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49화

빙판 위 다섯 센티

남길 번호, 지울 화면

휴대전화의 영상은 비슷한 이름으로 세 개 저장돼 있었다. 소라온은 가장 짧은 편집본을 열었다가 소리가 나기 전에 닫았다. 사고 당일 화면을 잘라 운전자 차량이 나타나는 부분만 남긴 파일이었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어도 몇 번 들여다본 뒤에는 화면이 손 안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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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의 영상은 비슷한 이름으로 세 개 저장돼 있었다. 소라온은 가장 짧은 편집본을 열었다가 소리가 나기 전에 닫았다. 사고 당일 화면을 잘라 운전자 차량이 나타나는 부분만 남긴 파일이었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어도 몇 번 들여다본 뒤에는 화면이 손 안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승후가 알려 준 공식 원본의 인계번호는 종이와 별도 저장공간에 남아 있었다. 라온은 번호를 다시 읽었다. 휴대전화 편집본의 이름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두 가지를 같은 물건처럼 붙잡고 있었다. 원본을 다시 확인해야 할 때 어디로 물어야 하는지는 이제 알았다.

그는 삭제 버튼 앞에서 멈췄다. 영상이 사라지면 자신이 겪은 일도 작아질 것 같았다. 사고 전 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시간, 소리가 끊긴 뒤의 빈칸, 병원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 손가락 밑에 있었다. 그런데 화면에는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지 않았다. 잘린 몇 초가 밤마다 방을 채웠다.

태규가 공구받침을 가져온 것은 그때였다. 지난번 시범 판과 비슷하지만 라온이 잰 크기에 맞는 물건이었다. 가격은 견적대로였고, 주문 여부를 정하기 전에 손이 닿는지 한 번 더 보자는 것이었다. 태규는 라온의 휴대전화를 건드리지 않고 작업대 위 판을 놓았다.

“오늘 확인할 건 이거. 그쪽은 네 시간에 해.”

라온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판 위에 나사, 와셔, 집게를 놓았다. 집게 손잡이가 벽 쪽에 닿아 방향을 바꿨다. 새 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지만 부품은 더 이상 가장자리 밖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그는 용수가 찍어 준 수납함 사진을 보이며 두 사람이 쓰는 크기가 다르다고 했다.

태규는 사진의 손잡이 위치를 살폈다. 용수의 함에는 물건을 세워 꺼내는 작은 칸이 있었다. 라온은 자기도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태규는 라온이 집게로 꺼낼 때는 가로 칸이 낫고, 용수가 손가락을 오래 움켜쥐지 않으려면 세운 칸이 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둘의 작업대가 똑같을 이유는 없었다.

라온은 시범 판을 다시 포장했다. 사고 합의가 정리되면 교육용 소모품과 함께 주문하기로 했다. 태규가 나간 뒤 그는 승후에게 인계번호 보관 상태를 알렸다. 휴대전화 편집본을 지우더라도 원본 확인 경로와 제출자료는 남는지 다시 확인받았다. 번호를 적은 종이 모서리에 작은 체크를 했다.

수정문구의 답변도 도착했다. 열두 주 재활비의 항목과 별도 직업교육 자부담이 나뉘어 있었고, 예정 진료의 포함 범위가 문장으로 드러났다. 라온은 초안에 붙였던 표시와 새 문장을 나란히 봤다. 승후와 다음 날 다시 대조할 시간을 정했다. 오늘은 최종 서명일이 아니었다.

그는 편집본 첫 번째를 지웠다. 두 번째에서 손이 멈췄다. 더 긴 파일은 제일 자주 열었던 화면이었다. 재생버튼을 누르려다가, 지금 원본 확인이 필요한 질문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당장은 없었다. 남아 있는 질문은 수정된 문구에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파일을 지운 뒤 휴대전화가 갑자기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빈 사진목록을 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운전자에게 용서한다는 연락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는 작업대의 공구받침 자리에 연습용 부품함을 올렸다. 손이 갈 곳을 화면 대신 하나 만들어 놓았다.

