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49화

수심 43미터의 종

끊지 않고 가져오는 것

재필은 밧줄을 보다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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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필은 밧줄을 보다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해솔은 갑판 위에서 줄을 감고 있었다. 느슨한 끝이 바닥을 스치자 재필의 어깨가 움직였다. 청람호에서 뛰어가던 통로의 기억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해솔은 줄을 멈추고 그를 봤다. 재필이 먼저 감아 놓으라고 말했다. 줄이 멈춰 있으면 자신이 그때도 멈췄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는 잠수선에 타지 않았다. 육상에서 현장 사진을 받을 예정이었다. 사고 뒤 처음으로 선박 승강구 앞까지 왔고 거기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해솔이 물을 건네자 재필은 차가운 것 말고 따뜻한 것을 달라고 말했다. 그가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일이 드물었다. 해솔은 배에서 보온병을 가져왔다.

판을 회수할 팀은 준비를 끝냈다. 전날 확인한 줄은 포장용 얇은 끈과 다른 폐어망이 겹친 것이었다. 금속판 뒤에는 넓은 포장띠가 짧게 이어졌다. 현장 책임자는 그 부분을 통째로 지지해 옮기게 했다. 사고 화물의 봉인 숫자를 읽기 위해 띠를 먼저 잘라 버리면 판이 놓인 모양을 잃었다.

우찬은 시험한 모형보다 실제 바닥의 무게를 더 믿어야 한다며 배에 올랐다. 그는 잠수하지 않았다. 갑판에서 인양 틀의 움직임과 영상 화면을 함께 보았다. 해솔은 자기 손으로 판을 잡고 올라오는 것보다 일의 속도가 느릴 것을 알았다. 그 느림을 가족에게 설명할 문장을 먼저 외우지 않았다. 오늘은 직접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보게 했다.

미례와 가족 두 사람이 방파제에서 지켜봤다. 어제 표결에 반대했던 사내도 있었다. 그는 오늘 깊은 구역으로 안 가느냐고 물었다. 미례가 현재 작업 위치를 가리켰다. 사내는 설명을 더 듣지 않고 바다를 봤다. 미례는 그의 옆에서 같은 방향을 봤다. 둘이 원하는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을 파도 위에서 숨길 수 없었다.

물속에서는 틀이 바닥에 닿기 전부터 흙이 일었다. 해솔은 가까이서 들어 올릴 생각을 접고 옆쪽 빛을 보탰다. 동료의 새 전등이 넓게 비췄다. 어제 꺼졌던 등은 갑판에 남았다. 다른 장비 하나가 들어온 덕에 오늘 한 사람의 빛이 전부가 아니었다.

틀의 한쪽이 가라앉았다. 바닥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판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지대가 비스듬해졌다. 해솔이 통신으로 멈춤을 전했다. 위에서 줄이 멎었다. 동료가 빈 바닥을 가리켰다. 낮은 암반 쪽으로 틀의 받침 위치를 옮겨야 했다. 손으로 눌러 똑바르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몸을 떼면 다시 움직였다.

해솔은 돌아올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 회수를 포기하면 틀만 올려야 했다. 미례가 방파제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마스크 안에 들어왔다. 그는 통신으로 추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말했다. 책임자는 정해 둔 한계 안의 남은 시간을 알리고 넘기면 대상물 없이 올라오라고 했다. 해솔은 알겠다고 답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손을 돌려보내는 선택이었다.

두 잠수사가 받침을 바꾸는 동안 바닥의 판은 가려졌다. 해솔은 전등을 가까이 대지 않고 부유물이 가라앉는 것을 기다렸다.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적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줄을 잡아당기는 손이 빨라지려 했다. 그는 줄을 몸 옆으로 내려놓고 통신을 들었다.

부유물이 갈라지자 판의 가장자리가 다시 나왔다. 얇은 포장띠가 틀의 안쪽으로 들어왔다. 동료가 손을 펼쳤다. 다 들어왔다는 신호였다. 해솔은 위쪽을 보았다. 수면의 밝은 원이 먼 곳에 있었다. 먼저 몸을 빼고 틀이 느리게 올라가는 것을 옆에서 확인했다. 잘린 끈 대신 판 뒤의 띠가 함께 움직였다.

그때 인양줄이 잠깐 옆으로 기울었다. 해솔은 틀을 잡으려던 손을 접었다. 큰 물건을 자기 몸으로 곧게 만들면 줄의 당김이 팔에 들어왔다. 갑판에 멈춤을 알렸다. 줄이 느슨해지기 전에 틀은 제자리에서 흔들렸다. 수면 위에서 작업선이 바람을 받았다는 답이 왔다. 해솔은 틀 바깥의 거리를 유지하고 기다렸다. 동료가 자기 쪽으로 오려 하자 손을 펴 보였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각자 같은 물건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안전한 순간이었다.

물속에서는 몇 초가 유난히 길었다. 판이 빠져나갈 것 같은 마음에 손을 내밀 때마다 해솔은 틀의 받침을 보았다. 받침이 판을 받았다. 자기 손이 그 자리를 빼앗을 필요는 없었다. 위에서 선박 위치를 조정했고 줄은 다시 수직으로 섰다. 틀이 조금 올라갔다. 동료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해솔은 그제야 뒤로 물러났다. 몸을 끌어올리는 줄과 물건을 끌어올리는 줄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갑판 아래에서 바라본 하늘은 잘린 흰 종이처럼 보였다. 해솔은 밝은 쪽을 오래 보지 않고 귀환선을 확인했다. 올라오면 미례에게 무엇부터 말할지 생각했다. 번호를 찾았다는 말보다 오늘 틀이 흔들렸고 멈췄다는 이야기가 먼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가족이 또 얼마나 불안해할지 알았다. 해솔은 말을 고르는 일을 물 밖의 자신에게 남겼다. 지금은 옆의 동료와 함께 올라갈 시간이었다.

