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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8화]

종이 위에 쓰면 비로소 사실이 된다

작성: 2026.05.26 13:18 조회수: 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오전 여덟 시 사십 분이었다. 릴레이 구조대 첫 순환이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온 처치실 안은 출발 전보다 분명히 좁아져 있었다. 숫자가 늘어난 건 아니었다. 물건이 늘었다. 구조대가 복도 끝에서 끌고 온 의자 두 개, 구급 키트 한 개, 누군가 문 밖에 두고 간 생수병 세 개. 그 물건들이 처치실 중앙을 조금씩 차지하면서 남은 바닥이 줄어 보였다. 유리는 생수병을 벽 쪽으로 밀어놓고 구조대 인원 한 명씩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손바닥 찰과상, 무릎 타박, 오른쪽 발목 삔 것.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었다.

구급 키트를 열자 소독약 냄새가 처치실 공기에 섞였다. 피 냄새와 합쳐지면서 뭔가 지독하게 병원 같은 냄새가 됐다. 유리는 코를 찡긋하지 않았다. 이미 사흘째였다. 몸이 먼저 익숙해졌다. 발목을 삔 구조대원이 스스로 신발을 벗으려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유리가 쭈그려 앉아 신발 끈을 직접 풀었다. 복숭아뼈 바로 아래가 부어 있었다. 인대 손상 정도였다. 압박 붕대를 감으면서 유리가 물었다.

"다음 순환 때 빠져야 해요."

구조대원이 잠깐 말을 고르는 것이 느껴졌다.

"빠지면 인원이 부족한 거 아닙니까."

유리는 대답 대신 붕대 끝을 테이프로 고정했다. 그게 대답이었다.

"물 한 병씩 마시고 자리 잡으세요."

유리가 짧게 말했다. 구조대에 섞인 생존자 중 한 명,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생수병을 받으면서 "고맙습니다"를 두 번 말했다. 유리는 그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조여드는 감각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정확히 알게 된 건 오늘 아침이었다. 아직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은 앞으로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리는 그 전제를 지금 믿지 않았다.

박미숙은 처치실 안쪽 구석, 기둥 옆에 앉아 있었다. 유리가 돌아온 직후 슬쩍 봤을 때 손목 붕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붕대 교체 시간이 됐지만 박미숙은 먼저 요청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유리를 더 불편하게 했다. 환자가 먼저 말하지 않을 때 이유는 두 가지다. 아프지 않아서, 아니면 아프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유리는 박미숙 쪽으로 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가지 않았다. 이유를 스스로 정확히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정윤호는 처치실 입구 가까운 자리에 서서 구조대가 가져온 구급 키트 목록을 종이에 적고 있었다. 연필심이 짧아서 손가락에 힘을 줘야 글씨가 눌렸다. 유리가 그쪽을 지나칠 때 윤호가 말을 걸었다.

"다음 순환은 몇 시로 잡으실 겁니까."

유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두 시간 후요."

"인원 그대로 가나요."

"손목 빼고."

유리가 말했다. 목소리에 아무것도 담지 않으려고 했다. 윤호가 잠깐 연필 끝을 종이에 댄 채 멈췄다가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 짧은 정지를 유리는 등 뒤로 느꼈다. 윤호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대답처럼 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남은 말들이 공기 속에 그냥 걸려 있었다.

하린은 처치실 한쪽 구석에 앉아 태블릿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화면 밝기를 최저로 낮춰서 바로 옆에 앉지 않으면 뭘 보는지 알 수 없었다. 유리가 지나치면서 화면을 한 번 봤다. 주파수 그래프였다. 선이 아까보다 더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린이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계단 쪽이요. 아까보다 세졌어요."

"얼마나."

"두 배 정도."

하린이 태블릿을 살짝 기울여 유리 쪽으로 보여줬다. 선의 진폭이 전보다 넓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유리는 그것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호가 강해진다는 건 발신원이 가까워지고 있거나 발신 강도가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둘 다 좋은 신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유리는 지금 그것을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혼자 계단 쪽으로 가지 마."

하린이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완전히 납득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유리는 그것으로 넘어갔다. 지금 당장 하린과 계단 신호를 두고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하린은 태블릿을 다시 무릎 위에 내려놓으면서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그 작은 동작이 유리의 시야 끝에 걸렸다가 사라졌다.

유리는 처치실 안쪽으로 들어가 처치대 끝자리에 앉았다. 등을 벽에 기대고 무릎 위에 빈 종이 한 장을 올렸다. 구조대가 가져온 구급 키트 안에 볼펜이 하나 있었다. 뚜껑을 빼고 종이 위에 대봤다. 잉크가 나왔다. 유리는 그 볼펜을 잠깐 손 안에서 굴렸다.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피로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분이 안 됐다.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썼다. 손 글씨가 평소보다 작았다. 의식적으로 작게 쓰려 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첫 줄을 쓰고 잠깐 멈췄다. 이동 가능 기준이었다. 걷거나 부축받아 이동할 수 있는 상태, 의식 명료, 감염 징후 없음. 두 번째 줄을 썼다. 분리 기준. 세 번째 줄에서 볼펜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이동 불가. 유리는 그 세 글자를 쓰고 잠시 볼펜을 들었다. 종이를 들어 다시 읽지 않았다. 한 번 쓰면 그게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써 있어야 했다. 말로 하면 사라지지만 종이에 쓰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지금 유리에게 필요한 이유였다.

볼펜을 내려놓으면서 유리는 처치실 바깥을 봤다. 윤호가 서 있던 자리에 윤호가 없었다. 잠깐 찾다가 문 옆 기둥 뒤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선이 짧게 맞았다. 윤호는 시선을 돌렸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유리는 종이를 뒤집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를 감추려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뒤집어졌다. 그 순서가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걸 유리는 알고 있었다. 윤호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유리는 더 이어가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 오 분이었다. 처치실 안쪽 구석에서 박미숙이 기침을 한 번 했다. 짧고 낮았다. 옆에 앉은 사람이 돌아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유리는 그 소리를 들었다. 들었다는 걸 표정에 내지 않으려고 했다. 볼펜을 다시 집어 종이를 뒤집었다. 네 번째 줄을 추가했다. 손이 이번엔 떨리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한 느낌이었다. 떨리지 않는다는 건 이미 결정이 서 있다는 뜻이었다. 유리는 그것을 알면서 볼펜 뚜껑을 닫았다.

하린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태블릿을 손에 들고 처치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를 줄이려는 것처럼 천천히. 유리는 그 뒷모습을 봤다. 말을 했어야 했는지 잠깐 생각했다. 하린이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문을 열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였다. 태블릿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하린의 옆얼굴에 떨어졌다. 주파수 선이 또 흔들렸다. 이번엔 더 크게. 유리는 일어서려다가 멈췄다. 하린이 먼저 돌아섰다. 눈이 마주쳤을 때 하린이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소리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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