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판결 날에는 비가 내렸다. 청수현 회당의 네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빗물이 문턱 안쪽까지 들어왔다. 사람들은 의자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젖은 바닥 위에 사슬 토막, 원거래 장부, 검은 약병, 폐기 입회서가 차례로 놓였다.
문유백은 포승을 맨 채 단상 아래에 앉았다. 그는 청동 그릇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자기 기록 체계가 없으면 강호가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관자에게 번호를 붙인 것은 비밀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질서였고, 사망은 설리항의 과격한 집행 탓이라고 했다.
주명한이 원거래 장부의 이중 바닥 항목을 읽었다. 문유백 친필로 `이름을 분리해야 이탈 뒤 추적이 쉽다`고 적혀 있었다. 비밀을 지킨다는 주장과 달리 번호는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도유문은 그 필체와 검은 네모 인장을 확인했다.
공동 심문관은 문유백에게 보관자 강제 운송, 증인 납치, 사본 바꿔치기, 회령상단 자금 은닉의 책임을 인정했다. 청명문 습격의 직접 지휘는 끝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아 확정 문장에서 제외했다. 확인되지 않은 죄를 더하지 않아도 확인된 책임만으로 판결은 무거웠다.
문유백은 청수현과 보관자 대표가 함께 관리하는 감옥에 구금되고, 회령상단 지분과 은닉 재산은 피해 회복 재원으로 동결됐다. 그의 기록 지식은 원장 해독에 필요했지만 혼자 문서를 만질 수 없었다. 질문에 답할 때마다 세 명이 입회하고, 협조를 이유로 피해자 접촉이나 석방을 거래할 수 없게 했다.
문유백은 판결문에 손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버텼다. 공동 심문관은 억지로 손을 눌러 찍지 않았다. 낭독을 들었다는 입회자 다섯의 서명과 그의 거부 자체를 적었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결이 사라지지도, 강제로 동의한 모양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가 숨긴 금고 위치는 원거래 장부의 수레 노선에서 찾았다. 회령상단 창고 세 곳을 열어 보니 은자뿐 아니라 보관자 가족의 호적, 보내지 않은 편지, 압수한 신표가 나왔다. 물건은 현청 금고에 쌓지 않고 목록을 만든 뒤 당사자 확인을 거쳐 돌려주기로 했다. 재산 회수보다 이름과 관계를 먼저 회복하는 순서였다.
회색 띠 무사들은 한꺼번에 같은 처분을 받지 않았다. 납치와 방화에 가담한 사람, 가짜 검문만 선 사람,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친 사람을 나눠 심문했다. 자진해 무기를 내려놓은 이들은 피해 복구 노동과 이동 제한을 받았고, 인질의 사슬을 당긴 자들은 별도 구금됐다.
두 승인 방주는 직위에서 해임됐다. 비급 탈취를 직접 알았다는 증거는 부족했지만 반복 지출을 묻지 않고 경고를 방치한 감독 책임이 인정됐다. 그들의 특별비 계정은 공개됐고, 다시 공적 인장을 맡지 못하게 했다. 일반 제자에게 혈연이나 문파만으로 책임을 물리지는 않았다.
한 방주는 재산을 내놓는 대신 공개 사과로 끝내자고 청했다. 임계산은 사과를 들을지 말지도 피해자가 고르게 해 달라고 했다. 판결문은 사과 모임 참석을 의무로 만들지 않고, 방주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서면을 공개하게 했다. 피해 회복비는 그와 별개로 집행됐다. 감정을 받아 주는 일을 또 다른 의무로 피해자에게 넘기지 않았다.
막리연이 다음으로 섰다. 세 번의 원보고는 참작됐지만 직접 경고를 멈추고 삼 년 동안 순찰사 자리를 지킨 책임도 인정됐다. 그는 오방맹의 감찰·순찰 직위를 영구히 맡지 못하고, 오 년 동안 공동 기록고의 대조와 증인 호송을 감독받으며 수행하라는 결정을 받았다.
"보고서를 쓴 공으로 기간을 줄여 달라는가?" 현령이 물었다.
"아닙니다. 빠진 기록이 생기면 기간 뒤에도 부르십시오."
막리연은 순찰사 패를 돌려받지 않았다. 한소령은 그 처분을 엄하다고도 가볍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피해자 대표들이 고른 책임의 모양을 존중했다.
윤채는 봉인 절취, 설리항과의 거래, 한소령을 미끼로 둔 침묵을 인정받았다. 청명문이나 다른 문파의 지도 직위를 맡지 못하고, 삼 년 동안 무기 소지를 제한한 채 실종자 명부 복원과 가족 호송에 참여하게 됐다. 직접 납치에 가담했다는 확인은 없어 구금하지 않았지만 모든 이동은 기록됐다.
