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사흘 늦은 조류
누출 사흘 뒤 피해가 커진 까닭을 조류 관측과 실제 구획·출하 이력으로 좁힌다. 미례는 위원회 의결에 따라 선별 회수를 실행하지만 검사된 물량마저 반품되는 신뢰 손실을 겪고, 과거 두 차례 푸른 침전 기록을 발견한다.
차미례가 가져온 상자에서는 바다 냄새보다 곰팡이 냄새가 먼저 났다. 여덟 해 동안 조합 책장 밑칸에 있던 작업일지였다. 상자 바닥이 젖어 벌어지자 강해솔이 두 손으로 받쳤다. 미례는 맡기지 않고 같이 들었다. 어제 사람들 앞에 내놓은 것은 돈과 서명이었고, 오늘 내놓을 것은 그 서명 뒤의 날들이었다.
해양관측소 자료실 벽에 투명 지도 세 장이 겹쳐 있었다. 박은서가 마지막 장을 내리자 섬의 남쪽 끝이 검게 뭉쳤다. 해솔은 그곳을 알았다. 죽은 미역을 건지던 배들이 서로의 뱃전을 붙였던 자리였다.
“사고 날은 여기까지 안 옵니다.”
은서가 한 장을 걷었다. 검은 자리가 사라졌다.
“사흘 뒤에 가장 짙어져요.”
미례는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뚜껑 위에 손을 올린 채 한동안 떼지 않았다. 사고 다음 날과 그다음 날에도 조합에서는 물건이 나갔다. 그때는 바깥 부표 너머까지 번졌다는 신고가 없었다. 출하 담당자가 새벽마다 묻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도 싣습니까. 그녀는 언제나 대답하는 자리에 있었다.
정우찬이 선사에서 보낸 의견서를 내밀었다. 사흘의 간격에 붉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사고 당일 누출된 물질이 뒤늦은 피해의 원인이라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데서 나왔다는 거예요?”
해솔의 질문에 은서는 지도를 걷지 않고 더 펼쳤다.
“그 주장까지 시험해야죠. 먼저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는 경우하고 같이요.”
그녀는 가장 깊은 골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청람호 자리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양식장 쪽으로 돌아왔다. 해솔은 손이 돌아 나오는 지점에서 멈췄다. 잠수할 때 시야가 흐려졌던 골의 끝이었다. 수면만 보고 있었다면 저렇게 먼 길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서가 계산을 시작했다. 화면에 작은 점들이 흩어졌다. 미례는 점들이 자기 양식장에 닿을 때마다 출하 날짜를 세었다. 세 번을 세고 나서 그만뒀다. 어느 날짜도 취소할 수 없었다.
첫 결과는 피해 구획을 절반쯤 비켜 갔다.
자료실이 조용해졌다. 우찬이 화면을 앞으로 당기자 은서가 손을 내밀어 막았다.
“아직 안 맞습니다.”
“유속을 조금 높이면요?”
“맞는 그림을 만들자는 거면 할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해솔이 입을 다물었다. 수중에서 느낀 흐름을 보태고 싶었는데, 숫자를 원하는 쪽으로 밀라는 말처럼 들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제가 느낀 곳하고 깊이가 다릅니다. 그 얘기였어요.”
은서는 관측 지점을 다시 열었다. 수면 관측값이 먼저 선택돼 있었다. 수심별 자료는 그 아래에 따로 있었다. 그녀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해솔에게 잠수 위치와 깊이만 말해 달라고 했다. 세게 느꼈다는 말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미례는 한쪽에서 일지를 폈다. 바람 때문에 줄을 옮긴 날, 탁해져 작업을 접은 날, 배가 늦어 점심을 건너뛴 날이 같은 크기의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은서는 그중 사고 전후 기록을 받아 별도 종이에 옮겼다. 피해가 심했던 위치 표시는 뒤집어 두었다. 먼저 흐름을 계산하고 마지막에 맞춰 보겠다고 했다.
두 번째 계산이 돌아가는 동안 출하 담당자의 전화가 왔다. 미례는 문밖으로 나갔다.
“상인이 그냥 가져오겠답니다. 우리 것도 다른 데 것도 다요.”
“섞였어요?”
“상자째는 안 섞였는데, 매대엔 나갔죠.”
미례는 벽에 등을 댔다. 전화 너머에서 냉장차 후진 경고음이 났다. 기다리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번호 붙어 있는 건 떼지 말라고 해요. 들어오는 것하고 오늘 나갈 것부터 갈라 놔요.”
