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잠을 반품하는 사람
남해온은 우유 진열대 앞에서 선 채 잠들었다. 딱 삼 초였다. 점주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을 때 손에 들고 있던 우유가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팩이 터지고 흰 물이 운동화까지 흘렀다. 콩쇠는 계산대 아래에서 튀어나와 우유를 닦다가 걸레를 거꾸로 들었다.
남해온은 우유 진열대 앞에서 선 채 잠들었다. 딱 삼 초였다. 점주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을 때 손에 들고 있던 우유가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팩이 터지고 흰 물이 운동화까지 흘렀다. 콩쇠는 계산대 아래에서 튀어나와 우유를 닦다가 걸레를 거꾸로 들었다.
“내가 닦을게.”
해온이 허리를 굽히려 하자 점주가 먼저 말했다. 지금 닦으면 다시 넘어지겠다고. 그는 해온을 휴게 의자에 앉히고 남은 진열을 끝냈다. 해온은 그동안 조끼를 펼쳐 오늘 밤 주문표를 찾았다. 점주의 손이 그 위에 올라왔다.
“그거 볼 정신 있으면 먼저 자.”
요괴길의 일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낮에 못 자고 새벽 진열까지 놓치는 것은 사람길에서 실제로 보이는 결과였다. 해온은 오늘 낮 근무를 대신 해 달라고 애매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번 주 추가 교대 하나는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점주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쓰러진 뒤 메울 사람을 찾는 것보다 지금 표를 고치는 게 낫다고 답했다.
콩쇠는 해온이 약속한 수면시간을 적어 놓았다. 주문표를 받는 일은 다른 배송원이 확인하게 됐다. 해온은 처음에 불안해서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으나, 콩쇠가 손에서 빼앗지는 않았다. 옆에 조용히 물병을 두고 가렸다. 자기 힘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 기다렸다.
해온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햇빛이 방 벽에 길게 누워 있었다. 몸은 덜 무거웠다. 부재중 연락은 두 개였고 미배송 불운이 자기 방으로 몰려온 것은 아니었다. 동쪽 운행 한 건은 대체 배송원에게 인계됐고, 오늘 직접 확인해야 할 반송 요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수취인은 ‘잠 한 통’을 반품하고 싶다고 했다.
해온은 얼굴을 씻다가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콩쇠가 전해 준 발신지는 밤마다 숙면 가루를 파는 달토끼 가게였다. 주문자는 요괴길에서 가판대를 지키는 고슴도치 요괴였다. 잠을 못 자서 샀는데, 그 잠이 자꾸 자기 일을 대신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나한테 꼭 필요한 상품인데.” 해온이 중얼거렸다.
콩쇠가 문밖에서 대답했다. “써 보고 말해. 선 채 자는 건 이미 해 봤잖아.”
고슴도치의 가판대는 문구점 옆 어두운 통로에 있었다. 그는 연필과 지우개를 팔았다. 가시에 자잘한 상품들을 꽂아 두었다가 손님이 찾는 것을 빼 줬다. 해온이 갔을 때 고슴도치는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자는 깨어 있었다.
그림자가 손님에게 지우개를 내밀었다. 손님이 값을 놓자 그림자는 돈을 먹었다. 실제 고슴도치의 돈통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해온은 잠든 몸을 흔들기 전에 통로 바깥에서 주문자가 정해 준 확인 신호를 보냈다. 고슴도치가 번쩍 눈을 떴다.
그림자는 지우개를 더 깊은 어둠으로 숨겼다.
“저렇게 돼요.” 고슴도치가 말했다. “내가 자면 일은 하거든. 그런데 손님이랑 돈은 전부 저쪽으로 가.”
그는 잠 한 통을 산 이유가 그랬다고 했다. 밤에 장사하고 낮에 장부를 보느라 자꾸 아랫턱이 떨렸다. 손님 앞에서 상품을 잘못 내줬고 가판대를 지키며 잠깐 눈을 감을 방법을 원했다. 판매자는 잠이 일을 대신해 준다고 했다. 고슴도치는 그 말 뒤에 가격이 더 있다는 설명을 못 들었다.
