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다섯 센티
스킵의 자리를 빌리다
일요일 아침 혜주는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기록지를 집에 두고 왔다. 가방에서 도서관 반납 안내문이 나왔다. 단비가 제목을 읽다가 ‘반납 기한’에 자기 스틱을 반납할 날짜도 있느냐고 물었다. 혜주는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진수는 지난 수요일 양식의 빈 사본을 꺼냈다.
일요일 아침 혜주는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기록지를 집에 두고 왔다. 가방에서 도서관 반납 안내문이 나왔다. 단비가 제목을 읽다가 ‘반납 기한’에 자기 스틱을 반납할 날짜도 있느냐고 물었다. 혜주는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진수는 지난 수요일 양식의 빈 사본을 꺼냈다.
“기록기를 잊은 사람한테 종이까지 맡기면 안 됐네.”
혜주는 사본의 모서리에 자기 이름을 크게 썼다. 단비가 이제 이름을 가리기 어렵다고 하자 그녀는 오늘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진수는 자기 종이에도 이름을 쓰고, 라온은 가방 안쪽에 작은 집게로 표를 고정했다. 네 사람의 준비 방식부터 벌써 달라졌다.
“그 사람 기록기도 한 번 못 찾았던 거거든요.”
혜주가 바로 받아쳤다. 백선우는 로비에 들어오다가 그 말을 듣고 오늘 기록을 번갈아 맡기로 한 결정이 잘됐다고 말했다. 단비는 오늘 스킵 자리도 번갈아 쓴다는 것을 떠올리고 갑자기 말을 줄였다. 웃을 일이 자기 차례로 넘어왔다.
미란은 여든 분 안에 네 사람이 같은 배치를 한 번씩 읽고 두 투구를 하도록 순서를 짰다. 공격해야 할 배치와 한 점을 지켜야 할 배치가 각각 준비됐다. 다른 사람이 투구할 때 목표를 부르는 사람을 바꾸고, 마지막에는 짧은 모의 대결로 연결했다. 외부 평가와 평소 기록은 같은 목표선을 썼다.
진수는 첫 배치의 하우스 쪽에 섰다. 상대 역할 돌이 중앙 가까이에 있고 앞가드가 정면 길을 좁혔다. 라온은 세컨드 순서에 스톤을 받았다. 혜주가 리드의 가드를 놓은 상태에서 그 뒤 길을 쓰는 연습이었다. 단비는 공격 차례를 기다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진수는 라온에게 넓은 드로를 불렀다. 라온은 폭과 깊이를 확인한 뒤 밀었다. 스톤은 앞가드 바깥으로 나갔다. 하우스로 돌아오는 곡선 끝에서 조금 짧게 섰다. 선우가 라온에게 놓는 순간과 실제 위치를 묻게 하자 진수가 먼저 대답하려 했다.
라온이 손을 들었다.
“제가 말할게요.”
진수는 입을 다물었다. 라온은 폭은 목표대로인데 깊이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처음 목표를 듣고 손이 짧아졌다고 느꼈다. 진수는 다음 선을 부르기 전에 라온에게 바꿀 것을 물었다. 라온은 힘을 조금 더 쓰고, 같은 바깥 선을 보겠다고 답했다.
두 번째 돌은 돌아오는 끝에서 상대 역할 돌에 가까워졌다. 완전히 붙지 않았지만 첫 돌보다 깊었다. 라온이 스틱을 내렸을 때 진수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단비가 뒤에서 자신도 저런 길을 쓰고 싶다고 했다. 혜주는 표의 두 위치를 따로 그렸다. 이번에는 동그라미 크기도 일정했다.
혜주가 목표를 부르는 차례에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평소 기록을 남길 때는 정확히 말하던 사람이 하우스 옆에서는 ‘조금’이라는 말을 세 번 썼다. 단비가 스틱을 들고 기다렸다. 어느 돌 옆인지 다시 묻자 혜주는 직접 목표를 가리켰다.