그녀는 전화를 끊지 못했다. 담당자가 조합장님이라고 부른 뒤 잠깐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회수하라는 결정은 누가 합니까?”
미례는 눈을 감았다. 어제 넘긴 의결권이 오늘 아침 처음으로 자기 앞에 놓였다.
“위원회에 올릴게요. 나는 물량부터 확인할게요.”
***
계산이 끝났을 때 은서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미례를 불러 뒤집어 둔 피해 위치표를 펴게 했다. 점들은 바닥 골에 모였다가 조류가 커지는 때에 다시 움직였다. 가장 짙어진 구획과 피해 신고가 몰린 구획이 겹쳤다. 바깥 두 곳은 범위가 흔들렸다.
“여긴 왜 비어요?”
미례가 물었다.
“측정이 부족합니다. 빈 게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우찬은 선사가 말한 다른 배출 지점에서 시작한 그림도 보자고 했다. 그 그림에서는 가장 먼저 피해가 생겼어야 할 구획이 달랐다. 거기에는 같은 시기의 대조 시료가 있었다. 은서가 결과를 나란히 놓았다. 미례는 비로소 의자에 앉았다. 사흘 뒤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마을 피해가 남의 일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팔아 버린 물건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 부르면 됩니까.”
그녀가 출하장을 펼쳤다.
우찬은 모형만으로 상자를 고르지 말자고 했다. 검출 구획과 채취 시각, 출하 이력이 필요했다. 이미 나온 검사 결과가 붙은 물량도 있었다. 은서는 검사한 상자와 같은 구획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날짜 물량까지 안전하다고 묶지 않았다. 종이 위의 줄이 점점 늘었다. 미례는 그 줄마다 사람 이름을 읽었다.
임시 위원회가 전화로 모였다. 누군가는 모두 걷어 와야 말이 안 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돌아올 물건을 둘 창고도 없다고 했다. 미례는 두 사람의 말을 끊지 않았다. 자기 목소리가 가장 먼저 나가면 어제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끝내 위원장이 그녀에게 물었다.
“현장에서는 어느 쪽이 가능해요?”
“구획하고 날짜 확인되는 건 나눌 수 있어요. 번호 잃은 건 따로 잡아 둬야 하고요. 다 버리면 깔끔해 보이겠지만, 안전하다고 검사받은 집 돈까지 같이 버립니다.”
미례는 마지막 말을 하는 데 힘이 들었다. 전량 폐기라고 말하면 자기 죄책감은 조금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가벼워진 만큼 다른 사람의 생활이 사라진다는 것을 장부가 보여 주고 있었다.
우찬이 회수 운송비를 긴급계정 담당자와 확인했다. 최종 책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비용은 아니었다. 다만 위원회의 범위 결정과 실제 운송 내역은 있어야 했다. 위원장은 검출 경계와 날짜가 겹치는 물량부터 회수하고 식별이 끊긴 물량은 별도로 보류하자는 안을 읽었다. 전화 너머에서 하나씩 동의가 돌아왔다.
미례는 자기 의견에 표를 보태지 않았다. 의결이 끝나자 담당자에게 창고 앞을 비워 달라고 했다.
“얼마나 옵니까?”
“아직 세는 중이에요. 먼저 온 것부터 같이 셉시다.”
***
냉장차 문이 열리자 찬 김이 미례의 무릎으로 쏟아졌다. 맨 위 상자는 이미 스티커가 젖어 말려 있었다. 상인은 팔짱을 낀 채 운전석에 기대 섰다.
“못 팔겠어요. 손님이 청람항 거냐고부터 물어요.”
“반품 사유는 그렇게 적어 주세요. 검출된 물량하고 나눠야 합니다.”
“돈 돌려받는 건 똑같은데 뭘 나눕니까.”
미례는 상자의 번호를 닦았다. 돈이 똑같지 않다고 말하려다 삼켰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강의가 아니었다. 그녀는 출하장 사본을 그의 앞에 놓고 자기들이 먼저 회수하라고 연락한 줄에 표시했다. 나머지 줄은 그가 판매를 포기한 물량이었다.
“이쪽은 검사 결과를 붙일 수 있어요. 오늘 안 가져가셔도 됩니다. 대신 전부 오염돼서 돌려보냈다고 쓰지는 말아 주세요.”
