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돈이 닿는 자리
회관의 접수 탁자 위에서 가람은 서명란 두 개를 발견했다.
회관의 접수 탁자 위에서 가람은 서명란 두 개를 발견했다.
첫 번째는 지원을 받았다는 확인이었다. 두 번째는 향후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문장이었다. 담당 직원은 아직 배부 전인 초안이라고 했다. 가람은 정말 배부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직원이 접수 명부를 펼치는 동안 만석은 문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안으로 들였다.
오늘 돈을 받는 날이냐고 묻는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가람은 대답을 늦췄다. 이 종이 하나를 잘못 읽으면 사람들이 오늘 필요한 돈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손실을 한꺼번에 맞바꾸게 될 수 있었다. 초안이라는 말만으로 탁자에 놓인 것이 안전해지지는 않았다.
“지원 항목하고 포기하라는 항목의 범위가 다릅니다.”
직원은 회사 양식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했다. 가람은 그에게 잘못을 모두 돌리지 않았다. 양식을 정한 담당자와 통화하자고 했다. 직원은 번호를 찾으며 지금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말했다. 가람은 자기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문제를 묻지 말라는 이유로 쓰지는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만석이 가람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목소리가 너무 높아지면 직원이 종이를 모두 들고 가 버릴까 걱정된다고 했다. 가람은 숨을 고르고 직원에게 앉으라고 했다. 자신도 의자를 당겨 앉았다. 문밖에서 보던 재문이 안으로 들어와 펜들을 한쪽에 모았다.
“다들 서 있는 건 돈이 빨리 들어오는 데 도움이 안 되더라고.”
재문의 말에 몇 사람이 웃었다. 웃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오늘 받지 못하면 병원에 가는 날짜를 미뤄야 한다는 주민은 종이만 보고 있었다. 가람은 그 사람의 필요를 끝난 합의처럼 적을 수 없었다. 직원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고 스피커를 켤지 물었다.
가람은 주변 주민 개인정보가 들릴 수 있으니 일단 자기와 이야기하자고 했다. 통화 끝에 양식을 수정해서 다시 보내겠다는 답을 받았다. 돈의 지급 범위는 당초 정한 긴급 항목에 한정하고, 확인 문장도 그 지급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한정하기로 했다. 최종 손해 청구가 사라졌다는 표현은 빼기로 했다.
직원은 새 파일이 와야 접수를 이어 갈 수 있다고 했다. 가람은 지금까지 누구에게 양식을 줬는지 목록을 확인했다. 두 사람에게 설명용으로 건넨 적이 있었지만 서명된 것은 없었다. 그 둘에게도 연락했고, 직원이 직접 새 설명을 했다. 가람은 통화를 끝낸 뒤 만석의 손이 언제 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했다.
오전의 다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창구가 다시 열렸지만, 정화 작업에 필요한 돈은 별도였다. 현장 업체는 첫 자재를 주문할 비용이 확정돼야 시작 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보험사 검토를 기다린다는 답이 왔고, 보험사에서는 회사 내역을 기다린다는 답이 왔다.
가람은 양쪽에 같은 통화를 제안했다. 서로의 말을 전달하는 동안 하루가 사라질 수 있었다. 채린은 들어오겠다고 했고 회사 담당자도 시간을 맞췄다. 다온은 작업 범위 설명을 위해 동석했다. 주민 대표로 만석이 앉았지만, 그가 주민 모두의 최종 손해를 합의하러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확인했다.
첫 질문은 단순했다. 현재 격리를 유지하는 비용과 다음 유입을 줄이기 위한 제한된 작업에서, 지금 다투지 않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다온은 해야 할 일과 아직 조사 뒤에 정해야 할 일을 나눠 설명했다. 갯벌을 전부 파내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재판부가 허용한 범위와 안전 계획 안에서 필요한 작업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회사 담당자는 보험금이 나오면 지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람은 회사가 현재 위험을 관리하는 데 쓸 수 있는 재원을 다시 물었다. 담당자가 준비한 예산 중 일부가 유지 비용으로 묶여 있다고 했다. 그것을 실제 집행할 결재가 어디에 있는지도 물었다.
채린은 검토 가능한 비용 중 일부를 우선 분리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최종 담보를 인정하거나 회사의 추가 부담을 없앤다는 뜻은 아니었다. 만석은 그런 단서가 붙으면 아무것도 된 게 없다는 얼굴을 했다. 가람은 단서가 붙어도 돈이 실제로 들어오면 할 수 있는 일을 정해 두자고 말했다.
다온이 화면에 현장 작업 순서를 띄웠다. 첫 작업은 준비된 회수 장비와 이동 통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작업자들의 출입과 보호 장비, 시료 보존 자리도 필요했다. 만석은 사람들이 흙을 삽으로 퍼내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가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입회하고 설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기술 작업을 대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온이 답했다. 만석은 다시 묻지 않았다. 가람은 그 침묵에 실망과 안도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느낀 사람에게 직접 삽을 드는 일이 가장 확실한 참여처럼 보일 수 있었다.
