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돌아오는 판
창고 문은 세 번을 밀어야 열렸다.
창고 문은 세 번을 밀어야 열렸다.
첫 번째에는 문턱이 울었고 두 번째에는 안쪽에 기대 놓은 판지가 밀렸다. 세 번째에야 문주가 어깨를 넣을 틈이 생겼다. 마른 먼지가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는 기침을 삼키다가 실패했다. 기증자의 보관 담당이 미안하다고 했으나 문주는 기침 때문에 고개만 저었다. 안에서 기다리던 물건은 사과를 듣는다고 앞으로 걸어 나오지 않았다.
약속한 오후였다. 이솔과 문주, 혜주는 방송국 차로 왔다. 태오는 다른 감정 일정 때문에 검사실에 남았고 노을은 보존 장비를 준비했다. 보관 담당은 창고를 뒤지다 행사 때 돌려받은 상자 두 개를 찾았다. 전화로 확인할 때에는 제목이 같은 판이 여러 장 있다고 했다. 이솔은 그 말에서 기대도 실망도 먼저 고르지 않았다.
창고에는 닫힌 서랍장과 펼쳐진 의자, 벽시계 세 개가 있었다. 시계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문주는 옛 연습실에도 고장 난 시계가 하나 있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고 끝내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렸다. 그는 그 기억을 혀 아래에 넣었다. 지금은 상자를 옮길 손이 필요했다.
담당자가 사다리를 탔다. 높은 선반의 상자가 앞으로 기울자 문주는 받치려다 혜주의 손에 팔을 잡혔다. 받는 곳이 아니라 내려올 길을 만들어야 했다. 셋은 의자를 치우고 바닥의 금속 받침을 밀었다. 담당자가 내려와 함께 상자를 옮겼다. 안의 판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지만 단단한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는 없었다.
겉면 주소표는 가위로 잘려 있었다. 택배 날짜와 받는 사람 성의 절반만 남았다. 혜주가 사진을 찍었다. 이솔은 봉투를 열기 전에 방송국에서 가지고 온 반환표와 나란히 놓았다. 전화 화면으로 연결된 윤경이 숨을 들이켰다. 자기가 적은 굵은 펜의 아랫부분이 보인다고 했다.
“저는 주소를 두 장 썼어요. 기사가 옆에서 떼어 붙였고요.”
담당자는 자기 상자에 방송국 전화번호가 붙어 있어서 당시 한 번 전화했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행사 물건을 돌려받았으면 맞게 간 것이라고 답했다. 기록은 없었다. 혜주는 그 통화를 근거로 누군가를 범인처럼 세우지 않았다. 상자 안의 물건을 보자고 했다.
문주가 테이프의 갈라진 끝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이솔이 작은 가위를 건넸다. 묵은 접착제를 당기면 겉포장 종이가 찢어졌다. 가위날이 테이프 아래를 지나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짧은 소리가 났다. 문주는 무대에서 기다리는 관객보다 이 조용한 창고가 더 어렵다고 느꼈다. 한 장의 판이 나와야 네 사람이 숨을 쉴 수 있었다.
상자에는 원반 한 장과 접은 천, 전시용 설명판이 있었다. 원반의 라벨은 검사실에 있는 재현판과 같은 제목이었다. 색은 조금 누렇게 변했지만 그것만으로 답을 낼 수 없었다. 노을이 준비한 화면 안내를 따라 담당자가 지지틀의 받침을 확인했다. 이솔이 카메라를 움직였다. 유리 대신 창고의 어두운 천장을 비추던 둥근 면이 비스듬히 돌아왔다.
매트릭스의 마지막 글자가 목록과 같았다.
담당자가 손전등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오자 글자가 번쩍이며 사라졌다. 문주가 빛을 뒤로 물렸다. 너무 밝으면 오히려 보이지 않았다. 담당자가 다시 비춘 자리에서 홈은 검게 살아났다. 이솔은 그 각도를 놓치지 않으려 무릎을 굽혔다. 먼지가 바지에 붙었다. 문주는 손을 뻗어 털어 주려다 멈췄다. 카메라가 흔들릴 것 같아서였다. 대신 그가 일어날 때 잡을 의자를 옆으로 당겼다.
문주가 아주 작게 욕을 했다. 놀라서 나온 것이었다. 담당자가 웃을 뻔하다가 입을 닫았다. 이솔은 글자 하나를 확대 촬영하고 손을 쉬었다. 같은 제목의 판을 찾는 일에서 원본의 각인을 확인하는 일까지, 문턱 하나를 넘어왔다.
그러나 바깥으로 내놓기 전에 뒷면을 봐야 했다. 재현물 표시가 없는지, 목록에 있던 옆면의 작은 상처가 같은 자리에 있는지. 노을은 영상으로 받침을 옮길 위치를 짚었다. 담당자는 장갑 낀 손이 미끄럽다고 말했다. 문주가 작업대 아래 바퀴를 잠갔다. 이솔이 옆에 걸린 비닐을 치워 그림자를 없앴다.
뒷면에는 재현이라는 글자가 없었다. 사양표에 적힌 홈과 각인이 이어졌고 오래전 등록사진의 얕은 흠도 같은 쪽에 있었다. 검사실에서 보낸 기계각인 목록과 맞았다. 이솔은 원본을 찾았다고 전화기 건너 윤경에게 말했다. 그 한 문장을 기다리던 윤경이 자꾸 예, 예라고 답했다. 세 번째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보관 담당은 판을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혜주는 고개를 저었다. 기증자의 물건이 방송국으로 옮겨지는 것이지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판을 줍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전화로 기증자에게 설명하고 이동 동의를 받았다. 통화가 끝난 뒤 담당자가 수령표의 날짜를 적다가 펜을 떨어뜨렸다.