“저 돌 오른쪽. 닿는 것보다 조금 앞에서 멈춰요.”
단비는 복창하고 밀었다. 돌이 목표보다 길어 상대 역할 돌을 살짝 건드렸다. 혜주는 자신의 설명이 모호했는지 먼저 물었다. 단비는 깊이를 듣긴 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손에 힘이 들어갔다고 답했다. 둘은 다음 목표를 짧게 정했다. 두 번째 돌은 앞자리에 멈췄다.
혜주가 스킵 위치에서 나오자 진수가 물병을 건넸다. 그녀는 말 몇 마디 하는 자리가 왜 이렇게 목이 마르냐고 했다. 진수는 매번 옆에서 듣는 ‘왜 저렇게 빨리 말해’도 오늘은 조금 이해해 달라고 했다. 단비는 이해는 하되 빨리 말하면 또 묻겠다고 했다.
단비가 목표를 부르는 순서에서 라온은 그녀의 성향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상대 돌이 보이면 길부터 열고 싶어 했다. 미란이 한 점을 지켜야 하는 배치라는 조건을 다시 주자 단비는 공격선을 그리던 손을 멈췄다. 라온에게 상대 앞에 가드를 놓게 했다.
라온의 돌은 조금 바깥에 멈췄다. 단비는 즉시 안쪽으로 하나 더 세우라고 했다. 선우가 두 번째 돌을 받기 전에 상대가 어떤 길로 응수할지 물었다. 단비는 바깥이라고 답하다가, 라온이 방금 비워 둔 중앙을 봤다. 자신의 두 번째 지시도 그 중앙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수 있었다.
“그럼 깊이 바꿀게요.”
그녀가 말했다. 라온은 바뀐 목표를 복창했다. 돌을 놓은 뒤 단비가 이미 자기 다음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톤은 하우스 앞쪽에 서서 첫 가드와 겹치는 길을 만들었다. 단비는 눈을 크게 떴다. 라온이 던진 돌이 자기가 그린 그림에 들어온 것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바로 라온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혜주가 손가락으로 자기 첫 가드도 짚자 단비는 그것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진수가 자기 스킵 때도 좀 그렇게 말해 달라고 농담했다. 단비는 표를 들어 진수의 두 번째 가드를 찾는 척했다. 로비에서 시작한 웃음이 얼음 옆까지 따라왔다.
라온이 목표를 부르는 순서에는 진수가 투구했다. 라온은 가드 뒤의 상대 역할 돌을 보며 바깥을 돌아 붙이는 길을 정했다. 진수는 복창한 뒤 너무 깊게 들어갔다. 라온은 어디서 달라졌는지 물었다. 진수는 자기 스틱에서 느낀 힘을 설명하면서 목표 폭은 맞았다고 했다.
라온은 다음 돌에 힘을 줄이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선수의 손에서 무엇을 바꿀지는 진수가 정할 일이었다. 그는 목표 깊이를 다시 가리켰다. 진수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돌이 움직였고 상대 역할 돌 옆에 섰다. 라온은 엄지를 들었다. 자기가 던진 것보다 더 크게 기뻤다.
선우는 두 사람의 말을 각각 적었다. 진수는 자기 돌을 보면서 라온에게 스킵 자리가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라온은 돌이 가는 동안 기다리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진수가 웃었다. 단비는 그럼 앞으로 기다리는 동안 스틱을 휘두르지 말라고 했다. 진수는 자기는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남은 시간에는 두 조로 짧은 모의 대결을 했다. 라온과 혜주, 진수와 단비로 갈렸다. 네 명이 실제 대회 포지션을 맡는 완전한 경기가 아니라, 방금 읽은 배치에서 서로 응수하는 실습이었다. 처음 상대 돌이 움직이자 라온은 자기 표적이 바뀌는 감각을 느꼈다.
