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57화

빙판 위 다섯 센티

첫돌을 넘겨주는 밤

진수는 라온의 이름을 리드 칸에 썼다가 지웠다. 아직 최종 명단이 아니었다. 선발전에 가져갈 포지션을 고르기 위한 비교표였다. 혜주는 그 흔적을 보고 자기 이름을 다른 칸에 쓰는 것보다 지우는 일이 더 어려운가 봐요, 하고 말했다. 진수는 웃지 않고 펜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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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는 라온의 이름을 리드 칸에 썼다가 지웠다. 아직 최종 명단이 아니었다. 선발전에 가져갈 포지션을 고르기 위한 비교표였다. 혜주는 그 흔적을 보고 자기 이름을 다른 칸에 쓰는 것보다 지우는 일이 더 어려운가 봐요, 하고 말했다. 진수는 웃지 않고 펜을 내려놓았다.

라온은 그 표를 보자 손이 가방 안에서 멈췄다. 스틱을 꺼내야 했는데 자신의 첫돌이 이미 빙판 밖으로 옮겨진 기분이었다. 세컨드로 던져 보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자신이었다. 그런데 원래 자리에 지워진 이름을 보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칸이 생겼다.

지난 일요일의 여든 분에는 라온이 첫 두 돌을 혜주에게 맡겼다. 첫 가드의 높이는 좋았고 두 번째도 비슷했다. 라온은 그 뒤로 들어갈 드로를 준비하면서 먼저 남은 길을 봤다. 자기 손이 던지지 않은 시작이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훈련이 끝난 뒤 혜주가 첫돌 두 개를 직접 회수할 때, 라온은 옆에서 자기가 주워야 할 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혜주는 그에게 스톤 하나를 건넸다. 라온이 받아 옮기자 그녀는 기록지 부탁도 했다. 투구 순서를 바꾸었을 뿐 장비 정리에서 서로의 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라온은 그때 웃고 돌아왔는데, 오늘 지워진 이름을 보며 그 감각을 다시 잃었다.

단비는 라온의 가방에서 스틱 끝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빠뜨린 물건을 꺼내 주려 했다. 라온은 자기가 잡겠다고 손을 뻗었다. 단비는 가방만 옆으로 돌렸다. 라온이 꺼내기 쉬운 방향이었다. 그는 스틱을 잡고 감사하다고 했다. 단비는 빨리 나와서 같이 실패할 준비를 하라고 웃었다. 라온도 웃었다. 새로운 자리에서 잘해야만 함께 있을 수 있는 팀은 아니었다.

수요일 열아홉 시에 미란은 네 사람을 부르기 전에 표를 옆으로 치웠다. 오늘 비교는 첫돌의 반복과 다음 배치의 응수였다. 단비의 스틱은 수리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별도로 두었고, 토요일 사용한 정상 교체장비가 준비돼 있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고쳐 잡고 익숙해진 위치를 말했다.

혜주가 먼저 리드 두 돌을 던졌다. 첫 가드는 약간 높았다. 두 번째는 같은 선에 조금 낮게 섰다. 미란이 두 돌의 높이를 비교하게 하자 혜주는 첫돌 때 손이 늦게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진수는 다음 목표를 부르기 전에 그녀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라온은 세컨드 배치의 두 돌을 받았다. 상대 역할 돌이 중앙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진수는 가드 밖으로 돌아 옆에 붙이는 선을 불렀다. 라온은 폭과 깊이를 복창한 뒤 손을 폈다. 첫 시도는 조금 짧았다. 스톤이 가드 뒤에 숨기는 했지만 상대에게 닿을 만큼 깊지 않았다.

두 번째 목표는 같은 선이었다. 라온은 시작 위치를 확인하고 힘을 더 썼다. 돌이 끝에서 상대 역할 스톤에 가볍게 닿았다. 낮은 소리가 났다. 단비는 그 소리가 좋다며 자기 차례에 상대를 밀어낼 길을 봤다. 혜주는 자기 가드가 움직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웃었다.

라온은 돌아와 물을 마셨다. 미란은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좋아진 이유를 묻고, 첫 시도부터 필요한 깊이를 맞출 준비도 보자고 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같은 배치를 그대로 다시 받을 수 없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림과 대결한 셋째 엔드에서 첫 실수 뒤 길이 완전히 달라졌었다.

이번에는 라온이 리드 첫돌을 맡았다. 빈 하우스 앞에 표적이 놓였다. 그는 상대 돌이 없는 얼음을 봤다. 세컨드 때는 무엇을 피해 가는지 보여서 길이 가까워졌는데, 지금은 자기가 다음 길을 만들어야 했다. 첫 가드가 길어졌다. 두 번째는 힘을 줄여 앞쪽에 세웠다.

혜주가 세컨드 드로를 던졌다. 라온의 긴 가드 때문에 목표 폭이 달라졌다. 첫 돌은 가드 끝을 스쳤다. 혜주는 스틱을 내려놓고 말했다. 라온의 가드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처음 생각한 선으로 들어가려다 늦게 바꾼 것이 실수였다. 두 번째는 더 넓게 돌아갔다.

진수가 표를 봤다. 그는 라온의 첫돌이 좋은 날도 많다고 말했다. 라온은 그 말이 위로인지 비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혜주도 물을 내려놓았다. 단비는 자기 공격 차례를 기다리다가 두 사람의 얼굴을 봤다. 진수가 다시 말을 이으려 하자 라온이 먼저 물었다.

“좋은 날 말고, 지금 표를 보면?”

