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27화

빙판 위 다섯 센티

승리 영상의 바깥쪽

첫 승리의 발췌영상에서 지운 동료들의 돌을 본 라온은 2차전에서 다시 확정 전 투구를 해 초반 두 점을 허용한다. 한 점 차까지 좁혔지만 패하고, 조별2위로 준결승에 오른 뒤 실패각도가 아니라 호출을 듣지 않은 행동부터 복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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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소라온은 정확한 순간에만 웃었다. 노란 돌이 멈추고 전광판에 육 대 오가 뜬 다음이었다. 그 앞의 사십 초를 되감으면 배진수의 마지막 드로가 보였다. 그보다 조금 더 앞으로 돌리면 라온이 제안한 열두 센티 보정이 나왔다.

그는 거기서 재생을 멈췄다. 뒤에서 오미란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과제는 했어요?”

“승리 장면 세 번, 실패 장면 세 번이요.”

“어느 실패?”

라온은 첫 가드가 바깥으로 빠지는 짧은 영상을 열었다. 미란은 화면 아래의 재생 길이를 보고 원본 폴더를 가리켰다. 라온이 파일을 바꾸자 진행 막대가 길어졌다. 관중석 소음과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방을 채웠다. 미란은 음량을 영으로 내렸다.

“처음부터 봅시다.”

“두 번째 경기 적응 투구까지 시간이—”

“시간 맞춰 끝낼 거예요. 첫 엔드.”

라온은 휠체어를 책상에 조금 더 붙였다. 화면 속 자신의 첫 돌이 선 밖에 섰다. 잘라 놓은 영상은 여기서 끝났지만 원본은 계속됐다. 상대 선수가 하우스 안으로 돌을 넣었다. 진수가 보정선을 가리켰고 혜주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라온이 기억하는 실수의 길이는 삼 초였다. 다른 세 사람이 그것을 처리하는 데에는 훨씬 긴 시간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단비가 들어왔다. 물병을 내려놓은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에서 자기 돌이 가드 옆을 지나갔다. 상대 돌 두 개가 남았다가 다음 샷으로 겨우 하나가 지워졌다.

“여기는 안 봤죠?”

라온은 대답 대신 진행 막대를 눌렀다. 단비가 손가락을 화면 앞으로 뻗었다.

“넘기지 말고요.”

미란은 세 군데에서 영상을 멈췄다. 첫 가드가 벌어진 곳, 측면 통로를 늦게 본 곳, 상대 득점 돌이 두 개 남았던 곳이었다. 전부 상대가 두 점을 만들 수 있었던 배치였다. 상대의 뒤이은 샷이 짧거나 팀의 다음 돌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면 마지막 보정까지 갈 수 없었다.

“제가 열두 센티를 말한 건 맞잖아요.”

“그 말이 틀렸다는 사람 없어요.” 단비가 말했다. “그 전에는 누가 던졌어요?”

라온은 입을 다물었다. 잘라 놓은 영상에서는 진수와 자신만 남았다. 화면 밖으로 밀어낸 두 사람이 지금 바로 옆에 있었다.

미란이 재생을 멈췄다.

“성공을 빼라는 숙제가 아니에요. 성공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빼지 말라는 거지.”

그녀는 예정한 시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비도 물병을 집었다. 라온은 파일을 닫다가 제목을 바꿨다. ‘첫 승 결승 샷’ 앞에 ‘발췌’를 넣었다. 이름을 고치는 일은 쉬웠다. 자기 손이 그날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는 기분은 그대로 남았다.

***

이틀 전보다 링크가 환했다.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라온은 고정 끈을 확인하고 스틱을 돌려 쥐었다. 적응 투구에서는 힘을 조금 덜 주었는데도 돌이 원하는 거리까지 갔다. 손잡이를 받치는 위치가 편했다. 앞선 경기의 마지막 장면보다 지금의 손끝이 더 믿을 만했다.

진수가 하우스 쪽에서 목표를 가리켰다.

“같은 거리. 회전은 그대로.”

라온이 복창했다. 혜주가 그의 의자를 받치기 전에 준비됐는지 물었다. 네 사람의 첫 호출은 잘 이어졌다.

문제가 생긴 건 상대의 가드가 중앙 통로에 걸린 뒤였다. 라온은 돌의 바깥면을 봤다. 적응 투구 때 흐르던 길과 겹쳤다. 저 면을 건드리면 통로가 열리고 자기 돌도 안에 남을 것 같았다. 진수는 손을 들어 잠깐 기다리라는 뜻을 보였다. 하우스 안쪽의 다른 돌을 확인하려는 중이었다.

