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51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봉투의 주인

태곤은 세희가 오기 전에 자기 의자를 문 쪽으로 옮겼다.

글자 크기

태곤은 세희가 오기 전에 자기 의자를 문 쪽으로 옮겼다.

가람이 이유를 묻자 나가기 편한 자리를 남기려는 것이라고 했다. 자료를 가져온 사람을 안쪽에 앉혀 두고 둘이 문을 막는 모양은 싫었다. 가람은 자기 가방도 통로에서 치웠다. 회관의 작은 방은 의자 세 개만 들어가도 금방 좁아졌다.

세희는 갈색 봉투를 들고 왔다. 윗부분을 두 번 접었고, 테이프는 붙이지 않았다. 아무나 열 수 있는 모양이어서 오히려 가람은 손을 더 멀리 뒀다. 세희가 앉을 때 봉투의 귀퉁이가 탁자에 부딪쳤다. 세 사람이 동시에 그 소리를 들었다.

“오늘 가져왔다고, 오늘 다 보여 드리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희가 말했다. 태곤이 알겠다고 먼저 답했다. 가람은 오늘 정할 일부터 말해 달라고 했다. 봉투 속 장수를 묻거나 스캔 장비를 꺼내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었다.

세희는 종이를 넘기는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다고 했다. 가람 혼자 보는 것과 법원에 내는 것, 회사가 보는 것, 마을에서 모두 읽는 것은 각각 달랐다. 태곤은 자기가 동석한다고 회사 직원들의 자료를 받아 보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오늘 할 일은 동료가 무슨 약속을 받는지 같이 듣는 것이었다.

가람은 원본을 어디에 둘지부터 물었다. 세희는 지금은 자신이 갖고 있겠다고 했다. 가람은 필요한 열람이나 제출 때 원본을 확인할 방법을 따로 정하자고 했다. 사본을 만들기로 하면 범위를 확인하고,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남겨야 했다. 원본의 일부를 잘라 내거나 새로 고쳐 쓰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제 얘기 아닌 이름도 있어요.”

세희가 봉투 위에 손을 올렸다. 가람은 사건에 필요한 이름인지부터 확인하자고 했다. 무관한 내용은 공개 범위를 제한하도록 요구할 수 있지만, 필요한 상대방의 확인과 질문을 영원히 막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세희의 시선이 내려갔다.

“결국 회사도 보겠네요.”

“제출하는 내용은 상대방이 다툴 기회가 필요합니다. 어떤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보게 할지는 따로 정해야 합니다.”

태곤이 낮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안 보일 자료라면 세희가 밤새 걱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두려운 것은 회사가 보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뒤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아무도 계획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다음 날 인사 면담이 잡혀 있었다. 통지에는 업무 인계와 외부 대응 점검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자료를 제출하면 해고하겠다는 문장은 없었다. 가람은 그것을 곧바로 보복 명령이라고 적지 않았다. 면담의 사유와 진행 방식, 동석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저더러 그냥 가서 잘 말하라고 하시지는 않겠죠?”

세희의 질문에 가람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먼저 준비해야 할 일을 종이에 적었다. 사유 확인, 동석 요청, 면담 내용의 보존, 이후 인사 조치가 있을 때의 연락. 태곤은 회사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맡겠다고 했다. 가람은 그가 확인하지 못한 일을 보장처럼 말하지 않도록 범위를 같이 적었다.

세희는 네 줄을 오래 봤다. 그것이 보호를 완성한 문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일 아침 혼자 불려 들어가고,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묻는 계획과는 달랐다. 그녀는 봉투를 아직 열지 않은 채 가람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제가 그 회의에서 한 말을 회사가 이용하면요?”

“어떤 회의입니까?”

세희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경보와 관련한 두 번째 회의였다. 그 자리에서 더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태곤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세희가 경고를 여러 번 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은 처음 들었다.

가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당장 전부 설명하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제출할 자료가 세희에게 유리한 부분만 보여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세희가 자기 침묵도 말하겠다고 한 것이, 봉투를 들고 온 가장 큰 이유일 수 있었다.

“그럼 제가 잘못한 사람으로 끝날 수 있잖아요.”

“어디까지 알고, 무엇을 할 수 있었고, 그 뒤 무엇을 했는지 같이 봐야 합니다.”

가람은 평소처럼 설명했지만 세희가 눈을 들지 않았다. 태곤이 의자를 당겼다. 문앞 자리를 막지 않도록 조금 옆으로 앉았다. 그는 침묵을 회사 직원 모두의 대답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세희가 자기 얘기를 숨기지 않는 것과 다른 사람의 말을 대신하는 것은 달랐다.

그때 방밖에서 컵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정미의 딸이 회관에 가져온 물병을 놓치고 있었다. 만석이 먼저 수건을 가져왔다. 가람은 문을 열고 괜찮냐고 물었다. 딸은 바닥을 닦고 나서 괜찮다고 답했다. 세희는 문이 열린 틈으로 복도를 봤다.

