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 안쪽 마당은 생각보다 좁았다. 수레 세 대가 들어오자 공간의 절반이 찼고, 말들이 내쉬는 숨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뿌옇게 피어올랐다. 카일은 수레 옆에 서서 아이들이 내려오는 것을 하나씩 지켜봤다. 다리가 굳은 아이, 손을 내밀어도 잡지 않는 아이, 내리자마자 땅을 확인하듯 발을 구르는 아이. 내려오는 방식이 모두 달랐다. 수레 바닥에 쇠고리가 박혀 있었다. 사슬을 걸었던 자리였다. 카일은 그것을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시 숙소는 관문 동쪽 창고를 급히 비운 것이었다. 짚을 깔고 담요를 몇 장 늘어놓은 게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들어가자마자 벽 쪽으로 흩어졌다. 자리를 정하는 것인지 피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됐다. 카일은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봤다. 젖은 짚 냄새가 올라왔다. 마구간 공기와 비슷했는데, 마구간보다 더 작고 더 촘촘했다. 아이들이 벽에 등을 붙이고 앉으면 방 전체가 거의 찰 것 같았다.
"이름을 받아 적어라."
이안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왔다. 카일이 돌아봤을 때 이안은 이미 수비대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갑옷 어깨판이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가 짧게 났다. 설명 같은 건 없었다. 카일은 그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피지 한 장과 숯 조각 하나. 이안이 미리 챙겨 놓은 것의 전부였다. 카일은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홉 명. 제일 어린 것은 다섯이나 여섯쯤 되어 보였고, 제일 큰 것은 카일보다 한두 살 아래일 것 같았다. 아이들은 카일을 보면서도 보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런 눈을 카일은 안다. 훈련장에서 맞은 다음 날 아침에 하는 눈이었다. 아직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몸은 이미 다음을 대비하고 있는 눈.
"이름이 뭐야."
첫 번째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일은 기다렸다. 창고 안에서 누군가 기침을 했고, 짚 냄새와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이는 손으로 무릎을 꼭 쥐고 있었다. 카일은 숯을 양피지에 대고 느리게 긁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냥 선을 하나 그었다.
"천천히 해도 돼."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레나."
카일은 그것을 받아 적었다. 손 글씨가 고르지 않았다. 원래도 잘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숯이 자꾸 부스러졌다. 그래도 받아 적었다. 레나. 두 글자가 양피지 위에 남았다.
다음은 남자아이였는데, 이름을 두 번 물었을 때 그제야 "몰라"라고 했다. 카일은 잠깐 멈췄다. "뭘 몰라?" 아이가 눈을 내리깔았다. "이름. 불린 적이 없어서." 카일은 숯을 내렸다.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랐다. 창고 바깥에서 말 발굽 소리가 멀어지는 게 들렸다.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지금 네가 쓰고 싶은 이름 있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카일은 그 자리에 작은 선 하나만 그었다. 나중에 채울 칸이었다. 선을 긋는 손이 조금 느렸다.
창고 뒤편에 앉아 있던 아이 하나가 "글 못 읽어요"라고 먼저 말했다. 카일은 고개를 들었다. 열두어 살쯤 된 여자아이였다. 팔뚝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카일은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얼굴로 올렸다. "나한테 하는 말이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봤자 저는 모르니까요." 카일은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참았다. "나는 지금 네가 읽으라고 적는 게 아니야. 내가 기억하려고 적는 거야." 아이가 조용히 카일을 봤다. 잠시 후 말했다. "에른." 카일이 받아 적었다. 에른. 글자가 짚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머지 여섯 명도 하나씩 받아 적었다. 어떤 아이는 이름을 말하면서 카일의 손을 내려다봤다.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숯이 양피지를 긁는 소리에 고개를 기울이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이름을 두 개 댔다. 하나는 어미가 불렀던 것, 하나는 팔린 뒤에 불렸던 것. 카일은 두 개를 다 적었다. 어느 쪽이 진짜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 걸 물어볼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 몰랐다.
아홉 명을 다 받아 적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창고 안이 조금씩 어두워졌는데 아무도 촛불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카일은 마지막 글자를 흐릿하게 받아 적고 양피지를 들어 창고 입구 쪽으로 기울였다. 빛이 겨우 닿았다. 양피지에 이름이 여덟 개와 선 하나. 어떤 것은 흐릿했고, 어떤 것은 숯이 뭉개져서 두꺼웠다. 글씨가 예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홉 자리가 거기 있었다.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창고 밖으로 나오자 레오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마구간에서 나온 것인지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인지, 카일은 묻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로 관문 마당의 찬 공기가 지나갔다. 카일이 양피지를 접으려는데 레오가 한마디 했다.
"다 썼어?"
"응."
"이름 없는 놈은?"
카일은 대답하는 대신 양피지를 펼쳐 보였다. 레오가 선 하나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 양피지를 가져가더니 허리춤에서 숯 조각을 꺼냈다. 카일은 그게 어디서 났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레오가 선 위에 무언가를 덧썼다. 카일이 들여다봤다.
'단'
이라는 글자였다.
"뭐야, 이게."
"별명이다. 내가 어릴 때 쓰던 거."
레오가 양피지를 다시 건넸다. "쓰든지 말든지."
카일은 그 글자를 잠깐 봤다. 레오의 필체는 카일보다 훨씬 반듯했다. 귀족 집안에서 배운 글씨였다. 그 반듯한 글씨가 이름 없는 아이의 칸에 들어가 있었다. 카일은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레오는 이미 등을 돌리고 마구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깨가 평소보다 좁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빛이 그쪽으로 기울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카일은 그 뒷모습을 부르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이안이 양피지를 건네받았다. 횃불 하나를 손에 들고 훑어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도 바로 내려놓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자리에 선 하나와 나중에 덧쓴 글자를 보고 있었다. 횃불 빛이 그 부분에 닿아 있었다.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글자의 그림자가 짧게 움직였다. 카일은 그게 누구 글씨인지 말하지 않았다. 이안도 묻지 않았다.
"수고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카일은 그 말이 오늘 이안에게서 나온 가장 긴 문장처럼 느껴졌다. 이안이 돌아서자 갑옷이 마찰음을 냈다. 창고 쪽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 크게 웃거나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서로 말을 섞는 소리였다. 그것만으로도 달라진 공기였다.
카일은 관문 마당 가장자리에 혼자 서서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을 봤다. 손 안쪽이 숯으로 까매져 있었다. 씻으러 가야 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 서약이 어떤 말로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양피지에 받아 적은 것들이 어떤 형태의 서약과 닮아 있다는 것은 알았다. 명예가 아니라 이름. 전공이 아니라 이름. 기억하겠다는 것. 그것이 먼저였다. 내일이면 공식 인정 절차가 시작된다. 어떤 서약을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라스가 쓰러지기 직전에 남긴 말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카일은 아직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먼 쪽에서 레오의 기침 소리가 한 번 났다. 밤이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