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저녁 다섯 시 반, 아르덴 옥상 바는 아직 세팅 중이었다. 지민이 직접 올라와 화분 위치를 바꾸고 있었고, 알바생 둘이 바 테이블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 서린은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난간 쪽에 서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구름이 예상보다 두꺼웠다. 오후 내내 기상 앱을 들여다봤는데 예보는 '흐림 후 개임'이었다. 그 예보를 믿은 자신이 잠깐 원망스러웠다.
"언니, 구름 색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지민이 화분 하나를 들고 서린 옆으로 왔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쪽 하늘을 봤다. 구름 밑단이 납빛이었다. 지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상청이 또 틀린 거 아닐까요."
"맞아도 어쩔 수 없고, 틀려도 어쩔 수 없어. 준비한 대로 가자."
서린이 클립보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민은 화분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후 조용히 뒷목을 긁었다. 서린은 그 표정을 굳이 묻지 않았다.
연회는 일곱 시에 시작됐다. 아르덴 후원 파트너 열두 팀, 루셀 관계자 다섯 명, 그리고 미디어 초청 두 곳. 도윤은 여섯 시 반부터 옥상 바 한쪽에 마련된 작은 오픈 키친에서 카나페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린이 올라갔을 때 그는 등을 보이고 있었다. 앞치마 끈이 한 번 틀어져 있었다. 서린은 그걸 말하려다 관뒀다. 지민이 먼저 뛰어가서 고쳐줬다.
"셰프님 뒤 좀 봐요. 제가 매니저예요, 저는."
도윤이 돌아보며 짧게 웃었다. 서린과 눈이 마주쳤다. 0.5초. 그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 서린도 클립보드 쪽으로 눈을 내렸다. 지민만 눈치 없이 앞치마 끈을 다시 한 번 당겨줬다.
비는 일곱 시 이십 분에 왔다. 예보에 없던 비였다. 처음엔 몇 방울이었는데 일 분 만에 커졌고, 삼 분이 지나자 제대로 된 폭우였다. 옥상 바 한쪽에 세워 둔 간이 어닝이 첫 번째 돌풍에 한쪽이 접혔고, 테이블 위 유리잔들이 빗물을 받기 시작했다. 지민이 무전기를 들었다. 서린은 이미 뛰고 있었다.
"2층 연회장 지금 당장 준비해. 손님 전부 내린다."
열 오 분 만에 손님들은 모두 아래로 내려갔다. 직원들이 테이블보를 걷고, 잔을 날랐다. 도윤은 오픈 키친 장비를 덮개로 덮으면서 서린에게 물었다.
"카나페는?"
"냉장 보관 가능한 거 먼저 내리고, 나머지는 버려요."
"다 버리기엔 좀 많은데."
"비 맞은 거 손님한테 낼 순 없잖아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닝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도윤이 한 발짝 물러나며 서린 쪽으로 몸을 틀었다. 두 사람 모두 흠뻑은 아니었지만 어깨와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서린이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도윤은 그 손을 보다가 시선을 다른 데 뒀다.
손님들이 내려가고 직원들도 따라 내려가면서 옥상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서린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표시등이 켜지지 않았다. 다시 눌렀다.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과부하 걸렸나."
도윤이 층계 쪽 문을 당겼다. 잠겨 있었다. 비상 키가 있어야 열리는 구조였다.
"서린 씨, 비상 키 어디 있어요?"
"당연히 아래에 있죠."
"그럼 우리 지금 갇힌 거예요?"
서린이 무전기를 들었다. 지민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언니, 지금 손님들 내려오면서 엘리베이터 두 대 다 잡혀 있어요. 오 분이면 돼요."
"비상 계단 키 가져와."
"아, 그게 지금 시설팀장님이 갖고 계신데 전화가 안 돼요."
