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다림질 판 위에서 스팀이 올라왔다. 민주는 눌러야 할 셔츠 세 장을 앞에 두고 다리미를 쥔 채 멈춰 있었다. 다리미 밑판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손등까지 번졌는데도 내려놓지 못한 건, 식탁 위에 엎어놓은 준수의 핸드폰 화면이 방금 한 번 깜빡였기 때문이다. 장학금 결과는 오늘 오전 열 시에 나온다고 했다. 지금 아홉 시 사십분.
준수는 현관 쪽에서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있었다. 점퍼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세탁소 안까지 들렸다. 민주가 입을 열려는 순간, 준수가 먼저 말했다.
"밥 먹었어. 나 수업 없는데 도서관 갔다 올게."
"점심은?"
"알아서 먹어."
현관문이 닫혔다. 민주는 다리미를 셔츠 위에 내려놓았다. 스팀이 빠지는 소리가 한숨처럼 길었다. 알아서 먹어. 그 말이 예전엔 무심하게 들렸는데, 요즘은 그 안에 '걱정하지 마'가 들어 있다는 걸 안다. 아는데도 먼저 물어보지 못했다. 장학금 됐어? 안 됐어? 그 한마디가 식탁 위에서 밥알보다 무거웠다.
세탁소 문을 열고 셔터를 올리자 3월의 바람이 안쪽까지 밀려왔다. 화재 이후 새로 칠한 벽에서는 아직 페인트 냄새가 희미하게 났고, 그 위로 세제 냄새와 스팀의 습기가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냄새는 아니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이 자리에 맞는 냄새가 될 거라는 걸 민주는 알았다. 그게 세탁소를 오래 한 사람의 감이었다.
열 시 이십 분. 첫 손님은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의 작업복이었다. 기름때가 묵직하게 밴 회색 점퍼를 건네며 아저씨가 말했다.
"민주씨, 벽 색깔 바뀌니까 세탁소가 넓어 보여."
"넓어진 게 아니라 물건이 줄어서 그래요."
민주가 웃으며 받아들었지만 그 말은 반쯤 사실이었다. 화재 때 못 쓰게 된 선반 두 개를 아직 새로 들이지 못했다. 빈자리에 세워둔 플라스틱 바구니가 임시로 버티고 있었다. 작업복을 접수대에 올리고 영수증을 끊는 동안, 민주의 시선은 자꾸 안쪽 벽에 걸린 시계로 갔다. 열 시 반.
그때 유리문이 열리며 한서영이 들어왔다. 검은색 토트백을 어깨에 걸치고, 지난번처럼 조용한 걸음이었다. 민주는 접수대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코트 찾으러 오셨어요?"
"네. 다 됐을까요?"
민주는 뒤쪽 행거에서 비닐을 씌운 울 코트를 꺼내왔다. 비닐 사이로 보이는 표면은 깨끗했다. 그을음 같던 얼룩은 거의 빠졌지만, 소매 안쪽 이음새 부근에 아주 옅은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민주는 비닐을 벗기며 그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이 부분은 완전히 안 빠졌어요. 울 소재가 열에 약해서 무리하면 옷감이 상하거든요. 한 번 더 해볼 수는 있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입으실 때 안 보여요."
한서영이 소매를 들어 빛에 비춰보았다. 잠깐 눈이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계산을 하는 동안 민주는 물어보고 싶은 말을 삼켰다. 이 그을음이 어디서 묻은 건지. 이사 짐 사이에서 생긴 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손님의 사정을 캐묻는 건 세탁소 사장이 할 일이 아니었다. 한서영이 코트를 팔에 걸치고 나가면서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혹시 여기 오래 하셨어요? 이 자리에서."
"한 십이 년 됐어요."
"그렇구나. 좋은 자리예요."
그 말이 인사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유리문이 닫히고, 민주는 접수대 위 메모장에 '한서영 — 울코트 — 완료'를 적으며 볼펜 끝을 한 번 더 눌렀다. 그을음. 3월에 코트를. 그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오래 붙잡지는 않았다.
점심 무렵, 명자가 분식집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김밥 두 줄과 어묵탕 컵 하나. "혼자 먹으면 체하니까 같이 먹자"는 말과 함께 접수대 옆에 자리를 깔았다.
"명자 언니, 나 아직 오전 물량 안 끝났는데."
"밥 먹으면서 해. 세탁소가 무슨 수술실이야."
