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48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첫날의 깃발

현수막을 들고 온 직원은 기념사진을 찍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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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을 들고 온 직원은 기념사진을 찍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만석은 그에게 장비차 길부터 비켜 달라고 했다. 직원은 잠깐만 펴 보겠다고 했지만, 긴 천을 잡고 서 있는 두 사람이 이미 통행선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작업 책임자가 손을 들어 반입을 멈췄다. 엔진 소리가 낮아지고, 기다리던 작업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가람은 천에 적힌 문구를 읽었다. 깨끗한 바다로 돌아가는 날. 첫 작업을 시작하는 아침에 달기에는 너무 먼 문장이었다. 직원은 회사가 자기 비용으로 마련한 것이니 정화 계정과는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돈을 어디서 썼는지하고, 오늘 무엇을 했다고 보이는지는 다릅니다.”

가람이 말했다. 만석은 그 문구를 빨리 읽지 않았다. 끝까지 읽고 나서 오늘 바다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직원은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은실이 식사 상자를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돌아가는 날이면 우리 가게도 세 명 다 왔어야겠네요. 어제 둘 왔어요.”

직원은 무슨 뜻인지 몰라 웃지 못했다. 가람은 현수막을 접고 우선 통로를 열어 달라고 했다. 담당자는 사진 일정도 조정하겠다고 했다. 작업 책임자가 다시 차를 들였다. 기다린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돈이 들어온 다음에도 시작을 막는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었다.

오늘의 작업 구역은 제한돼 있었다. 장비가 들어가고 회수할 자리를 정비한 뒤, 허가된 범위에서 필요한 처리를 시작했다. 다온은 입회자들에게 지금 하는 일과 오늘은 하지 않는 일을 설명했다. 만석은 앞사람 등에 가려 잘 안 보인다며 옆으로 움직이다가 표시선 앞에서 멈췄다.

재문이 자기 자리를 내줬다. 만석은 됐다며 그 옆에 섰다. 두 사람은 며칠 전 빈 창고에서 틀을 옮길 때처럼 자세를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직접 손을 댈 물건이 없었고, 어디에 서면 서로 볼 수 있는지를 찾아야 했다.

첫 작업 설명이 끝날 무렵 업체 담당자가 가람을 찾았다. 당초 계획에 넣어 둔 회수 용기 중 일부가 늦게 들어와 대체 용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가람은 자신이 기술적으로 승인할 수 없다고 했다. 다온과 현장 책임자에게 함께 묻고,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만석이 그 말을 듣고 예산을 누가 승인하느냐고 물었다. 기술적으로 쓸 수 있다는 판단과 그 돈을 지정 계정에서 지출해도 된다는 확인은 또 달랐다. 전날 정한 항목 범위 안에서 대체 가능한지, 추가 비용이 생기는지 먼저 업체가 정리했다.

회사 담당자는 같은 목적으로 쓰는 승인 범위 안에서 추가 금액이 없다고 답했다. 현장 책임자는 실제 용기를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온도 시료와 회수물을 섞지 않도록 구분이 유지되는지 봤다. 가람은 그 확인을 기록했다. 만석이 몰라서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술 책임이 만석에게 옮겨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도장 찍으면 다 되는 줄 알았지.”

만석이 말했다. 다온은 실제로 어떤 돈이 쓰이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만석은 그 말에 위로받는 대신 목록을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자기가 알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목록 아래에 어제 다시 논의하기로 한 설명회 영상 제작비가 남아 있었다. 가람은 그 항목을 보류로 표시했다. 주민에게 작업을 설명하는 자리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의 내용과 비용, 결과물을 누가 쓰는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기념 현수막은 오늘의 기술 작업비에서 빠졌다.

회사 직원은 설명회를 미루면 주민들이 더 불신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만석은 자기들이 지금 설명을 듣고 있다는 사실부터 보라고 말했다. 다온은 오후에 정해진 시간에 작업 결과를 설명하기로 했다. 회사 홍보 영상이 없어도 질문할 자리는 만들 수 있었다.

점심을 앞두고 은실의 식사 상자가 열렸다. 작업자들은 먼저 손을 씻고 지정한 자리로 이동했다. 은실은 밥을 더 퍼 달라는 사람에게 오늘은 정해진 수량이 있다고 했다. 내일도 이만큼 먹고 싶으면 주문할 때 알려 달라고 덧붙였다. 업체 담당자가 웃으며 그 말을 받아 적었다.

만석은 작업자 한 명의 얼굴을 알아봤다. 마을 회관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 이야기를 하던 날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별도 업체의 작업을 지원하러 나왔다고 했다. 만석은 같은 회사 작업자가 정화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가 맡은 일은 장비 점검 지원에 한정된다고 설명했다.

만석은 그에게 모든 일을 묻지 않았다. 대신 식사가 괜찮냐고 물었다. 작업자는 입에 든 것을 삼키고 은실을 봤다. 은실이 왜 자기 얼굴을 보고 대답하느냐고 하자, 그는 맛있는데 더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은실은 남는 두부는 주되 내일 주문 수는 책임자와 정하라고 했다.

가람은 그 장면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금 서로 웃을 수 있는 것과 과거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다르지만, 웃지 말아야 책임을 묻는 관계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만석은 작업자의 이름을 물어봤고, 은실은 자기 식당 이름을 손가락으로 보여 줬다.

