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법정·사회파 드라마 43화

바다가 증언석에 앉는 날

완료를 쓴 오후

외주업체 사장은 작업내역서보다 먼저 낡은 운동화를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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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업체 사장은 작업내역서보다 먼저 낡은 운동화를 보여 줬다.

“저 구두 신고 들어갈 데가 아니었어요. 지상 연결부만 했습니다.”

가람은 신발의 얼룩을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 오래된 운동화로 공사 위치를 증명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사장이 탁자에 펴 놓은 도면에서, 그날 작업한 부분을 직접 짚어 달라고 했다. 세희는 옆에 앉아 표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작은 사무실은 정비동 바깥에 있었다. 선풍기 망에 철가루가 붙어 있었고, 전화가 울릴 때마다 사장은 받기 전에 두 사람을 봤다. 이따금 방문자가 보이면 줄이던 목소리를 가람 앞에서도 줄였다. 그는 회사 일을 잃는 것이 걱정된다고 먼저 말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말씀하신 범위하고 당시 기록이 맞는지 보러 왔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사를 안 했다고 책임을 묻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렇게 알아듣는 사람이 안쪽에도 있어야죠.”

사장은 표시한 도면을 돌렸다. 측정기의 연결부와 지상 배관의 보온재. 전날 받은 작업내역과 같았다. 세희가 지하로 내려가는 선을 손끝으로 따라가자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굴착장비를 부른 적이 없고 관벽을 보려면 견적부터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완료 사진은요?”

“이 두 군데 사진입니다. 전체 설비를 끝냈다는 사진이 아니고요.”

그는 휴대전화의 오래된 작업 폴더를 열었다. 사진은 세 장이었다. 막 설치한 연결부, 덮기 전 보온재, 뒤쪽에 선 작업자. 세희가 마지막 사진을 확대했다. 화면 한 귀퉁이에 자신의 뒷모습이 있었다. 사장은 그날 환경팀에서 나와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측정기 신호가 들어오는 걸 확인했어요. 관벽을 검사했다는 확인은 안 했습니다.”

세희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사장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가람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화를 내기 전에 그날 보낸 메일을 요청했다. 사장은 수신자가 회사 설비담당이라고 적힌 화면을 돌렸고, 세희는 의자를 조금 뒤로 뺐다.

그때 전화가 다시 울렸다. 사장은 새 견적을 오늘까지 보내겠다고 답했다. 통화를 마치고도 수화기를 한동안 놓지 못했다. 세희는 사진을 보던 손을 거뒀다.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다 같은 현장에서 일한 사람의 일감을 겁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말해 준 것이 자신에게도 필요했다고. 사장은 그제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첨부한 내역서의 제목은 연결부 정비 완료였다. 가람이 가져온 보험 위험조사 회신에는 P-17 보수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은 입술을 벌렸다가 닫았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자기 이름으로 그 사이를 채울 수는 없었다.

“내가 보낸 걸 그대로 쓰지 않았네요.”

가람은 화면과 출력물을 나란히 놓았다. 두 제목이 다르다는 사실부터 확인했다. 이어서 사장에게 원래 보낸 파일을 보존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사에 가서 해명하라거나 다른 직원의 이름을 대라고 하지 않았다. 사장은 자신의 작업자 이름이 밖에 공개되는지도 물었다. 가람은 공개 범위는 별도로 정하겠다고 답했다.

사무실을 나오자 비가 시작됐다. 세희는 처마 밑에서 출입증을 닦았다. 어제 자재를 치운 통로는 오늘 비어 있었고, 유지 장비 설치도 끝났다는 현장 책임자의 연락을 받았다. 두 사람은 그 사진을 함께 봤다. 작은 일 하나가 약속대로 끝난 것을 확인한 뒤, 오래된 약속이 바뀐 자리를 찾아 회사로 들어갔다.

본부장은 이번에는 대리인과 설비담당을 함께 불렀다. 설비담당은 파일을 보자 안경을 벗었다. 가람은 먼저 외주업체의 수행 범위와 회신의 표현이 다르다고 말했다. 본부장은 정비 공사를 묶어서 부른 관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묶어서 부르면 땅 아래를 안 보고도 봤다고 전해집니까?”

세희가 물었다. 본부장이 대답하려는데 설비담당이 손을 들었다. 그는 회신 초안을 자신이 취합한 것은 맞지만 마지막 표현을 혼자 정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가람은 누가 마지막으로 파일을 만졌는지 지금 단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보수 예정에서 완료로 바뀐 근거는 필요했다.

비서가 당시 보낸 메일 사본을 가져왔다. 오후 두 시 무렵의 초안에는 다음 예산 반영 예정이 있었다. 늦은 오후에 보낸 회신에는 완료가 있었다. 중간 파일의 보존 여부는 더 확인해야 했다. 계정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작성자로 적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변화가 어느 날 일어났는지는 좁혀졌다.

본부장은 보험사의 회신 마감이 가까웠다고 말했다. 침묵하던 회사 대리인이 그를 봤다. 본부장은 마감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세희가 탁자 아래에서 무릎을 눌렀다. 가람은 그녀가 일어설 것 같아 자기 물컵을 옆으로 옮겼다.

