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런과 오스렌의 이름이 관직 명부에서 지워진 뒤, 수도에는 빈 의자가 열두 개 생겼다. 군량 승인관, 봉인 연락관, 북부 조정관, 왕실 서무관. 사람들은 악인이 사라지면 문이 저절로 열릴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서명할 사람이 없어 문서가 탁자 위에서 썩기 시작했다.
첫 주에만 겨울 약초 수송 허가 일곱 건과 피난민 임시 거주 승인 열세 건이 멈췄다. 옛 관료들은 혼란을 증거로 들었다. 왕실 서열에 따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빈 의자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회의장 중앙에는 다시 높은 의자가 놓였다. 이번에는 찌그러진 왕관이 아니라 흰 천으로 덮인 섭정석이었다. 아델린이 들어오자 귀족 대표 셋이 동시에 일어나 그쪽을 가리켰다.
“왕위가 정리될 때까지만 앉으십시오. 전하의 피가 가장 빠른 답입니다.”
아델린은 의자 앞까지 걸어갔다. 천을 걷어 내지도, 앉지도 않았다. “제 피가 어제는 부족해서 기록에서 지워졌고 오늘은 충분해서 열두 의자를 대신한다는 겁니까?”
귀족 대표는 백성을 위한 임시 조치라고 답했다. 허가가 늦어 사람이 얼어 죽을 수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 사실 때문에 제안을 단순한 탐욕으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웠다.
엘리안은 회의장 뒤편에 앉아 있었다. 왕관을 거절한 그가 앞으로 나서면 섭정석의 이름만 바뀔 뿐이었다. 그는 아델린에게 결론을 재촉하지 않고, 멈춘 문서의 목록부터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르트가 허가 열두 종류를 기능별로 나눴다. 군량, 거주, 봉인 안전, 재판, 왕실 의전이 한 결재선에 얽혀 있었다. 카이런은 북부 조정관이면서 군량 승인권과 군 지휘 추천권을 함께 쥐었고, 오스렌은 봉인 사고 보고와 조사관 임명을 동시에 통제했다.
“사람이 비어서 멈춘 것이 아닙니다.” 하르트가 말했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비었습니다.”
옛 서무관 베른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카이런 밑에서 일했지만 기소된 사람은 아니었다. 관례대로라면 가장 오래 근무한 자신이 세 자리를 임시 겸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무를 아는 사람을 모두 의심하면 국정이 무너진다는 반론도 덧붙였다.
방청석에서는 그를 내쫓으라는 목소리와 당장 도장을 쥐여 주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아델린은 어느 쪽도 표결에 바로 올리지 않았다. 베른이 실제로 담당했던 문서와 카이런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따른 기록을 각각 제출하게 했다.
기록은 단순하지 않았다. 베른은 두 번의 위법한 군량 전용에 서명했지만, 북쪽 마을 강제 이주안에는 서명을 미루어 사흘의 대피 시간을 벌었다. 그를 충신이나 공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없었다.
아델린은 빈 의자 열두 개를 회의장 바닥으로 내리게 했다. 각 등받이에는 사람 이름 대신 기능과 권한 종료일을 적었다. 군량 임시 승인관은 서른 날, 피난민 거주 담당은 아흔 날, 봉인 안전 연락관은 스무 날이었다.
“기한이 끝나면 자동으로 빈자리가 됩니다.” 아델린이 말했다.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연장되지 않습니다. 연장안과 새 후보는 같은 날 공개하겠습니다.”
엘리안은 전시 속도를 물었다. 적이 올 때마다 회의를 열 수는 없었다. 세라는 군사 명령이 늦어지는 순간의 대가를 직접 설명했다. 그래서 작전 지휘자는 현장에서 움직이되 군량 창고 개방과 주민 대피 중단권을 겸하지 못하게 했다.
루키안은 봉인 연락관이 사고를 보고하면서 자기 판단의 적절성까지 심사하는 구조를 지적했다. 보고는 현장 학교가, 임시 중단은 네 거점 중 둘이, 사후 조사는 다른 지역에서 온 검증단이 맡도록 칸을 나눴다.
