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52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십칠 분

정문의 커피차는 문을 열었지만 우유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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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의 커피차는 문을 열었지만 우유가 아직 오지 않았다.

태곤은 세희에게 다른 것을 마셔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세희는 블랙으로 하겠다고 했다. 둘 다 평소 주문하던 것은 아니었다. 첫 모금이 너무 뜨거워 세희가 입술을 떼자 태곤도 따라 컵을 내렸다. 가람은 두 사람이 긴장을 숨기려고 같은 동작을 하는 것 같아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면담 동석을 허용한다는 회신은 아침에 왔다. 회사는 업무 인계 사항을 확인하는 자리이며 아직 인사 조치를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적었다. 세희는 통지의 문구를 두 번 읽고 출입증을 꺼냈다. 정문을 통과할 때 뒤에서 태곤의 발소리가 났다.

가람은 건물 밖에서 기다렸다. 오늘 면담의 주체는 세희와 회사였고, 그녀가 정한 동석자는 태곤이었다. 회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큰 실패처럼 느낄 필요는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끝난 뒤 어디서 연락할지는 알고 있어야 했다.

세희는 회의실에서 먼저 업무 인계의 대상과 사유를 물었다. 담당자는 외부 자료 대응 때문에 업무가 늘어 현재 업무를 나누려는 것이라고 했다. 세희는 구체적인 업무표를 달라고 했다. 경고 보고에 관한 질문도 그 자리에서 함께 나왔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자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세희는 무엇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지금 출처를 따지는 면담은 아니라고 했다. 태곤은 자료 대응이 인계 사유라면 어떤 자료를 말하는지도 명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세희가 자기 일을 묻는 중인데, 대답이 더 흐려져서는 안 됐다.

세희는 회사에서 작성해 보고한 자료를 보존하고 있으며 제출 범위를 상의 중이라고 답했다. 업무 기록과 무관한 개인정보까지 임의로 퍼뜨릴 계획은 없었다. 담당자는 회사 자료의 취급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곤은 그 검토의 요구 사항도 서면으로 달라고 했다.

면담은 길지 않았다. 구체적인 업무 분담안과 자료 취급에 관한 회사 요청을 따로 보내기로 했다. 세희는 인계한다는 말만 듣고 책상을 모두 비우지 않았다. 오늘 즉시 어떤 처분이 내려진 것도 아니었다. 끝나고 복도에 나오니 같은 팀 직원이 눈을 피했다.

세희는 그 사람이 왜 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함께 웃던 사람에게 먼저 인사했다. 직원이 잠깐 늦게 받아 줬다. 세희는 그 작은 시간차가 면담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태곤은 뒤에서 재촉하지 않았다.

정문 밖에서 가람은 두 사람의 말부터 들었다. 면담을 무사히 넘겼으니 보호가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희가 받은 요청과 앞으로 확인할 일만 정리했다. 그녀는 이제 봉투를 열 수 있는 자리로 가겠다고 했다. 원본은 여전히 자신의 가방에 있었다.

열람 장소는 사건 자료를 보관하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오늘은 세희, 가람, 태곤과 기록을 대조할 전문가 권민규가 함께 앉았다. 민규가 볼 내용과 이유도 미리 설명했다. 회사가 절차에 따라 제출한 기록 사본과 세희의 종이를 비교하는 일이었다. 세희는 가방을 무릎에 얹은 채 앉았다. 민규가 빈 자리를 가리켰지만 손잡이는 놓지 않았다.

세희는 전날 정한 네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가람은 원본을 세희가 보관하고, 동의한 부분만 사본을 만들며, 전달과 열람 기록을 남기겠다고 말했다. 민규도 오늘 할 수 있는 확인과 후속 자료가 필요한 부분을 설명했다. 태곤은 종이의 진위를 대신 보증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봉투가 열렸다. 세희는 첫 장을 자기 쪽으로 놓고 잠시 읽었다. 익숙한 글씨인데도 손끝이 떨렸다. 마지막 페이지 아래에 동료의 개인 연락처가 있었다. 사건 대조에 필요한 내용과 직접 관계없는 부분이었다. 가람은 그 정보의 열람이 필요 없다고 했다.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 사본의 해당 부분만 가렸다.

첫 보고에는 경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점검 요청 이후의 상태와 추가 확인 항목이 적혀 있었다. 세희가 실제 알 수 있었던 내용과 설비팀의 답을 전달받아 적은 내용은 문장 안에서도 구분돼 있었다.

민규는 종이 위의 날짜만 보고 시각을 정하지 않았다. 제출받은 기록에서 해당 문서의 버전과 출력 작업을 대조했다. 출력이 시작된 기록과 종료됐다고 남은 기록도 달랐다. 서버와 출력 기록이 어떤 시각 기준을 썼는지 확인한 항목을 함께 펼쳤다.

세희는 종이를 들고 나왔던 순간을 기억했다. 다른 직원이 프린터에 놓은 자기 자료를 가져가느라 한 번 기다렸고, 그 뒤 남은 자신의 페이지를 챙겼다. 정확히 몇 분에 종이를 쥐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민규는 그 기억을 기록 시각에 맞추려고 고치지 않았다.

