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음악 고딕 미스터리 44화

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빈 상자가 내는 소리

노을은 저울을 두 번 밟았다. 받침이 낮게 삐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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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저울을 두 번 밟았다. 받침이 낮게 삐걱거렸다.

첫 번째에는 구두를 신었고 두 번째에는 벗었다. 태오는 작업대 앞에서 팔짱을 꼈다. 운송장에 찍힌 중량을 비교하러 왔는데 사람 몸무게부터 달 줄 몰랐다. 노을은 수치를 보고 저울 받침 아래에 끼운 종이를 뺐다. 바늘이 조금 돌아갔다.

“누가 흔들린다고 받쳐 놨네요.”

태오는 사진부터 찍으려던 휴대전화를 내렸다. 작업실 밖에서 복사기가 돌아갔다. 민혜주가 계약 서류를 가져오는 동안 이솔은 어젯밤 공연에서 들은 한 음을 흥얼거렸다. 청년이 건반을 너무 늦게 놓아서 뒤에 남았던 소리였다. 태오는 그 음을 알아듣고도 무슨 조인지 묻지 않았다.

상자 모형 두 개가 들어왔다. 주문서에 적힌 치수로 접은 골판지 상자였다. 손잡이는 없었다. 노을은 실제 상자에 쓰였을 판지의 두께를 모른다며 바닥에 서로 다른 판을 깔았다. 빈 모형을 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벼웠다. 태오가 한 손으로 들어 올리자 모서리가 벌어졌다.

“아직 붙이지 않았어요.”

이솔이 바닥을 받쳤다. 두 사람 손이 상자 아래에서 부딪쳤다. 태오는 놓을 곳을 찾다가 작업대 모서리에 손가락을 찧었다. 욕이 나왔다. 노을이 그를 보고 웃었다.

“옛 창고에서 들고 있었다면 이미 내용물이 바닥에 있었겠죠.”

태오는 손가락을 문지르며 제대로 두 손으로 잡았다. 가벼운 물건도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면 함부로 들 수 없었다. 상자를 받을 손이 있다는 것을 안 뒤에야 힘이 풀렸다.

시험에 쓰는 것은 수장고 원반이 아니었다. 노을이 작업용으로 확보한 파손 음반과 폐기 자재를 각기 봉해 무게를 달았다. 어느 것도 수인의 소리와 관계가 없었다. 파손 음반 중에는 잘못 닦아 홈이 하얗게 뜬 것도 있었다. 태오는 둥근 파편을 보며 손을 뻗었다가 장갑을 받았다.

파편을 담은 주머니에서 낡은 노래의 제목이 보였다. 글자 반쪽이었다. 태오는 그 반쪽만으로도 어릴 때 아버지가 틀던 노래를 떠올렸다. 그가 잠시 멈추자 노을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생각나는 소리가 있어서요.”

“그럼 오늘은 그것만 생각해요.”

태오는 주머니를 저울에 놓았다. 소리가 떠오른 물건의 무게는 화면에 숫자로 나타났다. 숫자가 추억을 줄이지는 않았고 추억이 무게를 바꾸지도 않았다. 그는 그 둘을 동시에 보려고 애썼다.

혜주가 도착했을 때 작업대에는 빈 모형과 봉한 자재가 놓였다. 혜주는 운송장보다 계약 본문을 먼저 내밀었다. 제작실이 방송국에 넘긴 장비 일부, 부속과 포장 포함 중량 12.1킬로그램. 본문에는 원반이라는 말이 없었다. 별첨에는 원반 일흔두 장이 더해졌고 목록 끝에 수인과 닮은 서명이 있었다.

태오의 전화가 울렸다. 회사 팀장이었다. 오늘 중으로 원반 일흔두 장이 양도 대상에 들어가는지 답해 달라는 말이었다. 조사비가 늘었고 보관료가 다시 나가고 있었다. 태오는 별첨을 손으로 눌렀다. 지금 예라고 하면 자신이 하루 만에 사건을 정리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답 못 합니다.”

팀장은 물건의 주인 한 명도 못 찾는 조사를 왜 하느냐고 말했다. 태오는 빈 모형을 보았다. 일흔두 장을 담을 수 있다는 말과 거기에 일흔두 장이 있었다는 말 사이에, 자기 직장이 지불하지 않으려는 시간이 있었다.

“한 시간 뒤 전화하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노을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태오는 두 손으로 받았다. 오늘 자신의 답은 일단 그 무게를 받는 일이었다.

같은 치수에 얇은 자재를 넣은 경우와 두꺼운 자재를 넣은 경우를 따로 달았다. 상자를 가득 채우는 조건에서 무게가 달랐다. 얇은 포장까지 함께 넣으면 빈틈이 줄었다. 태오는 모형에 일흔두라는 숫자를 쓰려다가 펜을 멈췄다. 노을이 상자 한쪽에 작은 연필 표시를 했다. 시험 조건의 이름이었다.

“12.1을 넘는 모형도 있네요.”

혜주가 말했다. 노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옛 상자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태오는 다시 본문을 읽었다. 무게가 원반 전체를 가리키는 숫자인지 먼저 알아야 했다. 별첨의 장수를 모형에 넣고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 다른 해석을 건너뛸 수 있었다.

이솔이 운송장 뒷장을 뒤집었다. 앞쪽은 열두 상자를 한 차량에 싣던 전체 기록이었다. 뒤쪽에는 품목별 중량표가 붙어 있었다. 모서리의 스테이플 구멍이 하나만 남아 사본에서 떨어져 있었던 장이었다. 같은 접수번호 아래 품목명이 보였다.

