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판타지 직업 코미디 47화

퇴근 후에는 요괴택배

문지기의 마지막 찻잔

청묵은 조정소 탁자에 찻잔 둘을 놓았다. 하나는 자기 것, 하나는 마주 앉을 사람의 것이었다. 남해온이 문 안으로 들어왔을 때 청묵은 두 번째 잔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사과하려는 자리에서 차를 권하면 빚을 조금 갚은 기분이 들 것 같아 가져왔는데, 그 마음부터 싫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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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묵은 조정소 탁자에 찻잔 둘을 놓았다. 하나는 자기 것, 하나는 마주 앉을 사람의 것이었다. 남해온이 문 안으로 들어왔을 때 청묵은 두 번째 잔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사과하려는 자리에서 차를 권하면 빚을 조금 갚은 기분이 들 것 같아 가져왔는데, 그 마음부터 싫어졌다고 했다.

“마셔도 종이가 지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해온이 말했다.

청묵은 찻잔을 내려놨다. 김콩쇠는 치료소 재확인 때문에 아직 오지 않았다. 채원과 기록 담당자가 자리를 잡은 뒤 청묵이 천 꾸러미를 가리켰다. 전날 보관소에서 나온 종이는 오늘도 가림 덮개 안에 있었다. 제멋대로 펴지 못하도록 양쪽 받침이 놓여 있었다.

청묵은 처음부터 가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부탁은 반납표 한 장을 다른 양식에 옮기는 일이었다. 오래된 이름을 확인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다. 콩쇠가 서쪽 배차소에 받침 둘을 반납한 밤, 청묵은 반납표를 받아 보관했다. 다음 밤 그 표를 꺼내 탄소지를 대고 서명 자리를 한 번 눌렀다. 청묵이 직접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뒷면 그림 때문에 펴기가 불편했어.”

해온은 이빨 빠진 사각형을 떠올렸다. 반납표의 작은 잉크점이 반출서에 생긴 과정은 청묵의 말로 조금 더 구체적이 됐다. 하지만 담당자는 말을 들었다고 대조를 끝내지 않았다. 전날 맡긴 물건과 원본의 실제 상태를 함께 확인해야 했다.

“발급방울은요?” 해온이 물었다.

청묵은 손잡이 표식이 찍힌 양식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그날 방울을 들고 찍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입증할 물건이 더 있는지 묻자 청묵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그는 방울이 사라진 뒤 그 사실을 들었으나 복사 부탁을 받은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 계정 복제된 얘기만 했구나.”

문 앞에서 콩쇠가 말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주머니에 치료소 안내가 접혀 있었다. 해온은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 물을 건넸다. 청묵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계정이 복제된 사실은 맞았지만, 그 사실을 방패처럼 앞에 놓았다고 인정했다.

콩쇠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내 서명을 베껴서 받침이 양식 뭉치가 됐어. 그때 내 이름 부를 수 있었잖아.”

청묵은 변명을 찾는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해온은 그 사이에 말을 넣지 않았다. 청묵이 스스로 왜 안 불렀는지 말하게 했다.

“네가 거절할 걸 알았어. 품삯은 먼저 받았고.”

청묵이 말한 품삯은 세입방 보증금이 모자란 날 받은 선지급이었다.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그때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도 원래 출처를 전부 알지는 못했다. 돈을 건넨 자는 흰 장갑을 끼고 있었고 자기 이름 대신 점포 표식을 보였다. 채원은 그것을 백결의 본인확인으로 쓰지 않았다.

“돈이 급해서 손을 빌려줬다고 하면 내가 이해해야 돼?” 콩쇠가 물었다.

“아니.”

짧은 답이 나왔다. 콩쇠는 그 답 때문에 오히려 더 화가 난 얼굴이었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으면 용서하지 않는 자신이 설명할 자리도 사라질 수 있었다. 청묵은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넘긴 종이와 돈을 추적하는 데 협조하겠다고 했다.

해온은 그 자리에서 콩쇠의 잘못을 대신 덜어 주지 않았다. 신고 지연은 신고 지연이었다. 청묵의 복사 진술은 다른 사람이 한 행동이었다. 두 줄이 나란히 놓이자 누구 하나를 전부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편해지는 길은 줄었다.