대조한 로그에서는 출력 작업의 종료 기록 뒤로 십칠 분이 지나 해당 보고 문서를 삭제하는 작업이 남아 있었다. 민규는 그 두 기록을 나란히 보여 줬다. 실제 누가 명령했는지까지 이 두 줄로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희가 출력본을 가진 이유와 이후 목록에서 못 찾은 일은 이제 같은 시간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십칠 분 늦었으면 못 가져왔겠네요.”

태곤이 말했다.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종이를 가져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나중에 목록을 찾다 없어진 것을 알아냈고, 그제야 가방 안에 남은 종이를 다시 봤다. 그 밤을 용감한 행동으로 고쳐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람은 태곤을 탓하지 않았다. 자기에게도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종이가 살아남은 순간을 아름답게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종이를 가져온 사람의 말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는 왜 출력했는지 세희에게 물었다.

“화면으로 보다가 회의에서 자꾸 놓치는 것 같아서요. 옆에 적으려고.”

세희가 답했다. 가람은 그 말 그대로 적었다. 노트 위에서 '확보'라는 단어에 한 줄을 긋고 '회의에서 옆에 적으려던 출력물'이라고 고쳐 썼다. 세희가 펜 끝을 지켜보다 종이의 모서리를 조금 펴 놓았다.

다른 기록에도 비슷한 시각이 있었다. 민규는 아직 그 부분을 이어 읽지 않았다. 제출 범위에서 해당 작업과 연결되는 항목을 골라 확인해야 했고, 무관한 직원의 기록을 넓게 펼칠 필요는 없었다. 가람은 다음 자료 요청의 범위를 민규와 상의했다.

세희는 두 번째 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경고를 다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급자가 점검 중이라고 설명한 뒤 자신은 더 묻지 못했다. 회의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기억났지만, 누가 어떤 순서로 말했는지는 자기 수첩과 예약 기록을 봐야 했다.

“제가 조용했다고 써도 됩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보낸 보고까지 지우지는 말아 주세요.”

가람은 다음 날의 보고를 먼저 손에 잡지 않았다. 세희가 보여 주기로 한 페이지를 그녀가 직접 넘겼다. 종이 위에는 회의 이후의 추가 확인 요청이 있었다. 그 문서가 언제 전달됐고 누가 받았는지도 더 대조해야 했다.

태곤은 봉투 옆의 컵을 치웠다. 종이에 물을 엎을까 걱정한 행동이었다. 세희는 그가 아침에 커피를 같이 마실 때보다 지금 더 조심하는 것을 보고 작게 웃었다. 태곤은 자기가 도움이 되는 일이 계속 작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작은 게 없어졌으면 오늘 여기 못 왔어요.”

세희가 답했다.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가람은 그 문장을 기록하지 않았다. 증언을 준비하는 말과 서로에게 건네는 말을 모두 같은 장부에 넣을 수는 없었다.

민규가 다음에 확인할 항목을 설명했다. 삭제가 자동 보존 규칙에 따른 것인지, 별도 관리 작업인지. 기록에 남은 계정이 누구에게 배정됐고 당시 어떤 권한이 있었는지. 공유 사용이나 위임의 가능성은 없는지. 지금 단계에서는 계정 이름만으로 사람의 이름을 정할 수 없었다.

세희는 삭제가 있다는 말만으로 회사에서 누군가를 바로 떠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가람은 떠올린 사람에게 느낀 감정과 실제 제출할 사실을 분리해 두자고 했다. 세희는 자신의 머릿속에서도 그 둘이 섞여 있음을 처음 인정했다.

열람을 마치고 원본은 다시 갈색 봉투에 들어갔다. 오늘 만든 사본에는 가린 부분과 사본을 만든 이유를 남겼다. 원본의 내용이 그 자리에 없어진 것처럼 꾸미지 않았다. 세희가 접힌 입구를 손끝으로 눌렀다. 봉투가 처음보다 무거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가람은 이제 종이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다음 열람과 제출을 언제 상의할지 정했다. 태곤은 회사 업무 분담안이 오면 세희에게 먼저 보여 주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자료 때문에 그녀의 업무를 무작정 떼어 내는 내용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세희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팀 직원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전에 복도에서 인사를 늦게 받은 사람이었다. 함께 일한 자료 가운데 자기 담당 부분을 잘못 설명하지 말아 달라는 말과, 오늘 말을 걸어 줘서 고맙다는 말이 같이 있었다.

세희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증인으로 부르겠다는 계획부터 세우고 싶지 않았다. 먼저 잘 알겠다고 쓰고, 직접 기억하는 것이 있으면 회사의 절차에 따라 따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자기 봉투에 다른 사람의 기억을 대신 끌어넣을 수는 없었다.

가람은 사무실로 돌아와 민규가 남긴 대조 목록을 읽었다. 한 항목의 관련 메모에 보험 갱신 자료와 충돌한다는 짧은 표현이 있었다. 누구의 판단인지, 어떤 자료를 가리킨 것인지는 아직 표에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 문장을 굵게 표시하려다 멈췄다. 오늘 얻은 십칠 분을 범인의 이름처럼 쓰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질문도 처음처럼 작게 시작해야 했다.

보고서를 지운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지울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