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28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최소요구의 다섯 줄

마흔일곱 쪽의 요구는 다섯 줄의 공동 초안으로 줄어들지만, 사람들의 권리까지 지우지는 않는다. 가게를 늦게 열어 손님을 놓친 은실은 연결 상인의 피해를 요구문에 남기고, 대표들은 최종 합의가 아닌 주민 표결에 올릴 초안에 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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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실은 셔터를 절반만 올리고 회의실로 왔다. 아침에 잠깐 들렀다 가겠다는 말은 벌써 두 번 틀렸다. 문에 붙여 둔 돌아올 시간도 고쳤다. 손님이 그 종이를 보고 또 발길을 돌렸을지 생각하며 의자를 당겼다.

테이블에는 마흔일곱 쪽이 쌓여 있었다.

은실은 맨 위 종이를 넘겼다. 원인규명, 공정 안전, 생계지원. 자신이 밤에 따로 정리해 보낸 가게 손실은 뒤쪽에 끼어 있었다. 서가람이 마지막 첨부를 확인하는 동안 강만석은 시계를 봤다. 배세희는 공장 공정도와 주민 요구서를 번갈아 읽고 있었다.

“이걸 누가 처음부터 다 읽습니까?” 만석이 말했다.

은실이 자기 부속서를 펴 보였다. “저는 제 것 끝까지 읽었어요.”

“그런 뜻이 아니오.”

“제 것 빼면 짧아지긴 하겠죠.”

아침부터 날을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회의가 길어져 가게 문을 늦게 여는 사람의 시간이 또 작은 문제로 보일까 봐 말이 먼저 나왔다. 가람은 종이를 빼지 않고 자기 앞 빈 공간을 만들었다.

“없애서 줄이지 않겠습니다. 오늘 함께 요구할 앞장과 각자가 청구할 뒤를 나눕시다.”

그는 새 종이에 다섯 줄을 썼다. 원인규명. 긴급지원. 위험공정 정지. 임금유지. 주민입회.

만석은 세 번째를 읽고 눈썹을 찌푸렸다. 전면폐쇄라는 단어는 없었다. 전날 두 공정을 우선 멈추자고 논의했어도 어민 쪽 요구에서 폐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람은 그것을 대신 지우지 않았다. 어민 부속서의 제목은 그대로였다.

“공동으로 내는 것은 다섯 줄입니다. 각자 더 요구하는 것은 자기 부속서에 남습니다.”

세희는 임금유지 줄을 짚었다. “이 앞장에 이름을 쓰면 어민 쪽 폐쇄 요구에도 서명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공동서명 범위를 앞장에 분명하게 씁니다. 부속서는 각자 제출하는 요구이고요.”

가람은 말로 끝내지 않고 실제 문구를 바꿨다. 은실은 앞장과 자신의 종이를 번갈아 봤다. 보기에 깔끔해졌지만 무엇인가 빠졌다. 다섯 줄에는 어민도 상인도 구체적인 이름이 없었다. 결국 누가 긴급지원을 받는지 묻는 사람에게 또 설명해야 했다.

“상인은 어디 있습니까?”

“긴급지원 대상에 포함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써 주세요.”

가람은 펜을 들었다. “대상은 부속서에 자세히 있습니다.”

은실은 자기 종이를 덮었다. 그 소리에 만석이 고개를 돌렸다.

“앞장만 읽는 사람도 있다면서요. 그 사람 눈에는 또 없잖아요.”

그녀는 어민과 노동자 사이에서 누구를 편들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어민이 못 가져온 수산물만큼 물건이 줄었고 공장 노동자가 아낀 식사값만큼 손님이 줄었다. 어느 쪽이 문을 닫아도 자기 가게에는 빈 의자가 남았다. 그런데 요구서가 짧아질 때는 늘 그 의자부터 보이지 않았다.

