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23화

수심 43미터의 종

흰 거품의 아침

미례는 일지를 펼치기 전에 밧줄을 가져왔다. 젖은 밧줄을 회의실 탁자에 올려놓지는 못하고, 문 앞에 둔 얕은 통 안에 풀었다. 양식장 부표에 달려 있던 줄이었다. 해솔이 장갑을 끼고 한 가닥을 들어 올리자 꼬임 사이에서 작은 거품이 났다.

글자 크기

미례는 일지를 펼치기 전에 밧줄을 가져왔다. 젖은 밧줄을 회의실 탁자에 올려놓지는 못하고, 문 앞에 둔 얕은 통 안에 풀었다. 양식장 부표에 달려 있던 줄이었다. 해솔이 장갑을 끼고 한 가닥을 들어 올리자 꼬임 사이에서 작은 거품이 났다.

“이걸 보려고 가져오셨어요?”

“기름 묻은 줄하고 다르잖아요.”

미례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바닷물로 여러 번 씻은 손이었다. 조금 전까지 줄을 만진 손가락 사이가 여전히 미끄럽다고 했다. 박은서는 그녀의 손부터 확인하고, 다음부터는 맨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했다. 줄 전체를 옮길 필요는 없었다. 부표 위치와 걷은 시각을 기록한 뒤 일부를 따로 담았다.

미례는 그제야 일지를 꺼냈다. 사고 다음 날 새벽의 칸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흰 거품, 서쪽 방제선.’

종이에 잉크가 번져 거품의 품 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날짜와 그 아래 조업 기록은 읽을 수 있었다. 우찬이 페이지 전체를 촬영하는 동안 미례는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

“그 배 들어오는 걸 내가 봤어요. 부표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길래 줄을 옮겨 줬습니다.”

“기름을 걷는다고 했습니까?”

“그렇게 들었죠. 사고 난 배 쪽에서 오는 방제선이었고요. 우리가 막을 이유가 없었어요.”

그녀는 마지막 문장을 한 번 더 말했다. 우찬에게 설명하는 소리라기보다, 문 앞 통 안의 밧줄에게 되묻는 소리였다. 해솔은 샘플을 넣은 용기의 뚜껑을 잠갔다. 미례가 기름을 걷으리라고 믿고 열어 준 물길이 그 용기에 함께 들어오는 것 같았다.

회의실 벽에는 어제 두 기관이 함께 나눈 시료의 위치가 붙어 있었다. 선체, 양식장, 정상 해역. 해솔이 물속에서 보았던 푸른 입자는 선체와 양식장에서 서로 닮은 결과를 보였고, 정상 해역에는 같은 흔적이 없었다. 거기까지는 가까워졌다. 왜 바닥의 골에 유난히 몰렸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못했다.

박은서는 방제선 항적을 그 지도 위에 겹쳤다. 배는 양식장 북쪽으로 돌아 서쪽에서 들어왔다. 미례가 일지에 적은 쪽과 같았다. 길을 비켰다는 말은 그 한 줄로 끝낼 수 없었다. 그녀가 옮긴 부표와 다른 배가 비켜 준 위치까지 찾으면 살포한 물길의 폭이 달라졌다.

우찬은 방제업체에서 제출한 구매전표를 복사해 가져왔다. 미례가 제품명부터 읽으려 하자 박은서가 전표를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겼다.

“먼저 이 줄에서 나온 것과 맞는지 볼게요.”

미례는 손을 거뒀다. 이미 답을 알 것 같은 마음이 들수록 그 손을 다시 뻗고 싶어졌다. 박은서가 채취 용기를 들고 나가자 회의실은 갑자기 넓어졌다. 해솔은 통을 덮었고, 미례는 일지의 같은 칸을 다시 봤다.

그때 전화를 받은 우찬이 해솔에게 함께 나가자고 했다. 연료기록을 확인하던 방제선 쪽 담당자가 연락했다. 그는 작업한 배에 올라도 좋지만 선원들에게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미 무엇을 숨기러 왔느냐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는 것이었다.

미례가 일지를 덮었다.

“나도 갑니다.”

