다. 떨어진 서까래가 선반을 눌러 움직이지 않았다. 서진해가 뒤따라 들어와 청락의 칼등을 지렛대처럼 넣었다.
불붙은 병 하나가 선반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서진해는 검을 빼 휘두르는 대신 젖은 겉옷으로 병을 감싸 발밑에 눌렀다. 담소령이 소년의 맥을 확인하는 동안 혜산댁은 선반 밑에 손을 넣었다. 세 사람이 숨을 맞춰 들어 올리자 약동의 몸이 빠져나왔다. 소년은 의식이 없었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늙은 약방지기는 뒷문 가까이에서 발견됐다. 손에는 빈 물동이가 들려 있었고 발목이 문턱 틈에 끼어 있었다. 그는 불을 끄러 들어갔다가 연기를 마신 듯했다. 담소령은 젖은 천으로 그의 얼굴을 덮고 어깨 혈자리에 침을 놓았다. “눈 뜨지 않아도 됩니다. 숨만 저와 맞추세요.” 노인의 가슴이 한 번 크게 들썩였다.
바깥에서 들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막금산이 밧줄을 더 팽팽히 당겼지만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서진해는 약동을 등에 업고 먼저 나가 담소령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아니요. 노인은 혜산댁과 제가 끌어요. 당신은 문이 무너지지 않게 지키세요.” 담소령의 명령은 짧고 정확했다. 각자 맡은 일이 겹치지 않았다.
네 사람이 문턱을 넘는 순간 앞문 기둥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서진해는 청락으로 기둥을 베지 않았다. 베면 지붕 전체가 내려앉을 수 있었다. 대신 칼집 끝으로 기둥 밑의 돌을 밀어 받침을 만들었다. 막금산과 주민들이 밧줄을 놓고 달려들어 사람들을 골목 밖으로 옮겼다. 바로 뒤에서 지붕 한쪽이 무너져 붉은 불티가 솟았다.
담소령은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약동의 입안에서 검댕을 닦았다. 호흡이 돌아오지 않자 가슴을 일정하게 눌렀고, 혜산댁은 떨리는 손으로 소년의 이름만 되풀이했다. 한참 뒤 소년이 검은 물을 토하며 기침했다. 그 소리에 주민들 사이에서 울음과 탄식이 동시에 터졌다. 늙은 약방지기도 침을 맞은 뒤 얕게 눈을 떴다.
사람이 나온 것을 확인한 뒤에야 혜산댁은 우물 아래 기록을 말했다. 원본 전부가 아니라 인수 계보와 환자 명부 첫 장이 돌함에 남아 있었다. 불길은 이미 뒷마당을 삼켰다. 막금산은 들어가려 했으나 서진해가 막았다. “지붕이 내려앉았습니다. 우물은 바깥에서 파낼 수 있습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삽과 쇠갈고리를 구해 달라고 했다.
불이 잦아든 뒤 그들은 무너진 담장 쪽에서 우물까지 길을 팠다. 돌함의 뚜껑은 뜨거웠지만 안쪽 기름종이는 일부만 그을렸다. 혜산댁은 원본을 품에 안지 않고 흰 천 위에 펼쳐 모든 입회자가 보게 했다. 약방지기, 역졸, 주민 둘, 윤세하가 남은 장 수와 훼손된 부분을 함께 적었다. 살린 사람 뒤에야 구한 기록이었다.
약동 도하는 정신을 차리자 불이 시작된 장면을 말했다. 자정이 지나 검은 복면을 쓴 사내 둘이 뒷담을 넘었고, 한 명이 약재 창고 바닥에 기름을 뿌렸다. 도하가 소리치자 다른 한 명이 입을 막아 선반 뒤에 묶었다. 늙은 약방지기가 달려들어 한 명의 복면을 벗겼고, 그 얼굴은 고성 현리에게 넘긴 추격자와 함께 다니던 창고지기였다.
역졸들이 발자국을 따라 남쪽 염색장 폐허에서 그 창고지기를 붙잡았다. 그의 바지에는 화유 냄새가 났고 품에서는 두 장의 명령 쪽지가 나왔다. 하나에는 ‘종이를 없애라’고, 다른 하나에는 ‘혜산을 찾지 못하면 약동을 데려오라’고 적혀 있었다. 명령은 학영회 내부에서 쓰는 축약자로 되어 있었지만 마지막에 백무결 사저의 두 겹 봉인이 눌려 있었다.
창고지기는 백무결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명령은 사저 집사 고윤평에게 받았고, 불을 지른 뒤 북문 창고에서 말과 은을 받기로 했다는 진술이었다. 윤세하는 고윤평이 위원회 명단 셋째 자리에 들어가려 했던 바로 그 문객이라고 확인했다. 흩어져 있던 이름과 불길이 같은 사람에게 이어졌다.
서진해는 붙잡힌 자를 골목으로 끌고 와 불탄 약방 앞에 세우자는 주민들을 막았다. 도하의 아버지가 주먹을 들자 그는 팔로 길을 막되 검은 잡지 않았다. “이 사람이 맞을 곳은 여기서가 아니라 증언 앞입니다. 지금 죽거나 말을 못 하게 되면 명령한 자만 편해집니다.”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살아난 도하가 아버지의 소매를 잡았다.
담소령은 방화자의 손등 화상도 치료했다. 주민 하나가 왜 저런 자까지 살리느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살려서 책임을 묻기 위해서예요. 치료는 죄를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방화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지만, 윤도겸이 도착해 진술을 적기 시작하자 고윤평에게 받은 돈의 액수와 만난 장소까지 털어놓았다.
불탄 약방의 앞채는 잃었고 귀한 약재도 절반 이상 재가 되었다. 혜산댁은 손실 목록을 숨기지 않았다. 원본 세 장은 모서리가 타 글자 일부를 잃었고, 다섯 장은 온전히 남았다. 주민들이 기억하는 재고와 거래 기록을 대조해 복원 가능한 부분과 영영 모르는 부분을 나누었다. 모르는 칸에는 추측을 채우지 않고 붉은 선을 그었다.
해 질 무렵 막금산은 무너진 문 앞에 임시 기둥을 세웠다. 담소령은 약동과 노인을 의원으로 옮겼고, 서진해는 방화자들을 두 갈래 수레로 호송하게 했다. 혜산댁은 빈 약장 하나를 쓰다듬은 뒤 돌아섰다. 그녀가 건져 나온 것은 종이만이 아니었다. 기록보다 먼저 걸어 나온 두 사람이 불의 목적을 증언했고, 붙잡힌 손은 불길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끝까지 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