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없는 무게를 찾는 날
바람이 잦아든 아침, 미례는 방파제 끝까지 걸었다.
바람이 잦아든 아침, 미례는 방파제 끝까지 걸었다.
해솔은 배 위에서 손을 들었다. 어제 찍은 금속판을 다시 보려면 줄이 걸린 자리 바깥으로 돌아가야 했다. 현장 책임자는 두 명이 함께 들어가자고 했다. 미례는 두 사람의 장비가 물에 잠기는 동안 손을 흔들지 않았다. 손을 흔들면 보지 못할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바닥에는 어제보다 맑은 빛이 들었다. 해솔은 줄을 따라가다 판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옆 잠수사가 바닥을 건드리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빛을 비췄다. 금속판의 앞면에는 글자 일부가 있었다. 해솔은 판을 들어 보지 않았다. 뒤쪽이 다른 줄에 연결돼 있을 수 있었다.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위치를 표시했다.
올라온 뒤 해솔은 미례에게 먼저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보여 줬다. 미례는 자신이 그렇게 기다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봤어요?”
“글자 일부요. 배 위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태블릿 화면에서 판의 숫자 끝은 ‘74’처럼 보였다. 1874의 끝일 수도 있고 다른 표지일 수도 있었다. 우찬은 확대를 멈췄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그날 오후 보관장 계근 자료가 도착했다. 1874 계열로 회수한 포장들의 합계는 12.4톤이었다. 당초 확인된 실제 물량 13.8톤과는 1.4톤 차이였다. 우찬은 숫자를 미례에게 보여 주기 전에 계근 기준을 다시 물었다. 젖은 포장의 외피 무게를 뺐는지, 누출된 액체를 회수한 통은 포함됐는지 답이 엇갈렸다.
“어디로 갔어요?”
미례가 숫자를 보자마자 물었다.
“확인 중입니다.”
“그럼 지금 바다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미례는 그런 말이 싫었다. 그래도 해솔의 장갑에 묻은 해저 진흙을 보고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해솔도 모르는 곳에 든 물건을 몸으로 찾으러 들어가야 했다.
보관장 직원은 계근표를 들고 왔다. 12.4톤은 외피를 제외한 내용물 기준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바로 뽑아 별도 용기에 넣은 흡착재와 소량 회수액은 다른 장부에 있었다. 그 양이 1.4톤을 채울지는 아직 계산되지 않았다. 미례가 두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직원은 보관장 뒤편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큰 포장 옆에는 작은 회수 용기 두 개가 따로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뚜껑이 다른 색이어서 미례가 같은 묶음인지 물었다. 직원은 급히 빌려 온 용기라 색만 달랐다고 했다. 그가 뚜껑을 열려 하자 우찬이 말렸다. 냄새를 맡거나 눈으로 액체를 확인할 일이 아니었다. 밀봉 상태와 수집 번호가 더 먼저였다.
해솔은 용기 옆면의 긁힌 글자를 봤다. 바닷속 금속판에서 읽지 못했던 글자 끝과 닮았다. 그는 사진을 바로 나란히 띄우지 않았다. 비슷해 보이는 두 흠을 같은 물건의 앞뒤처럼 묶고 싶지 않았다. 미례가 그의 손등을 봤다. 잠수 장갑을 벗었는데도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당신 또 들어가려고 하죠?”
“이 용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누가 건져 왔는지부터 물어볼 수 있잖아요.”
직원은 수집 담당자를 불렀다. 담당자는 늦은 밤 포집 장비에서 작은 통으로 옮긴 것을 기억했다. 물속에서 나온 단단한 판이 아니라, 수면 위에서 받은 액체였다. 해솔은 화면을 껐다. 닮은 글자를 확인하러 잠수할 이유가 하나 줄었다.
미례는 그제야 해솔의 손을 놓았다. 자신이 잡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직원은 두 사람을 보고 잠깐 웃다가, 용기 옆면을 찍은 당시 사진을 가져왔다. 긁힌 글자는 회수 담당자가 급하게 쓴 날짜였다. 잉크가 미끄러져 숫자 끝처럼 보인 것이었다.
“사진 한 장으로 내일 물에 들어갈지 말지를 정할 뻔했네요.”
해솔이 말하자 미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들어가기 전에 멈춰서 물었어요. 그건 다른 일이죠.”
직원은 용기 하나의 정확한 용량을 말해 줬다. 이 두 개를 다 채웠어도 1.4톤에는 못 미쳤다. 그래서 차이는 여전히 남았다. 하지만 숫자 전부를 곧장 바다에 흩어진 독성물질이라고 말할 근거도 없었다.
“빠진 무게가 모두 새어나갔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새어났다면 오늘 막아야 해요.”
현장 책임자는 그 말에 동의했다. 수색팀 배와 위험화물 이송 배가 겹치는 오후 시간에 한 척을 더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기금 돈을 쓸 수 있는지, 어느 작업을 늦출지 가족과도 이야기해야 했다.
회의가 열리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 가족은 내일 깊은 구역 수색을 먼저 하자고 했다. 어제부터 얕은 데서 돌아오는 것만 보았다며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다른 가족은 빠진 1.4톤이 바다로 퍼졌다면 어장도 사람도 더 위험해진다고 했다. 둘 다 잃을 것이 있는 말이었다.
