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3미터의 종
빈 사무실의 화주
청록메탈의 간판은 뒤집혀 있었다.
청록메탈의 간판은 뒤집혀 있었다.
흰 플라스틱 뒷면이 복도로 나와 있었다. 앞면을 벽 쪽으로 돌려 매단 까닭에 회사 이름은 유리문에 비친 모습으로 읽어야 했다. 차미례는 그 거꾸로 선 글자를 읽고 발을 멈췄다.
“왜 떼지는 않았대요?”
관리인이 열쇠 꾸러미를 뒤졌다.
“나중에 가져간다고 해서요. 우리 물건이 아니니까.”
강해솔은 잠긴 문 너머를 보았다. 책상도 사람도 없었다. 바닥에는 의자를 오래 놓아둔 흔적조차 희미했다. 햇빛이 빈방을 끝까지 가로질렀다. 청람호 화물칸에서는 등 하나를 움직여도 가리는 물건이 많았는데, 이 회사에서는 빛이 부딪칠 것이 없었다.
미례는 자신이 오겠다고 했다. 회사에 따지러 가는 게 아니라, 주민들에게 설명하기 전에 자기 눈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우찬은 사유물에 손대거나 우편물을 열지 않는 조건을 먼저 설명했다. 미례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내가 화가 나면 말을 세게 할 수는 있죠. 남의 봉투를 뜯을 사람은 아니에요.”
그녀는 빈 가방 하나만 들고 왔다. 무엇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관리인이 문을 열었다. 냄새는 예상과 달랐다. 금속도 약품도 아니었다. 새 장판과 오래 닫힌 창문 냄새가 났다. 해솔은 신발 바닥을 내려다봤다. 바다에서 묻힌 흔적을 여기에 옮기고 싶지 않아 입구 매트에 두 번 문질렀다.
벽 한쪽에는 전원선이 짧게 남아 있었다. 해솔이 그것을 바라보자 관리인이 먼저 말했다.
“인터넷은 다른 분이 신청했다가 취소했어요. 그쪽 서류는 통신사에 물어보셔야 하고요.”
우찬은 전선 끝을 만지지 않았다. 회사가 이 방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보여 주는 설명과, 실제 계약 기록은 구별해 적었다.
“직원은 몇 명이나 보셨습니까?”
“직원이 있었는지는 모르죠. 계약할 때 한 분, 열쇠 받으러 한 분. 가끔 봉투 가지러 오는 분.”
관리인은 방문한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셌다. 회사 인원을 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장면을 세고 있었다. 우찬이 표현을 고치지 않아도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
미례는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창밖에는 작은 세탁소와 김밥집이 있었다.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아주머니가 차양을 펴고 있었다.
“열세 톤을 움직이는데 방 하나가 이렇게 비어 있네요.”
그녀가 말했다.
“사무실을 따로 썼을 수도 있습니다.”
우찬의 대답에 미례가 돌아섰다.
“그럼 그 사무실로 가면 되잖아요. 늘 있을 수도 있다고만 하면 어디를 봐야 해요?”
해솔은 우찬 대신 입구 쪽을 가리켰다.
“열쇠 받은 사람이요. 일단 저 문을 열었던 사람부터.”
미례는 말없이 창문에서 물러났다. 우찬도 수첩을 덮고 관리인에게 협조 가능한 자료의 범위를 다시 물었다.
관리대는 계단 밑에 있었다. 난방기가 켜져 있어 복도보다 따뜻했다. 우편함에는 회사 두 곳의 이름이 낡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청록메탈, 그리고 전날 보험료 대장에서 본 선사 관계사.
같은 고무줄에 묶인 봉투들이 그 옆 선반에 놓여 있었다.
관리인은 미례가 바라보는 것을 보고 설명했다.
“찾으러 오는 분이 같아서 묶어 놨습니다. 우편함으로 따로 넣으면 남았다고 다시 전화하더라고요.”
“회사도 같은 곳입니까?”
미례가 물었다.
“그건 모르죠. 제가 우편 배달하는 사람이랑 회사 주인이 같은지도 다 압니까.”
관리인의 말투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래서 미례는 화를 낼 데가 없었다. 그녀는 봉투에 손을 대지 않고 가방 끈만 쥐었다.
관리인은 관리용 연락대장을 펼쳤다. 다른 임차인의 번호는 종이로 가렸다. 두 회사가 비상 연락처로 남긴 번호의 끝 네 자리가 같았다. 우찬은 가린 부분을 들어 보지 않았다. 같은 번호를 누구 이름으로 언제 받았는지 확인했고, 관리인이 제출에 동의한 해당 항목만 따로 남겼다.
해솔의 전화가 울렸다. 선사 홍보 담당자였다. 전날 요청한 부록 작성 자료의 제출 창구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조사관 연락처를 받은 뒤 상대는 잠깐 말을 멈췄다.
“지금 청록메탈 사무실에 계십니까?”
해솔은 복도 끝을 보았다. 문이 하나 열렸다가 닫혔다.
“그건 왜 묻습니까?”
“관계사 직원이 물류 대행을 도운 것뿐입니다. 별도 법인인데, 같은 회사처럼 보도되면 곤란합니다.”