다음 교육에서 용수는 자기 와셔를 거꾸로 끼웠다. 라온이 말하려는데 용수가 먼저 장치를 돌려 보고 웃었다. 분리 순서대로 놓은 부품을 반대편에서 집다 보니 방향이 뒤집혔다. 둘은 판 한쪽에 시작 표시를 붙였다. 라온은 자기 손이 자주 가는 오른쪽 모서리에 작은 테이프를 붙이고, 용수는 왼쪽에 붙였다.

“같이 쓰면 표시가 두 개잖아.”

“그럼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물어야죠.”

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대답하고 나서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틀린 물건을 분리해 제자리에 놓는 동안 두 사람은 오늘 저녁 먹을 메뉴를 이야기했다. 용수는 부품보다 찌개에 들어갈 두부를 먼저 뒤집어 놓는 편이라고 했다. 라온은 그건 틀린 방향이 없어서 좋겠다고 했다.

정은이 완성품을 보러 왔을 때 용수는 이번에는 방향을 직접 설명했다. 라온은 자기 첫 조립에서 손이 걸리는 위치를 보여 줬다. 장치는 새로 고친 테이프 표식에 맞춰 놓였다. 실제 투입 전에 반복할 항목이 남았지만 오늘은 부품 두 개가 어느 방향에 있어야 하는지 두 사람 모두 알아봤다. 라온은 사진을 찍고 나서 폴더 이름을 ‘교육 첫 주’로 만들었다. 사고 영상 이름을 반복해서 고치던 때와 달리, 다음에 추가할 사진을 미리 기대할 수 있는 폴더였다.

수요일 컬링장에서는 혜주가 새 기록양식을 펴고 있었다. 미란이 다음 평가 때 각 포지션의 같은 항목을 보겠다고 예고했다. 선발전 준비를 위해 누가 어느 자리에 서면 팀의 선택이 늘어나는지 비교할 계획이었다. 진수는 종이를 보고 자기가 스킵이니 나머지만 평가받는 것처럼 농담했다.

미란은 진수 이름에도 선을 그었다.

“너도 던지고, 너도 설명해.”

단비가 곧장 웃었다. “드디어 심판이 생겼네.”

“심판 말고 평가자.”

혜주가 고쳐 말했지만 본인도 웃고 있었다. 라온은 리드 칸 옆에 빈 세컨드 칸이 보이는 것을 오래 봤다. 첫 돌의 무게를 익히는 것도 아직 어려운데 다음 자리까지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 성급해 보였다.

오늘은 평소 수요일 한 시간이었다. 미란은 초반에 배치를 바꾸지 않고 각자 두 돌씩 목표를 맞추게 했다. 라온은 짧은 가드와 바깥 드로를 받았다. 의자를 정지시키고 첫 목표를 복창했다. 스톤은 앞쪽 중앙에 멈췄다. 원하는 자리보다 조금 옆이었지만 높이는 맞았다.

두 번째는 힘을 더 쓰는 드로였다. 라온은 스틱이 돌에서 떨어지는 시점을 한 번 더 생각했다. 호그라인 전에 놓인 스톤이 가드 밖을 돌아갔다. 깊이는 맞았는데 폭이 컸다. 하우스 가장자리에 걸렸다. 혜주는 두 결과를 따로 적었다. 첫 가드를 잘했다고 두 번째 폭을 덮어 두지 않았다.

단비는 라온의 두 번째 돌을 보며 안쪽으로 한 번 치고 싶다고 했다. 미란은 오늘 표적은 그 돌이 아니라 별도 상대 역할 돌이라고 말하고 배치를 옮겼다. 단비의 첫 히트가 정확히 상대를 밀었다. 자기 돌도 뒤로 흘렀다. 두 번째는 힘을 줄였지만 옆으로 빠졌다.