우찬은 그녀가 그날 통항을 허용한 당사자라 먼저 기억을 따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미례의 눈썹이 올라갔다.

“내가 배에 가면 말을 맞출 거라는 뜻이에요?”

“다른 분 얘기를 들은 뒤에는 원래 기억하고 구별하기 어려워집니다. 지금 먼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미례는 문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떠나면 배가 없어질 것 같았고, 앉으면 뒤처질 것 같았다. 잠깐 뒤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해솔은 맞은편 의자에 앉지 않고 일지의 촬영본을 우찬에게 건넸다. 미례가 생각할 때 종이 넘기는 소리가 방해되지 않게 탁자의 나머지 서류도 치웠다.

그녀는 방제선이 온 쪽, 자신이 있던 배, 들은 말, 본 물빛을 순서대로 말했다. 흰 거품이 얼마나 오래 남았느냐는 질문에는 모른다고 답했다. 부표를 옮긴 다음 자기 양식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거품 안에 푸른 것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했다. 그 대답을 하고 나서야 손잡이를 놓았던 손이 조금 풀렸다.

방제선 갑판에는 호스가 둥글게 감겨 있었다. 미례는 그 끝을 보자 새벽의 물소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우찬은 선원에게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선원은 기름이 퍼지는 것을 막으라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며 장부를 펼쳤다. 연료 사용 시간은 항적과 이어졌다. 투입한 제품은 우찬이 가져온 구매전표의 제품이었다.

“수거한 기름은 어디로 보냈습니까?”

우찬의 질문에 선원이 장부를 넘기다 멈췄다.

“그날은 걷어 담는 게 아니었습니다. 뭉친 걸 풀어 주는 작업이었어요.”

미례가 선원을 봤다. 선원은 그녀를 알아보았는지 얼굴이 굳었다.

“그때는 기름 치우러 왔다고 하셨잖아요.”

“그쪽에서 그렇게 설명하라고 해서…….”

“걷는 게 아니었으면 줄을 안 옮겼어요. 뭘 뿌리는지 묻기라도 했을 겁니다.”

선원은 조타실 쪽을 돌아보았다. 자기 말이 그날 받은 지시보다 더 멀리 갈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우찬은 그 설명을 장부에 덧써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별도의 진술로 남기고, 그날의 지시를 누가 했는지 확인할 연락처를 받았다. 미례는 감긴 호스를 피해 갑판 끝으로 물러났다.

“저 줄을 열어 준 게 나예요.”

해솔은 뒤따라갔지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물 위에서 잘한 줄 알았던 동작이 물 밑에서 다른 결과를 남긴 경험을 그도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고 쉽게 말하면, 그녀가 그날 무엇을 보고 결정했는지까지 지워질 것 같았다.

“그때 들은 말은 아까 적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지금 들은 말도 따로 남길 겁니다.”

미례가 고개를 돌렸다.

“그 둘이 다르면 내가 바보였다는 말만 남는 거 아닙니까.”

“다르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남습니다.”

배에서 내려온 뒤 박은서의 연락이 왔다. 줄에 남은 계면활성제의 분석 결과가 구매전표 제품의 성분 지문과 맞았다. 항적과 연료기록까지 함께 놓으면 선사 계약 방제선이 신고 전에 분산제를 뿌린 흐름이 이어졌다. 표면의 유막은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은서는 그 문장 뒤를 아직 계산 중이라고 했다.

미례는 회의실로 돌아오자마자 조합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새벽 부표를 옮겼거나 배를 비켜 준 사람들을 불렀다. 한 사람이 벌써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자 우찬이 전화를 받아 따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미례가 입술을 깨물고 전화기를 돌려받았다.

“제가 먼저 내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거죠?”

“네. 질문은 같게 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회의실 앞 의자는 몇 번이고 채워졌다. 미례는 문밖에서 기다렸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눈짓했고,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한 어민이 다녀간 뒤에는 종이컵을 치우며 한참 서 있었다. 그 집 양식장은 바닥 골 가까이에 있었다.

