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음악 고딕 미스터리 27화

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해체 전 마지막 합주

이솔은 태문의 답변을 먼저 보여 주지 않고 세 밴드원의 독립 메모와 예약표를 대조해 마지막 합주가 해체 통지 이틀 전임을 확인한다. 서로의 책임을 두고 충돌한 세 사람은 수인의 완주와 반환 요구에만 공동 서명하고, 네 항목의 반환 목록이 다음 조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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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은 코트를 벗지 않은 채 자료벽 앞에 섰다. 옷자락이 의자 배송표 아래를 스쳤다. 집게에 매달린 종이가 흔들리자 한이솔이 벽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달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규진은 몸만 뒤로 옮겼다. 그 옆 박선호는 악보 사진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세 점이 진하게 눌린 부분이었다. 서문주는 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같은 밴드였던 세 사람 사이에 빈 의자 하나가 남았다.

이솔은 그 의자를 옆으로 치웠다. 오늘 오지 않을 사람의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 둘 필요는 없었다.

예약표와 해체 통지 사이에 긴 흰 끈이 걸렸다. 급여봉투 사진, 의자 배송표, 각자 따로 쓴 메모가 끈 아래에 놓였다. 이솔은 윤태문이 서명한 답변을 책상 끝에 뒤집어 두었다. 먼저 보여 주면 세 사람이 그 문장을 고치기 위해 자기 기억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앞에서 따로 적어 주신 순서부터 보겠습니다.”

선호가 팔짱을 꼈다.

“다 적었잖아요. 같은 이야기를 몇 번 해야 합니까?”

“같은 이야기인지 보러 오신 겁니다.”

문주가 말했다. 선호의 입이 닫혔다. 이솔은 둘 사이에 자기 말을 얹지 않고 예약표 사진을 놓았다. 세 사람이 당시 날짜라고 적은 칸은 서로 달랐다. 종이를 나란히 두자 하루 차이로 보이던 기억이 일주일을 가로질렀다.

규진이 자기 메모를 끌어당겼다.

“이건 내가 틀렸나 보네.”

“지금 고치지는 마세요.”

이솔이 빈 종이를 한 장 더 줬다. 규진은 펜을 든 채 멈췄다. 잘못 기억한 날짜를 지우고 맞는 날짜를 쓰면 방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일치는 당시의 세 기억이 같았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었다.

벽시계 초침이 움직였다. 복원실 안쪽 장비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누군가 버튼 하나를 누르면 과거가 정확히 들릴 것 같은 방에서, 오늘은 아무도 소리를 틀지 않았다.

***

먼저 움직인 것은 날짜가 아니라 종이 두 장이었다.

이솔은 해체 통지의 발송일을 짚었다. 예약표에 적힌 마지막 합주는 그보다 이틀 전이었다. 하루의 시각을 분 단위로 정할 자료는 없었지만, 두 문서의 앞뒤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통지를 받고 모였다고 생각했어요.”

문주가 말했다.

“그날 다 끝났다고 했으니까.”

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규진은 고개를 젓다가 멈췄다.

“다 끝났다는 말을 수인이 했나, 태문 형이 했나.”

그가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봤다. 누구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이솔은 ‘마지막 합주’라고 쓴 종이를 해체 통지 왼쪽으로 옮겼다. 종이 한 장의 자리만 바뀌었는데 벽에 걸린 시간이 달라졌다. 밴드가 해체돼 갈 곳을 잃은 피아니스트가 마지막으로 돌아온 그림은 그 순서에서 성립하지 않았다.

그녀가 뒤집어 놓았던 답변을 폈다. 태문은 해체 통지 뒤에 마지막 합주를 했다고 적었다. 날짜와 당시 대사를 매끄럽게 연결한 문장이었다.

선호가 짧게 웃었다.

“저 사람은 하나도 안 헷갈리네.”

“틀린 사람이 반드시 더듬지는 않아요.”

문주의 목소리는 낮았다. 선호가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그때 좀 말하지.”

규진이 두 사람 사이를 봤다. 문주는 가방 끈을 손목에서 풀었다. 이솔은 그녀의 비공개 진술을 떠올렸지만 그 이야기를 이 책상에 가져오지 않았다.

“오늘 문주 씨에게 허락받지 않은 말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는 겁니까?”

선호가 물었다.

“각자 따로 말한 내용을 제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선호 씨 것도 그렇고요.”

선호는 입을 다물고 자기 악보 사진을 내려다봤다. 문주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방 끈을 무릎 위에 둔 다음 예약표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날짜는 이쪽이 맞아요. 내가 통지가 왔다고 생각한 건, 그날 분위기였어요.”

