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돌아온 돈의 첫날
미례는 입금 문자를 두 번 읽고 장부를 덮었다.
미례는 입금 문자를 두 번 읽고 장부를 덮었다.
선사가 정정하기로 한 정상 화물 운임의 나머지 확인분이 피해지원 계정에 들어왔다. 앞서 들어온 돈과 합쳐 반환 대상으로 확정한 항목은 모두 채워졌다. 그녀는 휴대전화에 적힌 숫자를 장부 옆에 옮겨 쓰다가 펜을 세웠다. 오늘 가족들이 들어오기 전에 의자부터 놓아야 했다.
좋은 소식을 알리는 첫 문장을 생각했다. 반환이 끝났습니다. 무엇이 끝났느냐고 누군가 물을 것 같았다. 미례는 물을 한 컵 마셨다. 장례 뒤의 방에서 자기 목소리만 높아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해솔은 항구에서 임시 그물을 받은 어부를 만났다. 남자는 빈 바구니를 배에서 내렸다. 가까운 허용구역에 다녀왔지만 생각보다 적게 잡혔다고 했다.
“이것도 포집팀한테 물어야 하나. 물고기가 길을 못 찾는다고.”
농담 끝에 웃음이 길게 붙지 않았다. 새 부표의 위치를 알아도 그 안에 고기가 차는 것은 아니었다. 해솔은 그물 수리한 곳은 어땠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배 가장자리의 매듭을 들어 보였다. 둘이 손본 곳은 버텼다.
“내일은 좀 잡히겠지.”
어부가 말했다. 해솔이 대답하지 않자 남자가 작은 통을 꺼냈다.
“오늘 남은 것 중에 먹을 수 있는 거야. 가져가.”
해솔은 값을 물었다. 그냥 가져가라는 말을 한 번 더 듣고도 지갑을 꺼냈다. 대기실 사람들과 먹을 거라고 하자 남자가 통을 다시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여러 사람이 먹을 거면 제값 받아야지.”
가격을 듣고 해솔은 돈을 건넸다. 남자는 젖지 않는 안주머니에 넣었다. 농담할 때보다 손이 빨랐다. 해솔은 통을 들고 항구 뒤 식당으로 갔다. 주인이 손질과 조리비를 따로 말했다. 해솔은 가족 모임이 끝날 시각에 맞춰 달라고 했다.
“잔치 해요?”
“아니요. 모임 끝나고 남는 사람들 저녁입니다.”
주인은 통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해솔은 빈 손으로 회의실에 돌아갔다. 돈을 돌려받았다는 말과 밥이 준비됐다는 말을 한꺼번에 하면, 두 소식 모두 사람들을 재촉할 것 같았다.
우찬은 선사의 최종 반환 확인서를 가지고 왔다. 반환이 사고의 모든 배상에 대한 합의로 쓰이지 않는다는 문구가 따로 있었다. 미례가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우찬은 기다렸다. 그녀가 종이를 돌려 확인하고 나서야 입금 내역과 맞춰 봤다.
장례를 마친 사내가 들어왔다. 얼굴이 조금 상했다. 미례가 오늘 안 와도 됐다고 말하자 사내는 의자를 당겼다.
“오늘 돈 쓰는 걸 보려고요.”
자기 사람이 돌아왔으니 이제 수색의 지출표에서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옆에 앉은 다른 가족이 그의 물컵을 채워 줬다. 그는 고맙다고 작게 말하고 서류를 받아 들었다. 컵과 서류 사이에 손이 갈 자리가 좁았다.
첫 안은 공동기금에서 먼저 낸 배 비용을 일부 보전하는 것이었다. 둘째 안은 돌아온 돈을 다음 수색계약에 더 많이 넣는 것이었다. 계산기를 맡은 가족이 두 안의 잔액을 써 붙였다. 그 숫자를 보던 사람이 생활지원에 남길 돈을 물었다.
“계약을 이만큼 하면 여기가 이렇게 줄어요.”