“바깥쪽 얇게 치면 되죠?”

라온은 질문을 끝내면서 이미 스틱을 밀고 있었다.

“아직—”

스톤이 손끝을 떠났다. 돌아오는 진수의 목소리가 길게 들렸다. 돌은 가드의 바깥을 가볍게 긁었다. 단단한 충돌음 대신 짧은 마찰음이 났다. 상대 가드는 거의 제자리에 남았고 노란 돌만 옆으로 흘러 하우스를 벗어났다.

혜주가 받치던 손을 거뒀다. 라온은 다음 사람의 길을 내려고 휠을 잡았다가 멈췄다.

“제가 선을 너무 바깥으로—”

“확정 안 했습니다.”

진수는 원인을 고쳐 말했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단비까지 고개를 돌렸다.

“지금 흐름이면 열릴 줄 알았습니다.”

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상대 돌과 혜주의 다음 순서를 봤다. 라온도 하우스를 봤다. 투구가 무효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쓸 수 있었던 자기 돌 하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다음 돌을 남은 가드 뒤에 넣었다. 혜주에게는 두 돌을 한꺼번에 다룰 선이 없었다. 한쪽을 제한하면 다른 쪽이 열렸다. 단비의 돌이 하나를 밀어냈지만 상대가 다시 안쪽을 채웠다.

라온은 잘못 맞힌 접점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는 자기 스틱 끝을 만지다가 손을 뗐다. 진수가 요구한 것은 거리 숫자였다. 라온은 방금 상대 돌의 시간을 말하고 나머지는 삼켰다.

엔드가 끝났을 때 상대 쪽에 두 점이 붙었다. 라온이 잃은 돌은 한 개였는데, 점수판의 숫자는 두 칸을 움직였다. 상대가 좋은 배치를 만든 몫까지 자기 실수 한 번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배치를 막는 데 쓸 돌을 자기가 먼저 버렸다는 사실도 남았다.

단비가 다가왔다.

“아까 영상에서 뭘 봤어요?”

“지금 그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그녀의 입가가 굳었다. 진수는 다음 엔드를 가리켰다. 단비는 라온을 보다가 방향을 돌렸다.

“그래요. 그럼 지금 할 말만 할게요. 확정 듣고 던져요.”

***

엔드 사이, 진행석이 코치와의 소통을 허용한 짧은 휴식이었다. 미란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가 쥔 펜 끝이 호출카드의 세 단어를 차례로 짚었다.

제안. 확인. 복창.

“제안하고 밀면 두 번째 사람이 없어요.”

라온은 바로 답하려다가 한 번 숨을 골랐다.

“제안 끝에 물음표를 붙여도, 답을 안 기다리면 같은 거네요.”

“다음 돌로 합시다.”

별도의 작전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단비가 먼저 돌아갔다. 미란은 라온에게만 유난히 다정한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편이 차라리 나았다. 다만 돌아가는 동안 스틱 손잡이를 쥔 손바닥이 축축했다.

다음 자기 순서에서 라온은 왼쪽 통로를 봤다. 중앙 가드를 세우면 상대가 옆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금 더 깊게 놓으면 그 길도 좁아졌다.

“깊이를 조금 늘리는 쪽을 제안합니다.”

말을 마치고 스틱을 무릎에 눕혔다. 진수가 양쪽을 본 뒤 손을 들어 보였다.

“깊이는 유지해요. 뒤로 들어갈 길은 남깁니다.”

열두 센티를 받아 주던 사람과 같은 목소리였다. 라온은 가드를 깊게 놓았을 때 생길 이득을 한 번 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 차례에 남은 시간만이 아니라 혜주의 다음 돌도 있었다.

“기존 깊이. 뒤 통로 남깁니다.”

그가 스틱을 들자 혜주가 의자를 받쳤다. 노란 돌은 목표 구역 앞쪽에 멎었다. 조금 짧았다. 라온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확정을 기다리느라 감각이 식었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혜주는 그 뒤의 통로로 드로를 보냈다. 돌은 가드에 가리지 않은 길을 지나 안쪽에 섰다. 상대가 그 돌을 처리하는 데 다음 투구를 썼다. 진수가 남기라고 한 공간에 혜주의 선택이 실제로 들어왔다.

“짧은 쪽이었습니다.” 라온이 말했다.

“그래도 뒤로 들어갈 길은 있었어요.”

