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한 시 사십 분이었다.
점심은 서하 혼자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참치마요를 고르려다 손이 먼저 닿은 건 명란젓갈이었다. 먹으면서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다 먹었다. 계산대 앞에서 영수증을 받아 쥐는 순간, 오늘 뭔가 어긋나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그런 예감은 보통 틀리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니 도윤은 아직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한재원은 이미 와 있었다. 그가 언제 밥을 먹는지 서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파일은 서랍 안에 있었다. 어젯밤 집에 가져가려다 그냥 뒀다. 가져가도 딱히 더 보이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 빈칸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서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파일이 말해주지 않을 테니까. 서하는 서랍을 열고 파일을 꺼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다시 펼쳤을 때도 그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종이 표면이 약간 눌려 있었다. 어제 볼펜 끝으로 두드렸던 자리였다.
접수 담당자. 네 글자.
다른 파일에는 전부 이름이 있었다. 아니, 이름은 아니고 사번이었다. 이니셜이거나, 줄여 쓴 팀 코드이거나. 어쨌든 무언가가 있었다. 강민주 씨 건에만 그 칸이 텅 비어 있었다. 서하는 볼펜 끝으로 그 칸 테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소리도 없이 종이만 조금 눌렸다. 옆 팀 프린터가 낮게 돌아가는 소리가 사무실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 소리가 없었다면 너무 조용했을 것이다.
"그거 또 봐?"
도윤이 돌아온 건 그때였다. 손에 캔커피를 들고 있었고, 얼굴은 점심 전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서하는 파일을 반쯤 덮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응. 아직 이해가 안 돼서."
"뭐가."
"담당자 칸."
도윤이 자기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면서 캔을 딸깍 열었다. 한 모금 마시고 잠깐 허공을 봤다. 서하는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따라가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허공이었다.
"나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긴 했어. 근데 그냥 넘겼어."
"왜요?"
"내 건이 아니었으니까."
그 말이 서하한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내 건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무심코 나온 건지, 아니면 진짜로 선을 긋는 말인지. 도윤은 이미 화면을 열어 다른 창을 띄우고 있었다. 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속으로만 한 번 더 굴렸다. 그럼 지금은 누구 건인 거지.
오후 두 시가 넘었을 때, 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갔다. 커피를 타려고 봤더니 봉지가 하나뿐이었다. 뜯으면서 물을 받는데 한재원이 들어왔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오실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뜯었을 텐데요"라고 했다가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무슨 말이야, 지금. 탕비실 형광등이 유독 밝아서 얼굴이 달아오른 게 티 날 것 같았다.
한재원은 냉장고를 열면서 "괜찮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생수를 꺼내더니 한 모금 마셨다. 서하는 커피를 젓는 척하면서 살짝 옆을 봤다. 그가 오늘 오전에 책상 위에 올려놓은 파일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회의 내내 열지 않았던 그것. 표지에 아무 표시도 없었다.
"저기, 파견 오시기 전에."
말이 나왔다. 서하는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서 계속했다.
"본사에서 강민주 씨 건 담당하셨어요?"
한재원이 생수병 뚜껑을 닫으면서 서하를 봤다. 표정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냥 잠깐, 0.5초 정도 더 보는 것 같았다.
"직접 담당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인접 건이었습니다."
인접 건.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서하는 정확히 몰랐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유형으로 들어온 건인지, 아니면 관련 당사자가 겹쳤던 건인지. 한재원은 더 말하지 않았고, 서하도 더 묻지 못했다. 그가 탕비실을 나갔다. 서하는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굴렸다. 인접. 인접이라는 건 붙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가깝지만 같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는 그가 말해주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파일을 다시 폈다. 이번에는 접수 이력 전체를 처음부터 훑었다. 접수 일자, 접수 채널, 고객 서명 날짜, 대리인 지정 시점. 항목마다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다가 멈췄다. 초기 안내 발송 기록이 접수일보다 사흘 늦었다. 다른 건들은 보통 당일이나 다음 날이었다. 사흘은 이상했다. 어디선가 멈췄거나, 아니면 누군가 들고 있었거나. 서하는 그 칸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노란색.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오후 세 시, 박 상무가 팀 채팅방에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금주 내로 강민주 건 기존 접수 이력 재정리 요망. 누락 항목 포함.]
서하는 그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누락 항목. 그러면 빈칸이 누락으로 분류된다는 건가. 아니면 상무도 그 빈칸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건가. 도윤이 먼저 읽음 표시를 눌렀다. 한재원도 곧 읽었다. 서하는 자기 이름을 채팅방 참여자 목록에서 확인하고 나서야 읽음을 눌렀다. 손가락이 한 박자 늦었다.
"야."
도윤이 낮게 불렀다. 서하가 고개를 드니 도윤이 채팅 화면을 턱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누락 항목이 뭔지 알아?"
"담당자 칸이요?"
"그게 전부일까."
그건 질문이기도 하고 독백이기도 했다. 도윤은 이미 화면을 다시 내리고 있었다. 서하는 잠깐 도윤의 옆얼굴을 봤다. 아까 점심 때 말했던 것—'내 건이 아니었으니까'—그 말이 다시 올라왔다. 지금은 그 건이 도윤한테도 넘어온 셈이었다. 어제 회의 이후로. 도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서하는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복도에서 한재원과 마주쳤다. 복도 끝 창가 쪽이었다. 그가 전화를 끊는 중이었다. 표정은 통화 직후의 사람처럼 잠깐 굳어 있었다. 서하는 옆으로 비켜서려 했는데, 한재원이 먼저 한 발 물러서면서 길을 텄다. 그 타이밍이 서로 반대였다면 몸이 부딪혔을 것이다. 서하는 "감사합니다"라고 했고 한재원은 고개만 까딱했다. 복도에는 점심 때 누군가 데워 먹은 국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면서 서하는 생각했다. 그가 전화를 끊던 표정. 웃지도 않았고 굳지도 않았다. 그냥 통화가 끝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근데 복도 끝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는 건, 팀 안에서 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조용한 곳을 찾은 것뿐일 수도 있었다. 서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 가늠해 봤다. 잘 모르겠었다.
퇴근 직전, 서하는 파일을 덮으면서 오늘 새로 알게 된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한재원이 '인접 건'이라고 했다는 것. 초기 안내 발송이 사흘 늦었다는 것. 박 상무가 '누락 항목'이라는 말을 직접 썼다는 것. 그리고 도윤이 '그게 전부일까'라고 물었다는 것. 네 가지였다. 어제보다 많아졌다.
파일을 서랍에 넣으면서 서하는 포스트잇이 붙은 쪽을 마지막으로 봤다. 노란 종이 위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아직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건 이제 혼자 들고 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도윤도 알고 있고, 한재원도 어딘가 연결되어 있고, 박 상무는 이미 그 빈칸을 보고 있었다. 다만 각자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달랐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건지를, 서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