계산기를 쥔 사람이 답했다. 누군가 수색하지 말자는 이야기냐고 묻자 생활지원을 물은 사람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안 하자는 게 아니죠. 약값을 내일 내야 하는데 사람 찾은 뒤에 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미례는 두 표를 나란히 뒀다. 장례를 마친 사내가 오랫동안 표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이번에 집에서 빠져나간 돈을 처음 봤습니다. 매일 여기 오느라 제 집에 무슨 고지서가 오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그는 다음 수색비를 남기면서 이미 쓴 비용 중 일부를 기금에 돌려놓는 안을 말했다. 계산기를 맡은 가족이 다시 눌렀다. 사내가 수색계약 쪽을 줄이는 숫자에서 잠깐 손을 멈췄다. 아직 자기 사람을 기다리는 옆 가족이 그 손을 봤다.
“그 줄만 다시 설명해 주세요.”
사내는 종이를 그쪽으로 돌렸다. 두 사람이 같은 표를 보았다. 돌아온 돈은 넉넉하지 않았다. 절충안도 오늘 들어온 범위를 넘어가지 않았다. 계산기를 누르던 가족이 마지막 값을 읽었을 때 아무도 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미례는 관련 가족의 개인지원 안건에서는 기록만 맡았다. 의결을 진행하는 사람이 바뀌자 그녀는 마이크를 그쪽으로 밀어 놓았다. 배 계약을 설명할 차례에 다시 받아 들었다. 누군가 같은 사람인데 왜 계속 마이크를 옮기느냐고 묻자 미례는 짧게 답했다.
“이 안건에선 제가 표를 안 씁니다.”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례는 회의록에 의결한 사람과 설명한 사람을 따로 적었다. 자리 하나를 옮겼는데 등을 타고 흐르던 땀이 차게 식었다.
결정 뒤 이체 결과를 계정에서 확인했다. 누군가 예정표냐고 묻자 미례는 처리된 화면을 보여 줬다. 다음 수색 배의 하루 계약도 확정됐다. 선장이 연료비 확인을 받고 장비를 실었다는 전화가 왔다. 해솔은 예보를 보며 담당팀과 가능한 구역을 정했다.
우찬은 선사 자료가 조사기관에 인계된 상태도 알렸다. 운영본부 대리의 승인과 통화, 하역반장의 작업, 물류담당의 계정 사용, 백도현의 설치와 누락, 대표의 회의록상 지시가 각각 정리됐다. 가족들은 새 이름을 더 묻기보다 다음 조사 일정과 제출된 자료를 확인했다. 우찬은 인계받은 곳과 후속 연락처를 같은 종이에 적어 돌렸다.
재필은 종이가 자기 앞에 왔을 때 바로 넘기지 않았다.
“제 진술도 있죠?”
“있습니다.”
“안내판 고친 것하고, 그때 구조한 것 둘 다요?”
우찬이 그렇다고 했다. 재필은 정정일지의 날짜를 확인했다. 선원 과실이라는 발표에 대항하느라 자신이 했던 일을 전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회사가 대신 써 줄 수도 없었다.
미례가 봉투를 건넸다. 재필은 날짜가 보이도록 사본을 넣었다. 예전에는 그 종이를 가져가면 사고가 집까지 따라올 것 같았다. 오늘은 가져가지 않으면 자기 말이 다시 누구의 책상 안에 갇힐 것 같았다. 가방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해솔은 수리한 잠수복 상태와 다음 수색 구역을 보여 줬다. 장례를 마친 사내가 깊은 곳은 아직 안 되느냐고 물었다. 해솔은 현재 열 수 있는 구역을 가리켰다. 사내는 지도를 자기 쪽으로 당겨 그 자리를 표시했다. 그가 이미 장례를 치렀다는 이유로 그 질문이 쉬워지지는 않았다.
회의가 끝날 무렵 식당에서 전화가 왔다. 해솔과 재필이 음식을 가지러 갔다. 길을 건너며 재필이 시간을 확인했다.
“바다 일이 아닌 걸 기다리는 것도 괜찮네요. 늦으면 면박만 받겠죠?”
“식을 겁니다.”
“그것도 큰일이네.”
