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자동이라는 말
회사 설명은 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보존 규칙에 따른 자동 정리였다.
회사 설명은 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보존 규칙에 따른 자동 정리였다.
가람은 그 문장을 세희에게 보내기 전에 민규에게 전화를 했다. 자동이라는 말이 삭제 기록의 모든 앞뒤를 설명하는지 물었다. 민규는 정리 작업이 자동으로 실행된 것과 정리 대상이 정해진 과정은 나눠 봐야 한다고 답했다. 가람은 그 답을 받아 적고 회사에 실제 적용한 규칙을 요청했다.
회사 대리인은 이미 자료를 충분히 냈다고 했다. 가람은 출력과 삭제 사이 십칠 분이 확인된 뒤, 무엇을 근거로 자동이라고 설명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답했다. 직원 전원의 자료를 달라는 요청은 아니었다. 해당 보고와 그 분류, 정리 규칙이 적용된 기록을 특정했다.
민규는 대조 목록을 좁혔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모든 문서가 같은 규칙의 대상은 아니었다. 먼저 같은 종류와 보존 상태에 있던 문서를 비교해야 했다. 회사가 낸 표에는 문서 이름과 날짜는 있었지만, 중간에 분류가 바뀐 이력이 빠져 있었다.
가람은 빠졌다는 말만으로 숨겼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청했는데도 안 나온 항목은 다시 요구해야 했다. 회사 대리인이 제출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세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 업무 분담안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현장 확인 일부가 다른 직원에게 넘어가고 세희에게는 외부 대응 자료 정리가 추가됐다. 급여를 줄인다는 문구는 없었다. 세희는 표를 보며 자기 책상은 남아 있지만 현장을 설명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곤은 분담의 실제 사유와 기간을 더 묻겠다고 했다.
“제가 더 설명하면 일이 더 빠지는 걸까요?”
세희가 물었다. 가람은 그 결과를 지금 확정할 수 없었다. 대신 변경 전후 업무표와 전달 시점을 보관하고, 회사가 제시한 사유도 함께 확인하자고 했다. 자기 말을 해도 아무 일 없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말을 한 뒤 생긴 일을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은 줄여 주고 싶었다.
오후에 회사에서 추가 기록이 왔다. 민규는 화면을 켜고 가람을 불렀다. 해당 보고는 처음에는 환경 위험 보고로 등록돼 있었고, 출력 뒤 삭제 전 사이에 다른 분류로 이동한 이력이 있었다. 바뀐 분류는 보험 갱신 검토 초안이었다.
그 분류에는 다른 보존 규칙이 적용됐다. 자동 정리 작업이 실행된 기록 자체는 있었다. 그러나 왜 확정된 경고 보고를 초안으로 옮겼는지, 그 변경을 누가 요청했는지는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 민규는 자동 정리였다는 설명을 지우지 않고, 그 앞에 분류 변경이 있었다는 줄을 더했다.
가람은 보험 갱신 자료와 충돌한다는 관련 메모를 함께 확인했다. 메모가 이 변경의 사유인지, 이후 담당자의 요약인지도 확인이 필요했다. 기록에 남은 관리 계정은 권한이 있었지만, 그 이름 하나가 실제 조작자를 뜻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옮겼네요.”
가람이 말했다. 민규는 분류 변경 작업이 기록된 것은 맞다고 답했다. 요청자와 실행자, 승인자를 찾는 일은 다음이었다. 가람은 그 셋의 빈칸을 보고, 초안에서 완료로 바뀐 오후에 찾았던 질문이 다른 문서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회사 대리인은 기록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며 연락했다. 초안 분류는 자료를 외부에 보내기 전 정리하는 절차에서 쓰였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가람은 그렇다면 그 절차와 이후 보존 대상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보여 달라고 했다. 단순한 이름 변경이라면 원본을 남기는 경로도 있어야 했다.
대리인은 관련 부서에 확인하겠다고 했다. 가람은 기한을 함께 정했다. 이미 확인한 자동 작업만 설명하고, 그 작업에 무엇을 넣었는지 계속 빈칸으로 두게 할 수는 없었다.
세희와 태곤이 저녁에 사무실로 왔다. 가람은 민규의 검토를 사실과 의견으로 나누어 보여 줬다. 분류 이동과 정리 작업 기록은 확인됐다. 그 이동에 붙은 메모의 출처와 실제 판단자는 더 찾아야 했다. 세희는 초안이라는 말을 보고 손가락을 종이에서 뗐다.
“저는 초안이라고 보낸 적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보고를 보냈다는 사실이 회사에 도착한 사실과 맞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가람은 그 발송 자료가 다음 대조 대상이라고 말했다. 세희는 오늘 봉투에서 꺼낸 것이 화면 밖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태곤은 자기 교대 자료도 그렇게 옮겨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민규는 해당 문서에서 확인한 방법을 모든 자료의 일로 확대하지 않았다. 필요한 기록은 원래 관리 범위에서 보존되게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태곤은 그 요청을 직원들의 동의 없이 외부 자료 수집으로 바꾸지는 않겠다고 했다.
