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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2화]

다림질 자국이 남긴 것

작성: 2026.03.13 15:26 조회수: 6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금요일 아침, 다림질판 위로 스팀이 길게 올라왔다. 민주는 눌러야 할 셔츠 세 장을 앞에 두고 다리미를 쥔 채 잠깐 멈춰 있었다. 밑판에서 번지는 열기가 손등까지 닿았는데도 내려놓지 못한 건, 식탁 위에 엎어 놓인 준수의 휴대전화 화면이 방금 한 번 깜빡였기 때문이다. 장학금 결과는 오늘 오전 열 시에 나온다고 했다. 지금은 아홉 시 사십 분이었다.

준수는 현관 쪽에서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있었다. 점퍼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세탁소 안까지 들렸다. 민주가 입을 열려는 순간, 준수가 먼저 말했다.

"밥 먹었어. 도서관 갔다 올게."

"점심은?"

"알아서 먹어."

현관문이 닫혔다. 민주는 그제야 다리미를 셔츠 위에 내려놓았다. 스팀이 빠지는 소리가 한숨처럼 길었다. 알아서 먹어. 예전에는 무심하게만 들리던 말이 요즘은 달랐다. 그 안에 '걱정하지 마'가 섞여 있다는 걸 안다. 아는데도 먼저 물어보지 못했다.

장학금 됐어, 안 됐어.

그 한마디가 식탁 위 밥알보다 무거웠다.

세탁소 셔터를 올리자 3월의 바람이 안쪽까지 밀려왔다. 화재 이후 새로 칠한 벽에서는 아직 페인트 냄새가 희미하게 났고, 그 위로 세제 냄새와 스팀의 습기가 겹겹이 얹혀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냄새는 아니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이 자리에 더 어울리는 냄새가 될 거라는 건 알았다. 세탁소를 오래 한 사람의 감 같은 것이었다. 화재 때 못 쓰게 된 선반 두 개 자리에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임시로 놓여 있었다. 빈자리는 아직 빈자리였지만, 민주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열 시 이십 분쯤, 첫 손님은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였다. 기름때가 묵직하게 밴 회색 점퍼를 건네며 말했다.

"민주 씨, 벽 색깔 바뀌니까 세탁소가 넓어 보여."

"넓어진 게 아니라 물건이 줄어서 그래요."

민주가 웃으며 받아들었지만 반쯤은 사실이었다. 영수증을 끊는 동안에도 시선은 자꾸 벽시계로 갔다. 어느새 열 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준수한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그때 유리문이 열리며 한서영이 들어왔다. 검은색 토트백을 어깨에 건 채, 지난번처럼 조용한 걸음이었다. 민주는 뒤쪽 행거에서 비닐을 씌운 울 코트를 꺼내왔다. 비닐 사이로 보이는 표면은 깨끗했다. 그을음 같던 얼룩은 거의 빠졌지만, 소매 안쪽 이음새 부근에는 아주 옅은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민주는 비닐을 벗기며 그 부분을 가리켰다.

"이 부분은 완전히 안 빠졌어요. 울 소재가 열에 약해서 무리하면 옷감이 상하거든요. 한 번 더 해볼 수는 있는데, 솔직히 입으실 때는 거의 안 보여요."

한서영은 소매를 들어 빛에 비춰 보았다. 잠깐 눈길이 멈추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계산을 하는 동안 민주는 물어보고 싶은 말을 삼켰다. 이 그을음이 어디서 묻은 건지, 이삿짐 사이에서 생긴 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손님의 사정을 캐묻는 건 세탁소 주인이 할 일이 아니었다. 한서영은 코트를 팔에 걸치고 나가다가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혹시 여기 오래 하셨어요? 이 자리에서요."

"한 십이 년 됐어요."

"그렇구나. 좋은 자리예요."

그 말이 인사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유리문이 닫히고 나서야 민주는 메모장에 '한서영 — 울 코트 — 완료'라고 적었다. 볼펜 끝을 한 번 더 눌렀다. 3월의 코트와 그을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지만, 손님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그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을 틈은 없었다.

점심 무렵, 박명자가 분식집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김밥 두 줄과 어묵탕 컵 하나였다.

"혼자 먹으면 체하니까 같이 먹자."

"명자 언니, 나 아직 오전 물량 안 끝났는데."

"밥 먹으면서 해. 세탁소가 무슨 수술실이야."

민주가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김밥 한 줄을 집자, 박명자는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시고는 민주를 흘끔 보았다.

"보험 쪽에서 연락 왔어. 건물 공용 부분 피해 산정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범위가 넓대. 그래서 내 쪽에서 감면할 수 있는 게 좀 생겼어."

민주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래서요?"