진수는 펜을 잡았다. 높이를 반복하는 쪽은 혜주가 더 일정했다. 상대 돌이 놓인 배치에서 선을 바꾸는 것은 라온에게 강점이 있었다. 그가 두 문장을 쓰자 라온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원래 자리를 지키는 칭찬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숫자와 위치로 비교되니 마음이 쉽게 따라가지 않았다.

혜주가 말했다.

“나도 리드가 편하다고만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앞돌을 잘못 놓으면 모두가 자기 뒤에서 힘들어지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기록을 맡으면서 다른 사람의 결과를 더 오래 봐 왔기에 그 감각이 컸다. 첫돌을 안정적으로 놓았다는 말은 좋지만, 리드가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혜주가 가드 높이를 반복한 지난 몇 주를 떠올렸다. 자기 포지션이 내려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동안 그녀가 그 자리를 얻기 위해 한 투구를 작게 보고 있었다. 라온은 그녀에게 첫돌을 쓰기 쉬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자기 세컨드 성공 뒤에 붙이는 말이 아니라 첫돌 자체에 대한 말이었다.

진수는 한동안 조용했다. 라온이 다른 자리를 고르는 것이 자신이 첫돌을 부르던 방식까지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리드 때 라온의 손동작을 오래 보았지만, 세컨드에서 어떤 선을 먼저 읽는지는 이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단비는 그럼 계속 배우면 된다고 했다.

미란은 남은 시간에 응수 배치를 주었다. 처음에는 진수가 스킵으로 부르고, 두 번째는 혜주가 목표를 불렀다. 진수도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아 드로를 던졌다. 혜주는 ‘조금’이라고 말하려다가 정확한 돌과 높이를 짚었다. 진수의 첫 스톤이 가드에 닿았다.

단비가 입을 열었지만 혜주가 진수에게 어디서 달라졌는지 먼저 물었다. 진수는 목표를 들을 때 자기 선을 이미 정해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라온은 그 답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리드 첫돌에 익숙한 것과 진수가 지시하는 자리에 익숙한 것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혜주의 다음 목표는 상대 역할 돌 옆이었다. 진수는 복창한 뒤 밀었다. 스톤이 바깥으로 돌아 가까이 섰다. 혜주가 엄지를 들었다. 단비는 진수도 말을 잘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수는 오늘 말을 잘 듣는 칸에 하나 넣어 달라고 했다. 기록지는 종이인데도 네 사람의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단비는 마지막 공격 시도에서 상대를 치웠다. 자기 돌은 하우스 가장자리에 남았다. 두 번째는 힘이 과해 옆으로 빠졌다. 그녀는 토요일의 정상 교체장비 감각을 그대로 믿고 놓는 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태규는 오늘 손잡이 상태를 확인하고 단비의 설명을 함께 남겼다.

라온의 마지막 드로는 깊이가 좋았다. 혜주가 놓은 가드 뒤로 스톤이 들어갔다. 상대 역할 돌 옆에 작은 틈을 두고 멈췄다. 진수는 그 돌을 보고 다음 공격이 어디로 갈지 단비에게 물었다. 단비는 정면 말고 옆으로 닿는 길을 그렸다. 네 사람이 하나의 배치를 같이 읽었다.

스무 시에 훈련이 끝났다. 미란은 다음 토요일 사십오 분의 비교를 마친 뒤 선발전에 가져갈 시험 포지션을 고르자고 했다. 백선우에게도 같은 표를 보내기로 했다. 라온은 최종 명단을 지금 써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선택이 늦어진다고 리드 첫돌을 다시 붙잡을 생각도 없었다.

장비함 앞에서 혜주가 라온에게 물었다.

“첫돌을 넘겨주는 게 싫어요?”

라온은 스틱을 닦던 손을 멈췄다. 혜주는 조심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말을 거두지 않았다. 라온은 처음에는 그렇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고 뒤 팀에서 처음 받은 자리가 리드였고, 자기 두 돌을 맡을 때마다 오늘도 선수라고 느꼈다. 그 자리를 바꾸면 처음 들어온 문까지 닫히는 것 같았다.

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기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첫날 비슷했다고 했다. 진수의 커다란 동그라미를 보고 수정해 주고 싶었지만 자기 투구 차례에는 펜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런데 그날 가드를 던지고 나니 자신이 종이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느꼈다.

라온은 웃었다. “네 기록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형 첫돌도 없어지는 게 아니죠. 내가 앞에서 놓으면 형이 쓰면 돼요.”

그 말은 라온이 자기에게 하던 설명보다 쉬웠다. 그는 스틱 가방을 닫고 혜주의 가방도 문 앞에 옮겨 줬다. 그녀가 손을 뻗어 받아 갔다. 도움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물건의 거리였다. 큰 자리는 서로 물어가며 바꿔야 했지만 가방 하나는 오늘 같이 들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라온은 작업대의 두 칸을 다시 정리했다. 교육용 부품과 고객 수리 부품이 나뉘어 있었다. 다음 수업에는 새 장치를 받기로 했고, 받침은 그대로 쓸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몸에 맞게 배우던 동작이 물건이 바뀌어도 이어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휴대전화에 혜주가 사진을 보냈다. 이름을 지웠다 다시 쓰는 비교표가 아니라, 라온의 마지막 드로와 자기 앞가드가 함께 있는 그림이었다. 단비는 그 뒤 자기 공격선을 덧그렸다. 진수는 다음 토요일에 그 길을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라온은 ‘좋아요’라고 답했다. 첫돌을 넘겨주는 밤에도, 자기 두 돌을 받을 자리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