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 홈 목록 ☰
[S2-2화]

번호가 지워진 자리

작성: 2026.04.26 15:41 조회수: 18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오전 열 시 삼십 분, 내부감사팀 복사기 옆 선반에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출력물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어젯밤 누군가가 뽑아 두고 잊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거기 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겸은 그것을 손으로 집지 않았다. 그냥 옆을 지나치면서 한 번 눈을 줬다. 내부 발신 공문 양식이었다. 날짜 칸이 비어 있었다. 이름도 없었다. 출력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출력한 사람이 이름을 지웠다는 뜻이었다.

강인호는 아직 자리에 있었다. 오늘도 이겸보다 먼저 와 있었다. 타이핑 속도는 어제와 똑같았다. 리듬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겸은 그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화면이 들어오기 전, 반짝이는 검은 유리 속에서 강인호의 실루엣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이겸은 그 상이 사라지기 전에 눈을 다른 데로 돌렸다. 모니터 불빛이 들어오는 순간, 이겸은 표정을 정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로.

해진은 아홉 시 반에 왔다.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이겸 쪽을 한 번 봤다. 이겸이 눈으로만 대답했다. 해진은 알아들은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외투를 벗었다. 집하실 담당자에게 어제 오후부터 연락을 넣어 두었다고 했다. 오늘 오전 중에 만나자고 했는데 답이 없다고도 했다. 이겸은 그게 어떤 종류의 없음인지 생각했다. 아직 못 본 것인지, 아니면 보고도 안 보기로 한 것인지. 두 가지는 결과가 같아 보여도 의미가 달랐다.

"제가 직접 내려가 볼게요."

해진이 낮게 말했다. 이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 있었다. 종이컵 바닥에 작은 얼룩이 남아 있는 걸 보면서 이겸은 잠깐 대답을 아꼈다. 지하 복도는 CCTV 사각지대가 두 군데 있었다. 이겸은 그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그 복도를 몇 번이나 걸었는지도.

"잠깐. 올라오면 나한테 먼저 와."

해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강인호의 타이핑이 한 박자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졌다. 이겸은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그 박자는 이겸의 귀 안쪽에 정확히 찍혔다.

민가온에게는 어제 저녁 메시지를 보내 두었다. 외부 용역 시절 데이터베이스 접근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C07 코드 계열 발송 기록이 이번 상자 이전에도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고른 메시지였다. 직접적인 말은 없었다. 가온이 알아들을 만큼만 썼다. 답장은 아직 없었다. 이겸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사무실 안에서 폰을 꺼내는 행위 자체가 신호가 될 수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하는 것도 오늘은 아꼈다. 강인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이겸이 실제로 움직인 것은 열한 시 이후였다. 팀 전체 회람 문서에 서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집하실 관련 내부 수발 기록 원본을 열람 신청했다. 경영관리팀 담당자가 파일 두 개를 메일로 보내왔다. 이겸은 파일을 열면서 아무렇지 않은 속도를 유지했다. 수기 대장 스캔본이었다. 날짜별로 접수 번호가 세로로 내려가는 형식이었다. 이겸은 스크롤을 내리다 멈췄다.

송장 번호가 끊겨 있었다.

같은 날 접수된 번호대 안에서, 정확히 여섯 자리가 연속으로 빠져 있었다. 앞뒤 번호는 멀쩡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서명도 있었고 수신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섯 자리만 줄이 아예 없었다. 지운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 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어 있었다. 이겸은 화면을 확대했다. 스캔 경계선이 흐릿하게 보였다. 종이를 접었다 편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그 부분을 접은 채로 스캔했다는 뜻이었다. 실수가 아니었다. 접는 데는 손이 필요하고, 손이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다.

이겸은 파일을 닫았다. 열어본 흔적이 서버 로그에 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닫기 전에 캡처하지 않았다. 대신 날짜와 번호 범위를 수첩에 손으로 옮겨 적었다. 숫자 여섯 개. 빠진 자리 여섯 개. 이겸은 그 숫자들을 내려다보다가 C07 코드가 찍힌 상자 번호의 뒷자리와 비교했다. 세 자리가 겹쳤다. 볼펜 끝으로 그 세 자리 아래에 짧은 선을 그었다. 수첩을 덮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해진이 돌아온 것은 열한 시 이십 분이었다. 외투 소매에 지하 복도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묻어 있었다. 이겸 자리 옆에 서면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담당자가 오늘 반차예요. 오후 출근이래요. 근데 대장 원본 달라고 했더니 이미 경영관리팀에서 가져갔다고 하던데요."

이겸은 수첩에서 눈을 들었다.

"언제."

"어제 오후 늦게요. 담당자 퇴근하기 직전에."

이겸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오후 늦게. 이겸이 집하실에 내려가서 상자를 확인한 것이 어제 오전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날 오후에 원본 대장을 가져갔다. 이겸이 움직인 뒤에 원본이 사라졌다. 순서가 맞아떨어지는 게 오히려 불편했다. 이겸은 그 불편함을 얼굴에 내보내지 않았다.

"경영관리팀 담당자 이름은."

"몰라요. 담당자가 이름을 안 남겼대요. 그냥 내부 공문 한 장 들고 왔다고."

이겸은 복사기 옆 선반을 한 번 봤다. 아까 거기 놓여 있던 날짜 없는 공문 양식이 이제는 없었다. 누군가 가져간 것인지, 아니면 이겸이 눈을 돌린 사이에 사라진 것인지. 정확한 시점을 이겸은 모르고 있었다.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 이 방 안에서 가장 위험한 정보였다.

"알았어. 자리 가."

해진이 고개를 들었다가 이겸의 표정을 읽고 그냥 돌아섰다. 이겸은 수첩을 덮었다. 강인호의 타이핑 소리가 오늘 처음으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다. 이겸은 그 두 박자의 공백을 세었다. 아주 짧았다. 실수처럼 보일 만큼. 그러나 이겸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인호는 리듬이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리듬이 처음 흔들린 것이 해진의 보고 직후라는 사실을, 이겸은 수첩 여백에 작게 표시해 두었다.

민가온에게서 답장이 온 것은 점심 직전이었다. 화장실에서 폰을 확인했다. 메시지는 짧았다.

'확인했어요. 같은 코드, 세 번 더 있어요. 제가 용역 들어가기 전부터요.'

이겸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세 번. 이번 상자가 처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 경로를 이미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로를 아는 사람이 어제 오후에 원본 대장을 가져갔다. 이겸은 가온에게 답장을 쓰려다 멈췄다. 지금 답장을 보내는 것 자체가 가온을 다음 수순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손가락을 폰에서 뗐다.

이겸은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고 손을 씻었다. 찬물이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얼굴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겸은 그게 지금 이 건물 안에서 가장 쓸 만한 표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유지하는 데 드는 힘이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이 들었다.

수거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상자는 아직 지하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겸은 상자 안이 아니라 상자 주변이 먼저 정리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기록을 지우는 손은 이미 움직였다. 다음에 움직일 손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손이 오늘 안으로 나타날지, 이겸은 아직 한 가지도 확정할 수 없었다.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이겸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 전체 회차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