오후에 회사 쪽에서 첫 집행분 결재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가람은 결재서만 받고 주민들에게 돈이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정한 별도 비용 계정으로 송금했다는 확인과 실제 입금 내역이 필요했다. 담당자는 은행 처리가 진행 중이라며 곧 연락하겠다고 했다.
은실은 그 소식을 듣고 식사 견적을 만들었다. 아직 주문을 받았다고 하지는 않았다. 몇 명이 며칠 먹을지, 첫날 언제 가져가야 할지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가람이 그 요청을 현장 업체에 전하자 업체 담당자는 일정이 확정되면 직접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럼 그 사람이 나한테 하세요. 변호사님이 밥 수를 세지 말고.”
은실의 말에 가람은 웃었다.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곧 현장 담당자가 은실에게 전화를 했고, 가람의 휴대전화에서는 더 이상 반찬 수량을 묻는 알림이 오지 않았다. 일을 맡을 사람과 주문할 사람이 직접 만난 것은 작은 변화였다.
해안에 내려갔을 때 장비차 두 대가 들어와 있었다. 아직 본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책임자가 준비된 장비와 안전 통로를 확인했다. 만석이 가까이 가려다가 멈췄다. 통행선을 먼저 보고 싶다는 다온의 손짓을 알아본 것이었다.
재문은 어민들이 서 있을 자리를 물었다. 업체 담당자는 입회 구역과 이동 경로를 설명했다. 재문은 그 구역이 너무 멀다며 불평했다. 다온은 잘 볼 수 있는 설명 시간을 따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사람을 위험한 장비 가까이에 세우는 대신, 멀리 서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도 만들지 않자는 것이었다.
만석은 그 자리에서 업체 책임자에게 시료를 어디에 두는지 물었다. 책임자는 정해진 보관 구역을 보여 줬다. 그 설명이 끝났을 때 만석은 가람이 아니라 다온에게 다음 질문을 했다. 가람은 한발 뒤에 섰다. 자신이 모든 말의 가운데 서 있을 필요는 없었다.
회사 입금 확인은 그때 도착했다. 가람은 별도 계정의 실제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업체 책임자에게 연락했다. 채린도 보험사에서 우선 집행하기로 정리한 일부 비용의 처리 상태를 보내 왔다. 그 돈은 아직 송금 중이었다. 가람은 두 상태를 같은 칸에 넣지 않았다.
업체는 회사의 첫 입금으로 준비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답했다. 추가 집행이 필요해지는 시점 전에 다음 돈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만석은 가람에게 이번에는 된 것이냐고 물었다. 가람은 지금 시작할 비용이 실제 들어왔고, 시작 시간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다 끝난 건 아니고요.”
“그 말은 이제 알아.”
만석이 답했다. 하지만 얼굴은 아침과 달랐다. 그가 원하는 것은 큰 문장 하나가 아니라, 오늘 말한 일이 오늘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장비차의 책임자가 내일 첫 작업 시간을 적었고, 만석은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같은 시간을 넣었다.
회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험사 우선 집행분도 실제 입금됐다는 확인이 왔다. 가람은 은행 내역을 대조한 뒤 회사 돈과 보험사 돈을 각각 기록했다. 어느 돈으로 어느 비용을 쓰는지 다음 확인 때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따로 마련한 계정이라고 해서 저절로 올바르게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은실은 현장 업체의 첫날 주문을 받고 필요한 만큼만 장을 보러 갔다. 가람은 그녀가 거래처에 전화하면서 주문을 반복해 확인하는 모습을 봤다. 선결제하기로 한 첫 식사분도 실제 입금됐다. 은실은 통장 알림을 가람에게 자랑하지 않았다. 냉장고 안의 빈칸을 보고 재료를 어디에 놓을지만 생각했다.
재문은 수리집 주인에게 맡긴 틀을 찾는 시간을 확인했다. 당장 조업이 재개된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찾기로 한 날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정미에게는 빌린 공간의 남은 기간을 물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다시 상의해야 했다. 가람은 이미 반입한 상자를 무료로 더 둘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미는 오늘 창구의 새 양식을 확인하고 자기 것을 접수했다. 딸에게 보여 줄 문장은 마지막 한 줄만 골랐다. 지급 범위가 무엇인지 적힌 부분이었다. 딸은 이제 냉장고가 다 차느냐고 물었다. 정미는 그렇지는 않지만, 비어 있는 동안 무엇을 둘지는 자신이 정한다고 답했다.
그날 저녁 가람은 첫 비용 집행 목록을 받았다. 장비 반입, 보호 장비, 현장 인력, 식사. 그 뒤에 설명회 영상 제작과 기념 현수막이라는 항목이 붙어 있었다. 금액이 크지는 않았지만, 정화 비용으로 마련한 돈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가 첫날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가람은 업체가 아니라 회사 담당자에게 항목의 출처를 물었다. 담당자는 주민 설명이 필요해 넣은 것이라고 했다. 설명과 기념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가람은 다음 날 본작업이 멈추지 않도록 승인할 항목과 다시 논의할 항목을 분리해 달라고 했다.
만석에게 작업 시작 시간을 다시 확인하는 문자를 보내고, 가람은 홍보비 항목 옆에 선을 그었다. 오늘 어렵게 도착한 돈이 처음부터 다른 길로 새게 둘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