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구조·재난 스릴러 46화

수심 43미터의 종

대표실의 빈 의자

선사 대표실 앞 의자는 세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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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대표실 앞 의자는 세 개였다.

우찬은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사고 담당 조사관은 왼쪽, 운임 담당자는 오른쪽에 앉았다. 출입 기록을 보기로 한 시간이 지나도 대표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자꾸 복사기를 켰다가 껐다.

“안에 계십니까?”

우찬이 묻자 운임 담당자가 고개를 저었다.

“대표는 외부 회의 중입니다. 기록은 비서실에서 가져올 거예요.”

그는 어제 면담 때보다 말을 아꼈다. 집에 돌아가면 일자리가 계속 있을지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우찬은 질문을 멈추고 문손잡이 쪽을 보았다. 한 번 열면 모두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평범한 문이었다.

비서실 직원 신지아가 얇은 서류철을 가져왔다. 출입 카드 기록과 종이 방문대장, 두 종류였다. 사고 날 계약서가 승인된 시각에 카드로 들어온 사람은 둘이었다. 그러나 대표실 내부 단말 로그인 기록은 공용 계정 하나였다.

“개별 직원 계정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다만 이 결재 화면은 대표실 공용 세션에서 열렸어요.”

지아는 자신이 그날 종이 대장을 가져다 둔 것도 기억한다고 했다. 누가 승인 버튼을 눌렀는지는 보지 못했다. 운임 담당자가 지아의 말을 듣고 표정을 바꿨다.

“나한테 서류 가져오라던 사람은 지아 씨였죠?”

“전화를 건 건 저예요. 누가 시켰는지는 지금은 확인할 게 있어요.”

그는 뒷말을 삼켰다. 우찬은 두 사람에게 서로의 기억을 대신 맞추지 말자고 했다. 지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전화를 건 사실을 숨기지 않았는데도, 누가 시켰는지 몰라서 마치 죄를 덮는 듯 보이는 게 싫었다.

조사관은 대표실 문을 열어 단말 위치를 확인했다. 방에는 책상 하나와 작은 회의 탁자, 벽 쪽 충전대가 있었다. 단말은 책상 위가 아니라 회의 탁자에 놓여 있었다. 문이 열려 있으면 복도에서도 화면 모서리가 보이는 자리였다.

“대표가 여기 없을 때는 누가 썼습니까?”

지아가 답했다. “비서실 사람들요. 회의 자료를 확인하려고. 다른 부서도 허락을 받으면요.”

어제 운임 담당자는 ‘대표실 단말’이라고 했다. 그 말은 장비 위치였다. 대표가 직접 승인했다는 뜻으로 가족들에게 옮겨지기 전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우찬은 미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례는 통화가 되자마자 물었다.

“누가 눌렀어요?”

“아직 모릅니다. 대표실에 있던 공용 단말이었고, 같은 시각에 출입한 직원은 둘입니다.”

“그럼 그 둘 중 하나예요?”

“원격 접근 가능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미례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우찬은 자신의 말이 또 빈 손을 건네는 것처럼 들릴 거라 생각했다. 그때 지아가 손짓했다.

“잠깐요. 단말 로그를 보면 사람이 아니라 세션이 열려 있던 시간이 있어요.”

화면은 승인 시각보다 한 시간 먼저 켜져 있었다. 누군가 미리 자료를 띄워 놓았을 수 있었다. 운임 담당자는 그날 서류를 놓고 나왔던 기억을 더듬었다.

“제가 퇴근하기 전에는 없던 문서였어요.”

“퇴근 시각이 언제였습니까?”

그는 자신의 근무 기록을 확인했다. 승인보다 스무 분 앞이었다. 하지만 그가 방에 서류를 놓고 나온 것은 더 이전이었다. ‘없던 문서’라는 말이 어느 자리를 가리키는지 다시 물어야 했다.

지아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작은 메모지들이 있었다. 문서명을 적은 메모의 접힌 모서리에서 운임 담당자가 기억한 문구가 나왔다. 그날 그가 놓은 것은 이 메모였고, 정식 결재 문서는 나중에 올라왔다. 그는 민망해했다.

“그럼 내가 본 빈자리는 문서가 없는 자리가 아니라, 메모가 아직 접혀 있던 자리였군요.”

지아가 메모를 손끝으로 눌렀다. 누군가 또 기억을 틀렸다고 몰아붙일 줄 알았는데 운임 담당자가 먼저 고쳤다. 그는 우찬을 보았다.

“아까 나를 빼앗은 것처럼 보였겠죠. 사실은 겁났어요.”

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관은 메모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추정하지 않고 현재 상태를 기록했다. 지아는 서랍을 닫았다.

복도로 나오자 지아의 상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사관에게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지아에게는 말하기 전 회사 법무팀을 거치라고 했다. 지아의 손에서 철이 미끄러졌다. 운임 담당자가 받아 들었다.

“이미 말했는데요.”

지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상사는 우찬을 보았다. 우찬은 그에게 진술을 철회하라는 말인지 물었다. 상사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직원 개인의 추측이 회사 공식 설명처럼 알려지면 곤란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아는 자기 말 중에 추측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신이 방문대장을 옮겼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 그 사실은 내가 말할 수 있죠?”

