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을 벗어나자 길의 색이 달라졌다. 파서진의 검은 흙은 강둑 아래에서 끊겼고, 그 너머로 마른 붉은 흙이 발목까지 일었다. 한소령은 주명오의 보따리에서 떨어진 가루를 손가락 사이에 비벼 본 기억과 발밑의 감촉을 맞췄다. 소금 결정이 햇빛을 받아 간간이 반짝였다. 오래전 바닷물이 물러난 땅이었다.
팽노는 왼쪽 어깨를 아끼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걷지 않았다. 팽노가 길을 알고 앞섰고 한소령은 사슬을 품은 채 일곱 걸음 뒤를 따랐다. 길을 아는 사람과 증거를 든 사람이 한 칼에 쓰러지지 않게 하는 거리였다. 조금 전 방에서 배운 규칙을 벌써 몸으로 지키고 있었다.
버드나무 세 그루를 지나자 폐염창고의 지붕이 보였다. 절반은 내려앉았고 벽은 붉은 먼지에 잠겨 있었다. 문짝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대신 문 앞 흙에 수레바퀴 자국 두 줄과 짚신 자국이 어지럽게 겹쳤다. 수레는 안으로 들어갔고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람부터 센다."
팽노가 낮게 말했다. 한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 안에서 들리는 숨을 헤아렸다. 가까운 곳에 여섯, 뒤편에 넷, 지붕 들보 위에 둘. 쇠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도 났다. 누군가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문을 밀자 소금 먼지가 먼저 쏟아졌다. 안쪽에는 열두 사람이 두 무리로 갈라져 있었다. 오른편 사람들은 빈손으로 낡은 궤짝을 둘러쌌고, 왼편 사람들은 짧은 칼과 쇠갈고리를 들었다. 양쪽 모두 손등이나 손가락 사이에 같은 폭의 흉터가 있었다. 서로 다른 편이라기보다 같은 상처에서 갈라진 사람들이었다.
주명한은 궤짝 앞에 서 있었다. 삼베 도포를 벗은 팔에는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사슬 자국이 이어졌다. 객잔에서 보았던 평범한 얼굴은 사라지고, 잠을 며칠 못 잔 사람의 눈이 남아 있었다. 그 옆에 주명오가 보따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문을 열었군요, 팽 어르신."
"너희가 먼저 피를 내기 전에 왔다."
쇠갈고리를 든 사내가 비웃었다. 그의 이름은 임계산이었다. 일곱 해를 보관자로 살았고, 풀려난 뒤에도 신분 문서가 없어 품삯을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궤짝 안의 종이를 오방맹 장계원에게 넘기면 모두가 새 이름과 돈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지킨다고 밥이 나옵니까? 우리 손을 묶은 자들의 장부를 끌어안고 굶으라는 겁니까?"
주명한이 대답했다. "팔고 나면 이름을 주는 게 아니라 입을 막겠지. 우리를 묶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약속을 지킬 것 같으냐."
말은 옳았지만 임계산의 굶주림도 거짓은 아니었다. 한소령은 갈고리를 든 손이 공격하려는 떨림보다 지쳐서 떨리는 것을 보았다. 창고 구석에는 마른 곡식 자루가 하나뿐이었다. 물독 바닥도 드러나 있었다. 기록을 지킨다는 명분이 사람의 배를 채우지 못하면 언젠가는 기록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궤짝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한소령의 물음에 양쪽 시선이 한꺼번에 모였다. 주명한은 잠시 팽노를 보았고, 팽노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주명한이 대답했다.
"천잔보감 후반부를 보관하고 움직인 기록. 누구 손을 거쳤고, 어느 길에서 사람이 죽었으며,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적힌 운용 장부입니다. 비급 자체를 여는 물건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임계산이 갈고리 끝으로 궤짝을 두드렸다. "그 다른 곳을 사겠다는 자가 장부도 함께 요구했소. 오늘 해 지기 전까지 가져가면 보관자 열둘에게 호적과 은자 스무 냥씩을 준다고 했소."
"누가요."
"문유백. 오방맹 전각주요. 설리항 밑에서 기록을 맡았던 자."
그 이름을 팽노가 아주 작게 되뇌었다. 한소령은 기억해 두었다. 설리항의 패배 뒤에도 움직이는 손에 처음으로 이름이 붙었다. 문유백은 기록을 산다면서 호적을 약속했다. 곧 사람의 존재를 종이 한 장으로 쥔 자가 그 종이를 미끼로 던진 셈이었다.
창고 뒤편에서 갑자기 기침 소리가 났다. 한소령은 들보가 아니라 바닥 아래를 봤다. 소금 자루 뒤에 낡은 판문이 있었고, 틈으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 주명한의 표정이 굳었다. 임계산 쪽 사람 둘이 갈고리를 들고 막았지만 한소령은 검을 뽑지 않고 걸어갔다.
