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 스포츠 성장물 42화

빙판 위 다섯 센티

다른 문으로 들어온 돈

상대 운전자는 먼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소라온은 그가 자기 쪽을 보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지난번에는 그 시선 하나 때문에 화가 났을 것이다. 오늘은 탁자 위 서류 두 묶음이 더 신경 쓰였다. 파란 집게는 사고 책임, 초록 집게는 직업재활 비용. 류승후가 둘을 겹치지 않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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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운전자는 먼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소라온은 그가 자기 쪽을 보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지난번에는 그 시선 하나 때문에 화가 났을 것이다. 오늘은 탁자 위 서류 두 묶음이 더 신경 쓰였다. 파란 집게는 사고 책임, 초록 집게는 직업재활 비용. 류승후가 둘을 겹치지 않게 놓았다.

“영상의 시각 차이는 확인했습니다.” 승후가 말했다. “상가 카메라와 차량 기록을 같은 지점으로 맞추면 열한 초 보정이 필요합니다.”

운전자의 대리인이 손을 들었다. “보정 방법 자체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그걸 과실비율로 곧장 옮길 수는 없습니다.”

라온은 바로 말하고 싶었다. 차가 돌아들 때 자신이 서 있던 곳, 상자가 손에서 떨어지던 소리, 치료실 천장의 형광등. 그러나 대리인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각을 바로잡은 뒤에도 보행 위치와 운전자의 확인 의무는 따로 다퉈야 했다. 승후는 그 점을 기록했다.

“그럼 제 교육은요?” 라온이 물었다.

“사고 책임을 전부 정한 뒤에야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상대편은 잠깐 서로를 봤다. 운전자가 처음으로 라온을 바라봤다.

“지금도 고치시는 일은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고치고 있어요.”

“그럼 일은 가능한 거 아닙니까?”

라온은 팔걸이를 세게 잡았다. 오늘 수리 접수를 한 건 받았다고 해서 사고 전 하루 작업량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다. 그 차이를 숫자로만 말하면 또 다른 공격처럼 들릴까 봐 잠시 숨을 골랐다.

“가능한 일이 있고, 지금 방식으로 못 하는 일이 있습니다. 교육은 그 사이를 확인하려는 겁니다. 제가 컬링장 스틱을 점검한 걸 운전자의 책임을 지우는 자료로 쓰진 마세요.”

승후는 초록 집게 서류를 열었다. 직업재활 상담 창구에서 받은 과정 설명과 작업평가 안내가 있었다. 지원 가능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교육비와 사고 손해액을 한 장에서 확정하자는 요구가 아니었다. 지금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필요한 증빙을 어느 쪽이 보존할지만 먼저 정하자는 제안이었다.

운전자는 책상 끝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는 사고가 났던 날 차를 비운 시간이 배송기록에는 짧게 적혔다고 했다. 회사가 빨리 운행을 재개하라고 연락했고, 그때는 라온이 이미 구급차로 떠난 뒤였다고 했다. 라온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들은 적 없는 전화벨 소리를 상상했다. 그 압박이 우회전의 책임을 없애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고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났다고만 생각했던 장면에는 금이 갔다.

“그날 멈췄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라온이 말했다.

운전자는 손을 멈췄다. “멈췄습니다. 늦었지만.”

“영상에는 멈춘 차만 나와요. 언제 내렸는지는 안 보입니다.”

“그건 차 쪽 기록을 찾아보겠습니다.”

라온은 믿겠다는 말도, 거짓말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승후가 확인 가능한 자료의 이름을 적었다. 감정이 잠깐 가라앉자 라온은 목이 아픈 것을 느꼈다. 말을 조심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상대 대리인은 손해액 초안에서 휴업기간의 일부를 뺐다. 라온이 수리 접수를 다시 시작한 날부터는 일하지 못한 기간이 끝났다는 계산이었다. 승후는 그날부터 들어온 수입이 얼마인지, 이전 업무와 같은 양과 조건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라온은 가방에서 수리 장부를 꺼내려다가 멈췄다. 고객 이름과 기기번호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그대로 내면 다른 사람 사생활까지 회의실에 올리게 된다.

“금액과 날짜만 가린 사본을 가져올게요.”

“좋습니다.” 승후가 말했다.

상대 대리인은 자료 제출일을 정하자고 했다. 라온은 이번 주 수리 예약 두 건을 생각하고 가능한 날짜를 말했다. 훈련 때문에 바쁘다는 말을 숨기지 않았다. 진수의 병원 이동일을 대신 맡는 날도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그 생활을 방해물처럼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밖으로 나온 라온은 한동안 자동문 앞에 서 있었다. 운전자가 따라 나오더니 멀리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말은 라온이 바라던 장면보다 짧았다.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합의서에 같은 말을 적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라온은 대답 대신 길을 비켰다. 운전자가 떠난 뒤 승후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그럴 의무는 없습니다.”

“용서했다고 하면 빨리 끝날까요?”

승후는 걸음을 늦췄다. “그 말과 손해를 정하는 일은 다른 겁니다.”

라온은 며칠 전 시각을 맞춰 본 영상보다 오늘 들은 짧은 사과가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여도 자신의 손해를 버리지 않을 수 있는지, 그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장부 사본을 만들다가 더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같은 날 받은 두 의뢰 가운데 하나는 진단만 하고 수리를 하지 못했다. 고객은 부품값이 비싸다며 물건을 가져갔고, 라온은 진단비도 받지 않았다. 장부에는 ‘접수’라고 남아 있었다. 상대편이 그 한 줄을 ‘일한 날’로 세면, 라온이 실제 번 돈과 달랐다.

