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혼전의 두 번째 초대장은 금빛도 검지도 않은 붉은 종이였다. 남궁윤은 남궁현이 후계 복귀를 거부했으니 자신과 공개 비무를 해 정통성 논쟁을 끝내자고 썼다. 승자는 원로회 개편과 상환 재산 처리를 맡고, 패자는 가문 일에서 물러난다는 조건이었다.
초대장은 진무백에게도 왔다. 매화맹 대표 자격으로 심판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남궁윤은 외부 신뢰를 얻기 위해 진무백 이름이 필요했다. 진무백이 칼을 든 두 사람 중 승자를 선언하면 피해 마을도 결과를 받아들일 거라 계산했다.
진무백은 심판직을 거부했다. 매화맹은 남궁 후계를 정할 권한도, 비무 승리로 상환 책임을 넘길 권한도 없었다. 다만 검혼전 창고에 피해 곡식이 섞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물자 입회자로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사람을 고르는 자리와 물건을 세는 자리를 분리했다.
남궁윤은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진무백이 남궁현 친구라 편파적이라고 비난했다. 진무백은 그래서 더더욱 누구도 추천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궁현과 경쟁하고 싸운 기억이 있어도 그의 대표가 될 수 없었다. 우정은 다른 사람의 후계 표를 대신 던지는 자격이 아니었다.
남궁현은 비무 초대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 수레 논의가 검혼전에 붙어 있어 완전히 불참하면 원로들이 물자 결정을 비공개로 끝낼 수 있었다. 그는 가문패 없이 입회석에 앉고, 칼을 뽑지 않는 조건을 냈다. 후계 후보가 아니라 자료 설명자로 들어가려 했다.
원로회는 검혼전 전통을 설명했다. 방계와 본산 후보가 선대 검 앞에서 겨루고, 승자가 가주 대행을 맡아 분쟁을 정리한다는 의식이었다. 과거에는 영지 침입 같은 급박한 위기 때 쓰였지만 이번에는 곡식 장부와 내부 횡령까지 결투 결과에 묶으려 했다.
혜륜은 소림에서도 무력 시연이 도덕 판단을 대신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궁 전통을 야만이라 조롱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에 만들어진 의식인지와 현재 문제에 맞는지 물었다. 수레 중량과 지장 위조는 칼의 빠르기로 확인할 수 없었다.
청연도인은 검혼전 안전 규칙을 검토했다. 구경꾼과 하인이 비무장 아래 가까이 모이고 출구가 하나뿐이었다. 패자의 지지자가 소란을 일으킬 경우 사람이 갇힐 위험이 컸다. 그는 심판을 맡지 않되 대피 통로 점검을 제안했다.
당소연은 의무실 설치 조건을 냈다. 참가자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하인과 유족, 구경꾼 누구든 위급도 순서로 받는다. 원로회는 가문 의원이 있으니 외부 진료소는 필요 없다고 했다. 당소연은 피해 물자 입회 행사에 외부인이 초대된 만큼 치료 선택권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칠은 검혼전 입장표가 암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발견했다. 남궁윤 지지 상인들이 앞줄 자리를 사들여 환호를 크게 만들려 했다. 그는 판매자 이름을 정보값으로 넘기지 않고 표 번호와 돈 흐름을 공개했다. 입회석이 지지자 수를 연출하는 도구가 되고 있었다.
피해 마을들은 앞줄 입회권을 요구했다. 원로회는 무공 없는 사람이 비무장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거부했다. 청하촌 대표는 자신들 곡식이 의제라면 가장 먼 자리에서 구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안전을 이유로 발언권까지 밀어내는 구조였다.
진무백은 앞줄을 칼과 멀리 옮기고 비무장을 뒤로 밀자는 배치를 제안했다. 전통상 상석 앞에 칼을 세워야 한다는 반발이 나왔다. 청연도인은 전통을 유지하려 사람이 위험해진다면 검혼전 자체가 상환 심리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원로회는 결국 마당을 둘로 나눴다. 앞쪽은 장부·수레·피해자 입회, 뒤쪽은 별도 비무장이었다. 상환 의제는 결투 전에 공개 대조하고, 결과가 후계 승패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고 문서에 적었다. 남궁윤은 비무 의미가 약해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남궁현에게 마지막으로 단둘이 만나자고 했다. 둘이 싸우지 않으면 원로들이 더 오래 버틴다고 설득했다. 남궁현은 원로 권력을 꺾기 위해 후계 권력을 세우는 방식이 다시 같은 문제를 만든다고 했다. 대신 남궁윤도 장부 공개 심리에 피고인지 증인인지 분명히 하자고 요구했다.