식당 주인은 뜨거운 통을 내밀었다. 재필이 팔로 받치려 하자 주인이 받침을 먼저 끼웠다. 그는 받침 양쪽을 잡았다. 해솔이 뚜껑을 잡아 주며 문을 먼저 나갔다. 둘은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 재필이 서두르지 않았고, 통 안에서는 냄새가 새어 나왔다.
대기실에서 접시를 나눴다. 먹지 않겠다는 사람의 접시는 옆에 두었다. 사내가 음식을 받아 아내에게 전화했다. 남겨 갈 것이 있으니 같이 먹자고 했다. 미례는 접시를 정리하다 그 말을 들었다. 자기 사람이 돌아온 집에도 저녁을 어떻게 먹을지 정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어부가 식당 비용까지 냈느냐고 전화했다. 해솔이 그렇다고 하자 다음에는 자기가 손질해 주겠다고 웃었다.
“내일도 나가십니까?”
“바람이 세. 하루 접어야지. 그물은 놔뒀다가 쓰면 돼.”
해솔은 어부의 빈 바구니를 떠올렸다. 더 잡아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도 하루를 접겠다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다음 날 작업 예보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저녁에는 포집장비의 새 부표를 점검하는 배에 함께 탔다. 물은 맑게 보였다. 해솔은 배 밖으로 뻗은 밝은 물길을 보다가 조업 경계 부표 쪽을 확인했다. 담당자가 정해진 지점에서 시료를 받았다. 경계는 그대로 뒀다. 기관에서는 잔여 물량 차이도 계속 대조하고 있었다.
항구로 돌아왔을 때 위험화물의 큰 육상 이송이 끝난 자리는 비어 있었다. 장비 두 대가 다른 복구 작업으로 돌아갔다. 해솔은 빈 포장 있던 곳으로 걸어가 처리장 수령 확인과 인계 내역을 보고 돌아섰다. 첫날처럼 무엇이 없어질까 봐 그 앞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빈 자리 옆에는 다른 작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우찬이 사무실에서 개인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조사팀 일부는 다른 업무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해솔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하루 이틀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마친다고 답했다. 후속 담당 연락처를 해솔의 전화기에도 보냈다.
“현장에 없으면 제가 전화를 좀 더 많이 할 겁니다.” 해솔이 말했다.
“들어가 있는 동안만 안 하시면 됩니다.”
우찬이 책상에 남길 서류를 다시 묶었다. 해솔은 웃다가 다음 주 쉬는 날을 쓸 수 있는지 책임자에게 물었다. 가능하다는 답을 받고도 날짜를 말하지 못했다. 대기실 문이 아직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필이 옆에서 들었다.
“제가 치료 예약 지킬 때도 문은 다른 사람이 열어요. 해솔 씨 쉬는 날도 그렇게 하면 되죠.”
해솔은 책임자에게 날짜를 말했다. 휴대전화 달력에 그날을 표시했다. 쉬는 날 칸이 물에 들어가는 날 칸보다 오히려 낯설었다. 재필은 그 표시를 보고 자기 가방을 들었다.
미례는 남은 음식을 나눴다. 장례를 마친 사내가 아내 몫을 받아 갔다. 다음 모임에는 아내도 올 수 있으면 오겠다고 했다. 미례는 그날 연락만 주면 된다고 답했다. 참석표에 이름을 미리 쓰지 않았다.
장비실을 잠그기 전에 해솔은 다음 날 계약표를 봤다. 연료비 일부는 잘못 유지됐던 운임에서 돌아온 돈으로 나갔다. 그 사실을 우찬에게 문자로 보냈다. 아침 예보도 함께 달라는 답이 왔다. 해솔은 예보 화면을 붙여 보내고 잠금장치를 당겼다.
미례가 마지막 불을 끄고 나왔다. 항구의 작업등은 남아 있었다. 사내가 들고 간 음식 통의 냄새가 대기실 문 앞에 조금 남았다. 장부의 빈칸 일부는 채워졌다. 의자의 빈자리는 그대로였다. 해솔은 쉬는 날에 장비 가방을 두고 나올 수 있을지 생각하며 가방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오늘은 집으로 가져갈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