청묵이 옮긴 꾸러미에는 얇은 안감 종이 둘과 빈 표식판이 있었다. 채원이 한 장씩 위치를 표시했다. 종이의 글씨는 다른 종이가 덮은 부분에서만 읽히는 방향으로 접혀 있었다. 어제 보관소 벽을 끌어당긴 것은 그 중 바깥 장이었다. 청묵은 그것을 통째로 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안 열어 봤다고 몰랐던 게 됩니까?” 해온이 물었다.

청묵은 고개를 저었다.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없었다. 안감을 받아 중간 소포로 넘긴 일은 자신이 했다. 다만 어느 것이 열한 이름의 원부 조각인지, 무엇이 복사 양식인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담당자는 그 차이를 남겨 두었다.

진술이 끝난 뒤 청묵이 실제로 반환할 수 있는 돈을 꺼냈다. 품삯 전부가 남아 있지는 않았다. 보증금과 생활비에 쓴 내역을 가져왔고, 남은 금액은 탁자 위에 놓았다. 콩쇠는 그 작은 돈을 보고 얼굴을 돌렸다.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 허위지급이 이만큼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이것은 청묵에게 남은 확인된 선지급 일부였다.

채원은 금액을 세고 수납함에 넣었다. 담비 할멈에게 실제 인도한 뒤 환입으로 적기로 했다. 앞으로 받을 돈을 오늘 서랍에 들어온 것처럼 쓰지 않았다. 청묵은 나머지를 갚을 일정과 생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별도로 설명해야 했다. 배차소 문지기 일을 당장 다시 맡게 해 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일을 하면 감시를 피하는 걸로 봅니까?”

“연락과 자료 제출 약속을 지키면 됩니다.” 채원이 말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고용하는 쪽과 현재 제한 범위를 확인해야 하고요.”

청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못 하게 만들면 반환할 돈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면책 카드로 내밀지 않았다. 콩쇠가 그 얼굴을 오래 보았다. 둘은 같은 배차소에서 수없이 차를 나눠 마셨다. 한쪽이 찻잔을 가져온 이유를 아는 시간이 더 아팠다.

열람실을 나왔을 때 청묵이 콩쇠를 불렀다. 자기 집에 보관된 반납표 묶음 하나를 오늘 내놓겠다고 했다. 그 안에 양식 이동 연락이 적힌 종이가 있을 수 있었다. 집 위치는 요괴길 늦은 밤에만 열리는 하천 밑 계단이었다. 채원은 임의로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고 보관품을 직접 인계받을 약속을 잡았다.

그 밤 해온은 청묵 집으로 문서함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문서함은 빈 상태로 시작했고, 돌아올 때 청묵이 내놓는 물건을 정해진 범위만 담을 것이었다. 콩쇠는 동행하되 무거운 운반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불만이 있었지만 자기 상태를 읽은 치료소 안내를 주머니에서 다시 꺼내 봤다.

하천 밑 계단은 밤 조명 둘이 마주 보는 곳에 생겼다. 비가 내린 뒤라 물소리가 컸다. 청묵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자기 표식과 허락 말을 했고, 해온은 안쪽에 들어가기 전에 함을 내려놓을 자리를 확인했다.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창문 대신 강물 그림자가 벽을 지나갔다. 물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자가 반대편 벽에 닿을 때마다 목재 선반이 조금씩 움직였다. 청묵은 빚을 내서라도 이 방으로 옮기고 싶었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해온도 짐을 보며 가난의 증거를 찾아 세지 않았다.

약속한 상자는 침상 아래 있었다. 청묵이 꺼내는 순간 벽의 물그림자가 한 번 크게 밀려왔다. 선반 위 찻잔이 떨어졌다. 청묵이 상자 대신 찻잔을 잡으려 했다. 해온은 함을 내려놓고 선반 아래를 받쳤다. 콩쇠가 문 쪽에서 외쳤다.

“왼쪽 등 꺼졌어!”