상인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뒤에서 기다리던 어민이 상자 한 개를 들어 올렸다.
“내 건 아니네. 위에는 우리 표인데 밑에는 다른 데 거야.”
해솔이 차 안으로 고개를 넣었다. 상자는 거래처별로 다시 쌓여 있었다. 겉의 큰 표시는 구획 번호가 아니라 매장 배송 순서였다. 그는 손잡이 안쪽에 남은 작은 생산표를 찾았다. 미례가 불러 준 번호와 맞는 상자를 하나씩 내려 별도 줄에 놓았다.
빨리 끝내 달라는 상인의 말에 해솔은 차에서 내려왔다.
“바닥부터 빼면 위에 쏟아집니다. 제가 위부터 내릴 테니 받아 주세요.”
상인이 욕을 작게 하고 팔짱을 풀었다. 두 사람이 상자를 받는 동안 미례와 출하 담당자가 작은 표를 읽었다. 번호가 사라진 두 상자는 어느 집 앞으로도 밀어 넣지 않았다. 확인될 때까지 둘 자리를 만들자 창고 앞 통로가 더 좁아졌다.
한 노인이 자기 물건 앞에 앉았다. 검사 결과가 붙었는데도 상인이 두고 간 것이었다. 그는 종이를 한 번 보고 다시 붙였다.
“먹어도 된다고 나온 걸 못 파는 건 누구한테 말해?”
미례는 노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선사가 돈을 낼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늘 계정에서 나가는 것은 우선 회수에 필요한 비용이었다.
“그것도 남겨야 해요. 검사 때문에 못 판 것하고, 이름 때문에 안 산 것하고.”
“남기기만 하면 뭐 하냐.”
미례는 대답 대신 그 상자를 창고 그늘 쪽으로 옮겼다. 노인도 반대편 손잡이를 잡았다. 두 사람은 좁은 문을 지날 때 같이 옆으로 돌았다. 내일의 돈을 약속할 수 없어서 오늘 상자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 미례에게 아팠다.
마지막 상자를 내리고도 차는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상인이 검사 결과가 붙은 물량 하나를 다시 봤다. 전부 가져갈 수는 없다고 했다. 미례는 몇 개라도 가져가 달라고 붙잡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상자에 원래 표가 붙어 있는지만 확인했다. 냉장차가 나간 자리에는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많은 빈자리가 생겼지만, 남은 물건이 더 무거워 보였다.
***
밤의 자료실에서는 프린터만 움직였다. 은서는 지연 확산 결과 옆에 오차 범위를 붙이고 있었다. 해솔이 젖은 장갑을 벗어 가방에 넣자 미례가 손을 보았다. 상자 모서리에 쓸린 자리가 붉었다. 그는 괜찮다는 말 대신 컵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미례는 나머지 일지를 펼쳤다. 오늘 확인한 날짜에만 매달리느라 과거의 책은 그대로였다. 제본 실이 끊어진 한 권에서 종이가 빠졌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다가 손을 멈췄다.
‘줄 밑에 푸른 가루. 갈아도 다시 묻음.’
짧은 문장 밑에는 당시 바람 방향이 적혀 있었다. 옆 페이지에는 출하를 줄인 수량이 있었다. 미례는 같은 해의 다른 달을 넘겼다. 없었다. 다음 책, 그다음 책을 넘겼다. 우찬이 돌아와 왜 불을 끄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다른 한 줄을 찾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두 기록 사이에는 몇 해의 간격이 있었다. 모두 야간 통항 협약 이후였다.
“그때는 그냥 바닥이 뒤집혔다고 했어요.”
미례가 말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는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어느 집 마당에서인지, 배 위에서인지조차 흐렸다. 그녀는 기억을 찾으려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들은 사람은 생각이 안 납니다. 내가 더 안 물었던 건 알아요.”
은서가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두 날짜를 지도에 옮겼다. 지금의 가장 짙은 구획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새 종이에 채취할 지점들을 잡기 시작했다.
해솔은 장갑을 다시 가방 밖에 꺼냈다. 내일 들어갈 바다는 사고가 난 뒤의 바다만이 아니었다.
미례가 상자의 빈 뚜껑을 접었다. 버리려던 종이가 아니라 덮지 않으려는 손길이었다. 일지 두 권은 나란히 펼쳐 둔 채였다.
바다 밑에 사흘이 머물렀다면, 여덟 해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은서의 연필 끝이 해저 골 바깥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