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마지막 함의 출발
새 지지띠는 검지손가락 두 마디보다 좁았다.
새 지지띠는 검지손가락 두 마디보다 좁았다.
노을이 포장을 열자 문주는 그 작은 물건을 한참 보았다. 어제 하루를 기다리게 만든 재료였다. 보존용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자기가 연습실 의자 아래에 끼우는 끈과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을은 끈을 함의 안쪽에 고정했다. 원반을 올리기 전에 빈 받침의 무게를 손으로 옮겨 보았다.
청년은 출발을 보러 왔다. 손가락에 붙인 붕대가 문틈에 걸렸다. 문주가 문을 더 열어 주었다. 오늘은 연습을 쉬기로 했다. 쉬는 날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일찍 왔다고 청년이 말했다. 이솔은 의자를 주었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한 날에도 앉을 곳은 있어야 했다.
지난번 트럭과 다른 차가 왔다. 운전자는 먼저 이동로를 걸었다. 문주가 걷어 놓은 매트를 보고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청년이 그 말을 듣고 문주를 흘끗 봤다. 문주는 괜히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악기 밖에서도 잘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게 민망했다.
함이 복도 모서리를 돌 때 노을이 멈추게 했다. 받침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문에서 오는 햇빛이 원반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덮개의 각도를 바꾸었다. 태오는 뒤에서 차량 문을 잡았다. 손 하나가 비면 다음 동작의 자리가 생겼다. 어제까지 마음으로만 들고 있던 물건이 실제 사람들의 손을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이솔이 바퀴 소리를 들었다. 또각거리는 것은 틈이 있는 복도, 낮게 구르는 것은 현관의 매끈한 바닥이었다. 마지막으로 함이 차량 받침에 놓였을 때에는 짧은 금속음이 났다. 노을이 고정장치를 확인했다. 그 소리는 길을 떠나는 물건의 마침표 같았다.
검사실에서 기다리던 원본 회수 항목도 도착했다. 어제 창고에서 반환받은 판이었다. 검사실 담당자는 각인과 이전 사진의 흠을 다시 대조하고 원본의 재생 없이 상태 평가를 진행했다. 감정 신청한 열두 항목은 이제 각자 자기 번호로 책상에 올랐다. 주문 당시 두 상자가 몇 장 들어갈 수 있었는지 적은 사양표는 책상 옆으로 옮겼다. 지금 눈앞의 열두 장을 더 크게 보이게 해 주는 종이가 아니었다.
태문은 오후 약속에 늦었다.
오지 않겠다는 연락도 없었다. 문주는 청년에게 먼저 집에 가라고 했다. 청년이 자기 곡의 교정 악보를 주고 나갔다. 문주의 손에는 작은 점 네 개가 찍힌 종이가 남았다. 몇 년 전의 말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고칠 소리를 펼쳐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태문은 약속보다 사십 분 늦게 들어왔다. 목 뒤가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회사의 새 담당자가 분쟁액을 다른 계약과 함께 정리하자는 말을 해서 다퉜다고 말했다. 문주가 자리를 가리켰지만 그는 바로 앉지 않았다. 자기 회사에서도 자기 말을 들을 사람이 줄었다는 사실이 몸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 돈을 계속 묶어 두면 내 쪽도 막힙니다.”
태문이 말했다. 태오는 앞에 놓은 서면을 펼쳤다. 지난번 제작실이 대기시키기로 한 액수와 계정이 있었다. 태문은 회사에 남아 있는 돈이 생각보다 적다고 덧붙였다. 그 말은 처음이었다. 입금과 지급 사이에서 여러 번 다른 몫으로 갈아입은 돈은 여기서도 다시 다른 사람의 급료가 되려 했다.
문주는 태문에게 손해가 생기는 게 무서운 것이냐고 물었다. 태문이 당연하다고 했다. 문주는 자기도 무섭다고 답했다. 옛날 자신의 선택을 말했더니 공연 제안이 하나 끊겼다. 그 제안의 값을 돈으로 치면 이 표의 첫 정산액보다 컸다. 하지만 그것을 수인이 받아야 할 돈에 얹어 돌려달라고 할 수 없었다.
태문은 문주의 눈을 피했다. 태오는 계좌의 모든 거래를 여기서 열어 놓자고 하지 않았다. 제작실이 지금 남겨 두겠다고 서명한 몫을 다른 계약에 쓰지 않는 방법을 요구했다. 태문이 회사 담당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구 편이냐는 말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문주는 자기 악보의 네 번째 점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한참 뒤 태문이 전화기를 내렸다. 제작실 명의의 분리 예치로 옮기겠다고 했다. 외부 기관의 수령 조건을 합의해서 자기 회사의 일반 운영계좌 밖에 두자는 답이었다. 태오는 조건이 수인에게 공개석상에 나오라거나 과거를 인터뷰하라는 것으로 바뀌면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태문이 짧게 그러겠다고 답했다.
예치 담당자가 화면으로 연결됐다. 받는 사람 이름을 당장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을 듣고 지급 조건을 별도 문서로 만들자고 했다. 문주는 자기 이름을 받는 사람에 쓰지 말라고 먼저 말했다. 화면 건너 담당자가 누구냐고 묻자 그가 돈을 받을 당사자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것으로 자리 하나가 제대로 비었다.