“상인 이름이 또 빠지면 공동이라는 말을 못 씁니다. 긴급지원 대상에 연결상인을 적어 주세요.”

가람은 펜을 잠시 놓았다. 자신이 줄 수를 지키느라 대상자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긴급지원 줄을 다시 썼다. 어민과 선원, 연결상인이 들어갔다. 노동자의 임금유지는 별도 줄에 남았다. 같은 사람이 여러 역할을 가진 경우에는 실제 손실을 중복 계산하지 않되, 한 역할을 가졌다고 다른 손실을 지우지 않도록 부속서에 연결했다.

은실은 고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제 제 가게도 보이네요.”

세희가 종이를 돌려 보았다. “한 줄이 길어졌습니다.”

은실은 잠깐 굳었다. 세희가 웃으며 덧붙였다. “괜찮다는 뜻이에요. 사람이 들어가니 길어져야죠.”

웃음은 짧았지만 방 안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만석이 물주전자를 가져와 각자 컵에 따랐다. 말없이 넘겨 주던 빈 컵이 채워졌다. 은실은 한 모금 마시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문제는 동사 뒤였다. 원인을 규명하라. 지원하라. 멈춰라. 유지하라. 입회하게 하라. 요구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언제 누가 어떻게 실행할지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세희가 물었다. “회사에서 ‘검토하겠습니다’ 하면 끝나는 문장이면 안 됩니다.”

가람은 각 줄 옆에 실행을 요구할 주체와 답변기한, 필요한 재원을 적을 칸을 붙였다. 미확정인 지급 날짜를 이미 합의한 것처럼 넣지는 않았다. 대신 언제까지 어떤 자료로 답을 받아야 하는지 요구했다. 당장 할 수 있는 보전과 현장접근은 긴급지원의 최종 금액을 기다리느라 멈추지 않게 분리했다.

만석은 기한 칸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런 걸 적고 저쪽은 또 늦을 텐데.”

“늦을 때 무엇을 다시 요구할지도 있어야 합니다.”

가람이 답했다. 위험이 계속되거나 정한 조건이 지켜지지 않을 때 추가 조치를 요청할 근거를 남겼다. 만석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요구를 좁혔다고 여기서 끝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은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가게 앞에 도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십 분 뒤라고 말하려다 시계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다섯 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좀 늦습니다. 기다리지 마세요.”

전화가 끊겼다. 만석이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서명은 나중에 받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은실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없을 때 상인 줄이 또 줄어들면요.”

“그러지는 않소.”

“알아요. 그래도 제가 읽고 가겠습니다.”

그녀는 못 판 한 끼를 정확한 금액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직 실제 매출을 마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손님 하나가 기다리지 않고 돌아갔다는 사실은 남았다. 가람은 회의가 공짜 시간 위에서 열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다음 설명회 안내에는 시작뿐 아니라 마칠 시각도 적기로 했다.

세희도 자기 일정을 확인했다. 회의를 더 오래 한다고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노동자 부속서에서 긴급 안전조치에 바로 연결되는 부분과 나중에 논의할 전환 요구를 갈랐다. 둘 중 하나를 지우지는 않았다.

만석은 어민 요구서의 첫 문장을 오래 읽었다. 공장 전면폐쇄. 앞장에는 들어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종이를 구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자기 뜻이 다른 사람의 서명까지 차지하면 공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나는 이걸 버리지 않소.”

“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람이 말했다.

“그런데 앞에 내 이름을 쓰면 사람들은 버렸다고 할 거요.”

은실이 자기 부속서를 그의 옆에 놓았다. “그래서 이 뒤도 같이 내는 거죠. 제 이름만 있고 손실은 빠지면 저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만석은 두 서류를 나란히 봤다. 자기에게 불편한 임금유지 줄이 세희에게는 공동문서에 앉을 의자였다. 은실에게는 대상에 적힌 연결상인이라는 말이 그랬다. 그가 원한 폐쇄는 부속서에서 자기 이름으로 남았다.

