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음악 고딕 미스터리 48화

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오른손이 없던 줄

임규진은 베이스를 가져오지 않았다. 빈손이 낯설어 보였다.

글자 크기

임규진은 베이스를 가져오지 않았다. 빈손이 낯설어 보였다.

그가 들고 온 것은 작은 메트로놈이었다. 태오는 회의실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보고 공연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규진은 말로 박자를 세면 자신이 자꾸 빨라진다고 했다. 오늘 들을 것은 공식판과 리허설 테이프의 보존 사본이었다. 원본 원반은 수장고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규진은 가방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무릎에 비볐다. 탁자에는 자기 수령표도 있었다. 그것을 낸 뒤 연주를 들으면 예전처럼 좋은 소리만을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태오는 의자를 조금 뒤로 빼 줬다. 규진이 고맙다고 했으나 앉지는 않았다. 그는 첫 파일의 이름을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의자에 몸을 놓았다. 자기 기억이 소리보다 앞서 달려가지 않게 하려는 늦은 움직임이었다.

메트로놈이 두 번 울린 뒤 멎었다. 규진이 끄는 손을 태오가 보았다. 수인의 마지막 합주를 이야기할 때도 그 손은 무언가를 세었다. 오늘은 조급해질 때 멈출 수 있도록 탁자에 놓인 물건이었다.

이솔은 악보 초고와 공식판의 연주자 표를 펼쳤다. 수인의 카덴차가 들어갈 자리는 잘려 있었고 공식판의 피아노 기여는 윤태문 명의로 묶였다. 이름을 감춘 보호판의 47초와 시장에 나온 음반 전체는 같은 물건이 아니었다. 노을은 사본의 파일 정보를 확인하고 볼륨을 낮췄다.

첫 음이 나왔다. 규진은 눈을 감았다. 낮은 베이스가 받치는 동안 오른쪽에서 건반이 짧게 내려왔다. 그는 손가락을 탁자에 놓았다. 하나, 둘. 세 번째에서 손이 멎었다. 이솔이 재생을 정지하지 않고 조금 더 들려줬다. 왼쪽 현의 잔음과 오른쪽의 짧은 건반이 서로 다른 속도로 사라졌다.

“여기서 내가 빨랐어요.”

규진이 말했다. 태오는 오래된 연주에서 실수를 찾아낸 것이 뜻밖이었다. 규진은 피아노를 자기 박자에 맞추려다 반 박자 먼저 들어갔다고 했다. 수인이 건반을 늦게 놓아 그 실수를 가렸다. 그는 그때 자신이 잘 연주한 줄 알았다.

리허설 사본에는 같은 지점에서 베이스가 더 일찍 끊겼다. 공식판에는 남은 건반이 그 빈곳을 이었다. 다른 편집이 들어갔는지, 다른 테이크인지 조사할 부분은 있었지만 규진은 지금 그 답을 만들지 않았다. 자기가 어떤 손을 기다리지 않았는지 먼저 말했다.

“그때 나는 저게 늘 있던 소리인 줄 알았어요.”

이솔은 재생을 멈췄다. 방 안에 공조 소리가 돌아왔다. 규진은 메트로놈을 켜지 않았다. 태오는 소리가 멎고 나서야 탁자 옆 인세 장부의 한 줄을 보았다. 피아노 참여 몫이 윤태문 계정으로 기입된 항목이었다. 누가 들으면 수인의 연주가 아예 없는 음반처럼 돈이 정리돼 있었다.

혜주가 별도 정산합의서를 가져왔다. 제작실이 밴드 구성원에게 판매분 정산을 약조한 문서였다. 연주자 몫은 저작자 몫과 다른 칸에 적혔다. 태오는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작곡 저작권까지 자동으로 돌려달라는 의견을 쓰려던 펜을 거뒀다. 합의서가 약조한 금액과 실제 지급부터 계산할 수 있었다.

확인 가능한 첫 판매분은 천팔백 장이었다. 제작은 이천 장이고 나머지 이백 장에는 홍보와 보관, 반품의 구분이 있었다. 실제 판매라고 적힌 천팔백에 장당 이백 원을 곱하면 삼십육만 원. 태오는 계산기를 눌렀고 규진이 종이에 따로 곱했다. 두 답이 같았다.

피아노 참여자에게 지급한 줄은 없었다. 제작실 내부 계정에 합산된 돈만 있었다. 규진의 몫에는 수령 확인이 남았고 드러머 선호의 몫에도 있었는데 미상 연주자 P에 해당하는 몫은 윤태문 이름 아래로 들어갔다. 수인의 전체 수익을 오늘 그 한 숫자로 끝낼 수는 없었다. 첫 표본만으로도 보전해야 할 실제 몫 하나가 나왔다.

규진은 자기 수령표를 보자 손을 거뒀다. 돈을 받은 기억은 있었다. 다만 수인도 받은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하면 자신의 눈이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는 메트로놈을 만지다가 이솔에게 말했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 말은 들고 온 물건보다 무거웠다. 이솔은 그가 당시 모든 계정을 볼 권한이 없었겠다고 대신 변명하지 않았다. 규진이 받은 돈과 묻지 않은 행동은 그가 직접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당시 주소를 내놓으려 했지만 태오가 정산의 관련 서류만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의 삶 전체를 과거 값으로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전화로 참여한 선호는 조용했다. 드럼을 치며 셌던 마흔일곱 박자와 실제 47초를 혼동하지 말자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인세 장부에서 자기 이름 옆 빈칸을 보고 말을 못 했다. 통화 너머로 그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수인이 가면 우리 돈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선호가 말했다. 규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생각까지 들었냐고 물으려 했으나 이솔이 먼저 말을 보탰다. 지금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것과 실제 지급 지시를 한 것은 다르게 남겨야 했다. 선호는 알겠다고 했다. 자기 생각 때문에 수인이 더 말 못 했던 순간이 있는지 기억을 더 해 보겠다고 했다.