“우리 쪽도 한 번만 제대로 봤으면 됐는데.”
그 말은 윤경을 향하지 않았다. 창고 문에 기대어 살던 상자를 향했다. 문주가 펜을 주워 주었다. 그는 누구 하나의 이름 아래 모든 잘못을 밀어 넣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때를 알고 있었다. 편해진 사람이 물건을 놓칠 수 있다는 것도 이제 알았다.
다른 상자에는 행사에서 쓰던 스피커 케이블이 있었다. 문주는 그걸 보며 웃었다. 자기가 예전에 어디서나 찾던 연결선이었다. 그것 때문에 한 공연의 첫 곡이 늦었다. 담당자가 기억난다고 했다. 그날 문주가 큰 소리로 누구를 찾았고 사람 하나가 말없이 케이블을 던져 줬다. 담당자는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랐다.
문주는 이름을 대신 붙이지 않았다. 기억의 빈자리에 수인을 넣으면 간단해졌지만 이 공연에 누가 왔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케이블의 구부러진 핀을 보며 그날의 웃음만 가져왔다. 몇 년 전 잘못 온 원반과 더 오래전 늦은 공연은 같은 상자에 있어도 다른 일이었다.
운송은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오늘 방송국 차에는 일반 서류함만 있었다. 노을이 상태를 보고 제대로 된 지지틀을 보내야 했다. 혜주는 원본을 두고 빈손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찾은 것을 다시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주는 창고를 바라보다가 차의 트렁크 안을 보았다. 차 안에는 커피와 우산, 흔들리는 장비 가방이 있었다.
“여기 잠그고 내일 오죠. 저 차보다 여기 바닥이 덜 흔들리네요.”
그가 말했다. 담당자는 작은 안쪽 보관실을 열었다. 그 방에는 온도 변화가 적고 바닥에서 띄운 선반이 있었다. 노을이 화면으로 확인하고 원반을 놓을 자리를 정했다. 상자에는 새 표를 붙였고 담당자는 출입 시간을 적었다. 문주는 그 작은 방의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밖에서는 비가 그쳤다. 창고 앞 웅덩이에 하늘이 뒤집혀 있었다. 이솔은 신발 바닥에 묻은 흙을 털었다. 원본을 찾아 놓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전화가 몇 통 필요했다. 첫 통에서 혜주는 서둘러 변명하지 않았다. 지금 가져올 차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가 한숨을 쉬자 내일의 이동 시간을 다시 잡았다.
윤경의 문자가 왔다. 고맙다는 말 대신 사진 두 장이 도착했다. 옛 포장 작업대에서 주소표가 붙기 전의 상자들이었다. 한쪽에 원본 표가 있었고 다른 쪽에 재현판이라는 작은 종이가 있었다. 이솔은 현재 찾은 판과 연결할 수 있는 사진을 골라 달라고 요청했다. 윤경이 직접 작은 표시를 붙여 보내왔다. 사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의 길을 찾아 주는 사람이 됐다.
태오가 검사실에서 전화를 걸었다. 다른 열 항목의 감정이 끝났고 한 항목만 원본을 기다린다고 했다. 재현판은 비슷한 물건이라도 그 목록의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문주가 원본을 보고 왔다고 말하자 태오는 처음으로 오늘 저녁의 목소리를 냈다. 그랬냐, 하고 낮게 물었다.
문주가 창고 문을 여는 데 세 번 밀었다고 말했다. 태오는 한 번에 열리지 않는 문도 있다는 답을 했다. 문주는 그 말이 싫다고 했다. 오늘은 결국 열린 문 이야기라고. 전화기 너머 태오가 웃었다. 손과 발이 아픈 두 사람에게 그런 구분은 말장난보다 컸다.
이솔은 차 안에서 찾아낸 각인의 사진을 다시 열었다. 글자 하나는 사람의 얼굴보다 작았고 음악의 한 마디보다 조용했다. 그래도 누가 제목만 보고 밀어 넣은 상자를 되돌아오게 했다. 물건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에는 멋진 폭로가 없었다. 가위의 날, 사다리의 발, 바퀴의 잠금장치가 있었다.
혜주는 차 시동을 걸기 전에 담당자에게 안쪽 보관실 열쇠를 한 번 더 보여 달라고 했다. 담당자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기 이름이 붙은 고리에 걸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내일 셋이 오면 함께 문을 열겠다는 약속이었다.
방송국으로 돌아온 문주는 연습실의 소리를 잠깐 들었다. 청년이 같은 부분을 열두 번째 치고 있었다. 열한 번은 틀렸고 이번에는 마지막 음의 뒤를 비웠다. 그 빈칸에 스피커의 잡음이 작게 남았다. 문주는 문을 열어 잘 쳤다고 했다. 청년이 몇 번째를 들었느냐고 묻자 방금 것을 들었다고 답했다. 앞의 실패를 보았다는 척하지 않았다.
이솔은 새 운송표에서 물건 한 장의 이름을 썼다. 찾기 전에는 한 항목의 빈칸이었고 지금은 내일 가져올 원반이었다. 그 옆에는 찾은 사람 한 명의 이름 대신 오늘 작업한 사람들의 이름이 함께 들어갔다. 창고 담당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가 화면에 떴다. 문 잠갔습니다. 사진 아래 열쇠 고리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원본이 있는 방은 이제 문을 밀어서 열 수 없는 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