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묵의 배급안은 아름다울 만큼 빨랐다. 거점을 여섯 구역으로 나누고 식량 수레가 한 방향으로 돌면, 기존 두 시간짜리 줄을 사십 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각 구역에는 인원수와 기본량, 난방 추가분, 작업 회복분이 합산돼 있었다. 조리조가 큰 통을 한 번씩 내려놓으면 주민이 자기 구역 안에서 나눴다. 수레가 되돌아가는 길도 겹치지 않았다.
첫 시험에서 실제로 대기 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눈발이 굵어지는 날 밖에 서 있는 시간이 짧아졌고, 조리된 음식도 덜 식었다. 주민들은 오래간만에 효율이라는 말을 좋은 뜻으로 썼다.
문제는 차고 구역 통 하나가 일찍 비면서 시작됐다. 명부 숫자는 맞았지만 박무성의 대리 수령, 나루의 별도 확인, 다회 소량을 받는 박미숙 몫이 구역 총량에 다르게 들어갔다.
배식 담당은 중앙표가 확정됐으니 다음 끼니에 고치자고 했다. 차유리는 몸의 필요를 행정 편의 때문에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먹기 어려운 사람에게 다음 끼니 보충은 같은 처치가 아니었다.
박선묵은 오류는 첫 시행에 생길 수 있고 표를 자기에게 모으면 바로 고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악의 없이 빠른 해결을 제안했지만, 결국 모든 이의와 의료 코드가 다시 한 사람의 책상으로 모이는 구조였다.
은별은 중앙표에 이의 칸이 없다고 지적했다. 구역 대표가 잘못 들으면 당사자가 직접 고칠 길이 없었다. 말하지 않는 나루나 줄에 서기 어려운 박무성은 대표의 설명에 의존해야 했다.
민세온은 배급안을 폐기하지 않았다. 수레 동선, 통 크기, 조리 완료 시각, 빈 통 회수 순서는 그대로 쓸 가치가 있었다. 문제는 누가 양을 정하고 틀린 값을 고치는지였다.
표는 운송표와 권리표로 갈라졌다. 운송표는 구역별 총량과 수레 경로만 담고 박선묵과 물류조가 개선할 수 있었다. 권리표는 기본량·의료 조정·작업 회복·당사자 이의를 각각 다른 담당자가 확인했다.
두 표를 연결하는 값은 개인 진단이 아니라 필요한 배식 형태와 양이었다. 박선묵은 누구에게 왜 추가량이 필요한지 볼 수 없고, 조리조는 총량과 용기만 받았다.
구역 대표도 한 명이 아니었다. 배식 수령자와 당사자 확인자를 나눴다. 수령자는 통을 받고, 확인자는 이름과 대리 수령·누락을 확인하며, 둘이 같은 가족이면 다른 구역 기록원이 한 번 더 봤다.
첫 정정 시험에서 나루의 호칭이 옛 번호로 출력된 것이 발견됐다. 선묵은 체육관 출석부에서 자동으로 옮긴 값이라고 설명했다. 은별은 번호를 지우는 것보다 어떤 원본이 잘못 연결됐는지 남겼다.
나루는 새 호칭을 다시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기존 선택 이름을 권리표의 기준값으로 삼고, 옛 번호는 중복 확인 보조로만 남겼다. 속도를 위해 최신 당사자 기록을 과거 행정표 아래 두지 않았다.
박미숙의 다회 소량은 큰 통 배급에서 놓치기 쉬웠다. 조리조는 같은 총량을 작은 보온 용기 셋에 나눴고, 사용하지 않은 분량은 다음 확인 전까지 다른 사람 몫으로 돌리지 않았다.
야간 작업자는 배급 시간에 잠들어 있었다. 구역 대표가 대신 받았지만 작업 회복분이 빠졌다. 태민은 근무 완료 기록과 배식표를 연결해 당사자가 깬 뒤 별도 수령할 수 있게 했다.
박선묵은 예외가 많아지면 사십 분 목표를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세온은 사십 분이 목적이 아니라 추위 속 대기와 누락을 줄이는 수단이라고 답했다. 예외를 없애 목표를 지키면 빠르게 잘못 배급하는 표가 됐다.
그날 오후 눈이 갑자기 거세졌다. 북문 배식소 천막 한쪽이 처지며 줄을 안쪽으로 옮겨야 했다. 박선묵의 일방향 수레 동선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됐다.
통 두 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출구를 비우자 사람들은 엉키지 않았다. 태민이 안전 통로를 확인하고 물류조가 수레를 움직였다. 기술은 만든 사람의 권한과 분리돼 여러 손에서 작동했다.
