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트랙은 비어 있다
멈춘 바늘의 아침
태오는 여덟 시 오십 분에 별관에 왔다.
태오는 여덟 시 오십 분에 별관에 왔다.
청년이 말한 아홉 시 반보다 사십 분 빨랐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 운반대는 이미 복도에 나와 있었다. 악기 케이스 네 개가 차례로 서 있었고, 청년은 케이블을 손목에 감으며 바닥 매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찍 왔네요.”
“약속은 아홉 시 반이었죠.”
“그때까지 끝내면 돼요. 나도 그때 차에 실을 거니까.”
청년은 길을 비켜 주었다. 어제는 자기 일을 방해하는 낯선 사람이었던 태오가 오늘은 시간을 지키러 온 사람으로 보였다.
노을과 이솔은 미경이 문을 연 뒤에 들어왔다. 전날 본 선반과 매트의 위치를 먼저 맞췄다. 노을은 매트 가장자리만 허락된 만큼 들어 빛을 비췄다. 자국들은 모두 원이 아니었다. 납작한 타원도 있었고, 겹쳐진 두 줄도 있었다. 태오가 숫자를 세려 하자 노을이 손바닥을 폈다.
“형태를 먼저 그려요. 세는 건 나중.”
태오는 투명 종이를 받았다. 원반 일흔두 장이 떠오를 때마다 선을 하나씩 더 긋고 싶었다. 대신 눈에 보이는 자국의 경계만 따라갔다. 매트를 원래대로 놓고 사진의 방향을 미경에게 확인받았다. 청년은 아홉 시 이십 분에 카트를 밀었다. 바퀴가 걸리던 자리를 지나자 그가 엄지를 세웠다.
“이제 이거 옮겨도 돼요?”
“당신 작업에 맞춰 쓰세요.”
노을이 말했다. 청년은 매트를 한쪽으로 말아 복도에 세웠다. 태오는 순간 아까 그린 자국이 달라졌을까 걱정했지만, 사진과 그림이 남았다. 과거를 붙들겠다고 현재의 공연을 취소하게 할 수는 없었다.
선반 위의 습도계는 여전히 같은 숫자를 가리켰다. 미경은 시설 서류철을 가져왔다. 오래된 장부를 열자 종이가 살짝 울었다. 그는 작동하는지 확인하려고 창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바늘은 어제와 같은 곳에 있었다.
“창문 바람으로 습도가 바로 바뀌진 않죠.”
노을이 말했다. “오늘 작동 확인을 하려면 기준 기구가 필요합니다.”
미경이 수리표를 펼쳤다. 2001년 여름 제습기 수리, 같은 달 습도계 교체 신청 취소. 교체 신청 옆에는 보관실이 곧 비워질 예정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태오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누군가 그때 이 방을 비우려 했다는 뜻이었다.
노을은 수리표 아래에 붙은 작은 영수증을 떼지 않고 들여다봤다. 제습기 필터 두 장과 물받이 통 하나. 수리 기사 이름은 반쯤 닳았다. 미경은 당시 이 건물의 시설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며 연락처를 찾아 보겠다고 했다. 태오는 영수증의 종이가 습기를 먹어 물결처럼 휘어진 것을 보았다. 습도를 관리하던 방의 서류가 이렇게 젖어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웃길 만하죠.”
미경이 말했다.
“기계 고치라고 불렀더니 기사가 서류를 창가에 놓고 갔대요. 비가 들이쳤던 날이라 구겨졌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보신 건 아니죠?”
“그때 저는 여기 없었어요. 전 담당자한테 들었어요.”
미경은 입을 삐죽였다. 어제부터 이 방에서는 기억 하나에도 출처가 붙었다. 그래도 그가 새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기 경험처럼 말하지 않는 데 익숙해진 것이 태오는 고마웠다.
노을은 젖은 영수증이 방의 오래된 습도 수치를 말해 주진 못한다고 했다. 대신 비가 들이칠 수 있는 창의 위치를 보러 갔다. 창틀은 한 번 교체됐고, 아래 나무에는 두 종류의 못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현 창틀 이전의 물길이 어디로 흘렀는지 남은 얼룩만으로는 전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원반을 놓았다면 창가보다는 선반 안쪽이었겠네요.”
태오가 말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해서 바닥 보관 금지를 써 붙였겠죠.”
노을은 실제 물건이 놓였던 자리를 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태오를 선반 뒤로 불렀다. 판을 받치는 쇠못 하나가 다른 것보다 새것이었다. 오래된 판이 휘어 교체한 흔적이었다. 원반이 무거워서인지, 다른 짐이 무거워서인지 따지려면 교체 날짜와 당시 하중이 필요했다. 태오는 쇠못을 만져 보고 싶었으나 노을이 손등으로 못 끝을 가렸다.
“당신 손에 녹 묻으면 이 사진에 찍힌 자국도 당신 손자국이 됩니다.”
“농담도 기술적으로 하네요.”
“그러니까 웃으세요.”
태오는 결국 웃었다. 전날부터 팽팽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실제로 비웠습니까?”
“그 뒤 장부를 봐야죠.”
미경은 서류를 넘겼다. 2001년 가을 전력 사용량이 떨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0이 아니었다. 복도 조명과 다른 입주자의 전기가 함께 잡힌 계량기였다. 원반이 언제 나갔는지를 전력 숫자로 정할 수는 없었다.