화면 연결이 한 번 끊겼다. 태문의 얼굴이 말을 꺼내던 모양으로 굳었다. 문주는 그 얼굴이 웃는지 화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네트워크가 돌아오자 태문은 아까 들었냐고 물었다. 누구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회사에 요청하는 것은 자기가 하겠다고. 이번에는 태오가 담당자 번호를 건네고 기다렸다. 태문은 번호를 받아 적다가 뒷자리 두 개를 바꾸었다. 문주가 짚어 주자 그가 고쳐 썼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종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종이에 남는 것은 우정을 되찾았다는 서명도 용서의 표시도 아니었다. 금요일에 전화를 걸어야 할 번호가 제대로 적혔다.
오늘은 돈을 이체하지 않았다. 회사 결재와 예치 조건 확인에 시간이 필요했다. 태문은 금요일까지 보내겠다고 했다. 태오는 날짜를 적었다. 못 지키면 연락하라고 한 뒤 그것이 연기 허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할 뻔하다가 멈췄다. 태문이 알고 있다고 먼저 말했다. 둘은 더 같은 문장을 주고받지 않았다.
혜주가 들어와 감정실 도착을 알렸다. 남은 한 함의 원반도 지지띠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오늘 새 흠은 발견되지 않았다. 문주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열두 번째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과거 돈의 전화 다툼보다 먼저 몸을 풀었다. 태문이 그 표정을 보며 물건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누군가 만든 건데요.”
문주가 답했다. 태문은 자기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주는 그랬다고 인정했다. 기술을 버리거나 전부 도둑질이었다고 말하면 쉬웠지만 원본의 홈에는 태문의 작업도 남았다.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 남의 몫을 삼켜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문주는 태문이 한 일을 지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하지 않은 일도 했다고 쓰지 말라고 했다.
태문이 의자에 앉았다. 처음 들어와서부터 잡고 있던 가방을 발 옆에 놓았다. 가방 손잡이가 바닥으로 접혔다. 그는 보완 서명이 들어간 자료를 누가 만들었는지 회사에서 조사해 답하겠다고 했다. 태오는 작성자 이름 하나로 모든 문제를 끝내겠다는 약속은 받지 않았다. 어느 자료를 어떤 근거로 제출했는지 적어 달라고 했다. 태문이 이번에는 펜을 잡았다.
이솔은 촬영실에서 열두 번째 원반의 옆면 사진을 받았다. 새 받침 위의 흠은 기존 사진과 같은 쪽에 있었다. 파편 세 조각은 원반 아닌 지지띠의 조각으로 따로 기록됐다. 방송국에 되돌아올 때에는 새 받침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오래 버티는 소재가 필요했다. 오늘 운송이 끝났다는 이유로 다시 낡은 것을 끼울 사람은 없었다.
비어 있는 수장고 자리에는 네모난 자국이 남았다. 열한 함이 먼저 나간 곳과 마지막 한 함이 나간 곳이 나란히 있었다. 문주는 그 자리를 걸레로 닦으려다가 노을에게 먼저 물었다. 노을이 촬영을 끝냈다며 괜찮다고 했다. 문주는 젖은 걸레를 짜서 먼지를 걷었다. 과거의 윤곽이 모두 증거일 필요는 없었다. 일을 끝낸 바닥은 깨끗이 쓸 수 있었다.
윤경이 포장기사와 함께 돌아왔다. 둘이 적은 작업순서는 다른 부분이 한 군데 있었다. 누가 주소표 봉투를 열었는지 기억이 달랐다. 혜주는 서로 맞춰 쓰라고 하지 않았다. 어느 부분까지 기억하는지 각자 표시하고, 남은 두 주소표 사진으로 실제 배송을 정리했다. 둘의 기억이 어긋나도 원본 회수는 뒤집히지 않았다.
이솔이 기록봉투의 제목을 바꾸었다. 원본 분실 의심이 아니라 교차배송 회수. 제목이 짧아졌다. 그 아래 현재의 감정 대상 번호가 적혔다. 문주가 그 종이를 보며 처음에 자기도 판을 잘못 쥐었으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윤경은 지금도 그런 생각이 난다고 했다. 둘은 서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뒷면을 보겠다는 말을 나누었다.
저녁에 문주가 청년에게 전화했다. 네 번째 오류도 고쳤다고 하자 청년이 그러면 녹음해서 보내 달라고 했다. 문주는 오늘 손이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려다가 청년의 붕대를 떠올렸다. 조금 천천히 치겠다고 했다. 청년은 원래 천천히 시작하는 곡이라고 답했다. 자기가 쓴 곡의 속도를 알고 있었다.
문주가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첫 음 전에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잘라 냈을 소리였다. 이번에는 그대로 두었다. 도중에 한 번 틀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 마디에 손을 놓았다. 끝의 쉼표까지 다 치고 나니 숨소리가 음 뒤에 붙었다. 청년에게 보낸 파일에는 그가 살아서 치고 있다는 모든 작은 잡음이 있었다.
태오에게도 파일이 도착했다. 문주는 감정에 쓰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연습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태오는 답장 대신 이어폰을 꼈다. 버스 창문에서 불빛이 미끄러졌다. 그가 들은 것은 보호해야 할 마흔일곱 초가 아니었다. 지금 누군가 허락한 곡을 서툴게 건너는 몇 분이었다. 한 사건의 마지막 함이 출발한 날, 다음 곡은 벌써 시작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