밖의 두 조명 중 하나가 바람에 돌아가 있었다. 문이 한쪽으로 접히며 강물 그림자가 방 안을 더 길게 훑었다. 청묵은 손에 쥔 찻잔을 놓지 못했다. 콩쇠가 그 손을 보고 소리쳤다.

“컵 놓고 네 몸부터 나와!”

청묵이 찻잔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 순간 선반이 더 기울었다. 해온은 어깨로 선반을 받치며 가방에서 금속판을 꺼냈다. 판 모서리가 휘어 있어 그대로 세우면 쓰러질 수 있었다. 그는 판을 쓰려던 손을 멈추고 대신 방 주인의 튼튼한 낮은 의자를 요구했다.

청묵이 의자를 밀어 줬다. 해온은 선반 밑에 받쳐 둔 뒤 몸을 뺐다. 채원이 밖에서 관리 담당에게 등 위치를 바로잡을 연락을 했다. 그동안 문턱을 혼자 뛰어넘지 않도록 청묵에게 밖으로 나올 실제 선을 보여 줬다. 콩쇠는 등빛이 닿는 입구에서 기다렸다.

둘이 빈 함과 상자를 나눠 들어 나왔다. 콩쇠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가 손에 쥔 것은 청묵이 떨어뜨린 찻잔 하나였다. 바닥에 두면 깨질까 봐, 다른 사람이 모두 밖으로 나온 뒤 안전한 문턱에서 집어 든 것이다. 청묵이 그 잔을 받으려 하자 콩쇠는 바로 내밀었다.

“우리 예전에 여기서 차 마시기로 했잖아.” 청묵이 말했다.

“그건 옛날 약속이야.”

“알아.”

청묵이 고개를 숙였다. 콩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찻잔을 돌려줬다고 그 약속까지 되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남의 방에서 깨질 물건을 일부러 남겨 둘 사람은 아니었다.

등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방 벽이 펴졌다. 관리 담당은 한쪽 고정쇠가 헐거워졌다고 했다. 그 부분 수리를 맡길 때까지 임시등을 두고 이용 가능한 길을 표시했다. 해온은 방 안에 있던 나머지 생활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 오늘 내놓기로 한 상자만 인계목록에 남았다.

조정소로 돌아와 상자를 열자 반납표 몇 장과 접힌 전달지가 있었다. 전달지 끝에는 열한 개의 안감을 받아 중간 소포에 넣으라는 지시가 적혀 있었다. 청묵이 앞서 진술한 물량과 맞았다. 지시한 사람의 본명은 없었다. 그러나 전달 날짜와 되돌려 받은 소포 순서를 적는 칸은 살아 있었다.

해온은 최신 소포 칸에서 국수집으로 이어진 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 옆에 별도의 반환표식이 있었다. 청묵은 자신이 붙인 표식이라고 말했다. 안감을 받은 뒤 외피는 다른 장사에 넘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호가 두 점포에 찍혔을 수 있었다. 원부는 안감에 있고 바깥 번호는 또다시 팔린 물건을 따라갔을 가능성이 생겼다.

채원은 오늘 들은 말과 실제 종이를 대조할 계획을 세웠다. ‘가능성’이라는 칸은 남았지만 어디부터 찾을지 한 곳이 좁아졌다. 해온은 국수집 봉투가 원부 조각인지 아직 단정하지 않은 이유를 다시 알았다. 그것을 분리해 안전하게 둔 선택이 다음 확인을 가능하게 했다.

담비 할멈에게 돈을 인도했을 때 새벽이었다. 할멈은 청묵에게서 온 금액을 실제 수납 줄에 적고 긴급비용에 배정된 부분을 떼어 두었다. 해온은 수납표를 채원에게 돌려줬다. 콩쇠는 창구 옆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해온이 깨우자 콩쇠가 먼저 물었다.

“방울?”

“없어요. 전달지는 찾았어요.”

콩쇠는 두 말을 따로 듣고 눈을 비볐다. 밖에선 아직 어두운 도시가 움직이고 있었다. 청묵의 마지막 찻잔은 청묵 집에 남았다. 콩쇠는 자기 빈 손을 주머니에 넣고 그 집 반대쪽 길로 걸었다. 해온이 옆에 따라붙어도 오늘은 농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