서린이 무전기를 내렸다. 폭우는 계속됐다. 옥상 바 어닝이 내려앉은 자리에 빗물이 고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 테이블 안쪽, 그나마 지붕이 남아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좁았다. 도윤이 바 의자 두 개를 빗물 없는 쪽으로 밀었다. 서린이 그중 하나에 앉았다.
침묵이 꽤 길었다.
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이었다.
"7번 조항."
서린이 그를 봤다.
"그거 루셀 요청이었죠?"
"맞아요."
"근데 서린 씨가 반려를 안 했잖아요."
서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빗소리가 채워줬다.
"반려하면 계약이 흔들려요. 루셀이 빠지면 이 프로젝트 전체가 흔들리고."
"그건 알아요. 근데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에요."
도윤이 카운터 위에 팔꿈치를 올리며 서린 쪽을 똑바로 봤다. 서린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당신이 그 조항을 두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묻는 거예요."
"……."
"나를 묶어두려던 거예요, 아니면."
"아니에요."
서린의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자신도 놀랐다.
"그럼?"
서린은 잔 하나를 집어 손바닥 안에서 굴렸다. 빈 잔이었다. 손이 약간 차가웠다.
"당신이 또 나가버릴까 봐."
말이 나온 뒤 침묵이 다시 왔다. 이번엔 빗소리도 잠깐 줄어든 것 같았다.
도윤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린은 그 침묵을 잘못 읽을까 봐 먼저 정정하려다 멈췄다. 정정하면 방금 한 말이 더 커진다.
"……그거 알아요?"
도윤이 낮게 말했다.
"내가 그때 나간 게 아니에요."
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밀려난 거예요. 그게 달라요."
그 말은 짧았는데 무게가 이상했다. 서린은 뭔가를 더 물으려다 도윤이 먼저 시선을 옮기는 걸 봤다. 멀리, 빗물 고인 어닝 쪽. 그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농담을 준비하는 눈이 아니었다.
"밀려났다는 게."
"나중에. 오늘은 여기까지."
도윤이 말을 잘랐다.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서린은 더 누르지 않았다. 폭우가 다시 세졌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비 내리는 서울을 보고 있었다. 지붕 끝에서 빗물이 줄기를 이루며 떨어졌다. 멀리 호텔 간판 불빛이 번졌다.
"배고프죠?"
도윤이 갑자기 물었다.
"……조금."
"잠깐만요."
그가 바 카운터 아래 서랍을 뒤졌다. 뭔가를 꺼냈다. 비상용 크래커 한 봉지와 작은 유리병 하나였다.
"피클이에요. 시설팀 누가 숨겨둔 거 같은데."
서린이 피클 병을 받아들었다. 뚜껑이 뻑뻑했다. 두 번 돌려도 안 열렸다. 도윤이 손을 내밀었다. 서린이 건넸다. 그가 손목에 힘을 줘서 한 번에 열었다. 건네줄 때 손가락 끝이 잠깐 닿았다.
두 사람 다 모른 척했다.
크래커를 반씩 나눠 먹으면서 비가 조금 약해졌다. 지민 무전이 다시 들어왔다.
"언니, 엘리베이터 지금 올라가요. 삼 분만요."
서린이 대답했다. 무전기를 내려놓고 나서 도윤을 봤다. 그는 크래커 한 조각을 손가락으로 쪼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밀려났다는 말."
서린이 조용히 꺼냈다.
"나중에 해줄 거예요?"
도윤이 쪼갠 크래커를 입에 넣으며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 안 오는 날에."
그게 대답인지 농담인지 서린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난 뒤 도윤이 처음으로 서린 쪽을 정면으로 보며 조용히 웃었다. 연출 없이. 연회장 테이블에서 찍힌 사진 속 그 먼 눈빛이 아니라, 지금 이 옥상 바 지붕 아래에서.
서린은 그 얼굴을 기억하려고 하다가, 기억하려 한다는 걸 알아채고 시선을 창가 쪽으로 뒀다. 엘리베이터 표시등이 켜졌다. 딸깍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