남궁윤은 자신을 피고라 부르는 데 격분했다. 검혼전 자금에서 곡식을 쓴 것을 몰랐다고 했다. 남궁현은 모른 사실 자체보다 알고 난 뒤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곡식 반환과 장부 개방에 동의하면 결투 없이도 책임을 나눌 수 있었다.
검혼전 전날 밤 초대장 보관함이 훼손됐다. 누군가 진무백의 심판 수락 문장을 위조해 새 초대장을 돌렸다. 매화맹이 남궁윤을 지지한다는 소문이 번졌다. 진무백은 매화맹 인장으로 반박하지 않고 원래 거절문과 전달 시각, 위조 종이 차이를 공개했다.
서백하는 위조 필체가 과거 흑야루 문서가 아니라 남궁 행사 서기의 것과 가깝다고 했다. 그녀는 감독 기록원으로 비교 결과만 냈고 범인을 지목하지 않았다. 과거 가담 경력 때문에 모든 위조를 자신이 아는 조직과 잇는 유혹을 경계했다.
행사 서기 셋 중 하나가 위조를 인정했다. 남궁윤이 진무백 지지를 받으면 원로들이 빨리 결집할 거라 생각한 개인 행동이었다. 남궁윤은 자기가 시키지 않았다고 했고, 조사 자료도 직접 지시를 보여 주지 않았다. 지지자의 잘못으로 후보 전체를 유죄로 만들지 않았다.
초대장 위조 사건은 별도 심리에 넘겼다. 검혼전은 예정대로 열되 진무백 이름을 심판석에서 지웠다. 그 자리에는 `공석`이라는 패가 놓였다. 누구도 매화맹의 권위를 빌려 승패를 공적 판결처럼 꾸밀 수 없었다.
매화맹 입회단은 곡식 되박, 저울추, 봉인 기록지만 가져갔다. 진무백은 검을 차지 않았고 혜륜과 청연도인도 무기 보관대에 맡겼다. 당소연은 약함을 열었으며 구칠은 출입표 번호를 확인했다. 각자 역할이 후계 심판보다 좁고 분명했다.
남궁윤은 붉은 초대장을 공개판에 붙였다. 결투 제안 자체를 숨기지 않되 상환 책임과 분리됐다는 정정선을 덧붙였다. 지지자들은 그가 약해졌다고 비난했다. 그는 비무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곡식을 승리 보상으로 삼지는 않겠다고 서명했다.
남궁현은 입회 등록 칸에 가문 직위 대신 `상환 연락자`라고 적었다. 원로 서기가 틀렸다고 지우려 하자 피해 대표가 그 칸을 확인했다. 후계자가 아닌 사람도 가문 안 책임을 설명할 수 있는 첫 등록이었다. 가문패 없는 입장이 문서에서 준비됐다.
검혼전 아침, 남궁가 대문 밖에는 비무 구경꾼보다 수레를 기다리는 피해자들이 먼저 줄을 섰다. 그들은 후보 초상 대신 빈 자루와 수령표를 들었다. 전통의 중심이 칼에서 되박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원로들은 그 광경을 숨길 수 없었다.
공석 심판패 앞에는 왜 비어 있는지 설명하는 글이 붙었다. 매화맹이 어느 후보도 승인하지 않았으며, 상환 의제는 비무 승패와 무관하다는 문장이었다. 빈자리마저 누군가의 암묵적 지지로 팔리지 않도록 거절의 범위를 눈에 보이게 남겼다.
진무백은 공석 심판패 옆을 지나 물자 입회석에 앉았다. 남궁윤은 뒤쪽 비무장에서 칼을 세웠고 남궁현은 앞줄 가족들 사이에 섰다. 둘의 자리는 이미 달랐다. 결투가 열리더라도 곡식 주인을 바꿀 수 없다는 합의가 먼저 사람들 손에 들어갔다.
종이 울리기 직전 남궁윤은 진무백을 바라봤다. 지지를 묻는 눈빛이었다. 진무백은 답하지 않고 저울추를 피해 대표에게 건넸다. 검혼전의 초대장은 매화맹을 새 심판 권력으로 만들지 못했고, 그날 첫 판정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빈 수레가 어디서 가벼워졌는가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