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밤은 성벽 안과 달랐다. 횃불 하나가 야영지 가장자리에 박혀 있었고, 그 불빛이 닿는 데까지가 세계의 끝처럼 느껴졌다. 카일은 천막 입구에 등을 기댄 채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가락을 마주 쥐었다. 손목의 타박은 행군 이틀 만에 거의 가라앉았지만, 손가락 사이에 남은 굳은살은 여전히 새 갑옷 가죽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멀리서 말이 한 번 울었다가 멈췄다.
옆 천막에서 레오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얕고 짧은 기침이었다. 잠든 척하는 사람의 기침 소리는 저렇게 난다는 걸, 카일은 마구간에서 잠들던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레오도 자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얇은 천막 벽 하나가 있었고, 그 벽은 지금 이 야영지에서 가장 두꺼운 침묵이었다. 카일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보는 순간 생각이 흐트러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야영 첫날 저녁 식사는 보리죽과 딱딱한 빵이었다. 기사 후보들은 화톳불 주변에 계급 순서대로 앉았다. 카일은 가장자리였다. 누군가 국자를 건네며 "노예 출신은 찌꺼기 먹어도 되잖냐"고 중얼거렸다. 소리가 작았지만 들릴 만큼은 컸다. 카일은 그릇을 받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꾸하는 순간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셈이었다. 죽은 미지근했고 빵은 돌처럼 단단했다. 그래도 먹었다. 내일 움직이려면 오늘 먹어야 했다.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이었다. 카일은 처음엔 바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바람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발소리는 바꾼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보초의 순찰 틈새를 꿰는 걸음이었다. 카일은 숨을 고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방향을 쫓았다. 그림자 하나가 야영지 외곽 물자 창고 쪽으로 흘러들어 갔다.
카일은 일어섰다. 칼은 허리에 있었다. 뽑지 않았다. 뽑는 순간 소리가 나고, 소리가 나는 순간 기회가 사라진다는 걸 이안이 세 번이나 반복한 말이 몸 안에 박혀 있었다. 발끝으로 흙을 딛고 창고 벽을 따라 돌았다. 젖은 흙과 마른 짚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마구간 냄새와 비슷했다. 그 냄새가 오히려 카일의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림자는 창고 뒤쪽에서 멈춰 있었다. 인장 서찰 하나를 손에 쥔 채.
상대가 먼저 눈치챘다. 반쯤 돌아서는 순간 카일이 팔목을 잡았다. 짧은 충격이 오고 갔다. 카일은 무릎으로 상대의 뒤꿈치를 걸어 넘어뜨리고 서찰을 빼앗았다. 전부 세 박자였다. 흙 냄새가 확 올라왔다. 쓰러진 인물은 카일이 아는 얼굴이었다. 대열에서 늘 뒤쪽에 섰던 교관 보조 하나였다. 이름은 알지 못했다. 다크스의 내통자가 행군 대열 안에 있다는 가능성은 이미 품속에 쌓아둔 의심이었지만, 실제로 그 얼굴을 보는 것은 달랐다. 아는 얼굴이라는 것이 달랐다.
"소리 지르면 내가 먼저 부를 거야."
카일이 낮게 말했다. 상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만 카일을 향해 있었다. 그 눈에서 두려움보다 계산이 먼저 보였다. 카일은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대의 손목을 더 세게 눌렀다.
서찰의 봉인을 뜯은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 이안의 천막 안에서였다. 이안은 촛불을 가까이 당기며 내용을 읽었다. 손이 멈추지 않았지만 눈 주위가 좁아졌다. 카일은 그 표정을 기다렸다. 스승이 읽는 동안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찰 안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름과 함께 적힌 것은 출신지였다. 카일이 태어난 곳. 카일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었다.
이안이 서찰을 내려놓았다. 촛불 한 줄기가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천막 밖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불꽃이 한 번 흔들렸다가 다시 섰다.
"이제는 말할 때가 됐군."
이안이 말했다. 교훈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오래 참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짧고 단단한 문장들이었다. 카일의 아버지는 북방 출신의 기사였다. 작위가 있었다. 그 작위가 취소된 것은 카일이 태어나기 직전이었고, 그 취소의 뒤에 다크스가 있었다. 카일은 그 기사의 아들이었다. 노예 신분은 낙인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안의 목소리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을 말하고 나서 스승은 시선을 촛불 쪽으로 내렸다. 카일은 그것을 보았다.
가슴 안에서 뭔가가 올라오려 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마구간 볏짚 위에서 수백 번 상상했던 장면인데, 실제로 들으니 상상보다 조용했다. 카일은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이안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쇠사슬 마찰음처럼 조여드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카일이 물었다.
이안이 처음으로 카일을 오래 바라봤다.
"그건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스승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사의 서약은 강요로 시작할 수 없어. 그걸 네가 오늘 밤 몸으로 먼저 보여줬다."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막 문 앞에 잠시 섰다가 뒤를 돌아봤다.
"서찰 수령인 이름, 다크스가 직접 아는 사람입니까."
카일이 물었다.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이번에는 달랐다. 숨기는 침묵이 아니라, 카일이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을 가리키는 침묵이었다. 카일은 더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천막을 나오자 레오가 외곽 경계석 위에 앉아 있었다. 카일을 기다린 것이 분명한 자세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북방의 어둠이 야영지를 둘러싸고 있었고, 멀리 능선 위에 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레오는 팔짱을 끼고 발끝을 땅에 대고 있었다. 그 자세가 어색하게 자연스러웠다.
"들었냐."
레오가 먼저 말했다.
"뭘."
레오가 짧게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두 발짝쯤 걷다가 멈추고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잘 싸웠어. 오늘."
그게 전부였다. 칭찬이라고 부르기엔 짧았고, 인사라고 부르기엔 무거웠다.
카일은 그 자리에 혼자 남아 야영지를 한 번 둘러봤다. 횃불은 여전히 타고 있었다. 서찰은 이안의 천막에 있었다. 내통자는 묶여 있었다. 그리고 카일의 이름은 오늘 밤 이후 다른 무게를 갖게 됐다. 노예의 낙인이 아니라, 지워진 기사의 아들이라는 이름. 카일은 그 이름을 아직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았다. 부를 준비가 됐을 때 부를 것이었다. 스스로 고른 것만이 진짜 서약이 된다는 말을 이안이 처음 했을 때 카일은 그 뜻을 몰랐다. 지금은 알 것 같았다.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