태오는 그 대화를 녹음하지 않았다. 정산확인 회의에 필요한 답은 합의서와 수령표로 남았고 개인이 자신을 돌아보는 말은 따로 허락을 받아야 했다. 선호가 통화 끝에 그 이야기를 공개 인터뷰에 넣지 말아 달라고 하자 이솔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규진도 약속했다.

오후에 태문이 제작실의 다른 정산표를 보냈다. 피아노 몫은 제작비 선지급과 상계했다는 설명이었다. 수인이 빚을 졌다는 말과 닮은 구조였다. 태오는 선지급 자료를 달라고 했다. 전날 양도금에서 본 내부 계정 이체가 다시 제시됐다.

“또 같은 돈입니다.”

혜주가 말했다. 태오는 금액과 날짜를 나란히 보았다. 양도대금이라고 낸 결의서가 오늘은 선지급 보수의 근거로 쓰였다. 한 계정의 한 이체를 서로 다른 약조의 지급으로 두 번 읽을 수는 없었다. 담당자가 통화에서 자기 판단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태문 쪽 답변이 바뀐 것이었다.

태오는 자기 보고서에 표본의 숫자를 적었다. 천팔백 장, 장당 이백 원, 삼십육만 원. 피아노 참여 몫의 지급 확인 없음. 전체 판매와 방송 사용료는 더 대조해야 했다. 큰 손해액을 먼저 발표하면 금액의 일부가 틀렸을 때 확인된 한 몫까지 같이 흐려질 수 있었다.

혜주는 해당 표본 몫을 미상 연주자 P 관련 보전액으로 묶는 요구를 정산 당사자들에게 보냈다. 내부 일반 제작비로 다시 쓰는 것을 막으려는 요청이었다. 실제 계정의 분리와 당사자의 승인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필요했다. 이날 저녁 제작실은 분쟁 중인 관련 정산액을 별도 대기시키겠다는 서면을 보냈다. 태문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해 준 답은 아니었다.

규진은 그 서면을 읽고 눈을 감았다. 수인을 찾아 전화해 미안하다고 말하면 속이 편해질 것 같았지만 그는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받은 정산표를 원본으로 내고, 참여자 몫의 빈칸을 모른 척하지 않는 것이었다.

문주는 늦게 왔다. 그는 공식판 소리가 들리자 문앞에서 멈췄다. 규진이 자기 박자 실수를 설명하자 문주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 실수 때문에 수인이 리허설에서 눈을 흘겼다고 기억했다. 오래된 네 사람의 합주가 갑자기 누군가의 잘못을 밝힐 장치가 아니라 서툰 사람들이 서로 맞추던 음악으로 돌아왔다.

이솔은 파일을 다시 재생하지 않았다. 문주가 들을지 직접 고르도록 했다. 그는 오늘은 안 듣겠다고 말했다. 대신 악보 초고의 카덴차 자리만 보았다. 손을 완전히 떼던 수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주는 흰 칸을 쓰다듬으려다가 악보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이거 지워 버리면 덜 다치지 않을까요?”

그가 말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무음이 오랫동안 수인을 가두는 이야기로 쓰인 것이 싫었다. 그 기록이 아예 없어지면 남들이 더는 마음대로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이솔은 곧바로 설득하지 않았다. 문주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끝까지 들었다.

문주는 자기가 듣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빈 소리에서 찾고 있었다고 했다. 수인을 지키려는 사람들까지 그 빈칸에 자신의 후회를 넣었다. 오늘 그 이름 아래 돈을 보전한다는 말을 듣고도 원본이 남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없어졌으면 편하겠죠.”

문주가 말했다.

“수인이 편할지는 모르지만.”

규진은 메트로놈을 껐다. 이미 꺼진 물건이었는데 스위치를 다시 내리고 있었다. 태오는 손을 잡지 않았다. 세 사람은 자신에게 편한 행동을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 부르던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혜주는 다음날 원본과 공개판의 처리 범위를 함께 보자고 했다. 물리 원반을 없애는 일과 공개 음원을 내리는 일, 돈의 몫을 보전하는 일은 맡는 사람도 달랐다. 문주는 그 방에 오겠다고 했다. 파기부터 해 달라는 부탁을 넘겨주지 않은 것이 오늘의 작은 선택이었다.

규진이 메트로놈을 가방에 넣었다. 문주가 한 번 들려 달라고 했다. 규진은 일정한 박자로 켰다. 둘은 그 박자에 맞춰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태오도 따라 하다가 한 박자 늦었다. 문주가 그를 보고 웃었다.

“오늘은 피아노가 가려 주지 않네요.”

태오는 웃으며 손을 멈췄다. 누구도 그 실수를 비싼 원반에 담지 않았다. 틀려도 다시 맞출 수 있는 음악의 시간이 작은 회의실에 남았다. 탁자 끝의 장부에서는 미상 연주자 P의 정산액 한 줄이 더는 윤태문 이름 밑에 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