그러나 이동 중 한 통 표찰이 젖어 구역을 읽을 수 없게 됐다. 하린은 색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봉인 번호와 운송표를 대조했다. 잘못된 구역에 내려놓기 전에 십 분이 걸렸다.
박선묵은 방수 표찰과 모서리 촉감 표시를 제안했다. 나루와 시야가 흐린 입소자가 실제로 구분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빠른 표는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몸에만 맞아서는 안 됐다.
배식이 끝난 뒤 회색 돌 이의가 열두 건 나왔다. 여섯 건은 양, 세 건은 온도, 두 건은 대리 수령 확인, 한 건은 호칭 오류였다. 중앙 기록원 한 사람이 아니라 배식·의료·기록 당번이 나눠 답했다.
박선묵은 모든 답을 자기 표에 합치고 싶어 했다. 은별은 결과 총량과 오류 유형만 합치고 개인 사유는 원래 담당자에게 남기자고 했다. 중앙표는 운영을 보되 사람의 몸을 소유하지 않았다.
정윤호는 이의 처리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를 제기했다. 하린은 즉시 고쳐야 할 누락·의료 배식과 다음 끼니 전에 검토할 온도·동선을 나눴다. 모든 질문을 같은 긴급도로 처리하지 않았다.
최규식은 자기 구역 통이 남았다는 이유로 다음 배급을 줄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남은 양은 실제로 사람들이 덜 필요해서가 아니라 죽이 식어 못 먹은 결과였다. 원인을 보지 않고 잔량만 다음 양에 반영하지 않았다.
조리조는 보온 용기 덮개를 개선했고, 다음 배식에서 같은 구역 잔량이 줄었다. 효율 개선은 배급량 감축보다 전달 방식 수정에서 나왔다.
공개 회의는 박선묵의 안을 채택했다. 정확히는 수레 경로와 표찰, 통 규격, 배식 시간표를 채택했다. 중앙 승인과 수정할 길이 없는 최종표는 거부했다.
결정문에는 제안자 이름과 채택된 기술, 빠진 권한, 다음 검토자가 따로 적혔다. 선묵의 좋은 설계가 과거 책임을 없애지 않았고 과거 책임이 좋은 설계를 버리는 이유도 아니었다.
가족 구역은 같은 배급안을 작은 규모로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다만 수레 한 대뿐이라 일방향 동선보다 두 곳 정차가 나았다. 안전지대 표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기본 원칙과 이의 시간만 공유한 뒤 자기 통로에 맞게 고쳤다.
작은 학교에서는 수업 공간과 배식 통로가 겹쳤다. 학교 대표는 아이들이 먼저 받는 표가 아니라 보호자 없이도 자기 호칭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낮은 배식대를 요청했다. 박선묵은 통 높이와 회전 경로를 다시 그렸고, 나루가 실제로 표찰을 읽어 오류를 찾았다.
두 거점의 수정본이 돌아오자 중앙표라는 이름도 바뀌었다. ‘공통 배급 도구’였다. 같은 기술이 장소마다 달라질 수 있고, 어느 곳의 빠른 시간이 다른 곳에 명령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제목에 넣었다.
박선묵은 표 맨 위의 ‘총괄 승인’ 칸을 직접 지웠다. 그 자리에 ‘운송 확인’, ‘권리 확인’, ‘정정 확인’ 세 칸을 만들었다. 자기가 운송 확인자가 되는 날에도 다른 두 칸은 맡지 않았다.
저녁 배식은 오십오 분 걸렸다. 처음 목표 사십 분보다 늦었지만 기존 두 시간보다 짧았고 누락은 현장에서 바로 확인됐다. 주민들은 기록된 시간을 성과로 보되 점수로 만들지 않았다.
나루는 자기 통 표찰의 촉감 끈을 확인하고 손바닥을 두 번 폈다. 박무성의 대리 수령은 은별과 의료조가 함께 답했고, 야간 작업자 몫은 보온 용기에 남았다.
세온은 빈 수레가 한 방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봤다. 빠른 길은 필요했다. 다만 그 길 위에서 잘못 실린 사람이 내려 말할 수 있는 자리도 같은 만큼 필요했다.
눈이 그친 뒤 운송표는 물류실에, 권리표는 공개 게시판과 의료 구역에 나뉘어 걸렸다. 어느 한 장도 전체 배급을 혼자 결정하지 못했다. 박선묵의 빠른 배급안은 독점된 답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고칠 수 있는 도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