가람은 세 사람에게 서로의 부속서 전체에 동의하라고 하지 않았다. 공동 본문에만 서명하되 개별 요구가 연결된다는 점을 확인하도록 했다. 각자의 서류를 끝까지 읽을 권리와 반대할 권리가 같이 있었다. 아직 마을 표결은 남았으므로 오늘 대표의 서명만으로 모두 합의했다고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초안 마지막 줄에는 주민입회가 있었다. 만석은 이것만큼은 크게 써 달라고 했다. 회사 담장 밖에서 기다리다가 완성된 보고서를 받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세희는 현장 작업을 안전하게 할 인원과 범위는 별도로 정해야 한다고 했다.

“입회한다고 모두 굴착기 옆에 서는 건 아니겠지요.”

만석이 그녀를 봤다. 예전 같으면 또 못 들어오게 하려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오늘은 공정도에 실제 작업자의 자리를 함께 그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볼 자리는 있어야 합니다.”

“있어야죠. 안전한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보는 방식으로요.”

가람은 그 부분을 작업계획과 연결했다. 회사가 안전을 핑계로 접근 자체를 막는 것과, 사람이 다치지 않게 현장을 나누는 것은 구분해야 했다. 누가 어느 자료를 보고 어떤 결과를 확인하는지 요구에 남았다.

해가 기울자 다섯 줄 초안이 마침내 벽에 붙었다. 마흔일곱 쪽은 사라지지 않았다. 책상 위에서 집단별 부속서와 확인 자료로 자리를 바꿨다. 은실은 자기 장의 가게 이름과 기간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사본을 접었다.

세희가 말했다. “다섯 줄이면 회사 보고서 한 페이지보다 짧네요.”

만석은 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짧아서 숨길 곳도 적겠지.”

가람은 그 말을 받아 웃지 않았다. 정말 숨을 곳이 적어야 했다. 원인규명을 지원금으로 대체하지 않고, 임금유지로 과거 손해를 지우지 않고, 좁은 위험정지를 최종 책임의 범위로 바꾸지 않아야 했다. 다섯 줄은 보기 좋은 구호가 아니라 서로가 놓치지 않을 약속이어야 했다.

대표들은 공동 본문에만 이름을 적었다. 마을의 최종 의사를 대신 확정하는 서명이 아니라 표결에 올릴 요구 범위를 확인하는 서명이었다. 만석은 펜을 돌려받고도 한동안 종이를 놔주지 않았다. 은실이 먼저 자기 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이제 가게로 돌아가야 했다.

복도로 나가던 그녀를 한 어민이 불렀다. 설명회에 내놓을 초안을 읽으러 온 사람이었다. 그는 임금유지 줄을 보자 바로 물었다.

“이거 우리 보상금에서 빼서 주는 겁니까?”

은실은 혼자 답을 확정하지 않았다. 문을 다시 열어 가람을 불렀다. 만석도 의자를 내려놓았다. 끝냈다고 생각한 문서가 돈 앞에서 다시 열렸다.

어민은 자기 배의 사정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같은 보상 통장에서 돈을 나누면 사람이 많을수록 자신의 몫이 작아진다는 계산부터 했다. 그 계산을 욕심이라고 부를 사람은 방 안에 없었다. 모두 이미 잃은 돈을 세고 있었다.

가람은 벽의 다섯 줄 옆에 빈 종이를 한 장 더 붙였다. “내일 설명회 전에 재원을 따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서로의 몫을 가져온다는 말로 표결하게 두지는 않겠습니다.”

은실은 문고리를 잡고 한숨을 쉬었다. 다시 가게에 돌아갈 시간이 늦어졌다. 그래도 이번 질문은 뒤로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에 붙일 돌아올 시간을 또 고쳤다. 그 작은 화면 너머의 빈 가게도 다섯 줄 안에 들어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