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거꾸로 찍힌 입장표
스물여덟째 밤, 반사판은 입장표를 읽게 해 주지만 문턱 허락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해온은 자기 이름을 담보로 내겠다는 콩쇠를 말리고 기존 정지 표식과 조정 명령의 범위에서 입구를 확인해, 안쪽에 걸린 도윤 이름의 송장을 발견한다.
콩쇠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누구냐.”
남해온은 반사판을 조금 내렸다. “어제부터 알고 계신 분입니다.”
“뿔 높이가 다른데.”
“한쪽만 닦으셨잖아요.”
콩쇠는 의심스럽게 뿔을 만졌다. 해온은 손거울보다 큰 얇은 반사판을 폐지창고 바닥에 기대었다. 거래소 입장표는 민채원이 든 투명 보호판 안에 있었다. 글씨가 뒤집혀 보인다고 원본을 구기거나 뒤집어 붙일 필요는 없었다. 반사된 면에서 주소를 읽으면 됐다.
스물여덟째 밤이었다. 폐지창고 앞 골목에는 접은 상자들이 벽처럼 쌓여 있었다. 해온은 종이 냄새를 맡으면 편의점 물류가 먼저 떠올랐다. 오늘도 분리수거를 하다 다른 세계의 수상한 사업장을 찾으러 왔다. 야간근무가 끝났다고 손에서 상자 냄새까지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콩쇠가 입장표를 들여다봤다. 글자를 똑바로 읽으려 목을 기울이다 뿔이 보호판에 닿을 뻔했다. 채원이 판을 뒤로 뺐다.
“증거에 머리 대지 마세요.”
“읽으려는 거야.”
“목소리로 읽으면 됩니다.”
해온이 반사판 각도를 바꿨다. 거꾸로 된 글자가 한 줄씩 똑바로 섰다. 주소 뒤에 개장시각이 있었다. 그 아래 작게 적힌 입장 조건이 보였다. 세 사람은 차례로 읽다가 마지막 줄에서 멎었다.
피해자 진짜 이름 하나를 담보로 맡길 것.
콩쇠가 먼저 반사판에서 고개를 돌렸다. “내 이름이면 되겠네.”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해온은 반사판을 든 채 그를 봤다. 농담을 기다렸지만 콩쇠는 주머니에서 펜까지 꺼내고 있었다. 배차소 테이프 덩어리가 함께 떨어졌다. 어제 자기 몫이라고 받아 간 것이었다.
해온은 펜부터 잡지 않았다. 테이프 덩어리를 주워 그의 손바닥에 올렸다.
“어제 챙긴 자기 몫이면 이 정도로 됐습니다.”
“말장난하지 마. 내 이름 하나면 들어갈 수 있어.”
“들어가서 뭘 돌려받을지는요?”
“그건 들어가 봐야지.”
“가게 문 열어 준다고 주민등록증 맡기고 안 돌려줘도 괜찮겠어요?”
콩쇠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해온은 아주 귀찮은 물건이라고 답했다. 없어지면 전화 몇 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콩쇠는 자기 이름도 귀찮게 오래 써 왔다고 했다. 그렇지만 방울 신고를 늦춘 값을 치르는 것이라 생각하면 괜찮다는 말을 붙였다.
해온의 표정이 굳었다.
“그 값은 어제 남겼잖아요.”
“아직 돌아온 이름이 없으니까.”
콩쇠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기록실에서 잘못과 누명을 나누겠다고 했지만, 눈앞에 문이 생기자 그는 다시 모든 값을 자기 몸으로 내려고 했다. 그것이 가장 빨라 보이는 길이었다. 해온도 남의 이름을 대신 써서 문을 열었던 첫날을 떠올렸다.
“죄책감으로 낸 이름을 입장료로 받으면 저쪽 장사가 맞아지는 거예요.”