해온은 잠통을 먼저 찾았다. 가판대 밑에 작은 유리병이 있었다. 뚜껑은 열려 있었고, 은색 가루가 통로의 그림자와 이어져 있었다. 그는 그 가루를 손으로 쓸지 않았다. 달토끼에게 현재 상태를 알렸다. 반송 의뢰는 통 하나를 들고 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달토끼는 당장 가루를 덮으면 그림자가 고슴도치 몸으로 급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그림자가 들고 있는 물건들이 가시에 꽂힐 수 있었다. 해온은 고슴도치의 작은 몸과 가시를 보았다. 지우개야 부드러워도 연필 끝은 달랐다.
“반품 방법이 따로 있는 걸 왜 물건 팔 때 안 줬죠?”
달토끼는 말이 없다가, 자기 직원이 새 상품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해온은 그 말을 고슴도치에게 전했지만 문제를 해결했다고 적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림자 손에서 손님 물건을 빼내고 잠통을 안전하게 닫는 일이었다.
콩쇠는 통로의 어두운 쪽을 살폈다. 그림자가 있는 곳은 실제 가판대의 경계였다. 고슴도치가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자의 주인이 됐다고 그림자에게 받은 돈까지 콩쇠가 몰래 가져올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고슴도치는 자기 돈통과 미수령 상품표를 보여 줬다.
첫 손님이 다시 왔다. 그림자에게 돈을 주었는데 지우개를 못 받았다고 했다. 해온은 그 손님에게 같은 값을 다시 내지 말라고 했다. 고슴도치는 실제 자기 상품 중 지우개를 직접 주고 미수령표에 결과를 남겼다. 손님은 뒤쪽에서 혀를 내밀던 그림자를 보고 몸을 움츠렸다.
“밤에 문구점 다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네.”
“낮에 오셔도 돼요.” 고슴도치가 말했다. “제가 잘 수 있으면.”
손님은 웃다가 그 말이 농담만은 아닌 걸 알아차렸다.
그림자는 거래가 줄자 고슴도치 몸에서 더 멀리 뻗었다. 은색 가루가 아직 연결돼 있었다. 해온은 달토끼가 알려 준 빈 덮개를 그림자 앞에 놓고, 실제 주인이 명확한 상품 한 개씩 현재 가판대로 돌려놓게 했다. 그림자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안전하게 잠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림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콩쇠가 빈상자를 내려놓자 그 안에 들어가 상자 뚜껑을 닫았다. 고슴도치가 당황해 손을 뻗었다. 해온은 그를 멈추고 상자 위에서 무엇이 움직이는지 봤다. 그림자 손 하나가 연필 두 자루를 갖고 있었다.
콩쇠가 웃었다.
“상자 안에서 장사해 봐. 누가 와.”
그림자가 틈으로 손을 내밀었다. 해온은 자기 돈을 놓지 않고 고슴도치에게 직접 상품 반환을 요구하게 했다. 고슴도치는 처음에는 잔뜩 졸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두 번째에는 똑바로 자기 상품표 번호를 불렀다. 연필 한 자루가 상자 밖으로 굴렀다.
두 번째 연필은 상자를 뚫었다. 콩쇠가 놀라 뒤로 물러섰다. 종이상자는 쉽게 갈라졌고 그림자가 그 틈으로 빠져나왔다. 해온은 발로 쫓지 않았다. 고슴도치 가판대 쪽 밤등을 돌려 통로의 밝은 면을 넓혔다. 그림자는 그 빛을 피해 더 작은 어둠으로 모였다.
고슴도치가 남은 연필 번호를 다시 불렀다. 연필이 자기 상품목록으로 돌아왔다. 그림자는 더 이상 팔 물건이 없었다. 그러나 손에는 아까 먹은 돈이 남아 있었다. 달토끼가 현장으로 도착한 것이 그때였다.