태오는 손을 뻗어 습도계를 만지려다 말았다. 지금 바늘이 멈춘 시점과 그때 창고를 비운 시점이 우연히 나란히 보였다. 두 사건을 한 사람의 행동으로 합치면 이야기는 쉬워졌다. 실제로는 2001년 여름에 고장났다는 기록조차 교체 신청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그럼 바늘은 언제 멈춘 겁니까?”
“오늘 확인한 건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노을은 휴대용 기준계를 선반에 놓았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바늘이 천천히 움직였다. 벽의 오래된 계기는 그대로였다. 미경은 머쓱한 듯 웃었다.
“그동안 여기 온 사람마다 그 숫자가 맞는 줄 알았겠네요.”
“그 숫자를 보고 결정한 게 있었을까요?”
이솔이 물었다.
미경은 장부 뒤의 낡은 주의표를 꺼냈다. 비가 오래 오면 뒷벽 아래에 물기가 맺힌다는 내용이었다. 보관상자를 바닥에 두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 작성 날짜는 2000년 겨울. 원반 상자가 있었다면 선반 위에 있어야 했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지시를 실제로 지켰는지는 별개였다.
밖에서 청년이 운반대를 끌다 다시 들어왔다. 케이스 하나의 바퀴가 고장났다며 작은 드라이버를 빌릴 수 있느냐고 했다. 미경이 찾는 동안 태오는 케이스를 받쳐 줬다. 청년은 공연장에 늦으면 오늘 연습이 무산된다며 짜증을 냈다.
“이런 날 하필 옛날 물건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와서는.”
“시간 맞춰 끝냈잖아요.”
태오의 말이 날카로웠다.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당신들한테 늦었다고 한 게 아니에요. 바퀴한테 화난 거예요.”
둘은 잠깐 말없이 고장 난 축을 봤다. 태오가 바퀴를 들어 주자 청년이 나사를 다시 끼웠다. 케이스가 똑바로 섰다.
“됐네요. 고맙습니다.”
태오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어제 방에서 들은 바퀴 소리를 의자 소리로 착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오늘 그 소리는 지금 여기서 누군가의 연주를 무사히 실어 나르는 소리였다.
미경이 1999년의 전력 기록을 찾아왔다. 출고일 뒤에도 별관 보관실의 전력 사용이 이어졌고, 2001년 제습기 수리까지 비용이 지출됐다. 원반 상자가 그 기간 내내 있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방이 방치됐다는 태오의 첫 상상은 틀렸다. 누군가 돈을 내고 습도를 관리하려 했다.
“누가 비용을 냈습니까?”
“제작실 법인에서요. 해산한 밴드 법인 직인이 있는 청구서도 섞여 있습니다.”
태오는 운송장의 직인을 떠올렸다. 수령 도장이 모든 권리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보관료를 계속 낸 쪽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미경은 개인정보가 섞인 청구서를 바로 복사해 줄 수 없다며 보관 주체 확인에 필요한 항목만 가린 사본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노을은 습도계 아래 벽 얼룩을 다시 봤다. 얼룩 높이는 선반 첫 판보다 낮았다. 물이 고였던 때에도 위쪽 물건은 직접 젖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보존 상태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습한 공기와 직접 물기가 닿는 일은 달랐다.
“그때도 여기 있던 물건을 우리가 지금 찾는 건지 모르죠.”
태오가 말했다.
“그래서 보관료가 쓸모 있어요.”
이솔은 청구서의 대상 기간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미경은 보관 물품 이름이 없는 칸을 가리켰다. 이름 없는 비용을 누가 왜 냈는지, 다음에는 사람과 계약에서 확인해야 했다.
청년이 떠나며 창문을 닫아 달라고 했다. 악기가 젖으면 소리가 변한다고 했다. 미경이 문을 닫자 오래된 습도계 바늘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태오는 그 숫자를 더는 방의 온전한 역사로 보지 않았다. 고장 난 물건도 누가 그것을 믿고 돈을 냈는지에 따라 사람의 선택을 드러냈다.
그날 저녁 노을이 사진을 보내 왔다. 매트 자국을 세기 전에 그려 둔 투명 종이였다. 태오가 원으로 보았던 흔적 하나에는 네모난 받침의 직선이 겹쳐 있었다. 누군가 상자를 원반 위에 얹었는지, 전혀 다른 물건이 먼저 놓였는지 알 수 없었다. 태오는 종이를 화면에 붙잡고 한참 확대하다가 손을 뗐다. 아침의 청년은 지금 무대에 있을 것이다. 그는 빈 창고를 찍은 사진 대신 공연 안내문을 열었다. 시작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낯선 사람의 연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안심했다.
문주에게서는 짧은 메시지가 왔다. *별관 안에서 내 얼굴을 찾진 않았죠?* 태오는 한참 답을 쓰지 못했다. 문주가 건넨 사진을 현관 앞에서 떠올렸다고 솔직히 적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들어간 보관실에서 문주를 보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내가 모르는 방이었어요.* 문주는 답 대신 공연장의 라이브 음향 링크를 보냈다. 태오는 재생을 누르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소리를 잘못 붙이는 일을 경계한 끝에, 새 연주만큼은 내일 온전히 듣고 싶었다.
창밖의 전철 소리가 끊긴 뒤에도 그는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기다림이 처음으로 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