이솔은 그녀가 고른 두 단어를 나눴다. 날짜와 분위기. 하나를 고쳤다고 다른 하나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호는 의자에서 일어나 벽 가까이 갔다. 자기 메모가 달린 집게를 뽑으려다가 손을 내렸다.

“악보를 끝까지 했는지부터 봅시다.”

***

선호가 책상 위를 두드리려 하자 이솔이 악보 사진을 옆으로 옮겼다. 그는 빈 면 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그때도 이렇게 셌어요. 나중에는 수인이 소리 내지 말라고 했고.”

그 말은 이번에 갑자기 떠오른 결정적 기억이 아니었다. 앞선 메모에 적어 둔 자신의 역할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세 점을 가리켰다. 오래전에 연필로 눌렀던 자리를 지금 손으로 지울 수 없다는 듯 손톱을 세웠다가 접었다.

“카덴차는 끝냈어. 중간에 나가지는 않았어.”

규진이 말했다. 문주도 같은 항목을 짚었다.

이솔은 합주를 다시 연주해 보자고 하지 않았다. 오늘 셋이 맞춘 박자가 그날 수인의 선택을 재현해 주지는 않았다. 대신 각자 메모에서 연주 다음에 한 행동을 읽어 달라고 했다.

문주는 원본 악보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읽었다. 규진은 자기 의자도 챙기겠다는 말을 읽었다. 선호의 메모에는 악보 묶음을 가방에 넣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는 행동이 있었다.

선호가 규진을 봤다.

“그럼 넌 알고 있었네.”

“뭘?”

“떠나려는 거.”

규진이 코트 단추를 풀었다. 안쪽 셔츠가 구겨져 있었다.

“의자를 돌려달라는 걸 들었지. 사람이 어디로 갈지는 몰랐어.”

“그때 물었으면—”

“너는 물었어?”

선호의 턱이 굳었다. 그는 다시 악보 끝을 봤다. 자기 손가락으로 세었던 구간은 끝이 분명했는데, 그 뒤의 대화는 잘라 놓은 테이프처럼 서로 맞지 않았다.

문주가 물컵을 옮겼다. 물이 조금 흔들렸다.

“나는 수인이 돌아오게 하려고 생각했어.”

그녀는 허용할 수 있는 자기 말만 골라 말했다.

“다음에는 제대로 하면 된다고. 그 사람이 끝내려고 한 거면, 나는 뭘 기다리게 한 걸까.”

선호가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규진은 벽의 급여봉투를 봤다. 세 사람이 받은 봉투와 수인의 납작한 봉투가 같은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이솔은 그 사진을 내리지 않았다. 오늘 정한 합주 순서가 연주료 문제를 닫아 주지는 않았다. 물건을 챙기려 한 사람에게 돈을 안 줘도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먼저 요구한 건 수인이었네요.”

그녀가 말했다.

세 사람은 각각 자기 메모를 봤다. 의자와 원본 악보. 구체적인 물건 두 개가 ‘이상했다’거나 ‘불안해 보였다’는 기억보다 오래 책상에 남았다.

규진이 말했다.

“내가 적은 ‘그냥 두고 갔다’는 말은 빼야겠어요.”

이솔은 새 종이에서 그 표현을 지우게 했다. 예전 메모를 없애지는 않았다. 규진은 왜 바꾸는지도 자기 손으로 썼다. 요구한 말을 들었고 배송표도 존재한다. 사람을 붙잡지 못했다는 후회와 물건을 두고 갔다는 진술은 다른 일이었다.

선호는 그동안 서 있었다. 이솔이 앉을 자리를 가리키자 그는 한 번 방을 둘러본 뒤 자리에 앉았다. 문주 옆의 빈 의자는 이미 치워진 뒤였다.

***

공동 확인서에 들어갈 문장은 예상보다 짧았다.

마지막 합주는 해체 통지 이틀 전이었다. 수인은 카덴차를 끝까지 연주했다. 이어 원본 악보와 개인 의자 반환을 요구했다.

선호는 세 번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싸운 건 어디에 적어요?”

“누구와 왜 다퉜는지는 세 분이 다르게 기억합니다. 각자 쓴 부록에 남깁니다.”

“그러면 결국 아무도 책임 안 지잖아요.”

이솔은 급여봉투와 태문의 서명 답변을 그의 앞으로 옮겼다.

“이 두 개의 책임까지 지우는 확인서는 아닙니다.”

