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두 장의 도착지
차미례는 종이 두 장을 바닥에 놓았다.
차미례는 종이 두 장을 바닥에 놓았다.
한쪽은 동해자원 회수창고로 향하는 초안, 다른 쪽은 최종 선하증권이었다. 글자가 너무 작아 우찬이 돋보기를 주었지만 미례는 받지 않았다. 그는 수하인 이름보다 빈 도착 확인칸을 보고 있었다.
“물건이 어디 갔는지 모르면, 우리한테 온 게 맞는지도 모르는 거네요.”
“초안만으로는 그렇습니다.”
우찬의 말에 미례가 고개를 들었다.
“또 초안이라서요?”
해솔은 잠수 장갑을 세척대에 걸어 놓고 두 사람 사이로 갔다. 초안을 최종본 위에 정확히 겹치자 문구가 어긋나는 자리들이 보였다. 날짜, 수하인, 품목 설명. 한 장을 베껴 쓴 뒤 주소만 바꾼 모양이 아니었다.
“배에 실린 물건을 보러 갈까요.”
해솔이 말했다.
우찬은 그가 바다에 들어가자는 뜻인 줄 알고 말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해솔은 육상 보관장으로 차를 몰았다. 청람호에서 회수해 보존한 화물 포장 일부가 있었다. 바닷물에 젖은 것을 마르게 두지 않고, 어떤 순서로 건져 올렸는지 표시한 곳이었다.
보관장 직원은 울타리 안에서만 안내했다. 작업차가 오가는 길은 건너지 말라고 했다. 미례가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자 직원은 다른 회사 화물의 송장이 찍히지 않게 각도를 잡아 줬다. 미례는 처음부터 청람호 물건만 찍고 싶었다.
회수 목록에 청람호에서 나온 것으로 적힌 냉동화물 표지 7814와 폐기 봉인 계열 1874가 따로 놓여 있었다. 숫자가 뒤집힌 듯 닮아 보였지만 표지 두 장이 실제 화물과 함께 움직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미례가 하나씩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신고된 두 점 일 톤 쪽.”
“봉인 표지는 그렇습니다. 안의 모든 중량을 여기서 재는 건 아니고요.”
우찬이 답했다. 해솔은 1874 쪽의 축축한 종이를 보았다. 13.8톤의 실물 흔적을 한 조각이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조각을 외면하면 사람들이 그 숫자의 무게를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작업차가 후진하며 경고음을 냈다. 미례는 사진을 찍으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가 직원의 손짓을 보고 멈췄다. 차량이 지나간 뒤 바닥에 남은 타이어 자국이 물길처럼 번졌다.
차가 지나가자 1874 표지 옆의 비닐 덮개가 바람에 들렸다. 아래의 젖은 종이가 함께 말려 올라갔다. 해솔은 달려가 붙잡으려다 직원에게 먼저 손짓했다. 직원은 차가 완전히 정지한 것을 확인하고 안전선 안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는 덮개를 새 끈으로 묶었다. 해솔은 그동안 울타리 밖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물속이라면 위험한 곳에 몸을 들이밀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는데, 땅 위 종이 한 장이 날아가는 걸 보자 다 잊을 뻔했다.
“저게 없어지면 다 끝날 것 같았어요?”
미례가 물었다.
“끝나진 않죠. 사진도 있고 기록도 있으니까.”
“그런데 왜 뛰었어요?”
해솔은 젖은 장갑을 내려다봤다. “사람이 놓친 걸 보면 먼저 손이 나가서요.”
미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수할 때 해솔이 어떻게 재필을 데려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때 그의 손이 늦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니 종이의 가치에 대해 더 말할 수 없었다.
직원은 새 끈 끝을 표시지 바깥에 묶었다. 덮개를 열 때 어느 끈이 새것인지 구분하려는 것이었다. 미례는 그 소박한 수를 보며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바다에서 끌어올린 물건은 보관장에서도 계속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움직임을 붙잡느라 하루를 쓴다.
“오늘 일하신 분 성함을 올려도 될까요?”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물건만 올리세요. 우리 집 애들이 이 일 한다고 걱정하는데 사진까지 보면 싫어해요.”
미례는 그의 얼굴이 찍히지 않은 사진만 남겼다. 올릴 수 없는 사람의 수고가 사진 밖에 있다는 것도 글에는 적었다.
“우리가 수색을 멈추면 이 물건들이 먼저 나가겠죠?”
미례가 물었다.
“수색과 위험화물 이송은 같은 장비와 배를 일부 씁니다.”
우찬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미례는 돌아서서 해솔을 봤다. 그에게는 구조한 재필의 얼굴이 있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의 가족도 있었다. 화물을 붙드는 일이 가족을 더 기다리게 할까 봐 해솔이 마음을 접을지도 몰랐다.
“둘 다 해 달라고 하면 무리라는 거, 알아요.”
“둘 다 해야 합니다. 순서를 공개하고요.”
해솔의 말은 쉽지 않았다. 그가 직접 물속에서 시간을 쪼개야 한다는 뜻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찬의 전화가 울렸다. 선하증권 초안의 작성 계정은 퇴사한 선사 직원의 것이었다. 회사는 퇴사 전 예약 문서를 수정하다 남긴 자동 저장이라고 설명했다. 우찬은 통화를 끝내고 차를 길가에 세웠다.