류경문은 영상 통화로 회의에 들어왔다. 분산제의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침몰 직후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찬이 신고보다 앞선 작업 기록을 화면에 띄우자 그는 보고와 현장 대응이 꼭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했다.

“결과가 나빴다고 그 순간의 선의까지 죄가 됩니까?”

미례가 의자를 밀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그럼 왜 뭘 뿌린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우린 기름을 걷는 줄 알고 길을 비켰습니다.”

류경문은 직원의 설명 하나로 전체 조치를 평가하지 말라고 했다. 미례는 화면 앞까지 갔다가 멈췄다. 화면 속에서는 그녀가 손을 뻗어도 닿는 사람이 없었다. 해솔은 통화 장치가 넘어지지 않도록 탁자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옮겼다.

박은서가 지도를 펼쳤다. 분산제를 넣었을 때와 넣지 않았을 때의 물길이 서로 다른 색으로 뻗었다. 금속 촉매 입자가 물기둥 아래로 내려가 해저 골로 옮겨질 가능성이 계산에 들어 있었다. 그는 한 장만 보여 주지 않고 조건을 달리한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방제 직전과 직후에 같은 위치에서 받은 시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차이를 전부 실측값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미례가 지도에서 자기 양식장을 찾았다.

“얼마나 더 갔는지는 아예 모른다는 거예요?”

“모르는 범위를 줄이는 중입니다. 최대를 택해 설명하지도, 차이가 없었다고 놓지도 않을 겁니다.”

류경문이 최소 조건을 먼저 보여 달라고 했다. 박은서는 그 요구에 따라 한 장을 들어 올렸지만 다른 장을 치우지는 않았다. 같은 지도 아래에 사용한 조건을 붙였다. 미례는 두 장의 선이 바닥 골에서 다시 만나는 것을 보았다.

추가 계산이 돌아가는 동안 밖이 어두워졌다. 미례는 늦게 온 마지막 어민에게 자리를 내주고 선착장으로 나갔다. 해솔이 따라 나왔을 때 그녀는 난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멀리 정박한 방제선의 등이 켜져 있었다.

“그날 새벽에도 저렇게 불이 있었어요. 뭔가 하고 있다는 게 고마웠는데.”

우찬이 회의실에서 나와 계산 결과가 도착했다고 말했다. 분산제를 넣지 않은 경우와 비교했을 때 양식장 바닥 농도가 최소 조건에서도 1.6배 높아지는 범위가 나왔다. 추가 조건과 오차를 붙여 두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미례는 배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숫자 중에 내 몫도 들어 있어요?”

“그 숫자는 물질이 어디로 얼마나 옮겨졌는지에 관한 겁니다.”

“알면서 물은 거예요.”

우찬이 난간 옆에 섰다.

“선택하신 일은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을 뿌릴지 결정한 분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미례는 들고 나온 일지를 펼쳤다. 그날 자신이 적은 것은 여전히 흰 거품과 배가 온 쪽뿐이었다. 그녀는 그 줄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오늘의 날짜 아래에 사실확인서를 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기억하지 못한 것을 빈칸으로 남긴 사람도 포함했다.

해솔이 펜을 비출 휴대전화 불빛을 켰다. 미례는 마지막 이름을 적고 나서야 회의실로 돌아갔다. 통화 화면은 꺼져 있었다. 류경문이 남긴 설명은 기록 속에 있었고, 바닥 농도를 나타낸 두 장의 지도는 아직 벽에 걸려 있었다.

우찬은 구매전표의 발행 시각을 다시 보다가 일지를 내려놓는 미례를 불렀다. 연료기록과 제품 확인에 집중하는 동안 뒤로 미뤄 두었던 줄이었다. 그는 사고 시각이 표시된 표를 옆에 가져왔다.

“이건 사고 뒤에 산 게 아닙니다.”

전표가 나온 것은 사고 여덟 시간 전이었다. 미례는 종이를 집지 않고 두 시각을 번갈아 봤다. 해솔은 유막을 없애러 왔다는 배가 출발을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어떤 연락이 오기 전부터 호스를 감아 두고 있었는지, 이제는 그 배의 갑판을 다시 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