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냉동창고 문을 열자 해솔의 안경에 김이 앉았다.
냉동창고 문을 열자 해솔의 안경에 김이 앉았다.
현장 직원이 웃었다. “오늘은 바다보다 추울 겁니다.”
해솔은 안경을 벗어 닦았다. 미례가 묻던 얕은 구역은 바람 때문에 오전 작업이 중지됐다. 안전선 밖까지 파도가 번졌다. 그는 현장 책임자의 중지 결정을 그대로 가족 쪽에 전달했다. 오후에는 우찬과 함께 냉동화물의 출발 장소를 보러 왔다.
“정상 물건이 어디서 바뀌었는지 보려는 겁니까?”
직원이 물었다.
“먼저 정상 물건이 여기서 나갔는지 확인하려고요.”
우찬의 말에 직원은 시큼하게 웃었다. 사고 뒤에는 이 창고를 거친 모든 물건이 수상해 보이는 듯했다. 그는 출고 동선을 보여 주기로 했다.
냉동실 안쪽에는 운송 당시와 같은 크기의 상자가 쌓여 있었다. 우찬은 사고 화물이 아닌 현재 재고라고 분명히 말했다. 해솔은 손을 대지 않고 상자 사이 간격을 보았다. 지게차가 들어오려면 통로 한 칸이 비어야 했다. 출고 사진에는 그 통로가 보였다.
사진 속 7814 표지는 상자 바깥의 정상 냉동화물 봉인에 붙어 있었다. 출고 무게는 신고된 2.1톤과 맞았다. 해솔은 안경을 다시 썼다. 차가운 공기에서 숫자는 마치 유리창에 쓴 글씨처럼 금방 흐려질 것 같았다.
“이 차가 항구까지 갔습니까?”
“입문 기록은 있어요. 제 운전 기록은 아니고.”
직원은 화면을 돌려 차량 출고와 항구 게이트 통과를 보여 주었다. 중간에 멈춘 시각이 있었다. 운전자는 화물 고정끈을 다시 묶었다고 적었다. 위치는 항구 바깥의 공용 대기장. 그곳에 청록메탈 차가 출입한 기록도 있었다.
우찬은 두 차가 같은 시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적었다. 옆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해솔은 대기장이 얼마나 넓은지 직접 보자고 했다. 직원은 냉동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대기장에는 차선 여섯 개가 있었다. 지금도 화물차들이 서로 지나갈 때마다 큰 소리를 냈다. 그날 두 차량이 같은 장소에 있었다 해도, 차선이 달랐다면 서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해솔이 경계선에 서자 트럭 한 대가 경적을 울렸다. 그는 뒤로 물러났다.
“물건을 바꿨다면 어디서 했을까요?”
“여기서 단정하면 안 됩니다.”
우찬의 대답에 해솔이 고개를 저었다.
“단정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가능한지 보려는 거예요. 2.1톤을 내리고 13.8톤을 싣는다면 차가 몇 번 움직여야 하는지.”
직원은 빈 팔레트 하나를 가리켰다. 지금의 작업 차량과 당시의 차량 규격은 같지 않지만, 대기장 중앙에서 그런 작업을 하면 다른 차가 지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조용한 밤에도 작업등과 장비가 필요하다. 바꿔치기가 있었다면 더 안쪽의 하역구역이거나 다른 시각일 가능성이 컸다.
그때 미례에게 전화가 왔다. 오전 수색 중지 공지를 올렸더니 가족 한 명이 왜 해솔은 냉동창고에 갔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해솔은 자기 손이 얼얼한 것을 보았다.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가서 확인한 건 알려 주세요. 오늘 물속에 못 들어간 것도 같이요.”
“화물이 사람보다 먼저인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설명하겠습니다.”
미례가 잠깐 말을 멈췄다. 해솔은 무슨 대답이든 받으려 했다.
“당신이 아니라 내가 설명할래요. 가족이니까 내 말에 화내겠죠.”
그는 전화를 끊었다. 직원은 들리지 않는 척 팔레트를 제자리에 밀었다.
오후 늦게 항구에서 출입 기록을 대조했다. 정상 화물 차량은 대기장 뒤 하역구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운전자 측이 제출한 운행기록에도 게이트 입문과 퇴문 사이 화물 하차가 없었다. 그러나 차량 기록만으로 청람호에 무엇이 올라갔는지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우찬은 청람호 선적 시각의 적하목록을 펴고 두 선하증권을 옆에 놓았다. 7814 표지의 냉동화물은 같은 시간대에 다른 작은 배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었다. 선박명이 선하증권 초안에는 있었고 최종본에는 빠져 있었다.
“그럼 정상 화물은 청람호에 안 실린 겁니까?”
해솔이 물었다.
“기록은 그렇게 가리킵니다. 다른 배의 도착 확인까지 보죠.”
그 다른 배의 선장은 우찬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2.1톤 냉동화물을 받았고 이튿날 목적지 창고에 내려 줬다고 했다. 수취 서명은 원본이 있었다. 해솔은 그 배의 선원이 사고 소식을 듣고도 자기 화물이 같은 일에 묶일 줄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람호 회수품 목록의 7814 표지는 어떻게 된 거죠?” 해솔이 물었다. 우찬도 그 빈자리를 봤다. 화물 전량이 다른 배에 도착했다는 자료와 청람호에서 건졌다는 표지의 경로는 아직 서로 맞지 않았다. 표지만 따로 옮겨졌는지, 회수 위치 기록에 착오가 있는지는 어느 쪽도 확인하지 못했다.