가장 큰 논쟁은 거부권이었다. 귀족들은 아델린에게 임시 최종 거부권을 주자고 했고, 변경 도시 대표들은 왕실이 다시 모든 결정을 막을 수 있다며 반발했다. 아델린은 자신의 표 하나는 유지하되 최종 거부권을 거절했다.
“제가 옳아서가 아니라 제가 틀렸을 때도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대신 생명과 직결된 결정에는 서로 다른 두 집단이 중단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주민 대표와 현장 치료관, 또는 도시 대표와 봉인 담당자가 함께 요청하면 하루 동안 집행을 멈추고 공개 이유를 남기는 규칙이었다. 멈춘 뒤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재검토 시각도 동시에 적었다.
베른은 군량 임시 승인관 후보로 남았다. 다만 단독 결재가 아니라 창고 이용자 대표와 함께 서명하고, 과거 두 차례 전용 서명에 대한 설명서를 붙이는 조건이었다. 그는 모욕이라며 얼굴을 붉혔지만 결국 자기 이름 아래 종료일을 직접 적었다.
오후 늦게 첫 시험이 왔다. 서부 약초 수레가 수도문 밖에서 눈을 맞고 있었다. 베른은 관례대로 귀족 병원 몫을 먼저 떼려 했으나 치료관이 피난민 진료소 재고를 공개했다. 둘은 같은 수량표를 보고 배분을 다시 정했고, 아델린은 자기 표를 쓰지 않았다.
피난민 진료소 대표는 베른이 과거 군량 전용에 서명한 사람이라며 아예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편에서는 그를 빼면 약초 분류를 할 사람이 없다고 맞섰다. 아델린은 신뢰 여부를 표결로 대신하지 않고, 베른이 작성한 배분안을 다른 약제사 둘이 독립 계산하게 했다.
세 계산은 수량 하나에서 달랐다. 귀족 병원은 해열 약초를 한 묶음 더 요청했고, 피난민 진료소는 동상 치료약을 우선했다. 베른은 자기 안을 밀어붙이지 않고 일주일 뒤 재고 점검 조건을 붙여 동상 약을 먼저 보냈다. 과거가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판단은 현재 기록으로 남았다.
그날부터 임시 담당자의 문 앞에는 전임자의 이름이 아니라 가능한 결정과 불가능한 결정이 붙었다. 베른은 수량 배분을 제안할 수 있으나 창고를 혼자 열 수 없고, 치료관은 중단을 요청할 수 있으나 약초를 자기 진료소에 직접 배정할 수 없었다.
서기들은 매일 해 질 때 미처리 상자 수를 벽에 적었다. 첫날 마흔한 상자였던 숫자가 사흘 뒤 스물여섯으로 줄었다.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도 숫자로 남았고, 누구의 결재에서 오래 멈췄는지까지 함께 보였다.
허가가 내려가는 데 예전보다 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나 약초가 어디로 몇 묶음 갔는지 그날 벽에 붙었다. 기다리던 수레꾼은 느리다고 욕하면서도, 자기 짐이 왕실 창고 뒤로 사라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회의가 끝나자 귀족 대표가 다시 섭정석을 가리켰다. “결국 전하께서 규칙을 만드셨습니다. 의자에 앉지 않았을 뿐 이미 섭정 아닙니까?”
아델린은 흰 천을 접어 서기에게 건넸다. “오늘 안은 제가 제출했고, 열세 번 고쳐졌고, 제 거부권 조항은 부결됐습니다. 섭정의 명령이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겠지요.”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사용하지 않음`이라고 쓰지 않았다. 대신 `설치 근거 없음`이라고 적게 했다. 누군가의 미덕 때문에 비워 둔 자리가 아니라,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자리로 남겨야 했다.
엘리안과 아델린은 회의장 밖 긴 복도를 함께 걸었다. 창가에는 아직 처리되지 않은 문서 상자가 쌓여 있었다. 아델린은 피곤한 얼굴로 다음 상자를 들었다. 왕관을 거부했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뒤에서는 열두 의자가 각기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어느 의자도 단상 위에 남지 않았고, 등받이마다 끝나는 날짜가 검은 글씨로 보였다. 유죄 판결이 만든 빈자리는 또 다른 한 사람의 권력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잘게 나뉘어, 처음으로 실제 자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