주명오는 윤채에게 형 주명석의 이름을 매달 한 번 읽으라는 식의 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 형을 당신 벌의 도구로 만들지 마시오. 명부 일을 하되 우리가 그만 묻고 싶은 날에는 물러나시오." 윤채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팽노는 법정의 피고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증언석에 섰다. 도현진의 부탁을 지킨다는 이유로 보관자 연락망과 한소령의 진실을 세 해 동안 혼자 쥐었고, 보호를 핑계로 당사자의 선택을 늦췄다고 말했다.
공동 회당은 팽노가 어떤 기록이나 보호처의 단독 책임자도 될 수 없다고 정했다. 취선객잔의 솥은 계속 맡되 출입, 재정, 명부 권한은 다른 사람과 나눠야 했다. 팽노는 판결문에 손도장을 찍으며 "진작 그랬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소령은 팽노에게 따로 벌을 더 달라고도, 함께 산 세월을 이유로 빼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객잔으로 돌아가면 같은 부엌을 쓰겠지만 장부 열쇠는 주명한과 가족 대표가 나눠 가질 것이었다. 가까운 관계가 공적 통제를 대신하지 않게 하는 것이 둘이 계속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한소령에게도 물었다. 천잔보감 위험 지침을 허가 없이 폐기한 책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공동 심문관은 급박한 위해를 막기 위한 필요가 있었고, 피해 기록을 분리 보존하며 공개 입회를 거쳤으므로 별도 형벌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폐기 절차와 거절 권리를 공동 기록고 규칙으로 남겨 비슷한 결정을 한 사람도 검증받게 했다.
"윤채를 용서했나? 막리연과 팽노는?"
방청석에서 누군가 물었다. 공식 질문은 아니었지만 한소령은 답했다. "판결은 제 마음 하나로 줄이거나 늘릴 수 없습니다. 용서는 오늘 정해 제출하는 문서도 아닙니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날과 아직 묻고 싶은 날이 함께 있을 겁니다."
그 대답은 누구도 깨끗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소령은 마음에 들었다. 관계를 계속할 가능성과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일이 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명이라는 이름의 사용이 논의됐다. 한소령은 무공 비급을 전하는 문파로 다시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사라진 이름을 기록하고, 증인과 가족을 호송하며, 길에서 굶은 사람에게 한 끼를 내는 작은 문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청명문 규약은 세 줄이었다. `사람을 물건의 열쇠로 삼지 않는다. 기록은 한 손에 맡기지 않는다. 칼은 사람과 퇴로 사이에서만 뽑는다.` 그 아래 첫 여섯 식만을 호송 검로로 쓰고 일곱째 이후를 전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붙었다.
규약을 어겼을 때 누가 판단할지도 정했다. 청명 내부 사람끼리만 다루지 않고 시장 대표, 보호처 이용자 대표, 공동 기록고 관리자가 함께 들었다. 한소령 자신이 잘못해도 문주라는 이름으로 심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문주라는 직함 자체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은 바뀔 수 있어야 했다.
청명문의 책임자는 한소령 한 사람으로 적히지 않았다. 기록은 주명한과 가족 대표, 호송은 시장 조합과 막리연, 치료는 담여화와 의원들, 식사는 팽노와 객잔 일꾼들이 맡았다. 한소령은 문지기와 호송자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윤채는 지도자가 아니라 감독받는 명부 보조로만 참여했다.
현령이 판결문을 읽고, 주명한이 피해자 명부와 맞는지 확인하고, 시장 대표가 재원 날짜를 확인했다. 마지막 손도장은 한소령이 아니라 백발 여인이 찍었다. 노진수의 짚신을 맡겼던 어머니였다. 행방 미확인인 사람도 공동체의 기준에 포함된다는 뜻이었다.
비가 그칠 무렵 회당 밖에 새 종이 걸렸다. 청동 그릇에서 나온 금속으로 만든 종이었다. 주명한이 줄을 당기자 맑은 소리가 네 열린 문을 지나갔다. 판결은 모든 상처를 낫게 하지 않았다. 다만 누가 무엇을 책임지고, 다시 같은 문을 닫지 않기 위해 무엇을 나눌지 정했다.
한소령은 판결문 사본을 품에 넣지 않았다. 주명한, 담여화, 시장 대표와 한 장씩 나눠 들었다. 청명의 판결은 그 한 장에만 있지 않았다. 앞으로 각자가 맡은 일을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