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개가 파서진 저잣거리를 아직 다 걷어 가지 않은 시각이었다. 소령은 취선객잔 부뚜막 앞에 쪼그려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성냥개비 두 개를 버린 뒤에야 불이 붙었다. 팽노의 왼쪽 어깨가 아직 다 낫지 않아 아침 불 지피는 일은 사흘째 소령의 몫이었다. 연기가 눈을 찌르자 소령은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솥 안에 넣어둔 사골이 천천히 끓기 시작했다. 뼈 냄새가 나무 연기 냄새와 섞였다.
"국 간 맞춰라. 어제보다 싱거웠다."
팽노가 안방 쪽에서 짧게 던졌다. 소령은 대꾸 없이 소금단지를 집어 들었다. 간이 싱겁다고 했다. 그 말이 타박인지 걱정인지, 3년을 같이 살았어도 아직 잘 모를 때가 있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소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국을 한 번 떴다. 뜨거웠다. 혀끝이 데었다. 그는 그냥 삼켰다.
막리연은 객잔 마루 끝에 발을 내밀고 앉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여기 있었다. 재판이 하루 미뤄진 뒤, 그는 술 한 사발을 시켜 놓고 팽노와 무언가를 낮게 이야기했다. 소령은 그 대화를 엿듣지 않았다. 엿들었다가 모르는 것이 더 늘어날 것 같았다.
"오늘 다시 광장에 설 거야?"
막리연이 신발 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소령은 솥 뚜껑을 덮으며 일어섰다.
"재판이 열리면."
"열릴 거야. 위경필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설리항한테 전령 보낸 것, 너도 알잖아."
소령은 손에 묻은 재를 행주에 닦으며 막리연을 보았다. 막리연은 그제야 신발 끈에서 손을 뗐다. 눈이 마주쳤다. 막리연의 눈빛은 느긋해 보이는 말투와 달리, 안쪽이 팽팽했다.
"오늘은 위경필 혼자가 아닐 수 있다는 거지요."
소령이 먼저 말했다. 막리연이 작게 웃었다. 칭찬인지 씁쓸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막리연이 일어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설리항이 직접 오지는 않을 거야. 그 사람은 더러운 자리에 자기 얼굴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거든. 대신 보낼 사람이 있어. 네가 아는 얼굴로."
소령은 그 말의 끝을 잡았다. 네가 아는 얼굴. 가능한 얼굴은 하나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리연도 더 말하지 않았다. 안방에서 팽노가 기침을 한 번 했다. 부뚜막의 불이 조용히 타고 있었다.
광장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사시(巳時)가 조금 넘어서였다. 어제보다 구경꾼이 적었다. 소문이 무서워서라기보다, 어제 재판이 흐지부지 끝난 것을 본 사람들이 오늘도 비슷할 것이라 여긴 탓 같았다. 소령은 광장 입구 쪽에 서서 오방맹 깃발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어제와 같은 청황 깃발이었다. 그러나 깃발 아래에 선 사람이 달랐다.
위경필은 뒤쪽에 있었다. 앞에 선 것은 검은 도복 차림의 남자였다. 키가 소령보다 반 뼘쯤 컸다. 어깨선이 반듯했다. 허리에 찬 검집의 각도가 단정했다. 걸음걸이가 익숙했다. 너무 익숙해서 소령은 발이 잠깐 멈췄다.
윤채였다.
3년 만이었다. 얼굴이 조금 더 각졌다. 그러나 턱을 살짝 들고 정면을 보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청명문에서 사형들이 밥상 예절을 가르칠 때도 윤채는 늘 그 각도로 앉아 있었다. 소령은 그것을 왜 지금 기억하는지 몰랐다.
윤채가 광장 중앙에서 멈추며 입을 열었다.
"파서진에 숨어 있는 청명문 잔당 한소령에 대한 재판을 오방맹 명으로 재개한다. 어제의 절차 이의는 검토되었으며, 오늘 증인을 직접 세운다. 증인은 청명문 수제자 출신으로—"
"사형."
소령이 말했다.
광장이 잠깐 조용해졌다. 윤채의 말이 끊겼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소령 쪽으로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3년 전의 그 눈이었다. 아니, 달랐다. 그때보다 더 복잡했다. 분노와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는데, 소령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려다 그냥 두었다.