“급해서 단어를 잘못 썼다는 설명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후 실제 점검을 했는지, 잘못 보낸 말을 고쳤는지까지 봐야 합니다.”

“그걸 고치면 계약 조건이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설비담당의 말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는 말을 거두려다 말았다. 조건이 실제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보험사에 물어야 했다. 가람은 그 표현을 사실로 받아 적지 않고 질문 옆에 적었다. 설비담당은 이제 자신의 손바닥만 보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 전 태곤이 전화했다. 직원들이 외주업체가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있단 것이었다. 가람은 누가 어디서 말했다는 것인지 물었다. 태곤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복도 이야기라고 답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수행 범위를 분명히 전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세희가 전화를 받았다. “연결부와 보온재는 작업했습니다. 그걸 지하관 전체 점검으로 바꿔 말하면 안 돼요.”

태곤은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문서를 보고 하는 말인지 물었다. 세희는 당일 작업내역과 사진을 확인했다고 했다. 태곤은 그 범위만 현장에 알려 주겠다고 했다. 본부장은 직원들끼리 불필요한 이야기가 퍼진다고 불평했지만, 세희는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필요한 이야기가 안 내려가서 우리가 여기 앉아 있잖아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대리인이 다음 제출 목록을 정리하는 사이 가람은 세희에게 물을 건넸다. 세희는 고맙다며 마셨고, 이번에는 탁자 위에 출입증을 놓지 않았다. 그대로 목에 걸고 있었다.

밖에 나오니 비가 조금 굵어졌다. 버스가 정류장을 막 떠났고 세희는 손을 들지 않았다. 같이 뛰자고 할 줄 알았던 가람이 걸음을 늦췄다. 세희는 자기가 찍힌 사진이 이상했다고 했다. 화면 속에서는 측정기를 보느라 머리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날은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신호가 잡혀서요.”

“그건 잘된 일입니다.”

“어디까지 잘됐는지 말했어야 했죠.”

가람은 한참 뒤에 대답했다. 지금도 그 범위를 말해 달라고. 세희는 버스 도착 안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앞에서 학생이 우산을 접다가 물을 튀겼다. 학생이 연거푸 사과하자 세희는 방금 공장 바닥도 걸었다고 웃었다. 하루 종일 처음 본 웃음이었다.

가람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은실은 가게 앞 화분을 들이고 있었다. 장부를 보자는 말을 하기 전에 가람이 화분 하나를 받았다. 은실은 작은 것이 더 무겁다고 경고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람은 허리를 굽힌 채 문턱을 넘었고, 은실은 뒤에서 웃었다.

“법원에서도 그 표정으로 버티면 좀 믿음직하겠네.”

식탁 위에는 열네 번의 식사대금이 들어온 통장 사본이 있었다. 은실은 그 돈으로 밀린 재료값 일부를 갚았다. 남은 돈은 큰 냉장고를 당장 채울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일 손님 세 명에게 찌개를 팔 수 있었다. 세 명이 확정됐느냐고 가람이 묻자 은실은 예약이 아니라 단골의 약속이라고 했다.

“그래도 밥은 해야지. 온 다음에 쌀 씻겠어?”

가람은 앞치마 옆에 놓인 서류봉투를 봤다. 피해가 시작된 날짜를 알려 달라고 전에 부탁한 자료였다. 은실은 날짜 하나를 찾느라 이틀을 보냈지만, 납품이 줄어든 날과 완전히 끊긴 날이 달랐다고 했다. 가람은 둘 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첫 봉투에는 거래처 문자, 두 번째에는 시장에서 산 재료 영수증이 있었다. 은실은 손님이 줄어도 식당을 바로 닫지 않았고, 상할 재료를 덜 사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회사 문서에서 본 완료라는 두 글자와 달리, 은실의 손실은 한 칸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쪽 보험이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지금은 어디까지 맡는지 다투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 영수증은 커지네.”

가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은실은 그를 몰아세우려던 게 아니라며 찌개 뚜껑을 열었다. 남은 국물을 싸 주려는데 가람이 오늘은 먹고 가겠다고 했다. 은실이 수저를 두 개 꺼냈다. 화분을 옮긴 수고비는 밥으로 받되 장부에 공장 식사로 넣지는 말라고 했다.

밥을 먹는 동안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심리에 위험조사 당시 인수 조건 초안을 제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람은 식탁에서 파일을 열지 않았다. 은실의 얘기를 끝까지 듣고 설거지를 도운 뒤 사무실로 돌아갔다.

초안의 P-17 항목 옆에는 검사를 마친 뒤 회신을 받으라는 문구가 있었다. 최종 조건에서는 그 문구가 보이지 않았다. 삭제 이유를 설명한 페이지에는 회사가 보수를 완료했다고 회신했으므로 별도 조건을 두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가람은 두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오늘 찾은 오후가 여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오후의 끝에 주민들을 세워 놓을 생각은 없었다. 은실이 건네준 두 봉투를 옆에 놓고, 심리에서 가장 먼저 물을 질문을 바꿨다.

완료라는 말을 믿은 대가를 왜 완료라는 말을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먼저 치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