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28화

빙판 위 다섯 센티

한 점 차의 준결승

준결승에서 라온은 프리즈의 실패 범위까지 설명하고 진수의 확정을 기다린다. 완전한 접촉에는 못 미친 돌을 혜주와 단비가 이어 한 점 차 승리를 만들지만, 결승 마지막 투구 순서를 맡게 된 라온의 증명 욕구가 다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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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에 붙인 테이프는 조금 비뚤었다. 소라온은 ‘복창’의 마지막 글자가 엄지 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며 한 번 눌렀다. 옆에서 김단비가 자기 손등을 내밀었다. 그녀 것도 반듯하지 않았다.

“이걸 보고 던지라는 건 아니죠?”

“던지기 전에 보라고요.”

단비가 대답했다. 라온은 웃으려다가 말았다. 어제 영상실에서 먼저 웃은 사람은 없었다. ‘제안-확인-복창’이라고 적은 테이프는 자신만의 반성 표지가 아니라 네 사람이 함께 쓰기로 한 표시였다. 그래도 제일 자주 내려다보는 건 자신이었다.

주말 오후의 링크에는 준결승 대진이 걸렸다. 조별 경기를 마친 뒤 밤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진수는 같은 스틱을 꺼냈고 혜주는 같은 장비가방에서 물병을 찾았다. 라온만 오늘 한 번도 잘못하지 않아야 겨우 어제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기분이었다.

미란이 고정 끈을 확인하는 그에게 말했다.

“말까지 줄이지 마세요.”

“확정 안 나면 안 움직이겠습니다.”

“그 전에 볼 건 봐야죠.”

라온은 하우스 쪽을 보았다. 진수가 상대의 연습 드로를 따라 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다시는 독단을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동시에 그러면 자기가 여기 앉아 있을 이유도 줄어들었다.

진수가 돌아왔다.

“제안이 있으면 짧게. 다 들은 다음에 정합시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프를 한 번 더 눌렀다. 확인이라는 단어는 손등에 붙였다고 더 빨리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

후반에 들어갔을 때 점수 차는 한 점이었다. 한 엔드로 순서가 뒤집힐 수 있는 숫자였다. 라온은 자기 첫 돌 뒤의 공간을 봤다. 상대가 두 번째 돌을 하우스 뒤쪽에 넣었다. 붉은 손잡이 두 개가 조금 다른 깊이에 놓였다.

진수는 앞의 가드를 정리하는 선을 살폈다. 그 길을 열어 두면 혜주가 다음 돌을 안쪽으로 넣을 수 있었다. 라온에게도 익숙한 선택이었다. 다만 뒤에 있는 상대 돌 둘이 계속 눈에 걸렸다. 앞을 깨끗이 걷어 주면 상대는 뒤의 두 돌을 다음 공격에 쓸 수 있었다.

“뒤쪽 돌에 붙이는 건 어떻습니까?”

말하고 나서 라온은 스틱을 놓았다. 혜주가 그를 받치려던 손도 멈췄다.

단비가 먼저 반응했다.

“어제도 보이는 각부터 말했어요.”

라온의 목이 굳었다.

“아직 제안입니다.”

단비는 진수 쪽으로 몸을 돌렸다. 라온에게는 그 작은 방향 전환이 자신을 대화에서 빼는 것처럼 느껴졌다. 테이프를 붙이고도 말을 하면 결국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안 하겠다고 말할 뻔했다.

진수는 앞 가드와 뒤의 돌을 번갈아 봤다.

“어느 쪽에, 얼마나 붙이자는 겁니까?”

라온은 스틱을 들지 않고 손으로 경로를 그렸다. 상대 돌의 앞쪽에 노란 돌을 가까이 세우면 똑바로 쳐내는 길이 좁아졌다. 완전히 붙지 못해도 뒤의 돌 둘을 동시에 쓰기는 불편해질 수 있었다.

“프리즈 자체는 사십육 퍼센트입니다.”

혜주가 훈련표에서 기억한 수치를 말했다. 라온은 그 숫자를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한 장면만 골라 보면 훨씬 쉬워 보였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붙이지 못했을 때 어디에 남는지가 중요합니다. 너무 짧으면 앞에서 걸리기만 하고, 길면 뒤의 돌을 밀어줍니다.”

자기 제안의 실패부터 말하자 입안이 썼다. 단비가 전술판의 뒤쪽 돌을 짚었다.

“짧아도 두 점 각을 전부 막는 건 아니죠?”

“전부는 아닙니다. 정면으로 치는 쪽을 좁히자는 겁니다.”

진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라온은 그 손을 보며 이제 결정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보이는 길이 조금씩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빨리 던져야 감각이 남을 것 같았다. 그는 스틱을 잡았다가 다시 무릎에 뉘었다.