갑판에 틀이 닿았을 때 모두 손을 멈췄다. 갑자기 큰 발견처럼 박수를 칠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줄을 잡고 누군가는 틀을 고정했다. 해솔은 올라와 마스크를 벗었다. 우찬이 물을 주었다. 번호는 아직 젖은 침전물 아래였다. 그것을 손으로 문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보관팀이 받아 표면을 촬영했다. 빛을 바꾸어 읽은 글자는 1874였다. 끝의 74라는 후보가 앞의 두 숫자와 이어졌다. 판 뒤의 포장띠에는 같은 계열의 봉인 자리가 남았다. 청람호 위험화물의 포장이 있던 위치에서 떨어져 나온 판이라는 연결이 보다 단단해졌다. 해솔은 재필에게 사진을 보내지 않고 먼저 우찬에게 말했다. 그가 옛 기억으로 번호를 알아봤다고 쓰지 않도록 현재 물건의 확인을 따로 남겨야 했다.

미례는 사진을 받고 가족에게 보여 줬다. 반대했던 사내는 판을 오래 봤다. 이것 때문에 오늘 사람을 못 찾은 것이냐고 물었다. 미례는 같은 배를 어떻게 배정했는지 설명하려다가 사내의 손을 보았다. 휴대전화 모서리를 너무 세게 쥐고 있었다. 그는 번호를 읽으려는 게 아니라 바다에서 사람 대신 돌아온 것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이게 왔어요.”

미례가 말했다.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왜 이것이 중요하냐고 묻지 않았다. 중요해도 자기 사람이 아니었다. 미례는 휴대전화를 거두었다. 사내에게 기뻐하라고 할 수 없었다. 대신 오후 수색 배가 움직이는 쪽을 함께 봤다.

육상 대기실에서 재필은 따뜻한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해솔이 젖은 머리로 들어오자 그의 얼굴이 풀렸다. 판을 건졌냐고 물었다. 해솔이 그렇다고 하자 재필은 그 판을 자기가 예전에 보았다고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우찬이 어떻게 기억하는지 듣겠다고 했다. 재필은 숫자가 아니라 찬 금속이 팔에 닿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로에서 사람과 부딪혔을 때 손등에 금속이 스쳤다. 사진의 물건이 그 금속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해솔은 자신의 손목에서도 차가운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붙잡은 재필의 팔이 그랬다. 하지만 그 감각으로 누가 무엇을 들었는지 정할 수는 없었다. 재필은 사진을 보지 않은 채 자기 말만 적어 달라고 했다.

우찬의 전화가 울렸다. 동해자원 창고의 취소 초안 원표가 도착했다. 작성 시각은 최종 선하증권 승인보다 앞이었다. 초안에는 처리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목적지로 돌린다고 적혔지만 발송기록이 없었다. 창고 직원은 취소됐다는 안내를 전화로 받았다고 했다. 실제 전화 날짜는 휴대전화 청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재필은 전화라는 말을 듣고 컵을 내려놓았다. 사고 전 누군가가 자신에게 화물 목적지가 바뀌었으니 안내판만 수정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해솔은 그 말이 왜 지금 나오는지 묻지 않았다. 재필의 얼굴에 그 질문을 기다리는 두려움이 있었다. 우찬은 무엇을 수정했는지 먼저 물었다.

“종이에요. 선실 앞 화물 안내 종이. 도착지 칸만.”

재필은 자기 수첩에 당시 받아 적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수첩은 집에 있었고 젖은 페이지를 말려 놓았다. 해솔은 오늘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다. 재필이 스스로 가져오겠다고 말하자 내일 육상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 그의 몸이 승강구 앞까지 왔다는 사실을 다시 시험할 필요는 없었다.

저녁에 해솔은 장비를 씻었다. 금속판은 보관팀 차량으로 떠났다.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젖은 줄이었다. 그 줄을 감으며 아침 재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멈추지 말고 감아 놓으라고. 오늘은 실제로 멈춰야 판도 함께 올라올 수 있었다. 그 차이를 재필에게 설명하고 싶다가 하지 않았다. 재필이 자기 밤에서 멈추는 법을 다시 찾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미례가 장비실에 와서 반대했던 사내의 이름 대신 작은 봉지를 놓았다. 그가 사 온 빵이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라는 것은 아니고 가족들이 남긴 것이라고 했다. 해솔은 한 개를 집었다. 축축한 손이라 봉지를 열기 어려웠다. 미례가 옆을 찢어 주었다. 그는 빵을 먹고서야 아침부터 배가 비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찬은 취소 초안과 최종 승인 사이의 시간을 같은 종이에 놓았다. 아무도 발송하지 않은 문서가 실제 목적지 변경과 맞닿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누구도 하지 않았다는 말 뒤에 작은 전화와 한 사람의 안내판 수정이 있었다. 그는 내일 물을 세 개의 질문을 적었다. 전화 건 사람, 전달한 말, 실제 종이를 바꾼 시각. 그 아래 오늘 회수한 1874 판의 인계번호가 들어갔다. 바다와 육상에서 돌아온 서로 다른 물건들이 처음으로 같은 날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