그는 고객 이름과 기기번호를 가리고 날짜, 작업 내용, 받은 돈만 새 종이에 옮겼다. 수리 성공 건에는 부품비와 자신의 작업비를 나눴다. 장부가 아니라 영수증이 있는 것은 영수증 번호를 붙였다. 수입을 작게 보이게 하려고 숫자를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많아 보이게 적으면 교육지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는 숫자를 그대로 적은 뒤, 왜 현재의 수입이 이전 근무와 같지 않은지 별도 줄에 설명했다.

그때 고장 난 기기 주인이 전화를 걸었다. 하루만 더 기다려 줄 테니 꼭 고쳐 달라고 했다. 라온은 오늘 안에 될 거라고 말하려다 작업대에 놓인 부품을 봤다. 케이블이 꺾여 있어 교체품을 받아야 했고, 자기 손으로 임시로 잇는 방법은 다시 고장 날 가능성이 컸다.

“내일 부품이 들어오면 오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다리기 어려우시면 오늘 물건을 찾아가셔도 돼요.”

고객은 한숨을 쉬었다. “전에는 이런 건 바로 해 주셨는데.”

라온의 입술이 굳었다. 그 말은 비난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오래 맡기던 사람이 기억하는 속도였을 것이다. “전에는 맞아요. 지금은 교체품을 쓰는 게 안전합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에 다시 전화 주세요.”

통화를 끝내고 라온은 한동안 나사를 만지지 않았다. 사고 전의 손을 회의실에서 증명하는 일과, 현재의 손으로 고객 물건을 고치는 일이 같은 날 겹쳤다. 둘 중 하나를 지워야만 다른 하나가 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승후에게 보낼 사본에도 오늘 통화의 예정일을 적었다. 완료된 수리로 앞당겨 쓰지 않았다.

문 앞에서 노크가 났다. 태규였다. 작업대 높이를 실제로 보고 싶다고 미리 연락했었다. 라온은 사본을 뒤집어 고객 정보가 보이지 않게 한 뒤 그를 들였다. 태규는 부품보다 라온의 의자 발판과 작업대 다리 사이를 먼저 봤다.

“이 상태에서 오래 앉으면 팔을 뻗어야 하네요.”

“그래서 왼쪽 공구를 오른쪽으로 옮겼어요.”

“그게 작업평가에서 설명할 내용입니다. 빠르게 고쳤다는 이야기보다.”

라온은 태규가 책상 위 기기를 만지려 하자 손을 들었다. “고객 물건이에요. 허락 없이 열어 보이긴 싫어요.”

“맞습니다. 작업대만 볼게요.”

태규는 자를 꺼내 책상 높이를 재지 않았다. 어깨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휠체어가 정면으로 접근 가능한지만 라온에게 직접 해 보게 했다. 자신이 못 하던 일을 들키는 평가 같을 줄 알았는데, 라온은 의외로 설명할 말이 많았다. 오른쪽 공구함을 낮추니 손목이 편했고, 왼쪽 램프는 그림자가 부품 위로 떨어져 각도를 바꿔야 했다.

“이런 걸 다 기록하면 신청서가 두꺼워지겠네요.” 라온이 말했다.

“한 장짜리 이력서에 다 쓰진 마세요. 현장에서 보여 주면 됩니다.”

태규가 돌아간 뒤 라온은 작업대를 한 번 더 조절했다. 낮아진 상판에서 고장 난 기기 대신 빈 케이블을 잡고 연습했다.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고객의 물건을 받았을 때 어디부터 놓을지는 정했다. 오늘 회의실에서 확정되지 않은 숫자와 달리, 상판의 위치는 자기 손으로 바꿀 수 있었다.

저녁에는 팀의 개인연습 시간이 있었다. 공식 팀 추가훈련은 아니었다. 단비가 먼저 와서 지난번보다 긴 드로를 연습하고 있었고, 혜주는 도서관 교대 전에 구경만 하겠다고 했다. 라온은 빙판 옆에서 스톤이 돌다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 단비의 첫 돌은 표식보다 앞으로 갔고 둘째는 뒤에 멈췄다. 그녀는 짜증을 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둘 다 싫어.”

“가운데를 던지면 되죠.” 라온이 말했다.

“똑똑한 소리다. 네가 해 봐.”

라온은 스틱을 받아 목표를 불렀다. 진수가 없는 자리라 스킵 확정이 필요한 전술 모의는 하지 않았다. 거리 연습이었다. 그는 첫 돌을 놓은 뒤 빙판 끝에 놓인 두 스톤 사이를 봤다. 자기 돌은 단비의 앞선 돌에 부딪혀 옆으로 흘렀다. 실수였다. 그런데 뒤에 있던 돌이 중앙으로 조금 움직였다.

“기적이라고 적지 마.” 단비가 먼저 말했다.

“안 적어. 앞에 돌이 있었잖아.”

“그래도 보기엔 좋았지?”

라온은 인정했다. “좋았어.”

혜주가 휴대전화 대신 머릿속에 남겨 두겠다고 했다. 누군가 보기 좋은 돌을 던졌다고 사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라온은 그날 회의실에서 했던 말을 단비에게 상세히 하지 않았다. 단비도 묻지 않았다. 빙판의 짧은 개방시간이 끝날 때까지 세 사람은 앞뒤로 선 돌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봤다. 차가 서 있던 길과는 다른, 그들이 직접 바꿀 수 있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