혜주는 칭찬하는 표정보다 다음 돌을 보는 표정에 가까웠다. 라온은 자신이 잘 던졌다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의 가드가 모든 문제를 고쳤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단비는 자기 순서에서 공격적인 선을 제안했다. 진수는 더 안전한 쪽으로 목표를 옮겼다. 단비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라온은 그녀가 반발할 줄 알았다.

“그럼 오른쪽 반 면. 확인이죠?”

“확인.”

단비의 돌이 상대 돌을 밀어냈다. 회전한 노란 손잡이가 뒤쪽에 남았다.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그녀는 라온을 향해 보란 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물병을 받아 들고 다음 배치를 봤다. 그게 더 불편했다.

***

격차가 한 점으로 좁혀졌을 때 관중석에서 박수가 났다. 라온은 전광판을 보고 다시 하우스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남은 돌을 던져야 했다. 처음 잃은 두 점은 사라지지 않았고, 뒤에서 되찾은 한 점도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몸이 긴장을 기억했다. 자기 차례가 끝나도 손바닥이 스틱을 놓지 못했다. 진수가 숫자를 물으면 대답했고, 묻지 않을 때에는 다른 투구자의 손끝을 봤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이미 배웠던 것이었다. 이틀 전 승리 뒤에 잠시 잊었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그 한 점을 메우지는 못했다. 상대의 마지막 돌이 멎자 네 사람은 악수를 청했다. 이틀 전에는 악수 뒤에 오래 점수판을 봤지만 오늘 라온은 상대 손을 놓고 곧장 몸을 돌렸다.

대기 구역의 조별 순위표가 갱신됐다. 첫 경기 승리와 오늘의 패배 아래에 팀 이름이 이 위로 남았다. 혜주가 진행석에서 대진표를 받아 왔다. 다른 조 일 위와 내일 준결승을 치른다는 통보였다. 라온이 종이를 받자 단비가 말했다.

“내일 경기가 남았다고 오늘이 없어진 건 아니죠.”

라온은 준결승이라는 글자 아래 패한 경기의 결과도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올라갈 자리는 얻었지만 잘해 왔다는 확인까지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비함 앞에서 신발에 붙은 물기를 닦았다. 단비가 의자를 돌려 맞은편에 섰다.

“아까 하려던 말, 지금 해도 돼요?”

라온은 수건을 접었다.

“성공했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대답을 늦추자 단비가 먼저 말했다.

“못 맞힌 걸 물은 게 아니에요.”

“맞혔으면 선을 잘 봤다고 말했을 겁니다.”

말을 하고 나니 아까보다 목이 말랐다. 단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수긍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럼 다음에도 하겠네요.”

“안 하겠습니다.”

“왜 안 할 건데요?”

라온은 스틱 결합부를 내려다봤다. 느슨해진 것은 없었다. 손에 잘 맞는 물건은 자신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쉽게 착각하게 했다. 부품 하나를 고칠 때에는 맞는지를 자기 손으로 확인하고 끝내면 됐다. 여기서는 뒤에 세 사람이 더 있었다.

“진수 형이 보기 전에는 제가 못 본 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만은 아니에요. 다 봤어도 답은 들어야죠.”

단비가 물병을 장비가방에 넣었다.

“제 순서가 없어졌어요. 아까 그 돌 때문에, 제가 던지고 싶던 게 아니라 남은 것 중에서 골랐어요.”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단비는 가방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그가 사과하자 그녀는 들었다고만 했다. 경기 중 꾹 눌러 둔 말을 꺼내는 데에는 돌 하나를 던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영상실에는 미란과 진수가 먼저 와 있었다. 혜주는 다음 대진 확인을 마치고 뒤따라 들어왔다. 네 사람이 앉자 진수가 아까의 샷을 재생했다. 화면에서 라온의 입이 움직였고 노란 돌이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

미란이 돌을 따라가지 않고 그 순간에 멈췄다.

스틱 끝과 돌 사이에 흰 간격이 있었다. 진수의 손은 아직 들어 올린 채였다. 라온은 그 빈틈을 보았다. 돌을 다시 끌어당길 수 없게 된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여기서 본인이 들은 호출을 말해 봐요.”

진수가 물었다.

라온은 잘못 맞힌 각도부터 말하려던 입을 닫았다. 내일도 같은 세 사람과 빙판에 들어가려면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시작해야 했다.

“확정은 못 들었습니다.”

영상의 재생 표시가 멈춘 채 깜빡였다. 누구도 대신 다음 말을 해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