“아직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숨소리가 끊겼다. 해솔은 그 짧은 침묵을 즐기려다가 멈췄다. 누군가 방문을 알려 줬을 수도 있었다. 놀랐다는 것만으로 숨겨진 통제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명 자료는 조사관에게 보내 주세요.”
통화를 끝내자 미례가 물었다.
“우리가 온 걸 어떻게 알았대요?”
관리인이 바로 손을 들었다.
“제가 아침에 연락했습니다. 퇴거한 방이라도 확인하러 오신다고요. 열쇠 맡긴 분한테.”
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설명을 버리고 더 무서운 설명을 고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회사가 별개라면서 관계사 쪽에 먼저 해명이 도착하는 속도는 기록할 만했다.
우찬이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미례와 해솔은 관리대 앞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관리인이 전기주전자 물을 올렸다. 컵라면 냄새가 뒤늦게 났다.
“여기도 사람이 사네요.”
미례가 낮게 말했다.
해솔이 그녀를 보았다.
“회사만 텅 빈 거지, 이 건물이 텅 빈 건 아니네.”
관리인은 들은 척하지 않고 종이컵 두 개를 내놓았다. 미례는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이 아침부터 그녀가 처음 건넨 부드러운 말이었다.
우찬은 사고 담당 조사관과 통화하고 돌아왔다. 명목 대표와 연락이 닿았고, 오후에 지정된 장소에서 설명을 듣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명목 대표라는 표현도 아직 상대방의 설명이었다. 법인 설립을 대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미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람 얼굴을 보고 싶어요.”
“오늘 면담에는 조사 담당자와 필요한 사람만 들어갑니다.”
우찬이 말했다.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
“참고인이 말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피해 당사자입니다.”
미례는 컵을 내려놓았다. 물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해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찬의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미례가 아프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녀는 빈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무엇도 가져오지 않은 가방이 아침보다 무거워 보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미례는 휴대전화에 문장을 썼다. 사람도 없는 유령회사가, 거기까지 적고 손을 멈췄다. 해솔은 운전 중이라 화면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입으로 읽는 소리는 들었다.
한참 뒤 지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확인한 주소에는 집기와 상주 직원이 없었고.”
그녀는 다시 썼다.
“우편물 수령인과 관리 연락처가 관계사와 겹쳤다.”
미례가 해솔에게 물었다.
“이러면 사람들이 안 읽겠죠?”
“읽을 거예요.”
“왜요?”
“미례 씨가 직접 가서 본 거니까요.”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보내기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함께 화내 줄 문장을 지운 탓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잠시 뒤 가족 모임의 단체방에 긴 문장이 올라갔다. 돌아온 답 중에는 그래서 누구냐고 묻는 말도 있었고, 고생했다는 말도 있었다. 미례는 어느 쪽도 지우지 않았다.
오후 면담에는 해솔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대책실 앞에서 장비를 정리하다 우찬을 기다렸다. 바다에 들어갈 장비는 당장 쓸 일이 없어도 점검해야 했다. 세척한 버클을 닫았다 열었다. 오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들어갈 수 없는 방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돌아온 우찬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법인 설립은 화물 계약 한 달 전. 설립 비용을 낸 쪽과 임차 보증금을 보낸 쪽은 대표 개인이 아니었다. 제출받은 거래 자료의 참조번호가 전날 본 보험료 비용 항목과 같은 관계사 부서로 이어졌다.
명의상 대표는 실제 물류 협상을 선사 운영본부와 했다고 말했다. 그 진술 하나로 확정하지 않고 메일 송수신 내역과 결재 경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서로 모르는 회사는 아니군요.”
해솔이 말했다.
“그 주장부터는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류경문까지 갑니까?”
우찬은 대답 대신 비용 승인표를 보여 주었다. 대표 승인선 아래에서 항목이 갈라져 있었다. 해솔은 빈 서명칸을 보았다. 빈칸이라서 무죄도 아니었고, 빈칸이라서 더 교묘한 범죄라는 뜻도 아니었다. 그 위로 가려면 다른 다리가 필요했다.
그때 관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찬이 스피커를 켜기 전에 해솔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통화는 짧았다.
“아까 말한 보관 물품 목록입니다.”
우찬이 설명했다.
“임차인이 퇴거하면서 관리대에 두고 간 서류 상자 중에, 반송된 운송 서류 묶음이 있다고 합니다. 관리인이 봉투를 연 게 아니라 겉면의 반송 표지를 확인한 거예요.”
그날 저녁에는 사고 담당 조사관에게 적법한 제출 범위를 확인한 임차인 측 대리인이 해당 묶음을 인계했다. 우찬은 전달받은 목록과 확인용 사본 중 하나를 해솔에게 보여 주었다.
선하증권 초안.
최종본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종본과 다르게 적힌 이름이 하나 있었다.
동해자원 회수창고.
해솔은 그 이름 아래 비어 있는 도착 확인란을 보았다. 배에 실었다는 서류와 배가 가라앉았다는 서류 사이에, 원래 어디로 보내려 했는지가 있었다.
“저 창고에서는 이 물건을 기다렸을까요?”
해솔이 물었다.
우찬은 최종본을 옆에 놓았다. 수하인이 달랐다.
“기다린 물건이 똑같았는지부터 봐야겠습니다.”