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43화

빙판 위 다섯 센티

없는 이틀의 길

배차기록은 이틀이 비어 있었다. 류승후가 화면을 넘기자 날짜가 한 칸씩 뛰었다. 소라온은 빈칸 위에 손가락을 댔다. 차가 운행하지 않은 날인지, 기록이 사라진 날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사고 당일 우회전 자료와 같은 회사의 기록이어서 더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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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기록은 이틀이 비어 있었다. 류승후가 화면을 넘기자 날짜가 한 칸씩 뛰었다. 소라온은 빈칸 위에 손가락을 댔다. 차가 운행하지 않은 날인지, 기록이 사라진 날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사고 당일 우회전 자료와 같은 회사의 기록이어서 더 마음에 걸렸다.

“그 이틀에 제가 병원에 있었어요.” 라온이 말했다.

“그래서 운행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승후가 답했다. “회사가 어떤 자료를 보관했고 왜 비었는지 확인해야죠.”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뒤 병원에 있는 동안 그 차는 다시 물건을 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한 대로 운행했다고 적으면, 없는 종이 위에 자신의 분노로 길을 그리는 셈이었다.

상대편은 사고 당일 기록 원본과 그 전후의 정산표를 가져왔다. 정산표에는 기사에게 지급된 건당 수당이 있었지만 어느 골목을 돌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승후는 두 날을 ‘운행 없음’으로 쓰지 않고 ‘경로 확인 불가’라고 적었다. 라온은 그 말이 맥 빠진다고 느꼈다. 그래도 분명한 것만 남겨야 나중에 발견되는 자료의 자리가 생긴다.

“정산표에 돈이 있으면 그날 일했다는 거 아닌가요?”

“일했을 수는 있습니다. 어떤 차로 어디를 갔는지는 이 표만으로 못 알죠.”

라온은 자신이 어제 만든 수리장부 사본을 떠올렸다. ‘접수’라고 쓴 날에도 실제 수리비는 없었다. 숫자가 한 사람의 하루를 그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정산표를 밀지 않고 그 옆에 놓았다.

운전자도 회의에 왔다. 그 이틀에는 회사가 다른 차량을 몰게 했던 것 같다고 했다. 대리인이 그 말을 받아 적으려 하자 운전자가 멈췄다. “정확히 어느 날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배차 알림을 찾아볼게요.”

라온은 그가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을 보았다. 고맙다고 느끼는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승후는 알림을 찾으면 원본 보존 상태와 시각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라온이 진짜 알고 싶었던 것은 그 이틀의 운행만이 아니었다. 사고 뒤 회사가 운전자에게 무엇을 요구했고, 같은 우회전 길을 다른 기사들에게도 빠르게 돌라고 했는지였다. 그러나 그 질문은 오늘 배상금 산식의 빈칸을 바로 채우지는 못했다. 승후는 자료요청 범위를 사고 당일과 정산액의 근거로 좁혔다. 라온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서명했다.

서명하기 직전 그는 종이 끝에서 작은 표시를 발견했다. 배송사의 정산표에는 사고 당일 배차를 ‘완료’로 처리한 칸이 있었다. 차량이 멈춘 뒤에도 누군가 남은 물건을 이어 날랐을 가능성이 있었다. 라온은 대리인에게 물었다.

“누가 마지막 배달을 한 겁니까?”

“그건 이 정산표에 안 나옵니다.”

“그럼 완료는 운전자 한 사람이 일을 끝냈다는 뜻이 아니네요.”

대리인이 답하기 전에 운전자가 고개를 들었다. “차에서 내린 뒤 다른 기사에게 남은 물건을 넘겼어요. 저는 그날 그 뒤로 운전하지 않았습니다.”

라온은 그 말을 종이에 그대로 적어 달라고 했다. 회사 기록에서 완료는 물건의 상태였고, 운전자의 하루가 그대로 적힌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장부의 ‘접수’와 ‘수리 완료’를 나눴던 것처럼. 그가 그 차이를 보게 된 것은 화를 덜 내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정산표를 다시 읽었기 때문이었다.

“넘겨받은 기사 이름을 확인하면 그날 이후 차량 이동도 알 수 있겠네요.” 라온이 말했다.

승후는 고개를 저었다. “사고 당일 남은 물건의 인계는 확인할 수 있어요. 빈 이틀의 운행까지 이어지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라온은 입을 다물었다. 하나의 답이 생기면 그 답이 곧 다음 빈칸의 다리가 되어 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종이에는 다리 대신 작은 점 하나가 찍혔다. 그 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그걸로도 오늘 회의에서 한 발은 움직였다.

“나중에 다른 문제가 나오면 다시 묻죠?”

“네. 지금 모른다고 영원히 묻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라온은 운전자와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둘 다 층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운전자가 먼저 말했다. “그때 상가 앞에 서던 표지판은 지금 옮겨졌더군요.”

“언제 옮긴 건지 알아요?”

“아니요. 오늘 지나가다 봤어요.”

라온은 엘리베이터 숫자를 바라봤다. 그가 먼저 사고길에 다시 가 본 적이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은 아직 차로 그 길을 지나지 못했다. 택시를 탈 때도 기사에게 다른 길을 부탁했다. 둘 사이에 갑자기 생긴 차이를 설명할 말이 없었다.

“저는 아직 거기 안 갔습니다.”

“그렇군요.”