미례는 가운데 앉았다. 자신이 두 쪽의 대표가 되는 순간 누구에게든 배신자가 될 수 있었다.
“오늘 밤까지 회수액 장부를 맞춰 볼게요. 그동안 내일 쓸 배 한 척은 수색팀에 남겨 두죠. 다른 한 척을 빌릴 수 있으면 오염 쪽에 붙이고요.”
“돈은?”
“공동기금에서 내야 합니다. 내가 혼자 결재하지 않을게요. 여기서 같이 정합시다.”
누군가 미례에게 자신이 기금 실무를 맡았으니 책임지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이 자신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게 아니라 모든 비난을 떠넘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찬은 끼어들지 않았다. 미례가 회피해야 할 친족 관련 항목도 아니었고, 가족들의 돈을 어떻게 쓸지 그가 대신 정할 수 없었다.
표결 전, 해솔이 수색 구역 도면을 펼쳤다. 깊은 곳은 아직 진입 조건이 맞지 않았다. 배만 배정한다고 들어갈 수 없었다. 같은 배를 얕은 지역 확대 수색에 쓰는 안과 대기시키는 안을 각각 설명했다. 수색 가족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듣고 싶었던 말은 내일 깊은 데로 가겠다는 약속이었다.
“거기로 못 들어가는 이유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나요?”
그가 물었다.
해솔은 조류와 좁은 통로 영상을 보여 줬다. 영상 속에서 줄 하나가 흔들렸다. 가족은 끝까지 봤다. 해솔에게 못 믿겠다는 말 대신 “그럼 언제”라고 물었다.
“조건이 맞으면 바로요. 날짜를 찍으면 지금은 거짓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해솔은 그가 납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위험을 숨기고 희망만 말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두 배 중 한 척은 수색팀에 두고, 나머지 한 척은 계근·회수액 대조가 끝날 때까지 하루 단위로 빌리기로 했다. 미례는 결정문을 다시 읽어 주었다. 찬성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도 적었다. 그들이 다음 날에도 질문할 권리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반대한 가족은 의자를 뒤로 밀고 밖으로 나갔다. 미례가 뒤따르려 하자 해솔이 잠깐 눈으로 물었다. 미례는 가겠다고 했다. 복도 끝에서 가족은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음료를 뽑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당신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그가 말했다.
“한 척은 수색팀에 남겼어요.”
“내가 원하는 데 못 들어가잖아.”
미례는 그 말에 대답할 문장을 찾지 못했다. 원하는 곳은 바다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표결을 다시 한다고 열리는 길도 아니었다.
“오늘 당신이 반대한 것도 적었어요. 내일 다시 물을 수 있어요.”
“내가 물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바다에 있는 사람의 남은 시간을 묻는 말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자신의 시간을 묻는 말이었다. 미례는 옆에 섰다. 자판기에서 돌아가는 모터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안에서 음료를 뽑았던 모양이었다.
“모르겠어요.”
미례는 처음으로 그렇게 답했다. 가족은 화를 내려다 멈췄다. 모든 일을 맡고 다 아는 사람처럼 보이던 미례가 사실은 같은 복도에 서 있다는 걸 본 것이다. 그는 화가 풀리지 않은 채 회의실로 돌아왔다. 미례도 따라 들어갔다. 서로의 편이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밤이 되자 보관장 직원과 우찬이 회수액 장부를 맞췄다. 일부 용기는 외피 무게 포함, 일부는 내용물만 적혀 있어 바로 합칠 수 없었다. 한 용기는 날짜가 사고 다음 날로 되어 있었지만 수집 시각은 전날 밤이었다. 우찬은 그 한 장 때문에 모두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각 용기의 원표를 요청했다.
미례가 보온병을 들고 왔다. 해솔은 냉랭해진 커피를 마시며 앞선 표결을 떠올렸다.
“내가 내일 깊은 데 못 들어간다고 할 때 그분 얼굴 봤어요?”
“봤어요.”
“나도 그 얼굴 때문에 마음이 바뀔까 봐 무섭습니다.”
미례는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그 얼굴 보고 마음이 바뀌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바뀌면 안 되는 판단도 있겠죠. 오늘은 둘을 섞지 않았어요.”
해솔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빈 컵을 받았다. 미례는 오늘 종일 누구의 편인지 증명하느라 지쳤다. 컵 하나를 남이 치워 주는 일이 커 보였다.
계근표 맨 아래에는 조금 전 본 회수 용기 두 개가 아직 계산되지 않은 채 적혀 있었다. 하나는 원래 청람호 1874 계열로 분류됐지만, 표지 사진의 모서리가 7814와 닮아 있었다. 우찬은 어느 쪽 숫자도 더하지 않았다. 내일 물건을 보면서 분류를 다시 해야 한다.
빠진 1.4톤은 아직 바다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종이 위의 차이로만 남겨 둘 수도 없었다. 미례는 합계가 끝날 때까지 보온병을 탁자에 두었다. 밤이 길어져도 방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해솔도 의자 하나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