상사는 대답 대신 회의가 끝났느냐고 물었다. 지아는 철을 받아 가슴에 안았다. 어제까지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하던 사람이 오늘은 자기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그가 회사의 압력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운임 담당자가 옆에서 말했다. “내가 서류 가져오라는 전화 받은 건 맞아요. 그것도 추측 아니죠.”

지아는 그를 봤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리바이로 쓰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했지만, 둘이 실제로 기억하는 작은 일까지 입을 닫으면 공용 단말 뒤의 사람은 더 쉽게 사라질 것이다.

우찬은 둘의 이야기를 복도에서 더 듣지 않았다. 사고 담당 조사관이 따로 연락할 방법을 주고 면담 시각을 정했다. 지아는 그 종이를 받아 철 맨 앞에 넣었다. 상사가 멀어진 뒤에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렇게 별말 아닌 것도 힘드네요.”

“별말 아니니까 말하기 쉬워야 하는데.”

운임 담당자가 웃었다. 웃음 끝은 떨렸다.

지아는 복도 창에 비친 자신을 봤다. 출입 카드에 붙은 사진에서는 활짝 웃고 있었다. 오늘의 얼굴은 달랐다. 그는 출입 기록에 찍힌 자기 이름이 더 이상 버튼을 누른 손처럼 사용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한편 해솔은 얕은 구역의 줄 걸림을 피해 다른 방향에서 들어갔다. 전날 표시한 고리 자리를 수면 위 위치와 맞춘 뒤, 그 주변을 건드리지 않고 작은 판 하나를 보았다. 1874 계열의 포장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금속판이었다. 해솔은 가까이 가려다가 바닥에서 가벼운 부유물이 일어나는 것을 봤다. 시야가 더 나빠지기 전에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수면 위에서는 현장 책임자가 사진의 방향을 확인했다. 판의 글자는 읽히지 않았다. 어제 같으면 해솔은 한 번 더 들어갔을 것이다. 오늘은 미례와 가족들 앞에서 나왔다. 미례는 마스크를 벗는 그를 보고 먼저 물을 건넸다.

“이번엔 몇 분이었어요?”

“짧았어요. 시야가 나빠져서.”

“짧아도 괜찮아요.”

해솔은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미례는 바로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작업 중지 시각을 올렸다. 돌아온 사람을 숨겨 둔 뒤 결과만 내놓지 않았다.

저녁 우찬이 돌아와 두 사람에게 대표실 이야기를 했다. 해솔은 금속판 사진을 보여 주려다가 먼저 미례의 표정을 살폈다. 미례는 우찬의 공용 단말 설명을 듣고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어제는 대표실 단말이라 해서 대표가 눌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가능성도 아직 있습니다.”

“가능성 말고, 내가 이미 사람들한테 던진 말이요.”

미례는 전날 가족방에 올린 문장을 찾았다. ‘대표실 승인’이라고 썼다. 그는 그 아래 새 글을 달았다. *장비가 대표실에 있었고 공용으로 사용됐다고 확인됐습니다. 누른 사람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멀리 사는 가족 하나가 바로 답했다. *그럼 왜 어제는 안 말했어?*

“어제는 나도 몰랐으니까.”

미례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는 변명을 붙이지 않았다. 알게 된 것을 고치는 일이 자기 체면보다 앞에 있었다.

우찬은 퇴사자 계정의 접속 시각도 확인했다. 최종본 수정과 같은 시간대였지만 IP만으로 실제 손을 특정할 수 없었다. 반면 초안의 도착지와 최종본의 도착지를 바꾼 이력은 한 세션에서 이어져 있었다. 서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생긴 두 문서가 아니라, 하나를 열어 다른 이름을 적은 과정이었다.

해솔이 물었다. “그럼 누가 그 세션을 열었는지 찾으면 됩니까?”

“그때 자리에 있었던 사람과 승인 경로를 함께 봐야 합니다.”

우찬은 시간을 나눠 그렸다. 지아는 통화 시각, 운임 담당자는 퇴근 시각, 공용 세션은 켜진 시각. 세 선이 겹치는 좁은 틈이 있었다. 그 틈이 범인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다음에 누구에게 무엇을 물을지 정할 수 있었다.

미례는 빈 의자에 앉아 다시 일어났다. 물속에서는 해솔이 보지 못한 판을 남겨 두고 돌아왔고, 땅 위에서는 우찬이 누르지 않은 버튼의 주인을 아직 모른다. 그래도 오늘 한 일은 있었다. 해솔이 무사히 돌아온 시각을 올렸고, 자신이 앞서 쓴 문장을 고쳤다. 그는 사진 속 금속판에 무엇이 쓰였는지보다 내일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바다 상태를 먼저 물었다.

해솔은 지도에 그려 둔 걸림줄을 접었다. 접힌 자국이 금속판 사진을 가렸다. 미례가 지도를 다시 펴 주었다. 해솔은 웃으려다 말고 종이를 평평하게 눌렀다. 자신이 보지 못한 글자를 읽으러 가려면 먼저 그 자리에 걸린 줄을 지나야 했다. 미례는 빈 의자 하나를 해솔 곁으로 밀었다. 두 사람은 앉아서 내일의 바람 예보를 함께 기다렸다.

그날 밤 예보는 좋지 않았다. 해솔은 잠수 가방을 닫지 않고 장비를 다시 말렸다.

미례는 접힌 지도 위에 물컵을 올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