오후 작업 중 작은 문제가 생겼다. 회수물 이동 차량의 진입 시간이 다른 납품차와 겹쳤다. 담당자 하나가 뒤쪽 좁은 길로 먼저 돌려 보자고 했다. 현장 책임자가 그 길은 계획에 없다고 막았다. 가람은 또 누군가가 전화할 사람을 찾아 헤매는 동안 시간이 흘러갈까 봐 만석을 봤다.

만석은 먼저 나서지 않았다. 책임자가 기존 경로의 차량 순서를 조정하는 동안, 주민 구역 사람들이 앞으로 몰리지 않게 재문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이곳의 작업을 자기 부두 일처럼 지휘할 수는 없었다. 가람은 그가 할 수 있는 일만 골라 하는 것을 보고 다온에게 다음 설명 시간을 확인했다.

차량은 정해진 경로로 들어왔다. 업체 담당자가 지연 시간을 기록했고, 추가 대기 비용을 누구의 잘못으로 처리할지는 작업 뒤 확인하기로 했다. 일단 돌아가는 차량을 세워 임시로 새로운 책임을 정하지 않았다. 긴급 작업을 빨리 하자는 말이 계약을 아무렇게나 바꿔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재문은 기다리다가 정미에게 전화를 했다. 빌린 공간을 더 쓰게 되면 다음 주에 필요한 물건만 남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미는 저녁에 같이 보자고 했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물건을 다시 들일 자리가 있어야 했다. 재문은 알겠다고 답하고 일단 가져갈 상자의 번호를 적었다.

만석이 그에게 아직 필요한 것도 버리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재문은 버리자는 게 아니라 공간을 빌리는 사람도 계획을 세우자는 것이라고 했다. 만석은 조용해졌다. 바다가 멈춘 뒤 재문이 이렇게 먼저 제안하는 모습을 한동안 못 봤다.

약속한 설명 시간에 다온이 작업 결과를 보여 줬다. 오늘 확보한 것은 첫 구역의 제한된 처리와 회수 기록이었다. 물이 잠깐 맑아 보인다는 질문에는 조위와 다른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고 답했다. 오늘 작업 한 번으로 조개가 살아 돌아오거나 전체 어장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만석은 그래도 눈으로 보니 기분이 다르다고 했다. 다온은 그 말은 막지 않았다. 기분을 과학적 결과라고 바꾸지만 않으면 됐다. 만석은 옆 사람에게 내일부터 조업이 된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직접 설명했다. 가람이 대신 말하기 전에 나온 답이었다.

회사 직원은 마지막에 단체사진을 다시 제안했다. 만석은 오늘 작업자들의 기록을 남기는 사진은 괜찮지만, 주민들이 들어가 손을 잡는 사진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재문도 같은 의견이었다. 다른 주민 한 명은 자신은 사진에 나와도 된다고 했다. 서로의 선택을 대신 정하지 않고 각각 확인했다.

현수막은 끝내 펴지지 않았다. 직원은 천을 접어 차에 실었다. 다온은 다음 작업 설명을 누구에게 언제 요청하면 되는지 연락처를 남겼다. 은실은 빈 식사 상자를 세고, 맡긴 채 돌아가면 내일 모자란다며 업체 담당자에게 반환 시간을 물었다.

저녁에 가람은 첫날 집행 내역을 확인했다. 승인한 비용과 보류한 비용이 다른 칸에 남아 있었다. 업체는 실제 투입한 인원과 장비 시간을 제출했다. 회사 담당자가 넣은 홍보비는 별도 계정으로 처리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화 계정에서 나간 것은 아니었다.

채린이 오늘의 내역을 받아 보고 한 항목의 산정 근거를 더 요청했다. 가람은 그녀가 우선 비용을 집행한 뒤에도 확인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처음 승인한 범위까지 다시 없던 일로 만들려는 질문인지는 따로 봐야 했다. 채린은 작업 일지와 견적의 시간 차이만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려는데 채린이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보험사 내부에서 당시 현장검사를 직접 하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때 회사가 제출한 완료 회신은 있었지만, 검사를 예정했다가 생략한 내부 판단의 근거도 따로 남아 있었다.

가람은 파일을 보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채린은 제출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회사의 잘못을 가리는 동안 자기 쪽의 판단도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람은 오늘 첫 작업에서 접힌 현수막을 떠올렸다. 돈을 먼저 보낸 것만으로 이후의 질문을 끝낼 수는 없었다.

밖에서는 은실이 식당 간판의 등을 켰다. 점심 주문이 있었다고 저녁 손님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재료가 남아도 내일 쓸 계획이 있었다. 만석과 재문은 정미 가게에서 상자를 꺼내 각자 차에 실었다. 가람은 손을 보태다 넥타이를 셔츠 안에 넣었다.

재문이 이번에는 알아서 한다며 웃었다. 정미는 남은 상자만 다시 배치한 뒤 새로 합의한 연장 기간과 비용을 장부에 적었다. 모두가 무기한 기다리는 대신 이번 주에 정할 수 있는 것을 정했다.

가람의 휴대전화에 보험사 문서 제출 예정 목록이 도착했다. 첫 줄에는 현장검사 생략 결정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회사 완료 회신을 검토한 기록이 붙어 있었다. 두 문서가 같은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