단비가 스틱을 내려놓으며 혜주에게 물었다.

“기록에는 하나도 안 남았다고 쓰겠죠?”

“첫 돌은 상대를 치웠다고 써요. 자기 돌이 남는 항목은 따로.”

“따로 써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라온은 웃었다. 자기 영상 편집본도 한 조각만 보고 모든 일을 다 넣으려 했다. 여기서는 하나의 돌이 한 일을 나눠 볼 수 있었다. 그는 단비의 두 번째 투구에서 스틱 방향이 어디로 갔는지 묻고, 단비가 보여 주는 손목 각도를 봤다.

혜주는 정확한 드로를 두 번 넣었다.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가까웠다. 진수는 자신이 마지막에 들어갈 길이 막히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미란의 질문에 앞돌을 치우겠다고 했다. 미란은 상대 돌이 가드 뒤에 숨었다며 위치를 바꿨다. 진수가 말을 멈췄다.

라온은 바깥을 돌아 상대 돌 옆에 놓는 길을 보았다. 리드 때는 자신이 다음 사람에게 남기는 길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미 남은 길을 사용해야 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선을 그렸다. 진수가 그 선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 직접 들어가 볼래?”

라온은 미란을 봤다. 그녀는 정한 순서 안에서 한 돌씩 바꿔 던져 보자고 했다. 라온은 자기 리드 자리를 영구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연습의 마지막 한 돌을 다른 배치에서 받았다. 조금 긴장해 손이 스틱 손잡이를 더 세게 쥐었다.

첫 시도는 짧았다. 가드 옆에 멈춰 상대 돌 뒤로 들어가지 못했다. 단비가 아깝다고 말했다. 라온은 릴리스가 평소보다 빨랐다고 느꼈다. 미란은 남은 시간에 같은 배치로 한 번 더 하게 했다. 혜주가 손의 힘을 먼저 확인하라고 말했다.

라온은 손가락을 폈다 다시 쥐었다. 긴장 때문에 밀기 전부터 힘을 다 쓰고 있었다. 두 번째 돌이 움직였다. 처음보다 깊게 돌아 들어가 상대 역할 돌 옆에 섰다. 딱 붙지는 않았지만 직선으로 밀어낼 때 자기 돌도 함께 흔들릴 자리를 만들었다.

진수가 낮게 감탄했다. 단비는 자기가 좋아하는 성가신 돌이라며 웃었다. 라온은 스틱을 내려놓고 두 번째 위치를 보았다. 리드 첫돌에서 자주 맞추던 길이 아닌데 자기 손이 그곳에도 닿았다. 미란은 첫 시도와 두 번째 시도를 모두 남겼다.

스무 시에 장비를 넣을 때 혜주는 기록기를 찾느라 자기 가방을 세 번 열었다. 진수가 탁자 밑에서 찾아 주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단비는 오늘 기록도 잘했으니 기록기를 못 찾는 항목만 따로 적으라고 했다. 혜주가 그 말에 웃다가 기록기를 가슴에 붙였다.

라온은 로비에서 단비에게 휴대전화 영상을 지웠다고 말했다. 단비는 어떤 영상인지 묻고 잠깐 조용해졌다. 그런 일을 해도 오늘 바깥 드로가 짧게 간 이유를 잊지는 않겠다는 말만 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는 두 번째 돌 그림을 단체방에 올렸다.

집에 돌아와 라온은 화면을 켰다. 사고 편집본이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고, 오늘 훈련의 돌 그림이 새로 보였다. 그는 그림을 확대해 첫 번째와 두 번째 위치를 확인했다. 삭제한 것이 자신을 없앤 것 같지는 않았다. 원본 인계번호를 보관한 폴더 옆에는 다음 날 대조할 수정문구가 있었다. 내일 볼 것은 짧은 영상이 아니라 온전한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