민주가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으며 김밥을 한 줄 집었다. 명자는 어묵국물을 호호 불며 한 모금 마시더니, 민주를 흘끔 보았다.
"보험 쪽에서 연락 왔어. 건물 공용 부분 피해 산정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범위가 넓대. 내 쪽 지분에서 감면할 수 있는 게 좀 생겼어."
민주의 젓가락이 멈추었다.
"그래서?"
"그래서 월세 석 달 분할 말고, 한 달치는 아예 빼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손해 보는 건 아니고, 보험에서 나오는 거니까 너 미안해하지 마."
민주는 김밥을 천천히 씹었다. 고마운 말인데 목에 걸리는 건, 명자가 이 제안을 하기까지 어떤 계산이 있었을지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자의 얼굴에는 계산 대신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 있었다. 민주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고마워, 언니. 진짜로."
"뭘 그런 걸 가지고. 나도 이 상가에서 혼자 늙기 싫으니까 네가 버텨줘야 해."
명자가 어묵을 하나 더 건지며 웃었다. 민주도 웃었다. 그 웃음이 허례가 아니라 진짜라는 걸 서로 알았다.
오후 세 시, 세탁물 정리를 하다가 핸드폰이 울렸다. 준수였다. 민주는 세 번째 진동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
"장학금 반액 됐어."
민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반액. 전액이 아니라 반액. 준수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안에 뭐가 있는지 민주는 들을 수 있었다.
"반액이면 잘한 거지."
"……응."
"저녁에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전화가 끊겼다. 민주는 핸드폰을 접수대 위에 놓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지는 않았다. 반액이면 나머지 반은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돌았지만, 방금 아들이 엄마에게 먼저 전화했다는 사실이 숫자보다 먼저 가슴에 닿았다. 예전 같으면 준수는 결과를 며칠 뒤에야 툭 던졌을 것이다.
저녁, 민주는 세탁소 문을 일찍 닫고 집으로 올라갔다. 준수가 식탁에 먼저 앉아 있었다. 밥솥에서 밥이 뜸을 들이고 있었고, 준수가 직접 꺼내놓은 반찬 세 가지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멸치볶음, 깍두기, 계란말이. 계란말이는 한쪽이 좀 탔지만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네가 했어?"
"계란밖에 못 하잖아."
민주가 앉았다. 밥을 푸고, 젓가락을 들었다. 준수가 먼저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좀 탔다."
"맛있는데."
"거짓말하지 마."
"아니, 진짜. 탄 데가 고소해."
준수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식탁의 공기를 바꿨다. 민주는 깍두기를 씹으며 말했다.
"반액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할게."
준수가 밥을 씹던 입을 멈추었다. 엄마 쪽을 보지 않고, 밥그릇만 내려다보았다.
"나도 좀 할게."
"뭘."
"아르바이트 주말에만 할 거야. 수업 빠지는 거 아니니까 잔소리하지 마."
민주는 젓가락을 든 채 아들의 옆머리를 보았다. 잔소리가 올라왔지만 삼켰다. 대신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어 준수의 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이건 먹어."
"……뭐야, 갑자기."
준수가 투덜거렸지만 계란말이를 먹었다. 밥솥에서 보온 알림이 삐 하고 울렸다. 식탁 위의 멸치볶음 접시에 형광등 불빛이 비쳤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아니었다. 반액 장학금의 나머지 반, 아직 남은 복구비, 명자의 월세 제안 뒤에 있을 수도 있는 다른 사정들. 하지만 이 식탁에서, 아들이 먼저 밥을 차려놓고 앉아 있었다는 것.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는 것. 그것이 민주가 오늘 받은 가장 확실한 보장이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민주는 창밖을 보았다. 상가 건물 뒤편 골목에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세탁소는 반일 영업이다. 한서영의 코트에 남은 옅은 그림자가 문득 떠올랐다. 완전히 빠지지 않는 얼룩. 하지만 입을 수는 있는 옷. 민주는 수세미를 놓고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거실에서 준수가 노트북을 펴는 소리가 들렸다. 민주는 부엌 불을 끄기 전에 냉장고 문에 붙은 메모지를 보았다. 자신이 적어둔 글씨. '다림질 — 아침 일곱 시.' 내일도 그 시간에 스팀이 올라올 것이다. 그 열기 속에서 셔츠의 구김이 펴지듯, 이 집의 주름도 하나씩 펴질 수 있을 거라고 민주는 믿기로 했다. 믿는다기보다, 그냥 내일 아침 다리미를 드는 것. 그게 이 가족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