"월세 석 달 분할 말고, 한 달치는 아예 빼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손해 보는 건 아니고 보험에서 정리되는 거니까, 너 미안해하지 마."

민주는 김밥을 천천히 씹었다. 고마운 말인데도 목에 걸리는 건, 박명자가 이 제안을 꺼내기까지 어떤 계산을 했는지 자신이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명자의 얼굴에는 계산보다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 먼저 떠 있었다. 민주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언니. 진짜로."

"뭘 그런 걸 가지고. 나도 이 상가에서 혼자 늙기 싫으니까 네가 버텨줘야 해."

박명자가 어묵을 하나 더 건지며 웃었다. 민주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서로 알았다. 오전 내내 가슴을 누르던 답답함이 그제야 조금 느슨해졌다.

오후 세 시쯤, 세탁물을 정리하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준수였다. 민주는 세 번째 진동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

"장학금 반액 됐어."

민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반액. 전액이 아니라 반액이었다. 준수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안에 실망과 체면이 같이 눌려 있다는 걸 민주는 들을 수 있었다.

"반액이면 잘한 거지."

"……응."

"저녁에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전화가 끊겼다. 민주는 휴대전화를 접수대 위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지는 않았다. 반액이면 나머지 반은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런데도 방금 아들이 엄마에게 먼저 전화했다는 사실이 숫자보다 먼저 가슴에 닿았다. 예전 같으면 준수는 결과를 며칠 뒤에야 툭 던졌을 것이다.

저녁이 되자 민주는 세탁소 문을 조금 일찍 닫고 집으로 올라갔다. 준수는 이미 식탁에 먼저 앉아 있었다. 밥솥에서는 밥이 뜸을 들이고 있었고, 준수가 직접 꺼내 놓은 반찬 세 가지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멸치볶음, 깍두기, 계란말이. 계란말이는 한쪽이 조금 탔지만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네가 했어?"

"계란밖에 못 하잖아."

민주는 자리에 앉아 밥을 푸고 젓가락을 들었다. 준수가 먼저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좀 탔다."

"맛있는데."

"거짓말하지 마."

"아니, 진짜. 탄 데가 고소해."

준수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식탁의 공기를 조금 바꿔 놓았다. 민주는 깍두기를 씹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액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할게."

준수는 밥을 씹던 입을 멈췄다. 엄마 쪽을 보지 않고 밥그릇만 내려다보았다.

"나도 좀 할게."

"뭘?"

"아르바이트. 주말에만 할 거야. 수업 빠지는 거 아니니까 잔소리하지 마."

순간 민주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안 된다고 잘라 말하고 싶었다. 공부부터 하라고, 괜히 몸 축내지 말라고, 엄마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준수의 체면도 같이 꺾일 것 같았다. 민주는 목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삼켰다. 대신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어 준수의 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이건 먹어."

"……뭐야, 갑자기."

준수는 투덜거렸지만 결국 계란말이를 먹었다. 밥솥에서 보온 알림이 삐 하고 울렸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아니었다. 반액 장학금의 나머지 반, 아직 남은 복구비, 박명자의 월세 감면 뒤에 있을지 모를 다른 사정들. 그래도 이 식탁에 아들이 먼저 밥을 차려 놓고 앉아 있었다는 것,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이 민주가 오늘 받은 가장 확실한 안도였다.

설거지를 하면서 민주는 창밖을 보았다. 상가 건물 뒤편 골목에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세탁소는 반일 영업이다. 한서영의 코트에 남은 옅은 그림자가 문득 떠올랐다. 완전히 빠지지 않는 얼룩. 그래도 입을 수는 있는 옷. 민주는 수세미를 놓고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그때 거실에서 노트북을 보던 준수가 불쑥 말했다.

"엄마, 오늘 그 손님 있잖아. 코트 찾아간 사람."

민주가 고개를 돌렸다.

"왜?"

"아까 내가 도서관 앞에서 봤는데, 그 사람 상가 건물 쪽으로 들어가더라. 우리 건물."

민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서영. 울 코트. 빠지지 않은 그을음. 좋은 자리라던 말. 그리고 우리 건물.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모였지만 맞아떨어지는 그림이 되지는 않았다. 부엌 불을 끄기 전에 냉장고 문에 붙은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적어 둔 글씨였다.

'다림질 — 아침 일곱 시.'

내일도 그 시간에 스팀이 올라올 것이다. 셔츠의 구김이 열 아래에서 펴지듯, 이 집의 주름도 하나씩 펴질 수 있을 거라고 민주는 믿기로 했다. 믿는다기보다 그냥 내일 아침 다리미를 드는 것, 그게 이 가족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다만 한서영이 왜 하필 이 건물로 들어갔는지는, 내일 아침 셔터를 올리기 전까지도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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