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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3화]

복사기는 기억한다

작성: 2026.03.13 15:40 조회수: 13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분, 서하는 회의실 예약 현황을 확인하다가 자판기 커피를 쏟을 뻔했다. 소회의실 B, 열 시. 이미 팀장 이름으로 잡혀 있었다. 민주 건 서명 문제가 공식 안건이 되는 회의. 지난주 내내 머릿속에서 굴렸던 문장들이 갑자기 종이 위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서하의 손끝을 차갑게 만들었다.

자리에 앉아 서류함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민주 건 관련 자료를 시간순으로 정리해둔 파일이 있어야 했다. 배관 업체 수리 확인서 원본 사본, 누수 피해 사진 출력본, 그리고 서하가 직접 복사해둔 대리서명 확인서 사본. 손가락이 파일 끝까지 훑었다. 사진 출력본은 있었다. 수리 확인서 원본 사본도 있었다. 대리서명 확인서 사본만 없었다.

서하는 서류함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책상 서랍까지 뒤졌다. 가방 안쪽 포켓, 심지어 점퍼 주머니까지. 분명히 지난 목요일, 11화 때 새벽 조사실에서 복사한 그 한 장이었다. 서명 필체가 민주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따로 빼둔 장이었다. 서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복사기 앞에서 손이 떨렸던 감각까지 기억나는데, 종이만 사라졌다.

"뭘 그렇게 뒤져. 월요일 아침부터 보물찾기야?"

지우가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서하의 자리 옆을 지나갔다. 서하는 최대한 가볍게 물었다.

"혹시 내 서류함에서 뭐 가져간 거 있어요? 민주 건 사본 하나가 안 보여서."

지우는 텀블러 뚜껑을 돌리며 눈도 안 마주쳤다. "내가 왜 남의 서류함을 열어. 금요일에 정리하다 다른 데 끼워 넣은 거 아니야?"

말투는 평소 그대로였다. 가볍고, 빠르고,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런데 서하의 귀에는 한 박자 빠른 대답이 걸렸다. 지우는 보통 질문을 받으면 한 번은 되물었다. 뭐가 없는데? 어떤 서류? 그런 리듬이 오늘은 없었다.

아홉 시가 넘자 도윤이 출근했다. 서하는 타이밍을 재다가 도윤이 모니터를 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직후에 다가갔다. 가장 경계가 낮을 때라고 지우가 알려준 팁이었다.

"팀장님, 민주 건 자료 정리하는데 대리서명 확인서 사본이 안 보입니다. 혹시 제 서류함에서 회수하신 건 있으신가요?"

도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우스만 천천히 움직였다.

"원본은 문서고에 있어."

"네, 원본 말고 제가 따로 복사해둔 사본이요."

도윤의 마우스가 멈췄다. 이삼 초.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사본은 관리 대상 아니야. 네가 정리한 거니까 네가 찾아." 목소리는 평소처럼 단정했고, 얼굴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 서하는 그 이삼 초의 정지를 놓치지 못했다. 도윤은 복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 12화 때 포스트잇으로 그걸 확인시켜 준 사람이 도윤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사본이 사라졌다는 말에 추가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시간, 서하는 밥을 반도 못 먹었다. 수진이 맞은편에서 김치찌개를 떠먹다가 서하의 밥그릇을 힐끗 보았다.

"밥 남기면 오후에 머리 안 돌아가. 회의 열 시 아니었어?"

"두 시로 밀렸어요. 팀장님이 오전에 외근 잡혔대요."

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민주 씨 건, 서명 경위 정리는 됐어?"

"거의요. 근데 확인서 사본이 하나 없어져서." 서하는 말끝을 흐렸다. 수진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눈이 좁아진 게 아니라, 숟가락을 든 손이 아주 잠깐 공중에서 머문 것이었다.

"없어졌다고? 원본 말고?"

"네. 제가 따로 복사해둔 거요."

수진은 찌개 국물을 한 번 더 떠서 밥 위에 올렸다. 그리고 평소보다 반 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류가 사라지는 건 두 가지야. 정리가 안 됐거나, 누군가 정리한 거거나." 그 말을 하면서 수진은 서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서하는 밥을 한 숟갈 떴다. 맛을 모르겠었다.