선장은 통화를 끝내기 전에 한 번 더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 우찬이 같은 번호로 다시 걸자 선장은 갑판으로 나와 있었다. 뒤에서 밧줄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날 물건을 받은 건 맞소. 그런데 우리 선원 하나가 말이 안 되는 걸 봤다고 하더군.”
“무엇을 봤습니까?”
“냉동상자 겉에 다른 배 이름이 붙어 있었대. 나는 표지를 바꿔 붙이는 일인가 하고 넘겼지.”
우찬은 선원이 직접 본 표지의 글자를 물었다. 선장은 자신은 못 봤다고 했다. 이름을 추측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짜증을 냈다.
“선원들이 사고 난 배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닫소. 내가 괜히 들쑤시는 거라면 어쩌겠소.”
해솔이 전화기를 받아 물었다.
“그 선원에게 우리가 본 사진을 먼저 보여 주지 않겠습니다. 그날 본 글자를 자기 기억대로 말하게 해 주세요.”
선장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해솔은 그가 지금 막 선원 옆에서 전화를 하는지, 바람 때문에 말을 못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휴대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내가 말할게요”라고 했다. 선장이 전화기를 넘겼다.
선원은 글자를 다 읽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배 이름이 붙었다는 것도 붉은 ‘청’ 자 한 글자만 보고 한 생각이었다. 그는 그 표지를 손으로 떼어 낸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했다. 누구인지 묻자 등만 봤다고 했다.
“그 사람 옷이요, 항구 작업복이 아니었어요. 등에서 빛나는 선이 두 줄이었죠.”
해솔은 예전에 재필이 말했던 반사띠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옷인지 확신하기엔 현장이 달랐다. 그는 선원의 말을 우찬에게 넘기고 전화기를 돌려줬다. 선장은 선원이 겁먹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해솔은 약속할 수 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사관이 직접 연락하기 전에 선원에게 절차를 설명하도록 했다.
전화를 끊고도 갑판의 밧줄 소리가 귀에 남았다. 해솔은 자신의 잠수 장비 끈을 쥐었다. 손에 익은 매듭도 다른 배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미례는 가족 단체방에 두 줄을 올렸다. *오늘 수색은 파도로 중지됐습니다. 대신 청람호 신고 화물의 실제 이동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해솔이 본 대기장과 다른 배의 도착 확인을 차례로 적었다.
답장은 거칠었다. 지금 필요한 건 서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이 왔다. 미례는 삭제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같은 마음이 있었다.
미례는 한 사람씩 답을 쓰려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단체방 맨 위에는 돌아오지 못한 선원의 딸이 학교에서 그린 배 그림이 고정돼 있었다. 아이는 갑판을 주황색으로 칠했다. 미례는 그림 속 바다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말이 거칠어진 가족에게 왜 조사했는지를 또 설명하는 대신, 내일 수색할 수 있는 조건이 오면 가장 먼저 알리겠다고만 썼다.
해솔은 그 문자를 보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조건이 맞아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또 말해야 했다. 미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단체방에서 나오는 대신 남았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함께 견디는 일이 오늘 자신이 맡은 몫이었다.
해솔은 저녁에 보관장으로 돌아갔다. 1874 표지가 붙은 회수 포장 앞에는 새 끈이 그대로 있었다. 13.8톤의 폐액이 이 표지 하나에 다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1톤 냉동화물이 다른 배에 실렸다면, 청람호의 공간은 처음부터 다른 것을 위해 비워졌을 수 있었다.
우찬은 보관장에서 제공한 회수 위치도를 폈다. 폐기 봉인 계열의 포장들은 선적 공간의 여러 구획에서 나왔다. 누군가 마지막 순간에 한 상자를 잘못 실은 정도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선적 담당자 중 누구의 손이 어느 포장을 밀어 넣었는지는 아직 없었다.
“우리가 찾는 건 손 하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해솔이 말했다.
“손을 쓰게 만든 순서겠죠.”
우찬은 빈 운임칸을 가리켰다. 정상 화물이 다른 배로 갔는데도 청람호 쪽에서는 운송 취소에 따른 환급 기록이 없었다. 돈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내일 선사에 직접 물어야 했다.
해솔은 종이 끝에 찍힌 접수 도장을 보았다. 선적을 바꾸는 손과 운임을 받는 손이 서로 다른 층에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을 잡으면 모두 풀릴 줄 알았던 생각이 무너졌다. 그러나 정상 화물이 다른 배에서 안전하게 내려졌다는 건 작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늘 선장을 만난 것도, 겁먹은 선원이 자기 목소리로 한 글자를 말한 것도 그 사실 덕분이었다. 해솔은 그 말을 미례에게 보내지 않았다. 전화로 직접 말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그가 전화를 걸자 미례는 받지 않았다. 잠시 뒤 *지금은 가족 회의 중*이라는 문자가 왔다. 해솔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지 않고 봉투에 평평하게 두었다.
보관장 불이 하나씩 꺼졌다. 해솔은 1874 표지에서 물러났다. 아침에는 바다가 막았고 저녁에는 종이가 길을 열었다. 내일 바다가 허락하면 그는 다시 물속으로 갈 것이다. 그때 볼 물건의 이름을 서류가 먼저 붙이지 않도록, 오늘 확인한 차와 배의 움직임을 마음속에 따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