선호는 종이를 한 장씩 넘겼다. 공통으로 말할 수 있는 행동을 짧게 적는 일이 누군가를 봐주는 것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는 문주를 봤다가 규진을 봤다. 둘도 자기 쪽을 편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문주는 자기 부록 봉투를 당겼다.

“같은 날짜에 사인한다고 서로 괜찮아졌다는 말은 아니죠?”

“아닙니다.”

“그러면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먼저 이름을 썼다. 선호는 펜을 받지 않고 부록의 표지를 읽었다. 자기가 적은 해석이 공동 확인서의 결론이 아니라는 표시가 있었다. 자기 말을 삭제하는 대신 다른 두 사람의 말 위에 올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규진이 펜을 들었다. 이름 끝이 조금 눌렸다. 선호는 마지막에 자기 서명칸을 채웠다. 누구도 악수를 하자고 하지 않았다. 이솔은 문서의 범위를 다시 읽어 준 뒤 세 부록을 따로 돌려주어 봉인 상태를 확인하게 했다.

문주가 봉투를 닫는 동안 선호는 벽에 남은 ‘마지막 합주’ 종이를 봤다.

“끝까지 쳤구나.”

그가 작게 말했다.

“전부터 그렇게 말했잖아.”

규진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날카롭지는 않았다.

“알지. 그런데 나는 내가 세 준 것만 생각했어.”

복원실 냉방기가 멈췄다. 기계음이 빠져나간 뒤의 방에서는 서류를 접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이솔은 꺼져 있는 스피커를 봤다. 수인의 목소리도 연주도 빌리지 않고 세 사람이 자기 몫의 문장을 바꿨다. 그것으로 오늘의 모든 잘못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선호가 외투를 들었다. 문주는 조금 더 남겠다고 했다. 규진은 둘 사이에서 잠깐 서 있다가 먼저 문을 열었다. 복도 불빛이 자료벽의 종이 끝을 하얗게 만들었다. 세 사람이 함께 들어왔던 문으로 이번에는 간격을 두고 나갔다.

***

문주는 벽에 가까이 가지 않고 책상에서 이솔을 기다렸다.

“저 서류로 수인을 찾으러 가요?”

“물건이 실제로 돌아갔는지 확인합니다. 지금 사는 곳을 찾는 일은 아닙니다.”

문주는 그 차이를 한 번 더 묻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이솔은 악보 반환목록 사본을 꺼내 보여 줬다. 이미 확보해 둔 종이였지만 합주 뒤의 요구와 연결하고 나니 읽히는 순서가 달라졌다.

원본 악보. 개인 의자. 신분증 사본. 피아노 조율카드.

문주의 손이 세 번째 항목 위에서 멈췄다.

“자기 것들을 달라고 했네요.”

“요구한 것과 돌려받은 것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알아요.”

문주는 이번에는 성급히 답하지 않았다. 목록에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었다. 이솔은 뒤쪽 인수 확인란을 가리켰다. 문주가 모르는 부분을 기억으로 채워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어느 장부를 열어야 하는지 정할 수 있는 칸들이었다.

“조율카드는 왜 가져가려고 했을까요?”

“아직 모릅니다.”

피아노의 소리가 잘못됐다는 뜻일 수도, 자기 연습과 관계된 물건일 수도 있었다. 이솔은 가능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문주의 얼굴에 가장 위안이 되는 것을 골라 올려놓게 될까 봐서였다.

대신 목록의 네 항목을 각각 다른 종이에 옮겼다. 하나의 ‘짐’이라고 부를 때에는 돌아갔는지 아닌지만 물으면 됐다. 네 개로 나누자 누가 어떤 물건을 언제 내줬는지가 달라졌다. 의자가 간 곳과 악보가 인계된 곳이 같을 필요도 없었다.

문주는 펜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돌아오려고 남겨 둔 물건이라고 먼저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이솔은 알겠다고 했다. 문주가 문을 닫고 나가자 복원실에는 네 장의 작은 종이만 남았다. 이솔은 신분증 사본 아래에 행선지를 적을 빈칸을 만들지 않았다. 반환 여부와 인수 근거만 적었다.

마지막 조율카드 칸은 그대로 비어 있었다.

그녀는 원반을 재생하지 않고 작업등을 하나 껐다. 빛이 줄어들자 자료벽에서 태문의 답변보다 반환 목록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사라진 사람의 마지막 밤을 향하던 화살표가, 그보다 앞서 누군가 물건을 되찾으려 한 날들로 천천히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