밖에는 주민 몇 사람이 있었다. 세희를 보고 대화를 멈췄다. 그들 중 한 명이 회사에서는 왜 이제야 종이를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가람은 오늘 자료를 공개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답했다. 주민은 가람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며 세희를 보았다.

세희는 봉투를 가방 안에 넣었다. 태곤이 문쪽으로 먼저 나갔지만 그녀를 대신해 싸우지 않았다. 세희는 오늘 어떤 자료를 누구에게 보여 줄지 정하러 왔다고 말했다. 언제 어떤 경고를 했는지는 별도로 질문을 받고 답하겠다고 했다.

“남들은 그동안 기다렸는데, 그쪽은 이제 정한다는 거예요?”

그 말에 세희의 어깨가 굳었다. 가람은 주민의 기다림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을 세희의 가방을 지금 열게 하는 권한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만석이 옆에서 물을 짜던 수건을 내려놨다.

“나도 궁금해. 그런데 오늘 내가 먼저 보자고 한 적은 없어.”

주민은 만석을 돌아봤다. 만석은 누구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며 내 질문도 받을 날을 정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모두를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주민은 머리를 저으며 나갔다. 문이 닫힌 뒤 세희가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가람은 회관에서 계속할지 다른 자리로 옮길지 물었다. 세희는 오늘 여기서 마치겠다고 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지만 앞으로 매번 뒷문으로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태곤은 물을 새로 받으러 갔다. 봉투를 옮기거나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세희는 네 가지 조건을 자기 말로 다시 적었다. 원본은 본인이 보관한다. 사본과 전달 범위는 먼저 확인한다. 무관한 개인 정보는 제한을 요구한다. 회사 면담과 이후의 일은 동석과 연락 계획을 준비한다. 가람은 상대방 확인과 질문의 가능성도 그 아래에 적었다.

태곤이 돌아와 네 줄과 마지막 설명을 읽었다. 그는 자기 서명을 증거의 진위를 확인하는 서명으로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오늘 약속한 조건을 함께 들었다는 서명일 뿐이었다. 세희는 그런 구분이 귀찮지 않다고 했다. 오늘은 그 구분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면담 동석 요청은 그 자리에서 회사에 보냈다. 회사가 허용한다고 아직 답한 것은 아니었다. 가람은 제출한 요청과 답변을 둘 다 보관하자고 했다. 태곤은 세희가 밤에 혼자 회사 연락을 받아 해석하지 않도록, 본인이 연락 가능한 시간을 적어 줬다.

세희는 누군가 밤새 전화를 기다려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보다 그 시간이 더 믿음직했다고 했다. 태곤은 자기도 자야 내일 같이 앉을 수 있다고 답했다. 가람은 오늘의 약속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새 업무로만 늘어나지 않도록 메모 끝에 다음 연락 시간을 썼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만석은 접은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는 세희에게 아까 질문한 주민도 어장을 잃었다고 말했다. 세희가 알겠다고 하자, 만석은 그 사람이 잃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며 덧붙였다. 세희는 그 두 말을 같이 들었다.

정미의 딸이 문을 열어 줬다. 세희는 먼저 고맙다고 말했다. 딸은 물병을 떨어뜨린 자리를 보며 여기만 아직 미끄럽다고 알려 줬다. 세희는 그쪽을 피해서 나갔다. 가람은 사람에게 필요한 경고가 이렇게 제때 닿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세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인사 면담 통지의 담당자가 전화한 것이었다. 세희는 가람에게 대신 받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받아 동석 요청을 보냈다고 말하고, 사유를 서면으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화가 짧게 끝났다.

담당자는 동석 가능 여부를 확인해 회신하겠다고 했다. 세희는 아직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말부터 태곤에게 전달했다. 가람은 그녀가 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보다 자기 목소리로 한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세희가 화면을 끄자 태곤은 내일 어느 출입구에서 만나겠느냐고 물었다. 정문이라고 답이 나왔다. 늘 혼자 들어가던 자리였다. 태곤은 그 앞의 커피차가 몇 시부터 여는지 물었고, 세희는 자기도 그 시간에는 마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회사가 내줄 의자보다 먼저, 정문 밖에서 같이 설 자리를 정했다. 가람은 그 약속을 메모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미 서로에게 남겼다.

버스가 왔다. 세희는 올라타기 전 가방에서 갈색 봉투를 꺼내 잠깐 들여다봤다. 윗부분은 여전히 두 번 접힌 그대로였다. 태곤이 내일 확인할 준비가 되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녀는 그 봉투를 가람에게 맡기지 않고 다시 넣었다.

“두 번째 회의 얘기부터 할게요. 종이에는 그날 제가 왜 조용했는지 안 쓰여 있으니까.”

세희가 말했다.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는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오늘 누군가가 들고 와야 했던 가장 무거운 것은 이미 탁자 위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