“시도합시다. 부드럽게. 목표보다 뒤로 보내지 않아요.”

진수가 확정했다.

“프리즈. 부드러운 회전, 뒤로 밀지 않습니다.”

라온이 복창하자 혜주가 물었다.

“준비됐어요?”

그는 그제야 스틱 끝을 걸었다. 끈이 몸을 잡아 주고 혜주의 받침이 의자를 고정했다. 팔이 앞으로 나가는 동안 손등의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방금 입으로 말한 목표가 남았다.

노란 돌이 가드 옆을 지났다. 속도가 줄고 회전이 눈에 들어왔다. 상대 돌까지 아직 조금 남았다. 라온은 손가락을 폈다. 더 밀 수 있는 거리가 자기 앞에 없었다.

돌은 완전히 붙지 못했다. 얇은 얼음 띠가 두 돌 사이에 남았다.

단비가 먼저 하우스를 들여다봤다. 진수가 손으로 직선 경로를 가늠했다. 라온은 실패라고 말할 준비를 했다.

“정면으로는 바로 못 걷습니다.”

진수가 말했다. 라온의 돌이 상대 돌의 앞면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원했던 접촉은 없었지만 상대에게 가장 편한 길도 남지 않았다.

라온의 어깨가 내려갔다. 단비는 아직 웃지 않았다.

“우리 뒤의 두 돌까지 봐야 해요.”

***

상대 선수는 처음 고른 길을 바꿨다. 노란 돌을 강하게 밀어내면 뒤의 자기 돌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바깥 접점을 골랐다. 붉은 돌이 노란 돌을 스치고 옆으로 흘렀다. 라온의 돌은 처음 자리에서 조금 밀렸지만 하우스 안에 남았다.

‘한 번을 더 쓰게 했다.’

라온은 속으로 셌다. 앞선 경기에서 자기 가드가 지워졌어도 상대가 두 돌을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했다. 오늘은 자기 돌이 아직 눈앞에 남아 있어서 더 쉽게 이해됐다.

혜주의 순서였다. 진수는 남은 통로를 가리켰다. 혜주는 라온의 돌과 떨어진 쪽에 자기 돌을 세웠다. 두 노란 돌이 같은 강한 샷 한 번에 함께 없어지지 않도록 간격이 벌어졌다.

상대는 다시 한 번 배치를 바꿔야 했다. 라온이 처음 말한 프리즈가 끝까지 살아서 점수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뒤의 혜주가 거리를 잘 골랐고, 단비가 이어 받을 면을 남겼다. 상대가 좋은 샷을 하면 그 간격도 줄었다.

단비의 차례가 왔을 때 라온은 ‘조금 얇게’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단비가 이미 같은 면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진수에게 물었다.

“바깥 절반. 제 돌은 남기는 쪽?”

“남기는 쪽.”

라온은 입을 다물었다. 단비는 확인을 들은 뒤 한 번 더 선을 봤다. 그녀의 노란 돌이 상대 돌을 밀어냈다. 손잡이가 회전하며 하우스 옆쪽에 남았다.

상대의 마지막 대응까지 끝난 뒤에야 네 사람은 점수를 확인했다. 작은 유리함을 끝까지 잃지 않은 엔드였다. 라온은 자기 프리즈가 성공했다는 말을 기다렸다가, 그 기다림을 알아차리고 물병 뚜껑을 열었다.

단비가 다가왔다.

“처음 붙이자고 했을 때 싫었어요.”

“어제 일 때문입니까?”

“네.”

그녀가 너무 빨리 답해서 라온은 잠깐 웃었다. 단비도 입가를 조금 움직였다.

“그런데 기다렸잖아요. 안 된다고 했어도 던졌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라온은 확답하기 전에 진수가 시간을 보던 순간을 떠올렸다. 손이 먼저 스틱을 잡았었다. 그걸 놓은 것을 그녀가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기다렸습니다.”

“이번에는요.”

단비가 강조했다. 칭찬이 아주 작아서 처음에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작은 말에는 방금 자기가 실제로 한 행동만 들어 있었다. 과거를 지우지도, 다음까지 대신 믿어 주지도 않았다.

마지막 엔드에 들어가며 진수가 말했다.

“한 점 지킵니다. 첫 돌부터.”

라온은 앞가드 두 장을 어디에 놓을지 들었다. 관중석에서 누가 결승을 외쳤다. 그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마지막 손을 빛나게 해 줄 장면을 고르는 대신 첫 돌의 깊이를 입으로 말했다.

***

수비는 빨리 끝나지 않았다. 첫 가드는 상대에게 지워졌고 두 번째는 조금 옆으로 밀렸다. 라온은 자기 돌이 사라지는 것을 봤다. 손에 남은 순서는 없었다. 상대의 시간을 재고 진수가 물을 때만 전달했다.