금속 부속과 소형 장비. 12.1.

태오는 상자 모형에서 손을 뗐다. 그 숫자를 지금까지 전체 원반의 무게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반 상자 열둘의 중량은 따로 합산됐고 글씨 끝이 잘려 수치를 다 읽을 수 없었다. 다만 품목이 달랐다.

혜주가 운송회사 기록실로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원본 뒤쪽까지 같은 번호로 확인해 주었다. 다른 고객의 품목을 가린 채 사본을 만들며 뒷장을 별도 파일에 넣은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 비밀이 아니라 분리 저장된 한 장이었지만, 태오의 손은 뒤늦게 떨렸다.

그는 팀장에게 전화했다. 일흔두 장 양도 여부를 답하는 대신 12.1킬로그램이 장비 항목이라고 설명했다. 별첨을 증명하는 중량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팀장은 잠깐 침묵했다가 재평가 일정을 미루면 누구 비용으로 하느냐고 물었다.

태오는 자기 서면으로 보류 사유를 내겠다고 했다. 그 대가로 다음 사건 배정을 잃을 수도 있었다. 팀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고객이 태문 쪽 자료를 갖고 있으며 소유자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무게 하나를 찾는 일이 아니라 잘못된 주인의 이름을 등록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전화를 끊자 작업실에서 상자가 무너졌다. 혜주가 파일을 올려놓은 모형의 한쪽 풀이 덜 말라 있었다. 봉한 자재가 작업대 아래로 떨어졌다. 태오는 반사적으로 받으려다 손을 뺐다. 발등을 치고 바닥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 파손 원반의 옛 소리와는 아무 관계없는 오늘의 낙하였다.

노을이 자재 주머니를 살폈다. 봉이 터지지 않았고 파편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혜주는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 파일 하나를 잠깐 올려놓았을 뿐이라 했다. 태오는 부서진 모형의 바닥을 받았다.

그의 발등에 작은 붉은 자국이 생겼다. 혜주가 냉찜질할 것을 찾는 동안 태오는 신발끈을 풀었다. 오전에는 숫자 하나가 틀린 것이 불쾌했는데 오후에는 자기가 저 상자의 바닥을 놓친 것이 더 불쾌했다. 이솔이 무너진 모형에서 풀린 접합면을 골라 따로 놓았다. 태오는 그 조각을 주워 다시 붙이려 했다. 노을은 자재를 넣은 뒤 어느 면이 먼저 터졌는지 보겠다고 했다. 태오는 접합면을 놓고 다른 종이를 받았다. 실패한 모형까지 깨끗한 성공 모형으로 바꿔 버리면 오늘 자기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사라질 터였다. 그는 절뚝이며 새 상자 바닥을 두 손으로 접었다. 혜주는 얼음 대신 찬 물병을 발등 위에 얹어 줬다.

“새로 접죠. 저도 처음 들 때 벌어졌어요.”

그 말에 혜주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이솔은 다음 상자를 접을 종이를 펼쳤다. 과거 선반을 부수며 재현했다면 그들이 잃었을 것은 종이 모형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도 그 교훈을 길게 말하지 않았다. 새 상자가 붙을 때까지 작업대의 자재를 바닥에 따로 놓았다.

점심을 거른 네 사람은 늦은 김밥을 나눴다. 노을은 손을 씻고도 파편을 만지던 장갑 자국이 손등에 남았다. 태오가 자기 몫에서 단무지를 빼는 것을 혜주가 보고 웃었다. 보험금 몇 억을 따지는 사람이 단무지 하나를 이렇게 신중히 피하는 것이 웃기다고 했다.

“억하고 단무지는 다른 문제예요.”

태오가 말했다. 이솔이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오전 내내 무게를 받치던 손들이 김밥을 들었다. 누구도 그 웃음을 녹음하지 않았다.

저녁에 문주가 들렀다. 공연 청년이 감사 인사를 전해 달랬다는 말이었다. 그는 무너진 종이 상자를 보고 원반 상자냐고 물었다. 태오는 모형이라고 답했다. 문주는 빈 상자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공기가 가볍게 울렸다.

“실제 상자는 이 소리가 아니었어요.”

문주가 말했다. 곧 표정이 굳었다. 그가 별관 안을 본 적 없다고 했던 말과 충돌할까 두려워했다. 이솔은 어디서 본 상자인지 물었다. 문주는 합주실로 들여온 악보 상자라고 답했다. 별관의 원반 상자와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태오는 그 작은 차이보다 문주가 자기 기억을 새로 내놓은 얼굴을 보았다. 말을 잘못할까 봐 모든 기억을 입 안에 가둔다면 결국 태문처럼 큰 목소리만 남을 것이다. 그는 문주에게 오후에 찾은 장비 중량의 뒷장을 보여 줬다. 오늘의 발견은 원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원반이라고 잘못 부르던 숫자를 떼어 낸 일이었다.

혜주는 계약 원본을 내일 직접 열람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보관자가 처음에는 별첨의 상태를 확인하기 싫어했다. 소유자 변경 요청이 들어온 날 문서를 새로 묶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이솔이 원래 묶인 순서를 볼 수 있느냐 묻자 혜주는 짧게 대답했다.

“풀기 전 사진이 남았대요.”

문주는 상자를 두드리던 손을 거뒀다. 수인의 이름처럼 보이는 서명이 어느 종이에 붙었는지, 그가 피했던 질문이 이제 다른 사람의 손에 놓였다. 태오는 별첨 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빈 상자의 소리는 멎었지만 내일 열 문서의 종이 소리는 벌써 귀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