그는 자기 상품이 만든 상태를 보고 귀를 눕혔다. 해온은 잠통부터 가져가게 하지 않았다. 달토끼는 그림자에게 남은 현금을 실제 돈통에 떨어뜨리게 하는 회수 도구를 가져왔다. 작은 달빛 체였다. 은색 가루는 체를 통과했고 동전은 아래 받침에 떨어졌다.
고슴도치는 자신이 받은 손님표와 돈을 맞췄다. 아직 기억이 불확실한 거래는 따로 남겼다. 달토끼는 그 부분과 누락 안내에 대한 환급을 별도로 확인하기로 했다. 오늘 잠통값 환불만 받고 나머지 거래 손실을 없던 일로 하는 합의는 하지 않았다.
그림자의 손이 비자 달토끼가 잠통 뚜껑을 닫았다. 그림자는 작아져 고슴도치 발밑으로 돌아왔다. 고슴도치는 몸을 한번 떨고 깨어 있었다. 자신이 자지 않아도 통로를 지킬 수 있게 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가판대를 잠시 닫기로 했다.
“그럼 오늘 매출은 더 없네요.”
“그림자한테 있는 것보다 낫지.” 콩쇠가 말했다.
고슴도치는 그 말에 웃었다. 달토끼가 잠통의 실제 반송과 현재 상태를 확인했고 판매대금을 돌려줬다. 해온은 빈상자를 접었다. 연필이 뚫은 구멍에서 밤등 불빛이 가늘게 새었다.
가게를 닫을 때 고슴도치는 콩쇠에게 내일 잠깐 손님 안내를 맡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상품 판매를 대신하는 일은 아니고, 정해진 폐점 시간을 알리는 일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콩쇠는 자기 재교육 일정과 운행 가능 범위를 먼저 봤다. 쉬는 동안 새 일까지 전부 맡을 수는 없었다.
대신 고슴도치가 직접 붙일 안내판을 함께 만들었다. 콩쇠는 큰 글씨로 시간 두 줄을 적고, 그림자가 움직일 수 없게 일반 나무판에 붙였다. 고슴도치는 그 판을 바깥에서 읽어 본 뒤 만족했다. 가게가 닫혀 있으면 손님이 기다리며 욕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해온은 반송함을 달토끼에게 인도한 뒤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잠통은 원래 판매자의 곳으로 갔고, 아직 확인할 거래 손실은 별도 남았다. 고슴도치의 가판대에는 영업시간판이 붙었다. 오늘 누군가 잃은 이름을 되찾은 사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을 대신해 준다던 그림자가 실제 주인의 시간을 훔치는 일을 멈췄다.
점주는 해온 얼굴을 보더니 낮에 잤느냐고 물었다. 해온은 잤다고 했다. 그는 저녁도 먹고 와서 첫 진열을 전보다 천천히 끝냈다. 우유팩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콩쇠는 걸레를 이번에는 제대로 들고 지난번 우유가 남은 곳을 닦았다.
냉장고 셋째 문 안에서 새 전갈이 나왔다. 세 번째 피해자의 확인 시간이 정해졌고, 청묵이 내놓은 연락표식 가운데 하나가 현재 쓰는 시장 창구와 연결된다는 내용이었다. 해온은 당장 달려갈 생각 대신 다음 운행시간을 봤다. 한 통짜리 잠을 사서 해결할 수 있는 피로는 아니었다.
그가 대체 교대를 확정한 사람길 시간표 옆에 요괴길 출발 시간을 적자 콩쇠가 말했다.
“그림자 하나 있었으면 네 글씨도 대신 쓸 텐데.”
해온은 펜을 내려놓고 그를 보았다. 콩쇠가 두 손을 들었다. 농담이라고 했다. 해온은 웃고 마지막 줄을 자기 손으로 적었다. 오늘은 아직 깨어 있었다. 내일은 눈을 감아도 되는 시간을 먼저 남겨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