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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3화]

복사기는 기억한다

작성: 2026.03.13 15:40 조회수: 67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서하는 회의실 예약 현황을 확인하다가 자판기 커피를 쏟을 뻔했다. 소회의실 B, 오전 열 시. 팀장 이름으로 이미 잡혀 있었다. 민주 건 서명 문제가 공식 안건으로 올라간 회의였다. 지난주 내내 머릿속에서만 굴리던 문장들이 이제는 종이 위에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서하의 손끝을 차갑게 만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지만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었다.

자리에 앉은 서하는 서류함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배관 업체 수리 확인서 사본, 누수 피해 사진 출력본, 그리고 서하가 직접 복사해 둔 대리서명 확인서 사본. 손가락이 파일 끝까지 훑었다. 사진 출력본은 있었다. 수리 확인서 사본도 있었다. 대리서명 확인서 사본만 없었다.

서하는 서류함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책상 서랍, 가방 안쪽 포켓, 심지어 점퍼 주머니까지 뒤졌다. 분명히 지난 목요일 새벽 조사실에서 복사한 그 한 장이었다. 서명 필체가 민주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따로 빼 둔 장. 복사기 앞에서 손이 떨리던 감각까지 생생한데, 종이만 사라졌다. 서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잠깐 천장을 올려다봤다. 월요일 아침부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뭘 그렇게 뒤져. 월요일 아침부터 보물찾기야?"

지우가 텀블러를 한 손에 든 채 서하 자리 옆을 지나갔다. 서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혹시 제 서류함에서 뭐 가져간 거 있어요? 민주 건 사본 하나가 안 보여서요."

지우는 텀블러 뚜껑을 돌리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왜 남의 서류함을 열어. 금요일에 정리하다가 다른 데 끼워 넣은 거 아니야?"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가볍고 빠르고, 별일 아니라는 듯한 톤. 그런데 서하 귀에는 그 빠르기가 걸렸다. 지우는 보통 질문을 받으면 한 번쯤 되물었다. 뭐가 없는데, 어떤 서류인데, 그런 식으로. 오늘은 그 리듬이 없었다. 너무 바로 부정했다.

아홉 시가 조금 넘어 도윤이 출근했다. 서하는 타이밍을 재다가 도윤이 모니터를 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직후에 다가갔다. 가장 경계가 낮을 때라고 지우가 예전에 알려준 팁이었는데, 오늘은 그 팁을 쓰는 순간조차 묘하게 찜찜했다.

"팀장님, 민주 건 자료 정리하는데 대리서명 확인서 사본이 안 보입니다. 혹시 제 서류함에서 회수하신 거 있으신가요?"

도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우스만 천천히 움직였다.

"원본은 문서고에 있어."

"네, 원본 말고 제가 따로 복사해 둔 사본이요."

도윤의 마우스가 멈췄다. 이삼 초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사본은 관리 대상 아니야. 네가 정리한 거니까 네가 찾아."

목소리는 단정했고 얼굴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 서하는 그 이삼 초의 정지를 놓치지 못했다. 도윤은 복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포스트잇으로 그걸 확인시켜 준 사람이 도윤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사본이 사라졌다는 말에 추가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없어진 서류보다 그 무반응이 더 이상했다.

오전 내내 서하는 자료를 다시 정리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의는 오전 열 시에서 오후 두 시로 밀렸다. 팀장 일정이 바뀌었다는 말이 돌았고, 그 짧은 공백이 오히려 서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찾을 시간이 생겼는데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더 조급하게 한다는 걸, 서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에도 밥이 반쯤 남았다. 수진이 맞은편에서 김치찌개를 떠먹다가 서하의 밥그릇을 힐끗 봤다.

"밥 남기면 오후에 머리 안 돌아가. 회의 열 시 아니었어?"

"두 시로 밀렸어요. 팀장님 오전 일정 때문에요."

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민주 씨 건, 서명 경위 정리는 됐어?"

"거의요. 근데 확인서 사본이 하나 없어졌어요."

서하가 말끝을 흐리자 수진의 손이 잠깐 공중에서 멈췄다. 숟가락을 든 채였다.

"없어졌다고? 원본 말고?"

"네. 제가 따로 복사해 둔 거요."

수진은 찌개 국물을 한 번 더 떠서 밥 위에 올렸다. 그리고 평소보다 반 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류가 사라지는 건 두 가지야. 정리가 안 됐거나, 누군가 정리했거나."