콩쇠는 대꾸하지 않았다. 채원은 입장 조건을 그대로 기록했다. 수사를 돕겠다는 뜻만으로 새로운 신원침해를 만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확인하려던 것은 거래소의 위치와 출입 구조였다. 안에 들어가기 위해 피해자를 한 명 더 늘릴 수 없었다.
“제 이름은 피해자 이름이 아니라 배차원 이름인데.”
콩쇠가 마지막으로 말하자 해온이 대답했다. “지금 맡기면 피해자 이름도 되겠죠.”
그는 펜 뚜껑을 닫았다. 딸깍 소리가 골목에서 작게 났다. 채원이 그 펜을 빼앗아 보관하지 않았다. 콩쇠가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안 하기로 한 선택은 그의 손에서 끝났다.
입장표가 가리킨 곳은 폐지창고 안쪽 임시입구였다. 사람길에서는 수레 하나가 드나들 만한 통로처럼 보였다. 채원은 조사 허용 범위와 이미 확보한 위조송장의 효력정지 상태를 확인했다. 새 이름을 쓰는 대신 기존 담보표식을 제한된 확인에 쓰는 방안을 검토했다.
해온이 물었다. “그 표식 대면 들어가지는 겁니까?”
“들어가기 위한 승인이 아닙니다. 입구와 연결된 표식을 확인하는 범위입니다.”
“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채원이 그를 봤다. 해온은 이미 한 발 앞으로 나가 있던 운동화를 도로 당겼다. 마음과 발이 서로 다른 계약을 맺은 것 같았다. 콩쇠가 옆에서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턱 앞에서는 침착해야 해.”
“방금 자기 이름 맡기려던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채원은 두 사람을 한 걸음씩 뒤로 세웠다. 조정명령이 붙은 기존 표식에는 불운 이전과 지급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정지 상태가 명시돼 있었다. 오늘 확인하는 기록 외의 작동이 보이면 중단하기로 했다. 해온은 그것을 만능열쇠처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열리는 모든 문에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임시입구 앞에서 채원이 허용된 표식을 제시했다. 어둡던 문틀 가장자리의 글자가 드러났다. 안쪽에서 수레바퀴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콩쇠는 귀를 세우고 사람 둘쯤이라고 말하려다, 목소리와 몸의 수가 같다고 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 입을 닫았다.
해온은 그를 봤다. “많이 배우셨네요.”
“내가 원래 신중해.”
“오늘 기준으로는요.”
안쪽 목소리가 물었다. 담보 이름은 어디 있느냐고. 콩쇠가 손을 들려 하자 해온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건드렸다. 채원은 새 담보를 제공하지 않고 조정명령의 범위에서 문턱 확인을 통지했다. 목소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사이로 작은 표찰이 흔들렸다. 개장시각과 출입에 쓰는 방울 목록이었다. 채원은 문턱 밖에서 확인되는 정보만 남겼다. 해온도 안쪽을 보기 위해 몸을 밀어 넣지 않았다. 반사판을 들여놓으면 더 보일 것 같았지만, 문턱 규칙을 거울로 우회할 수 있다는 허락은 받은 적 없었다.
콩쇠가 조심스레 말했다. “판만 넣으면 사람은 안 들어가는 건데.”
해온은 반사판을 자기 몸 옆으로 붙였다. “남의 집에 셀카봉만 넣으면 괜찮습니까?”
“사람 도구는 이름도 쓸데없이 정확하군.”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빨라졌다. 거래소가 조정인의 요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두르는 소리만으로 누가 무엇을 치우는지 확정할 수는 없었다. 채원은 확인된 목록과 시각을 연결했다. 나중에 어디까지 봤는지 다툴 때 문턱 안의 광경을 마음대로 더하지 않도록 했다.
해온의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반사판은 가벼워 보였지만 같은 각도로 오래 들면 손목이 뻐근했다. 그는 잠깐 내려놓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콩쇠가 받겠다고 손을 뻗었다가 자기 키보다 큰 판 앞에서 멈췄다.