운전자가 더 말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라온은 사과를 다시 듣고 싶지도, 오늘의 사실 확인을 감정 대화로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운전자는 길을 비켰다. 라온이 먼저 나가라는 뜻이었다. 라온은 그 배려를 받아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얼마 전 진수가 묻지 않고 의자를 밀었던 일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비켜 주는 것과 자기 몸을 대신 움직이는 것은 다르지만, 오늘은 작은 친절에도 의미를 덧씌우게 됐다. 그는 “먼저 가겠습니다”라고만 하고 바퀴를 굴렸다. 운전자는 뒤따라 나오지 않았다.

건물 바깥은 빗물이 마른 냄새가 났다. 라온은 맞은편 도로의 우회전 차들을 보았다. 운전자가 말한 표지판을 확인하러 사고 상가까지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오늘 현장을 걸으면 영상의 사각까지 눈으로 채워 넣을 것 같았다. 그는 승후에게 표지판 이동 시각은 시설기록으로 확인해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현장에 다시 갈 날은 자기 몸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 때로 두었다.

오후에 진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병원 이동이 길어져 수요일 훈련에 십 분 늦을 것 같다고 했다. 한 달 생활표가 붙은 뒤에도 늦는 날은 있었다. 라온은 단비와 혜주가 이미 도착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네 사람이 정한 첫 세트 순서를 다시 봤다. 진수가 오기 전에는 스킵의 확정이 필요한 팀 전술을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세 사람이 모여 시간을 버릴 필요도 없었다.

일곱 시에 미란은 세 사람에게 거리 세트를 열었다. 라온은 중앙 앞, 단비는 바깥쪽, 혜주는 두 돌 사이를 목표로 했다. 스위핑은 없었다. 돌을 놓기 전 한 번씩 자기가 노리는 자리와 놓는 순간의 느낌을 말했다. 단비의 돌이 빨리 가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라온은 자기 돌을 놓고 바로 후회했다. 뒤쪽으로 밀릴 줄 알았는데 중앙 앞에서 멈췄다.

“나쁜 돌 아니잖아요.” 혜주가 말했다.

“목표는 저쪽이었어요.”

“그럼 예쁜 실패라고 써요.” 단비가 끼어들었다.

“그런 분류는 없어요.”

“오늘부터 만들면 되지.”

라온은 웃었다. 미란은 기록지에 ‘목표와 실제’만 적게 했다. 예쁜 실패는 셋의 농담으로 남았다.

진수가 일곱 시 십 분이 지나 들어왔다. 그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바로 스킵 자리에 서려 했다. 미란이 물병을 내밀었다. “앉아서 숨부터 고르세요. 남은 오십 분 중 팀 전술은 이십 분이면 됩니다.”

진수는 숨을 고른 뒤 아버지가 진료실에서 기다려야 했던 시간을 설명했다. 변명이 아니었다. 다음번 같은 날에 늦을 가능성을 알려 주는 말이었다. 단비는 “그러면 다음엔 거리 세트 먼저 준비해 둘게요”라고 했다. 며칠 전 같으면 결석을 의지 부족이라 했을 사람의 말이었다.

전술 세트의 마지막 배치에서 라온은 앞선 가드를 요청했다. 진수는 그 대신 측면 길을 열어 두자고 했다. 단비가 공격할 공간이 남기 때문이었다. 라온은 자신의 목표를 다시 봤다. 틀린 제안이라기보다 다른 장면을 본 제안이었다. 그는 확정을 복창하고 측면에 돌을 놓았다. 조금 깊었다. 단비는 이어진 히트에서 상대 스톤을 옆으로 밀었지만 자기 돌도 원하는 자리에 남기지 못했다. 네 사람은 한 점을 얻을 수 있는 길과 빼앗길 길을 함께 봤다. 시간이 끝나 더 던지지 않았다.

돌을 정리하며 진수가 말했다. “늦게 와서 결정만 가져간 것 같네.”

“우린 먼저 던질 수 있는 걸 던졌어요.” 혜주가 답했다. “당신이 필요한 돌은 남겨 놓고.”

라온은 회의실의 빈 이틀을 떠올렸다. 그곳에서는 없는 시간을 누가 채워 줄 수 없었다. 여기서는 없는 사람을 흉내 내지 않으면서도 세 사람이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는 그 차이를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진수에게 마지막 스톤을 건네자 진수가 고맙다고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승후에게서 짧은 연락이 왔다. 회사가 두 날의 배차 원본을 찾지 못했다는 답이었다. 운전자의 알림 확인은 아직 남았다. 라온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의자 바퀴에 붙은 물을 닦았다. 잠시 전까지 빙판에 있었던 작은 물방울이 마른 바닥에 남았다. 없는 이틀은 여전히 없었지만, 오늘의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는 분명히 있었다.

진수가 단체방에 낮게 찍힌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마지막 배치의 돌들이었다. 단비의 돌은 상대를 밀고도 끝까지 남지 못했지만, 라온의 측면 돌 덕분에 완전히 열린 길은 없었다. 사진을 본 단비가 ‘다음엔 내 돌이 남는다’고 썼다. 라온은 그 말에 웃으며 ‘그러면 두 점을 노려 보자’고 답했다. 재생할수록 몸이 굳는 사고 영상과 달리, 이 사진은 다음 동작을 상상하게 했다.

라온은 한 번 더 돌의 간격을 눈으로 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