단비가 앞가드를 치웠다. 혜주의 돌이 뒤에 드러났다. 라온은 가드를 다시 세우고 싶었지만 단비에게 같은 길을 두 번 주는 셈이었다. 그는 혜주와 바깥에 가드를 놓을지 깊이 붙일지 짧게 의논했다. 혜주는 오늘 자신이 높이를 비슷하게 맞췄으니 앞가드를 맡겠다고 했다.
혜주의 돌은 목표에 맞았다. 진수는 그 가드 바깥으로 드로를 넣었다. 중앙에 가까운 위치가 바뀌었다. 라온은 자기 차례에 진수 돌 옆을 향했다. 의자를 정지시키고 바깥 선을 봤다. 돌이 상대 옆으로 들어갔지만 마지막 깊이가 조금 부족했다. 두 돌 사이에 작은 틈이 남았다.
단비는 그 틈을 보고 강하게 치려 했다. 진수가 앞에서 손을 들었다. 놓을 돌을 끝까지 남기는 목표를 확인했다. 단비는 힘을 조절했다. 스톤이 진수 돌을 밀었고 라온 돌도 움직였다. 자기 돌은 조금 옆으로 흘렀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 혜주의 돌이 남았다.
혜주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처음 앞가드로 쓴 돌이 접촉 뒤 안쪽에 이동해 있었다. 단비는 입을 벌리고 자기 스톤을 봤다. 라온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잠깐 말을 잃었다. 선우는 우연히 바뀐 결과와 의도한 선택을 같이 보라고 했다. 단비는 자기가 얼마나 밀었는지 설명했다.
다음에는 라온이 세워 둔 돌을 단비가 정확히 쳐냈다. 한 번의 엉킨 배치에 오래 웃고 있을 틈이 없었다. 혜주는 남은 돌로 바깥을 돌아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기록지 없이 선을 읽었다. 돌이 가드 밖을 타고 안쪽에 섰다. 진수의 응수는 약하게 가드를 건드렸다. 짧은 모의 대결은 라온과 혜주가 한 점을 남긴 배치로 끝났다.
혜주는 주먹을 작게 쥐었다. 단비가 그녀에게 잘했다고 말하고, 자기 마지막 히트는 좋았는데 진수가 망쳤다고 농담했다. 진수가 다음에 같은 조를 안 하겠다고 받아쳤다. 미란은 네 사람이 웃는 사이 종료시간을 알렸다. 더 던지고 싶은 단비가 먼저 스틱을 닦았다.
선우는 평가표에 아직 빈 실전 표본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 목표를 반복하는 일은 봤지만 실제 상대가 끝까지 대응하는 경기에서의 선택이 필요했다. 미란이 다음 연습 대결 일정을 알려 줬다. 평소 훈련시간을 바꾸는 추가 연습은 별도로 조건을 확인할 일이었다. 오늘 여든 분은 끝났다.
로비에서 진수가 라온의 표를 돌려줬다. 스킵 설명 칸에 라온이 말을 멈춘 순간이 적혀 있었다. 라온은 그것이 감점인가 물었다. 선우는 무엇을 확인하려고 멈췄는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라온은 진수의 손동작까지 자신이 정하려다가 그만둔 것이라고 말했다.
진수는 종이를 봤다. 자신도 그 자리를 비슷하게 넘나든다는 것이 표에 남아 있었다. 그는 라온에게 오늘 지시를 덜 받은 두 번째 돌이 오히려 편했다고 말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비는 다음엔 자신도 지시를 덜 받게 해 달라고 했지만, 혜주는 목표를 먼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받아쳤다.
밖에서 네 사람은 배고픈 메뉴를 고르다가 또 의견이 갈렸다. 단비는 매운 것을, 진수는 빨리 나오는 것을, 혜주는 밥을 원했다. 라온이 가까운 식당의 메뉴판을 보여 주자 셋은 각자 원하는 것을 골랐다. 오늘은 스킵 하나가 모두의 점심을 부르지 않았다. 라온은 식탁에서 자기 한 점보다 진수의 두 번째 돌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 돌을 부르는 자리에 잠깐 서 본 시간이, 다음에 던질 자기 돌의 길까지 넓혀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