“같이 듭시다.” 해온이 말했다.
“도깨비 체면이.”
“둘이 들면 반입니다. 이름 한 개보다 싸요.”
콩쇠는 판 아래를 잡았다. 무게가 나뉘자 두 사람 어깨가 함께 내려갔다. 해온은 그가 자꾸 가장 무거운 가운데를 잡으려 하자 손 위치를 바꿔 줬다. 잘못을 갚는다고 짐을 혼자 드는 습관은 작은 판에서도 나왔다.
목록 마지막을 확인한 채원이 표식을 거두려 했다. 그때 임시입구 안쪽에서 송장 한 장이 수레 높이로 지나갔다. 다른 것보다 늦게 옮겨진 종이였다. 해온은 이름의 두 글자를 알아보고 숨을 멈췄다.
김도윤.
그가 여기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친 손목으로 생활하는 도윤의 이름만 종이에 붙어 있었다. 안쪽 목소리가 다음으로 넘기라고 말했다. 해온은 판을 놓고 앞으로 뛰려다가 콩쇠가 함께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반사판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봤어요?”
채원은 봤다고 답했다. 이름을 크게 다시 읽지는 않았다. 공개된 골목에서 피해자의 정보가 더 멀리 나갈 필요는 없었다. 도윤에게 설명하고 확인된 범위의 다음 조치를 준비해야 했다.
콩쇠의 뿔이 문틀 쪽으로 향했다. “저 한 장만 가져오면.”
해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손만 뻗으면 들고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종이 한 장을 빼앗는 것이 이름 전체를 돌려주는 것인지는 몰랐다. 도윤의 이름이 다른 송장에도 있다면, 당장 눈앞의 것을 찢는 동안 연결만 놓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안에 들어가면 저 이름부터 숨길 겁니다.”
해온이 판을 바닥에 놓았다. “본 것을 먼저 지킵시다.”
그는 그 말을 하고도 발을 바로 돌리지 못했다. 도윤이 자기 이름이 거래되는 동안 왜 가만히 있었냐고 묻는다면 멋있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채원은 그의 불편함을 효율적인 판단이라는 말로 덮지 않았다. 대신 입구 확인이 끝났고 이제 돌아가 당사자에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표식을 거두자 임시입구의 밝기가 줄었다. 세 사람은 문턱 밖에서 확보한 위치와 개장시각, 출입방울 목록을 대조했다. 거래소 안쪽 원부는 여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얻은 것보다 남은 것이 많아 보였지만 새 이름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폐지창고를 나오는 길에 콩쇠가 물었다. “도윤에게 내가 이름 내려고 했다고 말할 거야?”
“원하시면요. 대신 그걸 도윤에게 빚으로 만들진 마세요.”
콩쇠가 한참 걸었다. “말하지 마. 내가 잘한 일도 아니고.”
“안 낸 건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부분만 말해.”
해온은 피식 웃었다. 콩쇠도 판 한쪽을 들고 걸었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골목 바닥에서 겹쳤다가 갈라졌다. 뒤집힌 글씨를 읽었지만 규칙까지 뒤집지는 않았다. 도윤의 이름을 되찾는 일은 도윤이 모르는 희생 위에서 시작할 수 없었다.
조정소에 돌아가자 채원은 먼저 도윤에게 연락할 내용을 정리했다. 해온은 반사판을 벽에 기대었다. 이번에는 콩쇠가 거울 속 자기 얼굴에 놀라지 않았다. 대신 한쪽 뿔의 얼룩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다음에는 둘 다 닦고 가야겠네.”
해온은 반사판 아래에 접은 종이를 받쳤다. 골목을 걸어오는 동안 모서리에 묻은 흙이 조정소 바닥으로 떨어졌다. 콩쇠가 빗자루를 찾자 채원은 연락문을 쓰던 손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다음 문을 열기 전에 세 사람은 자기들이 들여온 흙부터 쓸었다.
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이름 달고 가실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