"사형이라고 부르지 마."
윤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말투는 반말이었다. 소령은 예상했다. 윤채는 언제나 소령에게만 반말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도 그랬다.
"사형은 사형이지요."
소령은 존댓말을 유지했다. 위경필이 옆에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윤채가 손으로 막았다. 광장의 구경꾼들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소령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오방맹 재판에 증인을 세운다면 증인은 자신이 본 것을 말해야 하지요. 사형이 광장에서 증언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사형이 직접 본 것인지 아닌지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오방맹 규율 제십이조, 증인은 전문(傳聞)이 아닌 직접 경험만을 증거로 삼는다—어제 제가 위경필 심문관께 드린 것과 같은 조항입니다."
윤채의 턱선이 굳었다. 소령은 그것을 보았다. 흔들린 것이다. 단 한 번. 아주 짧게.
윤채는 천잔보감을 원한다. 그것이 그가 청명문을 팔아넘긴 이유였고, 그것이 그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이유였다. 설리항은 그 욕망을 쥐고 윤채를 이 자리에 세웠다. 그런데 윤채가 증언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이 본 것이다. 자신이 한 것이다. 그것을 광장 한가운데서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윤채는 설리항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증언하는 사람이 된다.
윤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위경필이 헛기침을 했다. 구경꾼 중 누군가가 낮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윤채는 소령을 보고 있었다. 소령도 그를 보았다. 검을 뽑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검을 뽑으면 그것은 오방맹이 원하는 그림이 된다. 사파 잔당이 공개 재판장에서 난동을 부린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령이 원하는 것은 달랐다. 윤채가 이 자리에서 말을 잃는 것. 설리항의 판이 흔들리는 것. 그것이면 오늘은 충분했다.
"소령아."
윤채가 갑자기 말했다. 이름이었다.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그냥 이름이었다. 소령은 그 소리에 어깨가 미세하게 당기는 것을 느꼈다. 멸문 전날 밤, 사형들이 뒤뜰에서 술을 마시며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소령아. 막내야.
"넌 왜 살아 있어."
물음이 아니었다. 따지는 것도 아니었다. 윤채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소령은 그 균열이 무엇인지 알았다. 오래 눌러 온 무게였다. 설리항도, 곽진해도, 천잔보감도 아닌, 그 아래에 있는 무언가.
소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형식적인 인사였다. 광장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청명문 말제자가 배신한 수제자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그 차이를 윤채가 알아챌지는 몰랐다.
위경필이 끼어들었다.
"재판을 계속—"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윤채가 말했다. 위경필이 멈췄다. 윤채는 소령을 한 번 더 보았다. 그 눈빛에 무엇이 있었는지, 소령은 그것을 이름 붙이는 것을 포기했다. 분노인지, 후회인지, 아니면 그 둘이 뒤엉킨 어떤 것인지. 윤채는 몸을 돌렸다. 검은 도복의 등이 광장을 가로질러 멀어졌다.
재판은 또다시 끝나지 않았다.
소령은 광장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취선객잔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여화가 약재 바구니를 들고 저잣거리 모퉁이에 서 있었다. 그녀는 소령을 보자마자 다가왔다.
"야, 한소령. 그 사람 누구야. 검은 도복 입은 거."
"모르는 사람이오."
"거짓말하지 마. 얼굴 봤어. 네 얼굴 봤다고."
소령은 담여화를 보았다. 그녀의 눈이 날카로웠다. 모른 척하지 않는 배려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직접 묻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소령은 잠깐 말을 고르다가 그냥 걸음을 옮겼다.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담여화가 따라오지 않았다. 소령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객잔 처마 아래로 돌아왔을 때 막리연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소령을 보자 막리연은 짧게 말했다.
"윤채가 돌아서는 거, 봤어. 잘했어."
소령은 대꾸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뚜막의 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솥 안에서 사골이 끓고 있었다. 뼈 냄새가 객잔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령은 국자를 들어 솥을 한 번 저었다.
윤채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속에 남아 있었다. 넌 왜 살아 있어. 소령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그 대답을 윤채 앞에서 꺼낼 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