혜주의 돌이 하우스 안쪽을 좁혔다. 상대는 옆으로 돌아들었다. 단비가 그쪽의 득점 기반을 걷었다. 서로 좋은 돌을 놓을 때마다 관중석의 박수 방향이 바뀌었다. 한 점을 지킨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라는 뜻이 아니었다.

상대의 마지막 돌이 멈추자 진수와 상대 스킵이 함께 배치를 확인했다. 잠깐 뒤 진수가 돌아서서 손을 들었다. 한 점 차가 끝까지 남았다.

라온은 환호하기 전에 혜주를 봤다. 그녀는 물병을 꽉 쥔 채 웃고 있었다. 단비가 휠을 한 번 세게 돌렸다가 멈췄다. 네 사람이 가까이 모였다. 라온은 누구부터 손을 내밀어야 할지 몰라 스틱을 무릎 위에 놓았다. 진수가 먼저 주먹을 내밀었다.

“잘 기다렸습니다.”

라온은 주먹을 맞댔다. 손등의 테이프 끝이 조금 떨어졌다.

“잘 던졌다는 말은요?”

단비가 옆에서 물었다. 라온이 그녀를 보자 그녀가 진수 대신 답했다.

“그건 우리 넷 다.”

라온은 웃었다. 상대 선수들과 악수할 때도 웃음이 조금 남았다. 결승 진출이라는 말이 안내 방송에 실렸다. 그 말을 들으러 여기까지 온 것 같았는데, 정작 더 오래 남은 것은 단비가 붙여 준 넷이라는 숫자였다.

복기실에서 그는 프리즈가 멈춘 위치를 찍었다. 목표와 실제 돌 사이에는 작은 간격이 있었다. 성공이라고 동그라미를 크게 치고 싶었다. 그는 접촉에는 미달했다고 적고, 그 아래에 정면 제거 통로를 제한했다고 썼다. 가장 앞에는 확정을 듣고 복창했다는 항목을 남겼다.

진수가 종이를 당겨 다음 두 투구의 선을 연결했다.

“이 두 개가 없었으면 오래 못 버텼어요.”

혜주와 단비의 선이었다. 라온은 자기 돌 옆에 두 선수의 이름을 적었다. 프리즈 한 번으로 준결승을 이겼다는 제목은 이제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세 개의 선이 이어진 그림이 남았다.

***

결승 상대를 확인한 뒤 네 사람은 한강팀의 영상을 틀었다. 첫 경기에서 육 대 오로 이긴 상대였다. 라온은 정태문의 목소리가 나오자 자신에게 해 주었던 칭찬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그 장면을 찾지 않았다.

화면 속 중앙 가드 둘이 가까이 겹쳤다. 한강팀의 강한 돌이 들어와 앞의 두 돌을 함께 움직였다. 처음 길이 좁았던 하우스에 넓은 통로가 생겼다.

미란이 물었다.

“간격을 더 붙이면 안전할까요?”

라온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 첫 승리를 만든 두 가드도 놓이는 간격에 따라 상대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진수는 앞쪽에서 배치를 일찍 조정할 수 있는 순서를 검토했다. 혜주가 투구 순서표를 책상 가운데로 옮겼다.

라온의 이름이 뒤쪽으로 옮겨졌다. 아직 제출하지 않은 결승용 종이였다.

“진수 형은 앞에서 배치를 만들고, 마지막 드로를 제가 맡는 안입니까?”

“호출은 제가 합니다. 뒤의 손만 바꿔 보는 겁니다.”

진수는 라온이 연습한 드로 구역을 가리켰다. 처음 해 보는 기술을 결승에서 시키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라온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리와 어려운 거리를 다시 말했다. 혜주와 단비도 순서가 달라지며 바뀌는 자기 몫을 확인했다.

단비가 마지막 칸을 두드렸다.

“여기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은 걸 끝내는 자리예요.”

“알겠습니다.”

라온은 대답했다. 그 말이 입에서 지나치게 쉽게 나왔다. 종이의 마지막 줄에 적힌 자기 이름을 한 번 더 봤기 때문이었다.

미란은 제출 전에 네 사람이 다시 확인하라고 했다. 라온은 손등의 테이프를 떼지 않은 채 종이를 진수에게 넘겼다. 스킵의 이름과 마지막 투구자의 이름이 서로 다른 줄에 남았다. 그는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링크 밖에서 결승 준비를 알리는 소리가 났다. 라온은 이번에는 자기가 마지막 돌을 놓고 네 사람의 주먹을 맞대는 모습을 잠깐 떠올렸다. 화면에는 한강팀이 두 돌을 함께 밀어내는 장면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