세희는 자기 사본을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원본의 접힌 자국과 같은 곳에 맞추고 싶었던 것이다. 맞지 않는 모서리가 자꾸 눈에 걸렸다. 태곤이 클립 하나를 내밀었다. 세희는 접는 대신 페이지를 모아 꽂았다. 손을 움직일 작은 일이 생기자, 화면에서 읽은 초안이라는 단어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세희는 잠시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같은 팀 직원이었다. 업무가 나뉜 뒤 자기에게 현장 확인을 맡긴 것이 불편하다는 말이었다. 자기가 세희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세희는 자신도 화가 나지만 그 일을 혼자 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답했다.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가람은 통화 내용을 들으려 문을 열지 않았다. 세희가 돌아와 자기에게 넘어간 일이면 직접 하겠지만,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경고 보고를 없던 일로 인계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태곤은 변경된 담당자에게도 확인해야 할 내용을 회사가 명확히 내려 주도록 요청하겠다고 했다.
그때 만석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해안 작업 뒤 주민들 사이에 세희가 경고를 숨겼다는 말이 돈다고 했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는 자신도 확인하지 못했다. 가람은 오늘 확인한 것이 그런 결론은 아니라고 바로 답했다. 만석은 그래서 세희에게 직접 말하러 왔다고 했다.
세희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 방을 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만석과 마주 볼 자리를 만들었다. 만석은 종이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신도 왜 이제야 나왔느냐는 질문이 있고, 다른 주민에게 그 질문을 막으라고는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럼 제 대답도 끝까지 들으세요.”
세희가 말했다. 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한 보고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 두 번째 회의의 침묵을 말하겠다고 했다. 누구 대신 책임을 져 주려는 자리가 아니며, 자기에게 유리한 얘기만 하는 자리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만석은 한참 뒤 종이를 숨긴 사람과 종이가 없어진 뒤 들고 나온 사람을 자신이 한 말로 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희는 아직 자신의 일도 확인 중이라며 모든 오해가 풀렸다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다만 다시 의자를 가까이 당겼다.
태곤이 만석에게 앉으라고 했다. 만석은 오래 있으면 은실이 자신을 또 불러 찾는다며 망설였다. 저녁 손님에게 반찬을 더 주고 끝내고 싶어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람은 직원 자료보다 오늘 밥 이야기가 더 빨리 연락되는 동네라고 농담했다.
세희가 먼저 웃었다. 만석은 먹으러 오라는 것이 아니라 상자 옮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라고 했다. 가람은 두 사람에게 오늘 여기서 확인한 내용이 밖으로 나갈 때 어떤 문장으로 나갈지 같이 정하자고 했다. 보고가 초안 분류로 바뀐 기록이 있으며 경위는 더 확인한다. 그 이상을 사람 이름과 함께 퍼뜨리지 않기로 했다.
만석은 주민들에게 자기 질문도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세희는 그러라고 했다. 궁금한 일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면, 회사가 써 준 한 줄만 남을 수 있었다. 자신의 답변이 들어갈 자리만 비워 두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 가람은 자료 제출 목록을 정리했다. 삭제를 확인한 기록, 분류를 바꾼 기록, 관련 메모, 세희의 발송 자료. 각각 연결되는 것과 아직 연결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보기 좋은 한 장으로 만들려면 지금도 빈칸을 감춰야 했고, 그 빈칸이 바로 다음 심리의 질문이었다.
회사에서는 밤 늦게 보존 절차의 다른 설명을 보내 왔다. 외부 제출용 정리본을 만들고 원래 자료를 다시 찾는 방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람은 실제 이번 보고도 그 경로로 남았는지 물었다. 남았다는 답은 아직 없었다. 일반적인 절차 설명만 도착했다.
세희는 집에서 수첩을 찾았다고 연락했다. 두 번째 회의 다음 날 다시 보고한 때의 메모가 있었다. 그 앞뒤에는 회사 얘기 아닌 개인 얘기도 들어 있었다. 가람은 원본을 그대로 보관하고, 내일 필요한 부분과 가릴 부분을 같이 정하자고 했다.
가람이 전화 끝에 오늘 힘들었느냐고 묻자 세희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 질문에는 자료도 시각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만석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종이를 더 잡았다고 했다. 누군가 빼앗아 갈 것 같았던 것이다.
“제가 보여 주겠다고 가져온 건데도요.”
가람은 자기 앞에 놓인 사본을 덮었다. 보여 주기로 한 뒤에도 매 순간 다시 동의가 필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증거를 얻었다고 그 사람의 두려움을 가져온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민규에게서 마지막 대조 결과가 왔다. 메모의 작성 시각은 분류 변경 요청보다 앞이었다. 그 메모가 실제 요청의 근거였는지를 보려면 요청한 사람의 확인이 필요했다. 가람은 그 질문을 다음 목록의 맨 위에 올렸다.
자동으로 정리됐다는 말 뒤에서, 자동이 아니었던 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