"비키십시오. 안에 다친 사람이 있습니다."
"장부부터 정해야—"
"장부가 사람을 대신 숨 쉬어 주지는 않습니다."
판문 아래에는 보관자 셋이 누워 있었다. 새벽에 문유백의 선발대가 들이닥쳤다가 물러가며 칼을 쓴 탓이었다. 한 명은 허벅지가 깊게 베였고, 한 명은 열이 높았다. 세 번째는 손목의 오래된 상처가 터져 피가 멎지 않았다. 주명오는 거래가 깨질까 두려워 숨겼다고 고백했다.
한소령은 담여화가 묶어 준 작은 약낭을 꺼냈다. 팽노는 창고 천을 찢어 압박했고, 주명한은 물을 끓였다. 갈고리를 든 사람들도 끝내 서 있지 못했다. 임계산이 먼저 무릎을 꿇고 다친 사내의 다리를 잡았다. 편이 갈린 자리에 해야 할 일이 생기자 손들이 다시 같은 방향을 향했다.
말발굽 소리는 그때 들렸다. 창고 바깥에 여덟 기가 멈췄다. 문유백의 인장을 단 회색 띠가 문틈으로 보였다. 해가 기울기 전에 사러 온 자들이었다. 앞장선 무사가 안으로 외쳤다.
"계약할 사람만 나오라. 나머지는 훔친 맹의 기록을 품은 도적으로 처리한다."
임계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소령은 궤짝이 아니라 다친 세 사람을 보았다. 수레 하나로 장부와 부상자를 함께 옮길 수는 없었다. 그는 주명한에게 사슬 꾸러미를 건네고 궤짝 뚜껑을 열게 했다. 안에는 종이뭉치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얇은 대나무쪽들이 층층이 누워 있었다.
"장부를 나눕시다. 한 사람이 전부 들지 않게. 부상자는 수레에 태웁니다."
"놈들이 궤짝을 빼앗으면?" 임계산이 물었다.
"빈 궤짝을 가져가게 두십시오."
팽노가 한소령을 보았다. 아주 잠깐 뒤, 노인이 먼저 죽간 한 묶음을 품에 넣었다. 주명한과 임계산이 각각 다른 묶음을 들었다. 나머지는 창고 바닥의 소금더미 세 곳에 나누어 묻었다. 한소령은 마지막 묶음을 다친 사내의 베개 속에 넣었다. 기록과 사람을 함께 옮기되, 사람을 기록의 방패로 세우지 않는 위치였다.
문이 부서지며 회색 띠 무사들이 들어왔다. 한소령은 검을 뽑았다. 첫째 식으로 앞선 칼의 손목을 밀고, 둘째 식으로 쇠갈고리의 방향을 틀었다. 여섯째 식을 넘지 않았다. 창고처럼 좁은 곳에서는 화려한 초식보다 한 걸음의 퇴로가 중요했다. 그는 쓰러뜨리는 대신 부상자 수레로 향하는 길만 비웠다.
팽노의 식도가 자루를 끊고 소금이 쏟아졌다. 바닥이 희게 미끄러워지자 추격자들의 발이 엉켰다. 임계산은 팔겠다고 들었던 갈고리로 수레 문을 열었다. 주명한이 앞에서 끌고 주명오가 뒤에서 밀었다. 보관자 열둘은 누구도 궤짝 곁에 남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뒤 한소령은 빈 궤짝을 창고 중앙에 그대로 두었다. 회색 띠 무사가 뚜껑을 열고 텅 빈 속을 확인하는 동안 수레는 붉은 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짐을 품고 있었지만 같은 속도로 걸었다. 팔려던 자와 지키던 자 사이의 선은 부상자의 피 앞에서 흐려졌다.
해가 붉은 절벽 너머로 내려갔다. 한소령은 맨 뒤에서 추격이 없는지 살폈다. 팽노가 수레 곁에서 임계산에게 물었다. "은자 스무 냥이 없어도 갈 수 있겠느냐."
임계산은 한참 뒤 말했다. "오늘 밤 먹을 것부터 있어야 합니다."
"취선객잔에 솥은 있다."
그 말에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은 조금 빨라졌다. 붉은 흙 위에 열두 사람의 발자국과 수레바퀴 자국이 함께 남았다. 한소령은 그 길을 지우지 않았다. 뒤따를 사람이 있다면 빈 궤짝이 아니라 살아서 증언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창고를 지킨 것도, 팔려고 한 것도 결국 살아남으려는 손이었다. 이제 그 손들이 무엇을 들게 할지는 힘센 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정해야 했다. 한소령은 검을 칼집에 넣고 수레 뒤를 밀었다. 쇠사슬 흉터가 저녁빛 아래 더는 표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책임져야 할 상처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