“퇴사일이 언제입니까?”
해솔이 물었다.
“초안 파일의 마지막 수정일보다 앞입니다.”
미례가 짧게 웃었다.
“죽은 계정이 일했다는 거네요.”
“계정만 남았을 수 있습니다. 누가 접속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 말은 알겠어요. 그래도 회사가 한 말은 틀렸죠. 퇴사 전에 수정하다 남긴 것이라면서요.”
우찬은 차 문을 닫지 않은 채 그녀를 봤다. 미례가 맞았다. 초안 작성자까지 확정할 수는 없어도, 자동 저장이라는 해명은 파일 시각과 맞지 않았다.
“그 부분은 바로 수정 요구하겠습니다.”
우찬이 회사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했다. 상대는 시스템 시각이 달랐을 수 있다고 했다. 우찬은 서버 기록의 표준시와 문서 화면 시각을 나눠 달라고 요청했다. 통화가 길어지자 미례는 차창 밖을 봤다. 방파제에 걸린 젖은 깃발이 바람에 한쪽으로만 찢어져 있었다.
저녁에는 전직 직원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직접 만나지 않겠다며 전화로만 설명했다. 자신이 나간 뒤 계정 폐쇄 요청을 했지만 인수인계 때문에 한 달 더 두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한 달이 실제로 얼마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내 이름으로 뭘 썼다고 해도 내가 쓴 건 아니에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그 말을 제가 대신 결론으로 쓰진 않겠습니다. 폐쇄 요청 흔적이 있습니까?”
“메일 보냈죠. 회사가 아직 갖고 있다면.”
우찬은 그가 자신의 메일을 보관했는지 물었다. 전직 직원은 집에 오래된 노트북이 있지만 전원이 들어올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귀찮음보다 두려움이 있었다. 자기 이름이 사고 서류에 다시 올라온다고 해서 좋은 일은 없었다.
미례는 통화 내용을 다 듣지 못했다. 우찬이 개인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해솔에게서 회사 해명 한 문장이 시각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만 들었다. 그는 가족 모임에 이 정도를 말할지 고민했다.
“대표 이름도, 직원 이름도 빼세요.”
해솔이 말했다.
“누구 이름으로 무엇이 작성됐는지 확인 중이라고만 쓰면 사람들이 또 화내겠죠.”
“그 사람을 우리가 먼저 죄인 만들면 나중에 지우기 힘듭니다.”
미례는 휴대전화를 잠갔다. 해솔은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봤다. 미례에게 절제하라는 말은 하루 더 분노를 품고 있으라는 말과 같았다.
“그럼 오늘 본 화물 포장 사진을 올릴게요. 지금 어디까지 건져졌는지도.”
“그건 미례 씨가 직접 봤어요.”
미례는 차량 경고음이 들리지 않는 사진만 골랐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때 멈춰 섰던 일을 글로 남겼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위험한 물건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밤에 우찬이 받은 추가 답에는 초안과 최종본의 품목 설명 차이가 있었다. 초안은 회수 처리용 물질, 최종본은 재활용 원료로 적혔다. 두 표현이 세금과 보험에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는 검토가 필요했다. 하지만 배에 실릴 때부터 같은 물건을 두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해 둔 셈이었다.
해솔은 초안을 반으로 접지 않았다. 두 장을 다시 나란히 폈다. 어느 이름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느 배와 어느 포장에 어떤 물건이 올라갔는지 따라가야 했다.
두 종이 사이로 세척대의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종이를 옮기고 물기를 닦았다.
미례가 문자를 보냈다. *사진 올렸어요. 다들 왜 화물만 보냐고 묻네요.* 해솔은 답장을 쓰다 지웠다. 대신 내일 수색팀 일정표를 먼저 보내 달라고 우찬에게 말했다. 미례에게 보여 줄 순서를 숫자만으로 정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뒤 미례가 다시 썼다. *어머니 한 분이 물으셨어요. 오늘 바다는 들어갔느냐고. 나는 아니라고 했어요.* 해솔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수중 상황이 나빠 하루 쉬었다고 설명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가족에게는 멈춘 하루가 한 사람의 시간 전체를 빼앗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다.
그는 현장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날 조건을 물었다. 바람이 줄면 안전선 바깥의 얕은 구역부터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청람호 깊은 곳과는 다른 작업이었다. 해솔은 가족이 기대하는 장소를 알았다. 그래서 가능한 구역과 못 들어가는 구역을 따로 적어 미례에게 보냈다.
미례는 지도에서 얕은 구역에 작은 점을 찍었다. 해솔에게는 작업 순서였고, 그에게는 가족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장소였다. 미례는 사진 아래에 작업차를 피해 멈췄던 자기 발자리도 표시했다.
*내일은 내일 알려 줘요. 오늘 밤엔 다들 바다 얘기만 들으면 잠을 못 자요.*
해솔은 쓰려던 답을 지웠다. 미례는 정보를 숨기자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는 장비 가방의 버클을 잠그고 불을 껐다. 바다는 내일도 거기 있을 것이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각자의 방에서 밤을 지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