그 말을 하면서 수진은 서하의 눈을 똑바로 봤다. 서하는 밥을 한 숟갈 떴다. 입에 넣었는데도 맛이 없었다. 불안이 목 안쪽에 걸린 것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서하는 결심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건 더 못 하겠다고.

오후 한 시 이십 분, 서하는 3층 복사실로 내려갔다. 복사기 옆 사용 기록부를 펼쳤다. 문서 보안 때문에 날짜와 이름, 문서명을 수기로 적게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충 적혀 있었고 절반은 빈칸이었다. 서하는 지난주 목요일 날짜를 찾았다.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윤서하 / 수리확인서 / 1매.'

그 아래로 금요일 기록이 이어졌다.

서하의 시선이 한 줄에서 멈췄다.

금요일 오후 네 시.

'한지우 / 내부참고 / 2매.'

문서명은 '내부참고'라고만 적혀 있었다. 지우는 평소 복사 기록을 꼼꼼히 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네 시면 서하가 반차를 쓰고 민주 세탁소에 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던 시간대였다. 정확히 서하가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서하는 기록부를 덮지 못한 채 한참 서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복도 끝에서 깜빡였다. 지우가 가져간 걸까. 그렇다면 왜 아침에 물었을 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까. 아니면 도윤이 지우에게 시킨 걸까. 도윤은 포스트잇으로 서하가 복사한 사실을 알리면서도 직접 말하지 않았다. 그 거리감이 보호인지 경고인지, 서하는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건 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일은 먼저 움직여야 했다. 누가 가져갔는지보다 왜 가져갔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두 시 회의는 예상보다 짧게 끝났다. 팀장은 민주 건 서명 경위를 확인한 뒤 건물주 측에 소명 요청서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서하에게는 민주에게 진행 상황을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도윤은 회의 내내 서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지우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외근을 나갔다. 서하가 붙잡고 물을 틈도 없었다. 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서하는 민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민주 고객님, 서명 건 관련 진행 상황 안내드릴 게 있습니다. 편하신 시간에 연락 주세요.'

보내고 나서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민주의 읽음 표시가 뜨기 전에 화면 위쪽에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읽음만 찍혀 있고 답장은 없었다. 서하는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괜히 가슴 한쪽이 더 답답해졌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진과 마주쳤다. 수진이 먼저 물었다.

"서류 찾았어?"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수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찾지 마. 네가 본 걸 기억하고 있으면 돼. 종이는 사라져도 네 눈은 안 사라지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수진이 먼저 탔고, 서하도 뒤따라 들어갔다. 잠깐 망설이던 서하는 결국 물었다.

"수진 선배, 도윤 팀장님이 예전에 서류 때문에 문제 된 적 있어요?"

수진의 손가락이 1층 버튼 위에서 멈췄다. 반 초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그건 내가 대답할 게 아니야."

거절이라기보다 대답할 수 없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1층에서 문이 열리자 수진은 먼저 내리며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자료는 원본 기준으로 다시 정리해 둬. 사본에 기대지 마."

밤 아홉 시, 원룸 침대 위에 누운 서하는 천장을 봤다. 복사기 기록부의 지우 이름, 도윤의 이삼 초 정지, 수진의 반 초 멈춤. 세 사람의 시간은 전부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말이 자꾸 남았다. 종이는 사라져도 네 눈은 안 사라진다. 하루 종일 흔들리기만 하던 마음이 그 문장 하나에 조금 가라앉았다. 무서운 건 여전했지만, 적어도 내가 뭘 봤는지는 안다. 그 사실만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서하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며 생각했다.

그때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민주에게서 답장이 왔다.

'윤 선생님, 내일 오전에 세탁소 올 수 있어요? 보여줄 게 하나 있어요.'

서하는 메시지를 읽고 한참 동안 입력창의 커서가 깜빡이는 걸 바라봤다. 보여줄 것. 민주가 뭘 발견한 걸까.

엄지가 답장을 치기 직전, 화면 상단에 또 하나의 알림이 떴다. 도윤이었다. 단체 대화방이 아니라 개인 메시지였다.

'내일 외근 전에 잠깐 보자.'

서하는 두 개의 메시지를 번갈아 봤다. 민주를 먼저 만나면 새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도윤을 먼저 만나면 사라진 사본 이야기를 정면으로 꺼낼 기회가 생긴다. 어느 쪽이든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건 분명했다. 서하는 결국 휴대폰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심장 박동이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내일, 누구를 먼저 만나느냐에 따라 사라진 종이의 의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월요일 밤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형태를 갖춰 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도윤이 개인 메시지를 보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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