오후 한 시 이십 분, 서하는 3층 복사실로 내려갔다. 복사기 옆에는 사용 기록부가 붙어 있었다. 이 회사는 문서 보안 때문에 복사 시 날짜, 이름, 문서명을 수기로 적게 되어 있었다. 대부분 대충 적었고, 절반은 빈칸이었다. 서하는 지난주 목요일 날짜를 찾았다.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윤서하 / 수리확인서 / 1매.' 그 아래로 금요일 기록이 이어졌다. 서하의 시선이 한 줄에서 멈췄다.

금요일 오후 네 시. '한지우 / 내부참고 / 2매.'

문서명이 '내부참고'라고만 적혀 있었다. 지우는 늘 복사 기록을 꼼꼼히 쓰는 편이 아니었지만, 금요일 오후 네 시면 서하가 반차를 쓰고 민주 세탁소에 갔다가 사무실에 돌아온 직후의 시간대였다. 서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서하는 기록부를 내려놓고 복사실 문 앞에 서서 복도를 바라보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지우가 가져간 걸까. 그렇다면 왜? 아침에 물었을 때 왜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까. 아니면 도윤이 지우에게 시킨 걸까. 도윤은 포스트잇으로 서하가 복사한 사실을 알리면서도 직접 말하지 않았다. 그 거리감이 보호인지 경고인지 서하는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두 시 회의는 예상보다 짧게 끝났다. 팀장이 민주 건 서명 경위를 확인한 뒤 건물주 측에 소명 요청서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서하에게는 민주에게 진행 상황을 안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도윤은 회의 내내 서하를 한 번도 안 보았다. 지우는 회의 끝나자마자 외근을 나갔다. 서하가 뭔가를 물을 틈이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서하는 민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민주 고객님, 서명 건 관련 진행 상황 안내드릴 게 있습니다. 편하신 시간에 연락 주세요.' 보내고 나서 화면을 한참 보았다. 민주의 읽음 표시가 뜨기 전에, 화면 위쪽에 아버지의 카톡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읽음 표시만 찍혀 있고 답장은 없었다. 서하는 핸드폰을 뒤집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진과 마주쳤다. 수진이 먼저 말했다.

"서류 찾았어?"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수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찾지 마. 네가 본 걸 기억하고 있으면 돼. 종이는 사라져도 네 눈은 안 사라지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수진이 먼저 탔다. 서하가 따라 타면서 물었다.

"수진 선배, 도윤 팀장님이 예전에 서류 때문에 문제가 된 적 있어요?"

수진의 손가락이 1층 버튼 위에서 멈췄다. 반 초.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그건 내가 대답할 게 아니야."

엘리베이터 안이 조용했다. 층수가 줄어드는 소리만 작게 울렸다. 서하는 수진의 옆얼굴을 보았다. 대답을 거절한 게 아니라, 대답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1층에서 문이 열리자 수진이 먼저 나가며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월요일 회의 자료, 원본 기준으로 다시 정리해 둬. 사본에 기대지 마."

밤 아홉 시, 원룸 침대 위에서 서하는 천장을 보았다. 복사기 기록부의 지우 이름. 도윤의 이삼 초 정지. 수진의 반 초 멈춤. 세 사람의 시간이 전부 달랐다. 서하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본 건 분명 있었는데."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민주에게서 답장이 왔다. '윤 선생님, 내일 오전에 세탁소 올 수 있어요? 보여줄 게 하나 있어요.' 서하는 메시지를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커서가 깜빡이는 입력창을 바라보았다. 보여줄 것. 민주가 뭘 발견한 걸까. 서하의 엄지가 '네'를 치기 전에, 화면 상단에 또 하나의 알림이 떴다. 도윤이었다. 단톡방도 아니고 개인 메시지였다.

'내일 외근 전에 잠깐 보자.'

서하는 두 개의 메시지 사이에서 핸드폰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심장이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내일, 어느 쪽을 먼저 만나느냐에 따라 무언가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월요일 밤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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